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추모하며

아래 10여초 짜리 영상은 올해 3월 어머니와 산책하며 셀카 비디오를 찍은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이상한 광경인데, 멀쩡해 보이는 40대 아저씨는 휠체어에 앉아있고 허리가 많이 굽은 노모는 뒤에서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반대가 되어야 할텐데 말이다. 이렇게 이상한 광경으로 30분 정도 어머니와 산책을 하노라면, 지나가던 행인 중 꼭 몇명은 어머니에게 다가와서 “제가 밀어드릴까요?” 하고 호의를 베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 괜찮습니다. 어머니 운동 하시는거에요” 라고 손사래를 저어야 했다.

사연은 이렇다. 어머니가 공원 산책길 까지는 휠체어를 타고 가셔야 했고, 공원에 도착해서는 휠체어를 보행기 삼아 걷기 연습을 하시곤 했다. 그런데 빈 휠체어를 보행기로 쓰면 무게감이 없어서 앞쪽이 들려 버리기 때문에 누군가 앉아 있어야 훨씬 안정감 있는 보행기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앉아서 휠체어에 무게감을 주고, 두발을 땅에 딛으면서 언덕 등에서는 휠체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조금씩 도와드렸다.

(사진처럼 빈 휠체어를 밀면 휠체어 앞쪽이 들려서 다소 불안해진다)

주중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찾아뵙지 못했지만, 주말에 이렇게 근처 공원에서 어머니와 산책을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소중한 시간이였다. 중간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던 기억도 많다. 언제 한번은 어머니가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을때 내가 다소 무리해서 모시고 나왔는데, 조금 걸으시고 힘에겨워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시면서도 ‘한바퀴 더 돌겠다’ 라고 하셨을 땐, 의지가 굉장히 강하신 분임을 깨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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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던 적이 별로 없던것 같다.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이야 엄마 손을 잡고 다녔을 테지만 그건 기억에 안 남아 있고, 청소년기 이후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깊은 이야기를 하거나 동네 길을 다니거나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은것도 있겠지만, 종종 한국에 출장 나와서 어머니를 뵈러 가서도 그저 인사나 하고, 밥이나 먹고, 멀뚱멀뚱 앉아서 스마트폰이나 보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때가 대부분 이였다. 어머니와 사이가 나쁘거나 그런건 아니였는데, 그냥 생각해 보면 어렸을때 부터 우리집은 가족끼리 소위 스킨십 이라는 걸 하지 않는 집이였다. 어렸을때 집안 분위기는 화목함 보다는 갈등과 냉랭함이 더 많았고, 막내인 나는 그런 집안 분위기에 불만이 많았다.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말이나 서로 안아주는 것은 외국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 같았고 내가 처한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자랐으니 커서도 어머니 손을 잡거나 하려면 너무 어색해서 시도조차 못했다.

그러다가 어머니 손을 자주 잡게 되기 시작한건 어머니가 파킨슨 병으로 혼자 걷기 힘드시게 되었을 때다. 이때는 참 어머니 손을 잡아드릴 기회가 많았다. 처음에는 버스에 오르내리거나 계단 내려가실때 주로 잡아 드렸는데, 나중에는 평지에서 걸을 때도 잡아드려야 했다. 거동이 불편해 지신건 안타까왔지만, 어머니 손을 어색함 없이 자주 잡아드릴 수 있는건 참 좋았다. 이렇게 작은 도움이나마 드릴 수 있어서 좋았고, 어머니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마음 깊은 곳까지 다가왔다. 어머니도 별로 내색은 안하셨지만 내가 손 잡아 드리는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어머니와 손잡고 같이 길을 걷는 시절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파킨슨 병이 더 진행되면서 보행기나 휠체어에 의존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어머니와 손잡는 일도 잘 없었으니 허그, 포옹 같은 건 더욱 기억에 없다. 아마 공항에서도 안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자주 안아드리게 된건 정말 최근인데, 휠체어에서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시게 되면서다. 휠체어에서 침대나 화장실로 옮겨드리려면 어머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씨름하는 것처럼 자세를 구부린 후 번쩍 안아서 일으켜 드려야 했다. 건강이 많이 나빠지고 다리에 힘이 다 빠지고 나서야 아들로부터 반강제 포옹을 받으시게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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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가 소천하신지 1주일이 되는 날이다. 지난 일요일 입관식에서 어머니를 마주했을때 내 심정을 표현할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 뵙는 것이라 비장한 마음도 들었고 심호흡 여러번 하고 들어갔지만, 들어가면서부터 그냥 펑펑 울기만 했다. 어머니 손을 마지막으로 꼭 한번 잡고 싶은 생각에 수의로 입으신 장갑 같은 것을 걷어내고 긴 옷소매에 숨겨진 어머니 손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틀만에 잡아보는 어머니의 손은 말할 수 없을만큼 차가왔다. 안치실에서 나오셔서 그렇다는건 알았지만, 마치 어디 추운데서 고생하시다가 온 것 같은 생각만 들었다.

“엄마 추웠지… 내가 미안해”

미친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뭐라도 하나 같이 보내드리고 싶어서 눈물 닦던 손수건을 고이 잠드신 어머니 품에 넣어드렸다. 불효자식은 그렇게 작별인사를 드려야 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때 손도 많이 잡아드리고 맛있는 것도 더 많이 대접해 드리고 그럴걸 그랬다.

7 thoughts on “어머니를 추모하며

  1. 날이 지날 수록 부모님과 쌓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임을 다시금 알게 해 주시네요.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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