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코파운더인가?

폴 그램 (Paul Graham, 와이 콤비네이터 창시자)은 코파운더 (co-founder, 공동창업자)의 관계에 대해 함축적으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출처1, 출처2)

“It’s like marriage, but without the fucking” (결혼 같은겁니다. 단, 섹스는 없는 결혼이요)

즉, 결혼생활처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고 공동운명체가 되지만, 섹스나 로맨스 같이 즐거운 요소는 별로 없고, 주로 고난의 길만 같이 걷게 된다는 뜻이리라. 그만큼 공동창업 한다는 것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고 어렵고 힘든 일이다. 단순히 월급받고 스타트업에 조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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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잘 된다 싶은 스타트업이 나오면 스스로 그 회사의 코파운더라 칭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내가 보기에  여러 정황상 초기 직원 (early employee) 혹은 핵심 인재 (key talent)는 될지언정 공동창업자는 아닌데, 본인 PR 욕심이 과해서인지 본인의 이력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있다. 우리나라보다 셀프 PR이 더 일반화된 미국에서 그런 일을 더 자주 보는것 같다.

코파운더라는게 무슨 CEO나 CTO 처럼 회사의 공식 직함이 아니다보니 약간 명예스런 타이틀 느낌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그 명예가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회사의 CEO가 한참뒤에 조인한 인재에게 “당신도 코파운더로 쳐줄께” 라고 말한다고 그 사람이 코파운더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누가 코파운더인가? 모든 초기 멤버가 동시에 시작하는게 아닐 수 있으니 경우에 따라 애매할 수도 있고, 코파운더를 어떻게 정의할지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아래 정리한 내용은 내가 VC를 10년째 해오면서 본 경험을 토대로 형성한 순수 개인적인 관점이다. 어느 한가지 조건이 절대적일 수는 없고, 다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즉, 아래 질문이나 조건에 대해 거의 다 Yes 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코파운더로 불릴 자격과 요건이 된다고 봐도 좋다고 본다.

[외적인 조건들]

  • 초기에 월급을 받지 않고 상당기간 (수개월이상) 일했나? — 보통의 경우 처음에 창업하면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제대로된 외부 펀딩을 받기까지 창업자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기 자본금에서 월급을 가져가더라도 이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저임금 수준으로만 가져가는게 일반적이다.  시세에 준하는 월급을 보장받고 회사에 조인했다면 그 사람은 공동창업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 지분 (common stock)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스톡옵션 (stock option)을 가지고 있는가? — 공동 창업자들은 보통 초기에 상호간의 합의(주주간 계약서등)에 의해 지분을 나누게 된다. 어떻게 지분을 나누는게 좋은건지는 또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아무튼, 공동창업자이고 핵심인물로 인정 받는다면 10%이상 의미있는 지분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 (외부 투자등으로 희석되기 전). 반대로 스톡옵션을 보장받고 조인한 사람은 코파운더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 1주일에 보내는 시간 — 회사에 매일 출근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업 초기에 아이디어나 기술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코파운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파트타임 코파운더는 좀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아이디어나 기술보다 훨씬 중요한게 그걸 제품으로 구현해내고 사업적으로 실행해 내는거다.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풀타임으로 일하는게 아닌 사람에게는 코파운더가 아닌 더 적합한 타이틀이 있을 것이라 본다.

 

[내적인 조건들] — ‘조건’이라기 보다 스스로에게 던져볼만한 질문들

  •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있나? — 이건 예전에 장병규 대표님이 하신 이야기이다. 공동창업자는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만약 CEO가 당신에게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면 당신은 코파운더가 아니라 그냥 직원일 것이다.
  • 회사 사정이 어려워질 때 드는 생각? — 회사가 어려울때 이를 악물고 한건이라도 더 매출을 내려하고, 한푼이라도 더 펀딩을 받아 오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코파운더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더 늦기 전에 이직 기회를 알아봐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아마 직원일 것이다.
  • 야근이나 주말 근무 후 드는 생각? — 금요일 저녁, 친구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화려한 불금을 보내고 있지만, 본인은 사무실에서 배달음식 시켜 먹으며 야근을 하고 있다. 자정무렵 집으로 돌아가며 오늘 성취한 일에 뿌듯하고 심지어 주말인 내일 할 일까지 기대가 되면 코파운더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오늘도 뭔가 희생했다는 느낌이라면 아마 코파운더는 아닐 것이다. (야근은 한국에서 많은 이에게 굉장히 민감한 문제로, 스타트업이라고 임직원의 야근이 당연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람)

코파운더가 아니라고 해서 회사에 대한 공헌도가 떨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에릭 슈미트는 구글의 코파운더가 아니고 나중에 CEO로 영입된 사람이지만, 그가 구글의 성공에 끼친 영향력이나 공헌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코파운더인 사람은 코파운더인 거고, 아닌사람은 아닌거다.

사족: 이 글은 관점에 따라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걸 안다. 그리고 누군가를 염두하고 쓴 글은 절대 아니니 오해나 상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코파운더라는 것을 완벽히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서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가능할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글은 초기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내 개인적인 생각의 정리이고, 다른이의 의견도 들어볼 기회로 봐주면 감사하다.

에어비앤비 초창기 일화들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의 일대기를 그린 업스타트(The Upstarts)라는 책을 읽고 있다. 에어비앤비 초창기 일화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워낙 유명해서 여러 기사나 풍문으로 토막토막 접했는데, 책으로 보니 쭉 스토리로 연결되는게 마치 무협지를 보는 듯한 매력에 빠져든다.

upstarts

이 책은 우버 이야기를 하는 챕터와 에어비앤비를 다룬 챕터로 양분되어 있고, 우선 에어비앤비 부분을 골라서 쭉 읽었다. 에어비앤비의 일대기중 사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주 초창기에 창업자들이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결정들을 내렸으며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각종 규제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도 있는데, 난 직업탓인지 초창기에 있었던 삽질이나 어려움 극복해 간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아래는 이 책 내용중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중심으로 발췌및 요약하고 내 설명을 더한 것이다.

<오바마 씨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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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 초창기 춥고 배고프던 시절 궁여지책으로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씨리얼’을 만들어 팔았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그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일화로, 이 창업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바퀴벌레’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이 책에 의하면 처음엔 창업자들이 씨리얼 만드는 식품회사 (켈로그, General Mills)들과 협업을 통해 공식적인 제품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쪽에 전화해서 열심히 설명했지만, 담당자들은 조금 듣다가 그냥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난 이 장면이 상상되서 얼마나 웃기던지 ㅎㅎ 아마 그 담당자들은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 완전 똘아이들이라고 생각했을거다.) 결국 이들은 수퍼마켓에가서 씨리얼을 왕창 사다가 오바마 그림을 프린트한 박스에 재포장을 하는 노가다를 택한다. 심지어 아주 흥겨운 가락의 씨리얼 로고송 같은것도 작사 작곡해서 유튜브에 올렸다고 한다 (유튜브 뒤져보니 이게 정말 있다! 링크). 당시는 Y Combinator (액셀러레이터) 들어가기도 전인 극초기로써, 이들을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한명 있었다면 엔젤 투자자이자 멘토역할을 했던 마이클 싸이벌(Michael Seibel)이라는 사람이었다. 근데 싸이벌 아저씨마저도 이 씨리얼 이야기와 로고송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ㅋㅋㅋ.  역시 일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 (= 미친짓)이나 그 초석을 닦는 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건 아니다.

<Y Combinator>

줄여서 YC라고도 불리는 이 액셀러레이터는 폴 그램이라는 사람이 시작했고 에어비앤비, 드랍박스 같은 걸출한 스타트업을 양성해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YC가 잘되면서 폴 그램도 ‘실리콘밸리의 요다 (스타워즈 캐릭터)‘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명성을 얻었는데, 사실 그도 상식적인 사람이라 모르는 사람에게 내 집한켠을 내주는 사업아이디어에 상당히 회의적이였다. 그럼에도 그들을 배치팀으로 뽑아준건 순전히 그 씨리얼 이야기를 듣고 감명 받아서였는데, YC에 들이고 나서도 계속 그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다 한다. 당시에 에어비앤비 싸이트가 론칭되고 뉴욕에서 40명 정도 호스트가 반신반의 하면서 방을 올린 시점이였는데, 체스키를 비롯한 창업자들은 폴 그램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기회가 될때마다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폴 그램은 질문을 듣다가 “여기 왜 이러고 앉아있냐. 뉴욕에 호스트들이 있다면 당장가서 만나보라”라고 주문했다. 그 이후로 체스키와 게비아는 주말마다 뉴욕으로 가서 호스트들 챙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갔다. 실리콘밸리에서 비행기로 편도 5-6시간 걸리는 거리라서 주말마다 동부로 간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였을거다. 현장에서 그들은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려면 멋진 방 사진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호스트들에게 전문 사진사를 보내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컴퓨터 화면 앞에서 짜는 전략은 개뿔. 정답은 현장에, 고객에 있다.

<써코야 캐피탈의 투자>

써코야 캐피탈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명성의 벤처캐피탈 회사인데, 그 회사의 McAdoo라는 파트너가 에어비앤비에 기관투자자로서 첫 투자를 하게된다. $585,000 (약 6억원 상당)을 투자하고 지분 20%를 획득했다. 이 지분가치가 2016년 기준으로 $4.5billion (약 5조원)이 되면서 써코야 역사상 최고 수익률을 냈다고 한다 (구글에 투자한 실적보다도 높다니 말 다했다).  지금은 2016년보다도 기업가치가 더 올랐으니 지금까지 들고 있다면 아마 1천배 이상 벌었을것 같다. 부럽다 ㅎㅎ. 써코야가 간단히 손쉽게 돈을 꽂아 대박낸 것은 아니고, 투자 전부터 McAdoo가 어떻게 창업자들과 관계를 쌓았고 투자후에도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지원했는지 나오는데, 읽어보면 괜히 써코야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투자쪽에 있는 사람이면 찾아서 읽어볼만 하다.

<절약정신>

씨리얼 일화에서도 알수 있듯이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의 절약정신은 남달랐다. 창업자 3명중 한명인 Nathan Blecharczyk(당시 24세)라는  해커 기질의 개발자가 전체 싸이트를 혼자서 모두 코딩해내서 초기에 한동안 개발 인력을 따로 뽑지 않았다. 심지어 고객지원 담당인력도 안뽑아서, 고객문의 전화는 언제나 창업자 게비아의 핸드폰으로 연결되었다. 투자후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첫 풀타임 엔지니어를 1명 고용했다고 하니 얼마나 고르고 골라서 택한 사람이였을지 상상이 간다.  추후에 직원이 늘어 10명이 되었지만, 사무실 없이 창업자들의 아파트가 사무공간이였고 한켠에는 매트리스가 있었다. 채용인터뷰는 보안을 위해 아파트 층계에서 해야했고, 중요 전화는 화장실에서 받았다.  팔고남은 씨리얼로 연명했던 시절도 있던 창업자들이니 이정도는 어찌보면 놀랍지도 않다. 암튼 돈을 벌기 전까지는 다소 극한체험에 가까운 절약정신으로 회사의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

이외에도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일어난 사고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로켓인터넷 같은 카피캣 회사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전세계 도시의 각종 규제에 어떻게 맞섰는지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정말 배울게 많은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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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창업자들: Joe Gebbia, Nathan Blecharczyk, and Brian Chesky.

 

 

 

투자자를 잘 이용하는 법

아마존의 일대기를 그린 책 Everything Store 라는 책 86페이지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Bezos deployed Doerr to talk to Howard Stringer at Sony America, but he got nowhere” (베조스는 도어를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미국 지사장에게 보내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 대목의 배경은 1999년에 아마존이 온라인에서 전자기기 상품 판매를 준비중이였던 때다. 아마존은 제품을 공급해줄 소니 같은 회사를 모집하고 있었고, 소니는 과연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하는게 현명한가를 재고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베조스는 누구나 다 아는 아마존 창업자/CEO 이고, 존 도어 (John Doerr)는 클라이너 퍼킨스의 전설적인 VC로 아마존의 초기 투자자였다. 베조스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니 사장과의 미팅에 도어를 보낸것이다. 베조스가 당시에 바빠서 그랬던 것일수도 있고, 도어가 스트링거 사장과 친분이 있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수도 있다. 책의 작가는 ‘deployed’ 라는 표현을 썼다. 전투기를 출격시킬때도 이 말을 쓰는데, 한마디로 믿을만한 인물이였던 도어를 소니로 ‘출격시켰다’라고 이해해도 좋을듯 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베조스는 역시 투자자를 ‘특사’처럼 잘 이용할줄 알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어떤 창업자는 투자자를 너무 어려워해서 연락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창업자는 투자자가 연락해오는 것을 ‘간섭’이라고 여기고 싫어하기도 한다. 둘 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서 회사를 잘 되게 하는게 가장 좋다.

그럼 창업자 입장에서 어떻게 투자자를 잘 ‘활용’해서 도움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투자자들마다 성향도 다르고 하니 내가 모든 투자자를 대변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10년째 투자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몇가지 팁을 공유하려 한다.

일단 투자자가 회사를 잘 도와줄 수 있으려면, 투자자가 이 회사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뭘 만들고 있는지, 어떤 시장인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stage 인지 등등. 이 부분은 창업자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투자자에게 정보공유를 잘 해줘야 가능해진다 (물론 투자자도 회사를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많은 경우 월간 업데이트나 전화/대면 미팅을 정기적으로 하면 많이 해소된다.

또 좋은 도움을 이끌어내려면 창업자는 투자자라는 직업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 VC와 같은 전문 투자자라면 보통 여러개의 회사와 관계를 맺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회사에 대해 일주일 내내 고민하기 힘들다. 많은 경우 짧은 단위(몇시간~반나절)로 도와주고 다음 회사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의 깊이가 얕아 보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장점도 있다. 투자자는 도처에 아는 사람이 많다. 회사가 필요한 중요한 커넥션을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연결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각종 회사의 이런 저런 케이스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떤 현안에 대해서 짧지만 직관적이고 임팩트 있는 의견을 줄 수도 있다.

아래는 몇가지 바람직한 도움 요청의 예와 그렇지 못한 예를 적어 본 것이다.

<전략 고민>

  • No Good: 우리회사 글로벌 진출 전략좀 짜주세요
  • Good: 이번에 동남아 진출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위해 이런저런 시장 조사를 해보았는데, 조만간 한번 같이 논의했으면 합니다

<사람 소개>

  • No Good: 사업을 같이 해나갈 코파운더급 인재를 찾습니다. 똑똑하고 열정많고 성격도 좋은 사람좀 찾아주세요
  • Good: 이번에 우리가 E-commerce 업체들과 이런 제휴를 해보려 하는데 이분야 사업개발쪽에 아는 분이 있으면 소개좀 해주세요

<후속 펀딩>

  • No Good: 3개월후면 돈이 바닥날것 같은데 어떡하죠?
  • Good: [고구려창투] 회사가 우리회사 같은 분야 투자에 적극적이라고 하니 fit이 맞을것 같은데 소개해 주실수 있으신지요?

<피드백 요청>

  • No Good: 회사 소개자료에는 무슨 내용을 넣어야 하나요?
  • Good: 회사 소개자료 초안을 첨부와 같이 작성했습니다. 한번 리뷰해 주시고 의견 주시면 좋겠습니다.

<HR 이슈>

  • No Good: 새로 팀장 한명을 영입했는데 스톡옵션 몇주를 주면 될까요?
  • Good: 직급에 따른 2018년도 스톡옵션 발행 계획 초안을 마련중인데 조만간 같이 리뷰를 원합니다

위의 예시에서 No Good 에 적은 것들은 대부분 창업자나 경영진이 1차적으로 직접 풀어내야 하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글로벌 진출에 대해 투자자가 경영진의 1차적인 시장조사나 향후 계획을 들어보고 의견을 주거나 다른회사의 예를 공유하며 지혜를 나눠줄 수는 있지만, 몇날 몇일 동안 경영자 대신 전략을 대신 짜 줄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투자자에게 도움을 요청할때 한가지 주의할 점은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다. 투자자가 월간 미팅등을 통해서 회사 상황은 큰그림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창업자가 갑자기 네이버 광고팀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왜 이런 요구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context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앞뒤 배경을 잘 설명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이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는 하루종일 그 문제에 묻혀서 살다보니 그런 것일수도)

전문 투자자는 회사의 이런 저런 현안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도 있고, 필요한 사람을 소개해 줄 수도 있으며, 때에따라 후속펀딩이나 M&A 같이 중요하거나 민감한 건에 대해서는 ‘특사’처럼 발벗고 직접 뛰어줄 수도 있다. 이렇게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선 창업자와 투자자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 출발점은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말인데 투자자가 이메일 보내면 짧게라도 답해주시라 ㅎㅎ

쏟아지는 조언을 가려듣는 법

창업가는 하루에도 크고 작은 여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무실 집기 구매같은 소소한 것에서부터 제품 전략이나 핵심 임원 채용 같은 중대한 문제까지 말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혼자 고민하기 버거우면 주위의 자문을 구하게 되고,  또 창업가들은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이런 저런 훈수 두는 사람이 많기 마련이다. 친구나 지인들은 물론, 어쩌다 명절때 만난 삼촌까지  “그 사업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잘 될것 같은데~” 라며 한마디씩 거두기 일쑤다. 나에게도 “요새는 바이오가 핫 하다는데 윤대표도 그쪽에 투자해야 하는것 아냐?” 라는 말하는 분이 몇몇 있었다. 다 좋은 뜻이지만 그걸 다 따를 수는 없다.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은 귀를 막고 사는 것보다 훨씬 잘하는 거다. 문제는 넘쳐나는 조언과 훈수 속에 뭘 택하고 뭘 버려야 하는지 애매하다는 것 (누구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참조). 남의 조언을 잘 듣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후, 그 내용을 내재화해서 내 행동과 결정에 적용하는 것은 결국 창업가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나도 많은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지혜를 구하려 애쓰는 편인데, 타인의 말을 가려 듣는 내 나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말하는 분이 해당분야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가? 

너무나 당연한 기준이다. 동네에서 자영업에 종사하시는 삼촌에게 우리 회사 해외진출 전략에 대해 조언을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창업가에게 이사회 멤버로서 조언해줄 때 늘 조심하려 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새로 출시한 모바일 앱에 대해 내가 일반 사용자로서 사용해보고 느낌이나 피드백을 줄 수는 있지만, 나는 UI/UX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경영진에게 미리 상기시켜 준다. 반대로 투자에 관해서는 거의 10년째 이 업을 하고 있어 경험도 많고 내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으니 후속 투자 유치등에 관해 말할때는 좀 더 힘 주어서 목소리를 내곤한다. 암튼 해당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서 듣는 말이 제대로 된 조언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이 정말 해당 분야에서 믿을만한 전문가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또 창업가의 몫으로 남는다)

2. 말하는 분이 어떤 bias (편견, 편향)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본인이 속한 단체나 이익관계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 bias 가 되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 사장은 햄버거에 관해 세계적인 전문가 이겠지만, 그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가 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맥도날드라고 할 것이다 (내 주관적인 견해론 Shake Shack 이나 Five Guys가 훨씬 맛있다).  어떤 조언을 들을 때 그 사안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사심없는’ 견해를 들을 수 있다면 참 좋다. 물론 전문가일수록 해당 분야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완전히 중립적인 스탠스를 가진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쓰고보니 상식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긴 하지만, 리마인더 차원이라고 봐도 좋다.

초기 스타트업이 돈을 아껴야 하는 이유

초기 스타트업은 왜 돈을 아껴야 할까?

뭐 쉽게 생각하면 스타트업은 보통 돈이 늘 부족하기 마련이니 돈 아끼는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이유는 초기 스타트업이 지불하는 비용은 뭐든지 비싸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지불하는 비용이 비싸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스타트업은 물건 살 때 바가지라도 쓴단 말인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런 저런 경로로 투자를 받게 마련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 회사의 주식(equity)를 팔게 된다.  그런데 초기 스타트업은 주식을 낮은 가격에 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비용이 비싼거나 마찬가지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XYZ라는 스타트업이 10만주 (10%의 지분에 해당)를 팔아서 1억원을 투자 받았다고 가정하자. 주당 가격은 1천원인 셈이다. 이 투자 받은 돈으로 사무실에 놓을 100만원 짜리 고급진 책상과 의자를 샀다고 하자.  XYZ는 이 책상과 의자를 사기 위해 회사 주식 1000주를 쓴 것이다. 나중에 이 회사가 잘되서 주당 가치가 100배 상승했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주당가치 100배 상승이 되는 경우도 스타트업에선 꽤 있다). 그럼 결국 이 XYZ 회사는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는데 미래가치 1억원 (100만원의 100배)을 쓴 셈이다.

자, 당신은 정말 1억원 짜리 책상과 의자 세트를 구입하고 싶은가? 아니면 IKEA가서 1천만원짜리로 퉁치고 나머지 9천만원은 세이브할텐가?

물론 이렇게만 생각하면 100만원짜리 컴퓨터 한대를 사려도 1억원일테니 돈을 쓰기가 힘들 것이다.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꼭 필요한 물품을 사는데 에 돈을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초기 창업자라면 모든 가격표에 곱하기 100을 해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의 회사가 향후 100배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가격에 0을 두개 더 붙이고 나면, 사무실에서 굴러다니는 5천원짜리 소모품도 아껴 쓸 수 밖에 없다.

Series A 투자를 규모있게 받은 회사라면 모든 가격표에 곱하기 10 정도 하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