에어비앤비 초창기 일화들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의 일대기를 그린 업스타트(The Upstarts)라는 책을 읽고 있다. 에어비앤비 초창기 일화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워낙 유명해서 여러 기사나 풍문으로 토막토막 접했는데, 책으로 보니 쭉 스토리로 연결되는게 마치 무협지를 보는 듯한 매력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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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버 이야기를 하는 챕터와 에어비앤비를 다룬 챕터로 양분되어 있고, 우선 에어비앤비 부분을 골라서 쭉 읽었다. 에어비앤비의 일대기중 사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주 초창기에 창업자들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결정들을 내렸으며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각종 규제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도 있는데, 난 직업탓인지 초창기에 있었던 삽질이나 어려움 극복해 간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아래는 이 책 내용중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중심으로 발췌및 요약하고 내 설명을 더한 것이다.

<오바마 씨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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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 초창기 춥고 배고프던 시절 궁여지책으로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씨리얼’을 만들어 팔았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그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일화로, 이 창업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바퀴벌레’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이 책에 의하면 처음엔 창업자들이 씨리얼 만드는 식품회사 (켈로그, General Mills)들과 협업을 통해 공식적인 제품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쪽에 전화해서 열심히 설명했지만, 담당자들은 조금 듣다가 그냥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난 이 장면이 상상되서 얼마나 웃기던지 ㅎㅎ 아마 그 담당자들은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 완전 똘아이들이라고 생각했을거다.) 결국 이들은 수퍼마켓에가서 씨리얼을 왕창 사다가 오바마 그림을 프린트한 박스에 재포장을 하는 노가다를 택한다. 심지어 아주 흥겨운 가락의 씨리얼 로고송 같은것도 작사 작곡해서 유튜브에 올렸다고 한다 (유튜브 뒤져보니 이게 정말 있다! 링크). 당시는 Y Combinator (액셀러레이터) 들어가기도 전인 극초기로써, 이들을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한명 있었다면 엔젤 투자자이자 멘토역할을 했던 마이클 싸이벌(Michael Seibel)이라는 사람이었다. 근데 싸이벌 아저씨마저도 이 씨리얼 이야기와 로고송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ㅋㅋㅋ.  역시 일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 (= 미친짓)이나 그 초석을 닦는 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건 아니다.

<Y Combinator>

줄여서 YC라고도 불리는 이 액셀러레이터는 폴 그램이라는 사람이 시작했고 에어비앤비, 드랍박스 같은 걸출한 스타트업을 양성해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YC가 잘되면서 폴 그램도 ‘실리콘밸리의 요다 (스타워즈 캐릭터)‘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명성을 얻었는데, 사실 그도 상식적인 사람이라 모르는 사람에게 내 집한켠을 내주는 사업아이디어에 상당히 회의적이였다. 그럼에도 그들을 배치팀으로 뽑아준건 순전히 그 씨리얼 이야기를 듣고 감명 받아서였는데, YC에 들이고 나서도 계속 그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다 한다. 당시에 에어비앤비 싸이트가 론칭되고 뉴욕에서 40명 정도 호스트가 반신반의 하면서 방을 올린 시점이였는데, 체스키를 비롯한 창업자들은 폴 그램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기회가 될때마다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폴 그램은 질문을 듣다가 “여기 왜 이러고 앉아있냐. 뉴욕에 호스트들이 있다면 당장가서 만나보라”라고 주문했다. 그 이후로 체스키와 게비아는 주말마다 뉴욕으로 가서 호스트들 챙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갔다. 실리콘밸리에서 비행기로 편도 5-6시간 걸리는 거리라서 주말마다 동부로 간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였을거다. 현장에서 그들은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려면 멋진 방 사진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호스트들에게 전문 사진사를 보내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컴퓨터 화면 앞에서 짜는 전략은 개뿔. 정답은 현장에, 고객에 있다.

<써코야 캐피탈의 투자>

써코야 캐피탈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명성의 벤처캐피탈 회사인데, 그 회사의 McAdoo라는 파트너가 에어비앤비에 기관투자자로서 첫 투자를 하게된다. $585,000 (약 6억원 상당)을 투자하고 지분 20%를 획득했다. 이 지분가치가 2016년 기준으로 $4.5billion (약 5조원)이 되면서 써코야 역사상 최고 수익률을 냈다고 한다 (구글에 투자한 실적보다도 높다니 말 다했다).  지금은 2016년보다도 기업가치가 더 올랐으니 지금까지 들고 있다면 아마 1천배 이상 벌었을것 같다. 부럽다 ㅎㅎ. 써코야가 간단히 손쉽게 돈을 꽂아 대박낸 것은 아니고, 투자 전부터 McAdoo가 어떻게 창업자들과 관계를 쌓았고 투자후에도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지원했는지 나오는데, 읽어보면 괜히 써코야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투자쪽에 있는 사람이면 찾아서 읽어볼만 하다.

<절약정신>

씨리얼 일화에서도 알수 있듯이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의 절약정신은 남달랐다. 창업자 3명중 한명인 Nathan Blecharczyk(당시 24세)라는  해커 기질의 개발자가 전체 싸이트를 혼자서 모두 코딩해내서 초기에 한동안 개발 인력을 따로 뽑지 않았다. 심지어 고객지원 담당인력도 안뽑아서, 고객문의 전화는 언제나 창업자 게비아의 핸드폰으로 연결되었다. 투자후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첫 풀타임 엔지니어를 1명 고용했다고 하니 얼마나 고르고 골라서 택한 사람이였을지 상상이 간다.  추후에 직원이 늘어 10명이 되었지만, 사무실 없이 창업자들의 아파트가 사무공간이였고 한켠에는 매트리스가 있었다. 채용인터뷰는 보안을 위해 아파트 층계에서 해야했고, 중요 전화는 화장실에서 받았다.  팔고남은 씨리얼로 연명했던 시절도 있던 창업자들이니 이정도는 어찌보면 놀랍지도 않다. 암튼 돈을 벌기 전까지는 다소 극한체험에 가까운 절약정신으로 회사의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

이외에도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일어난 사고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로켓인터넷 같은 카피캣 회사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전세계 도시의 각종 규제에 어떻게 맞섰는지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정말 배울게 많은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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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창업자들: Joe Gebbia, Nathan Blecharczyk, and Brian Chesky.

 

 

 

투자자를 잘 이용하는 법

아마존의 일대기를 그린 책 Everything Store 라는 책 86페이지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Bezos deployed Doerr to talk to Howard Stringer at Sony America, but he got nowhere” (베조스는 도어를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미국 지사장에게 보내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 대목의 배경은 1999년에 아마존이 온라인에서 전자기기 상품 판매를 준비중이였던 때다. 아마존은 제품을 공급해줄 소니 같은 회사를 모집하고 있었고, 소니는 과연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하는게 현명한가를 재고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베조스는 누구나 다 아는 아마존 창업자/CEO 이고, 존 도어 (John Doerr)는 클라이너 퍼킨스의 전설적인 VC로 아마존의 초기 투자자였다. 베조스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니 사장과의 미팅에 도어를 보낸것이다. 베조스가 당시에 바빠서 그랬던 것일수도 있고, 도어가 스트링거 사장과 친분이 있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수도 있다. 책의 작가는 ‘deployed’ 라는 표현을 썼다. 전투기를 출격시킬때도 이 말을 쓰는데, 한마디로 믿을만한 인물이였던 도어를 소니로 ‘출격시켰다’라고 이해해도 좋을듯 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베조스는 역시 투자자를 ‘특사’처럼 잘 이용할줄 알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어떤 창업자는 투자자를 너무 어려워해서 연락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창업자는 투자자가 연락해오는 것을 ‘간섭’이라고 여기고 싫어하기도 한다. 둘 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서 회사를 잘 되게 하는게 가장 좋다.

그럼 창업자 입장에서 어떻게 투자자를 잘 ‘활용’해서 도움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투자자들마다 성향도 다르고 하니 내가 모든 투자자를 대변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10년째 투자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몇가지 팁을 공유하려 한다.

일단 투자자가 회사를 잘 도와줄 수 있으려면, 투자자가 이 회사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뭘 만들고 있는지, 어떤 시장인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stage 인지 등등. 이 부분은 창업자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투자자에게 정보공유를 잘 해줘야 가능해진다 (물론 투자자도 회사를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많은 경우 월간 업데이트나 전화/대면 미팅을 정기적으로 하면 많이 해소된다.

또 좋은 도움을 이끌어내려면 창업자는 투자자라는 직업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 VC와 같은 전문 투자자라면 보통 여러개의 회사와 관계를 맺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회사에 대해 일주일 내내 고민하기 힘들다. 많은 경우 짧은 단위(몇시간~반나절)로 도와주고 다음 회사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의 깊이가 얕아 보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장점도 있다. 투자자는 도처에 아는 사람이 많다. 회사가 필요한 중요한 커넥션을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연결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각종 회사의 이런 저런 케이스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떤 현안에 대해서 짧지만 직관적이고 임팩트 있는 의견을 줄 수도 있다.

아래는 몇가지 바람직한 도움 요청의 예와 그렇지 못한 예를 적어 본 것이다.

<전략 고민>

  • No Good: 우리회사 글로벌 진출 전략좀 짜주세요
  • Good: 이번에 동남아 진출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위해 이런저런 시장 조사를 해보았는데, 조만간 한번 같이 논의했으면 합니다

<사람 소개>

  • No Good: 사업을 같이 해나갈 코파운더급 인재를 찾습니다. 똑똑하고 열정많고 성격도 좋은 사람좀 찾아주세요
  • Good: 이번에 우리가 E-commerce 업체들과 이런 제휴를 해보려 하는데 이분야 사업개발쪽에 아는 분이 있으면 소개좀 해주세요

<후속 펀딩>

  • No Good: 3개월후면 돈이 바닥날것 같은데 어떡하죠?
  • Good: [고구려창투] 회사가 우리회사 같은 분야 투자에 적극적이라고 하니 fit이 맞을것 같은데 소개해 주실수 있으신지요?

<피드백 요청>

  • No Good: 회사 소개자료에는 무슨 내용을 넣어야 하나요?
  • Good: 회사 소개자료 초안을 첨부와 같이 작성했습니다. 한번 리뷰해 주시고 의견 주시면 좋겠습니다.

<HR 이슈>

  • No Good: 새로 팀장 한명을 영입했는데 스톡옵션 몇주를 주면 될까요?
  • Good: 직급에 따른 2018년도 스톡옵션 발행 계획 초안을 마련중인데 조만간 같이 리뷰를 원합니다

위의 예시에서 No Good 에 적은 것들은 대부분 창업자나 경영진이 1차적으로 직접 풀어내야 하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글로벌 진출에 대해 투자자가 경영진의 1차적인 시장조사나 향후 계획을 들어보고 의견을 주거나 다른회사의 예를 공유하며 지혜를 나눠줄 수는 있지만, 몇날 몇일 동안 경영자 대신 전략을 대신 짜 줄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투자자에게 도움을 요청할때 한가지 주의할 점은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다. 투자자가 월간 미팅등을 통해서 회사 상황은 큰그림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창업자가 갑자기 네이버 광고팀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왜 이런 요구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context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앞뒤 배경을 잘 설명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이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는 하루종일 그 문제에 묻혀서 살다보니 그런 것일수도)

전문 투자자는 회사의 이런 저런 현안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도 있고, 필요한 사람을 소개해 줄 수도 있으며, 때에따라 후속펀딩이나 M&A 같이 중요하거나 민감한 건에 대해서는 ‘특사’처럼 발벗고 직접 뛰어줄 수도 있다. 이렇게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선 창업자와 투자자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 출발점은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말인데 투자자가 이메일 보내면 짧게라도 답해주시라 ㅎㅎ

쏟아지는 조언을 가려듣는 법

창업가는 하루에도 크고 작은 여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무실 집기 구매같은 소소한 것에서부터 제품 전략이나 핵심 임원 채용 같은 중대한 문제까지 말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혼자 고민하기 버거우면 주위의 자문을 구하게 되고,  또 창업가들은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이런 저런 훈수 두는 사람이 많기 마련이다. 친구나 지인들은 물론, 어쩌다 명절때 만난 삼촌까지  “그 사업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잘 될것 같은데~” 라며 한마디씩 거두기 일쑤다. 나에게도 “요새는 바이오가 핫 하다는데 윤대표도 그쪽에 투자해야 하는것 아냐?” 라는 말하는 분이 몇몇 있었다. 다 좋은 뜻이지만 그걸 다 따를 수는 없다.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은 귀를 막고 사는 것보다 훨씬 잘하는 거다. 문제는 넘쳐나는 조언과 훈수 속에 뭘 택하고 뭘 버려야 하는지 애매하다는 것 (누구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참조). 남의 조언을 잘 듣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후, 그 내용을 내재화해서 내 행동과 결정에 적용하는 것은 결국 창업가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나도 많은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지혜를 구하려 애쓰는 편인데, 타인의 말을 가려 듣는 내 나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말하는 분이 해당분야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가? 

너무나 당연한 기준이다. 동네에서 자영업에 종사하시는 삼촌에게 우리 회사 해외진출 전략에 대해 조언을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창업가에게 이사회 멤버로서 조언해줄 때 늘 조심하려 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새로 출시한 모바일 앱에 대해 내가 일반 사용자로서 사용해보고 느낌이나 피드백을 줄 수는 있지만, 나는 UI/UX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경영진에게 미리 상기시켜 준다. 반대로 투자에 관해서는 거의 10년째 이 업을 하고 있어 경험도 많고 내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으니 후속 투자 유치등에 관해 말할때는 좀 더 힘 주어서 목소리를 내곤한다. 암튼 해당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서 듣는 말이 제대로 된 조언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이 정말 해당 분야에서 믿을만한 전문가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또 창업가의 몫으로 남는다)

2. 말하는 분이 어떤 bias (편견, 편향)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본인이 속한 단체나 이익관계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 bias 가 되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 사장은 햄버거에 관해 세계적인 전문가 이겠지만, 그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가 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맥도날드라고 할 것이다 (내 주관적인 견해론 Shake Shack 이나 Five Guys가 훨씬 맛있다).  어떤 조언을 들을 때 그 사안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사심없는’ 견해를 들을 수 있다면 참 좋다. 물론 전문가일수록 해당 분야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완전히 중립적인 스탠스를 가진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쓰고보니 상식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긴 하지만, 리마인더 차원이라고 봐도 좋다.

초기 스타트업이 돈을 아껴야 하는 이유

초기 스타트업은 왜 돈을 아껴야 할까?

뭐 쉽게 생각하면 스타트업은 보통 돈이 늘 부족하기 마련이니 돈 아끼는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이유는 초기 스타트업이 지불하는 비용은 뭐든지 비싸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지불하는 비용이 비싸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스타트업은 물건 살 때 바가지라도 쓴단 말인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런 저런 경로로 투자를 받게 마련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 회사의 주식(equity)를 팔게 된다.  그런데 초기 스타트업은 주식을 낮은 가격에 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비용이 비싼거나 마찬가지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XYZ라는 스타트업이 10만주 (10%의 지분에 해당)를 팔아서 1억원을 투자 받았다고 가정하자. 주당 가격은 1천원인 셈이다. 이 투자 받은 돈으로 사무실에 놓을 100만원 짜리 고급진 책상과 의자를 샀다고 하자.  XYZ는 이 책상과 의자를 사기 위해 회사 주식 1000주를 쓴 것이다. 나중에 이 회사가 잘되서 주당 가치가 100배 상승했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주당가치 100배 상승이 되는 경우도 스타트업에선 꽤 있다). 그럼 결국 이 XYZ 회사는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는데 미래가치 1억원 (100만원의 100배)을 쓴 셈이다.

자, 당신은 정말 1억원 짜리 책상과 의자 세트를 구입하고 싶은가? 아니면 IKEA가서 1천만원짜리로 퉁치고 나머지 9천만원은 세이브할텐가?

물론 이렇게만 생각하면 100만원짜리 컴퓨터 한대를 사려도 1억원일테니 돈을 쓰기가 힘들 것이다.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꼭 필요한 물품을 사는데 에 돈을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초기 창업자라면 모든 가격표에 곱하기 100을 해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의 회사가 향후 100배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가격에 0을 두개 더 붙이고 나면, 사무실에서 굴러다니는 5천원짜리 소모품도 아껴 쓸 수 밖에 없다.

Series A 투자를 규모있게 받은 회사라면 모든 가격표에 곱하기 10 정도 하면 될 것 같다 ^^

 

 

 

창업하기에 적합한 나이는 존재하는가?

(이 포스팅은 일반화의 오류로 점철된 글 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투자자로서 창업자의 나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소 민감한 문제다. 대략 경력을 듣고 얼굴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처음 피칭하는 창업자에게 대놓고 나이를 물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 회사들은 채용 인터뷰에서 나이를 물어보는 것도 불법이고, 채용후에도 나이로 차별하는 경우가 드러나면 소송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조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투자일을 하면서 갖은 연령대의 창업자를 만났다. 실제 투자한 기업들 중에도 20대 청년 창업자 부터 40대 중반까지 나름 꽤 스펙트럼이 있다.  어찌 생각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쓸때 그 회사의 창업자가 누군지, 몇살인지 웬만해선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쓸 이유도 없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의 유니콘으로 촉망받는 Slack이라는 회사가 만든 협업 소프트웨어를 한국에서도 많이들 쓰는데, 그 창업자가 73년 캐나다 출생으로 43세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하지만 비지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복잡하고 고되기 마련인데, 그 도전의 과정에 나이라는 것이 좋든 싫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건 어쩔 수 없는 현상같다.

그럼 본론에 들어가면서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만한 그래프를 한번 생각해보자.

age graph

먼저 이 그래프에는 일반화의 오류가 많다는 점을 일러둔다. 환갑의 나이에도 마라톤 완주하는 분도 있는가 하면, 20대중에도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에너지=0에 가까운 청년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긴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정도 이 트렌드를 따라가기 마련이므로, 한가지씩 살펴보자.

<경험, 지식>

본인이 창업하려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경우 대부분 많은 도움이 된다.  해당 업계의 배경지식은 물론 실무 처리해 본 경험은 좋은 자산이 된다. 그리고 꼭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일반 직장생활은 여러모로 소중한 경험이 된다.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하는 법, 깔끔하게 소통하는 법, 팀을 리드하는 법, 프로젝트 관리하는 법, 고객 상대하는 법 등등 이런 모든 것들 (soft skill이라고도 한다)이 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지만 아주 중요한 것들이고, 창업자로서 회사를 키워나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보통 이런 저런 경력들이 쌓이게 되고, 여기서 체득한 경험, 지식, 스킬등은 더 ‘준비된 창업가’로서의 자질을 만들게 마련이다.

<네트워크>

세상에 내 혼자 힘으로 다 하는 사업은 없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된다. 보통 많은 이의 도움을 받게되고, 훌륭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수록 사업 성공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  유능한 개발자를 회사로 영입하는 일이라든지 영업에 필요한 고객 정보를 얻는 것이라든지 남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무궁무진하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보통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 분명히 유리한 점이다. 예를 들어 구글과 파트너쉽을 끌어내고자 할때, 구글에 다니는 친한 친구가 담당자를 소개해주는 것과 콜드 이메일을 보내서 혼자서 어떻게 뚫어보려는 것은 천지차이다.

<체력>

사업이 올림픽도 아닌데 웬 체력이야기를 하냐고 물을수도 있지만,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다. 언제 고생이 끝난다는 보장도 없어서 더 힘들다.  초기 창업팀들을 보면 주당 80-100시간 일하는 이들도 흔하다. 장기간 이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려면 우선 열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열정은 잠깐 타다 꺼지는 성냥불이나 마찬가지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운동과 식사등을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보통 30대중반 넘어가면서 체력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번 밤샘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창업 초기에는 회사의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하므로 잡일이 엄청 많기 마련인데 나이가 들 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귀찮은게 많아진다. 20대때보다 부지런해지기 쉽지 않다.  물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유지를 할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인게 나이가 들수록 바쁜일은 더 많아지고 운동할 시간 내기는 더 어렵다 (물론 핑계다). 암튼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는 리더의 체력은 중요한 자산이다.

<가용시간>

나이가 들면 대부분 삶이 복잡해진다. 결혼과 육아, 부모님 봉양, 주위의 경조사, 친구, 챙겨야 하는 사람, 만나야 하는 사람, 새로생긴 취미 등등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드는 물리적 시간이 보통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만큼 사업에 몰두할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싱글 시절에는 맘놓고 주말에도 일할 수 있었어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주말에 회사나가려면 뭔가 남편/아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물론 무턱대고 오랜시간을 일하는 것보다 스마트하게 효율적으로 일하는게 중요하지만, 리소스가 턱없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보통 많은 물리적 시간을 투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삶이 복잡해지면 시간만 모자르는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신경이 분산되기 마련이다. 사업말고도 신경써야 할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 돌보는 일등을 제껴두고 모두 사업에 몰두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동시에 저글링(juggling) 해야하는 일들이 보통 많아진다는 현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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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몇살때 창업을 하는 것이 좋단 말인가? 정답은 없다. 이상적으로야 본인이 열정을 느끼는 분야에서 일정기간 동안 다른 회사에서 많은 학습을 거치며 경험치와 네트워크를 충분히 쌓은후 아직 체력과 가용시간이 철철 넘쳐날때 창업하는게 좋겠지만, 사람일이 어디 그렇게 수학 방정식처럼 딱 떨어지던가. 각자 처한 개인사정도 다르고, 또 ‘시장의 기회’라는 놈은 내가 경력 쌓을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경험’이란 것의 상대적 중요성이 아닐까 한다. 이미 존재하는 기존 시장, 기존 산업군에서 경쟁하는 사업이라면 상대적으로 창업자의 경험이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제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 실무경험 없이 반도체 회사를 창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로, 완전히 새로 생기기 시작하는 산업에 도전하는 경우는 경험이라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그걸 해 본 사람이 세상에 몇 없으니 말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창업하던 시절의 PC 산업이 그러했을거고, 90년대 한국에서 태동한 인터넷 회사나 온라인게임 회사들도 이에 해당할거다. 어차피 다들 처음해보는 거라 출발선이 비슷하다면, 체력좋고 다른일에 신경쓸 일이 없는 똑똑한 청년들이 모인 팀이 경쟁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글 서두에 ‘소비자는 창업자의 나이에 관심도 없고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근데 이게 어찌보면 매우 비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쩌면 시장은 당신이 최고의 지식+경험+네트워크를 동원해 마라톤선수의 체력을 가지고 무한대 가용시간을 투자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창업팀의 약점이나 사정을 ‘이해’해주면서 만족하기 힘든 제품에 돈을 지불하는 커스터머는 없다. 이 글의 의도는 나이 적은 창업자 혹은 나이 많은 창업자의 의지를 꺾으려는 게 아니다. 다만, 창업이란 것도 한 개인의 커리어중 일부라는 관점에서 스스로 ‘지금이 적기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는 있다. 시장은 나의 개인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냉혹한 곳이기에 지금 내가 가진 능력치(경험, 네트워크, 체력, 가용시간등)가 얼만큼 경쟁력있는 것인지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결론은 각자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