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교훈 20가지 (부제: 대놓고 꼰대짓)

얼마전 딸 아이가 만 20세 생일을 맞았다. 작은거라도 뭐 하나 사주고 싶어서 선물 뭐 받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다소 의외의 답을 들었다. 스무살 생일을 맞이해서 자기에게 알려주고 싶은 life lesson (인생 교훈) 20가지를 적어달랜다.

‘허걱… 그냥 화장품 같은거 사주면 안되겠니…’

처음엔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또 챌린지에는 부응하는 성격이라 다음날 쯤 바로 착수했다. 그래 그동안 눈치보느라 못했던 말 다 쏟아 붓자. 어찌보면 대놓고 꼰대짓을 할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니 막 흐뭇했다 ㅎㅎㅎ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마구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읽었던 책들도 좀 뒤척이며 목록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20개를 채우기가 힘들것 같았지만 웬걸, 허용된 꼰대짓을 시작하니 봇물 터지듯 줄줄 나왔다. 나중에는 몇개를 잘라 내야 했다.

암튼 아래 20가지로 정리했다. 딸내미가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어쩔수 없이 내 짧은 영어로 적어줘야 했는데, 다소 어색한 영어 원문은 맨 아래 있고, 아래는 그걸 다시 한국어로 옮긴 이상한 번역체임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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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고 성취해라>

1. 결정과 행동 – 니 인생에서 뭘 할지 니가 결정하고 그걸 밀고갈 용기를 가져야 한다. 안그러면 다른 사람이 와서 너의 일과를 결정해 줄 것이다. 행복하려면 니 인생의 아젠다를 니가 가져가야 한다.

2.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어서 니가 원하는걸 말해라 – 스티브 잡스의 영상을 볼것

3. 리스크 테이킹 – 플랜 Z 가 있는한 리스크 테이킹을 두려워하지 마라. 새로운것도 뭔가 시작해 봐라. 실패해도 괜찮다. 아빠가 말하는 리스크 테이킹이란건 너의 일이나 커리어에서 뭔가 의미있는 시도인 것이지, 음주운전 같은거 말하는게 아니다

4. 시간 관리 – 누구나 24시간 밖에 없다. 낭비하는 시간을 어떻게 줄일 방법을 늘 찾아봐라. 학교나 직장에서 가까운데 살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수 있다 (너 고등학교때 집에서 5분 걸어서 간것 처럼). 아빠는 한국 가면 사무실 5분 거리에 호텔을 잡는다. 아빠 고등학교 때는 밥먹을때나 학교에 걸어갈때마다 단어장에 적어 놓은 영어 단어 외우곤 했다. 시간을 내가 어떻게 쓰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낄 방법이 있고 뭔가 더 끼워 넣을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5. 생산성 – 뭔가 일을 할때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라 (같은 작업을 더 빨리 끝내는 법).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도 방법일테고, 어떤 일이 프로세스되는 방법을 바꾸는 것도 방법일거다. 어느 장소에 있건 뭔가 비효율적인걸 발견한다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6.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퍼블릭 스피킹) – 지금은 이게 왜 중요한지 잘 이해 못하겠지만, 니가 나이가 들면 너의 말로써 수백, 수천명을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니 지금 연습해라

7. 하드웨어 말고 소프트웨어에 투자해라 – 돈이 있다면 새로운걸 배우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투자해라 (즉, 소프트웨어). 운동, 여행, 책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구나. 비싼 가방이나 보석류 같은거 (즉, 하드웨어) 사는데 돈 쓰지 마라. 그런데서 오는 만족감은 길어야 며칠 안간다.

8. 내가 하는 말을 소유하기(? 번역 안됨 ㅠㅠ) – 동료에게 뭔가 말할때 다른 사람의 권위에 의지해서 묻어가지 말고, 니가 진짜 믿는 걸 말해라. 즉, 우리 사장이 이러이러한거 해야 된대 라고 하지 말고, 니가 생각했을때 진짜 해야 하는 일을 말해라. 니 자신의 확신에 기반해서 말해라. 딴사람도 금방 눈치챈다

<인간 관계>

9. 가족을 사랑과 공경으로 대하기 – 사람이 바빠지면 가족에게 소홀하거나 당연시 여기기 쉽다. 니 가족은 너의 기초(foundation)이다. 이걸 빨리 깨달을수록 좋다

10. 친한 친구 –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오랜 친한 친구는 정말 소중한 것이다. 아빠의 몇몇 베프는 몇십년째 베프인 것이다. 난 그 친구들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걸 안다. 너두 지난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며 지내라. 시간을 투자해라. 친한 친구 관계도 중요한 foundation 이다.

11. 너의 네트워크를 넓혀가라 – 혼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인생에서 모든 좋은 기회는 너가 알고 지내는 누군가 타인에게서 오는 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관심을 보이고, 공감대를 형성해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팔로업이니 잊지 말고.

12. 니가 존경할 만한 사람들 가까이에 있어라 – 이건 너무 당연한거다. 이런 사람들 가까이만 있어도 넌 저절로 나은 사람이 된다. 반대로 매사에 부정적이고 불평만 많은 사람은 멀리해라

13.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 친구가 도움을 요청하면 성심으로 도와주고 요청하지 않은 부분까지 도와줄 일이 없는지 알아봐라. 도와줄거면 확실히 해라. 떨떠름한 마음으로 도와주지 마라.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니.

14. 감사하다고 말로도 하고 글로도 써라 – 아빠가 투자한 수십명의 창업자 중에서 딱 한사람만 아빠에게 감사의 손편지를 써줬다 (어떻게 훌륭한 회사를 키워갈지에 대한 포부와 함께). 정말 특별한 느낌을 받았고 잊지 못할 것이다. 더 도와주고, 지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런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란다.

<네 자신을 돌보기>

15. 규칙적인 운동을 해라 – 처음에는 힘들다는거 안다. 하지만 한번 습관을 붙이면 몸이 알아서 운동을 하고 싶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해봐라. 3-6개월 후에는 몸에 붙을 거다. 규칙적인 운동에서 오는 ROI는 정말 무지무지 크다.

16. 잘 먹어라 – 탄수화물을 되도록 적게 먹어라. 좋은 음식을 먹는게 건강과 피트니스에 영향을 주는건 다 알지만, 너의 두뇌에도 큰 영향이 있다는걸 알아라. 좋은 음식을 사는데는 돈 아끼지 마라.

17. 걱정 근심 – 아빠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하며 산다. 이런 걱정거리가 널 괴롭힌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한번 글로 적어보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적어봐라 (예를 들어, 지원한 대학에 모두 떨어지면 community 칼리지에 입학해서 2년후 transfer 하겠다 등). 막상 그렇게 적어 놓고 나면 그런 시나리오에도 별 탈 없을 것임을 알게 된다

18. 화 –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해 굉장히 화가 날때, 바로 응대하지 마라. 보나마나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할거거든. 그렇다고 그 문제를 완전히 회피하라는 것도 아니다. 큰 숨을 쉬고 일단 진정하고, 가능하면 하루밤 자고나서 무슨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해라.

19. 멀티 태스킹 – 하지 마라. 인간의 두뇌는 멀티태스킹에 적합하지 않다. 음악 들으면서 공부할수 있을것 같지만 사실 우리 두뇌는 음악 듣는것과 공부하는 것 두가지 사이에서 짧은 시간 동안 계속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작업 변경마다 두뇌에는 switching cost 가 있어서 한가지에 깊게 몰두하기 힘들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업적중 멀티태스킹에서 나온건 없다.

20. 지적 솔직함 – 간단하다. 모르는건 모른다고 말해라. 그래야 다른 사람이 널 가르쳐 준다. 이게 뭔가 배울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니겠니. 모르는거 가르쳐 달라고 할때 싫어하는 사람 못봤다. 오히려 널 더 좋아하게 된다. 가장 나쁜건, 모르는걸 아는척 해서 배울 기회를 놓치는 거다. 모르는걸 인정하는데 있어서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 없다.

<Grow and Achieve>
1. Decision and action — you should decide what you want to do and have courage to pursue it. Otherwise, others will come in and determine how you spend your days. To be happy, you should set your own agenda for your life.

2. Pick up the phone and ask for what you want — watch Steve Jobs

3. Take risks — as long as you have a Plan Z, don’t be afraid to take some risks. Start something new. It’s okay to fail. By taking risks, I mean something meaningful for your work and career, not something like drinking and driving.

4. Time Management — we all have only 24 hours a day. Always look for opportunities to reduce wasted time. Living close to your work is a huge time saver (e.g. you were able to walk to SHS). I pick the hotel in Korea 5 min walk from my office. I worked on my flash cards (English vocab) while eating lunch and walking to school when I was in high school. If you look closely enough, there is always a way to find more time to do stuff.

5. Productivity — look for ways to get things done more efficiently (I mean get it done faster). It could mean greater focus on the task (no distraction) or change the way things are processed. If you find some inefficiency at any place, perhaps there is something you can do about it.

6. Work on public speaking — you may not find public speaking skills so important now, but as you get older, you will have opportunities where your words could mov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7. Invest in software, not hardware — spend money and time in exploring new things and learning new skills (i.e. software). Things like sports, travels, books come into mind. Don’t spend much on stuff like expensive bags or jewelry. Satisfaction you may get from those things lasts only days or weeks.

8. Leadership by owning your words — when you tell things to others (especially colleagues), you should own your words. In other words, resist the temptation to piggyback on other people’s authority (e.g. our CEO says xyz, so you better do this). What you say to others must be what you believe in. Say it with your own conviction. People can tell.

<Relationship>

9. Treat your family with love and respect – when things get busy it is easy to take the most important people in your life for granted. Your family is your foundation. The sooner you realize it, the better.

10. Close friends — there is nothing like old friends with whom I can share almost anything. I have known some of my best friends for decades. They have been and always will be on my side. Keep in touch with your old friends. Invest time in them. Close friends are another important layer of your foundation.

11. Build your network broadly — No one makes it alone. All the good opportunities in life come from others you got to know somehow. Meet new people. Say hi, show interest, be empathetic. Most importantly, don’t forget to follow up.

12. Surround yourself with people you admire — this is a no brainer. This is how you improve yourself almost automatically by just being there. Conversely, stay away from negative folks who keep complaining about anything and everything in life.

13. Help others — when your friend needs your help, help sincerely and offer to go extra miles. Make it count. Don’t do it half-heartedly, it helps no one.

14. Say thank you verbally and in writing — Out of dozens of entrepreneurs I backed, only one person gave me a hand-written letter with gratitude (he also talked about how he is determined to build a great company). It was special and a pleasant surprise. I will never forget. Now I support him with even stronger conviction. This is how you win someone’s heart.

<Taking care of yourself>

15. Exercise regularly — I know it can be challenging initially, but trust me — once it becomes a habit, you body will want to exercise. Just do it without thinking about it much. It takes 3-6 months until it totally becomes part of you. ROI (return on investment) on this one is just enormous.

16. Eat well — I suggest low carbs (less rice, bread, pasta). Eating well is of course important for your physical health and fitness. What most people don’t realize is that your diet has a big impact on how your brain functions. Spend money on quality foods. It’s worth it.

17. Anxiety — including myself, people worry too much about the things that aren’t likely to happen (but might happen). If certain thoughts keep bothering you, write down the worst-case scenario and how you will cope with it (e.g. If I get rejected by all the colleges I apply to, then I will register myself at DeAnza and will transfer 2 years later). In most cases, you’ll find that you will be just fine even in that scenario.

18. Anger — when you find something or someone that really upsets you, do not confront the person or the situation right away. You will say things that you will regret later. Do not completely ignore or avoid it either. Take a deep breadth, calm down, and maybe sleep on it before you take actions or say certain words.

19. Multi-tasking — don’t do it. Human brains are not designed for it. You may think you can study while listening to music, but in fact, your brain constantly switch between the two tasks and your brain cannot focus on one thing deeply because there is something called ‘switching cost.’ No great invention/achievement in human history came from multi-tasking.

20. Intellectual honesty — this one is simple. When you don’t know, say you don’t know and ask people to teach you. It’s the only way to learn. People will actually like you more when you ask them to teach you. The worst thing is to pretend to know out of insecurity and you lose your chance to learn forever. There is no shame in admitting that you don’t know when you don’t know.

 

스트레스에 대하여

2008년 췌장암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둔 랜디 포쉬 교수님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과학)이 저술한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기억하는 분이 꽤 많을 것이다. 이 책에 스트레스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교수님이 오래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수백만원 가량의 빚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아주 괴로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트레스 대처법의 일환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명상과 요가 수업을  다녔고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빚은 줄지 않았고 그녀는 계속 요가 수업만 다녔는데, 이를 보다 못한 포쉬 교수님은 어느날 그녀를 앉혀두고 요가 다닐 시간에 파트타임 알바를 뛰면 5개월안에 빚을 다 갚을 수 있다는 계획표를 짜줬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이를 그대로 실행해서 식당 알바로 수개월만에 빚을 갚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는 해피엔딩 이야기다.

상당히 공대형(?)스러운 스트레스 대처법이 아닌가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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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생활을 한 11년 정도 했는데,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중 가장 컸던 것은 주로 frustration 이였다.  사전에는 이 단어가 ‘불만’ 혹은 ‘좌절’ 같은 단어로 번역이 되는데 frustration의 정확한 뉘앙스와는 좀 다른것 같다 — 뭔가 내가 생각한 방향과 윗선의 의견이 다르면 거기서 오는 갈등이나 답답함이 내 frustration 이였다. 내 성격상 상사와 직접적인 다툼이나 마찰은 많이 없었을지 몰라도, 이미 눈치로 어긋난 방향을 감지했을때 속마음은 괴로웠다. 그 외에도 내가 승진이 안되었을때 느낀 좌절감도 컸고, 투자나 펀딩으로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아무런 칭찬이나 인정해주는 것 없이 지나갔을때도 꽤 섭섭했다.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별로 없는데, 오히려 한가할때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지, 이러다가 뒤쳐지는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에 두렵기도 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지, 한가한 때 테크니들 같은 걸 만들어서 괜히 일을 벌이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스트레스의 종류가 바뀌었다. 이제는 frustration 보다는 모든게 걱정(anxiety) 이다.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도 뭔가 시작하면 오만가지 결정해야 할일이 많다. 나의 경우 투자 방향이나 전략을 짜는 것, 개별 투자건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건 물론이고, 사람을 뽑는것, HR 정책을 만드는것, 사무실 구하는 것 등등 하루에도 결정할 일들이 넘쳐난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봐 늘 걱정이 드는게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잘못된 판단이라는게 나타나면 마음이 너무 아플걸 알기 때문이다.

결정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걱정거리는 늘 넘친다. 내가 잘하고 있는걸까? 나때문에 회사가 크지 못하는건 아닌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 잘 하고 있는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건 아닌가? 전통적인 투자 모델이 앞으로도 계속 잘 될까?  다음에 펀드레이징은 어떻게 할건가? 등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은 끝도 없다. 어느정도야 건설적인 고민이 될 수 있겠지만, 꿈에서 이런 주제로 잠꼬대를 하다가 새벽에 벌떡 잠에서 깰 정도면 별로 정신 건강에 안 좋은것 같다.

나에게 무슨 기발한 스트레스 대처법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서 이 글을 클릭했으면 이쯤에서 실망하셔야 한다. 난 딱히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하는 행동이 없다. 종종 운동도 하고 친구와 맛있는거 먹으며 수다도 떨지만, 그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라기 보다 그냥 그자체가 즐거워서 하는거에 가깝다.

일에 대한 걱정거리로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그냥 일을 더한다. 작고하신 랜디 포쉬 교수님의 교훈을 생각하며.

나만 모르는 영어 단어들

어제 저녁에도 그랬다. 간만에 네식구가 모여서 DVD로 영화를 보는데, 식구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와서 또 좌절했다.

어제 본 영화는 2016년 개봉작 <매그니피센트 7> 이라는 일종의 리메이크 서부 영화였는데, 초 호화급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했다. (덴젤 와싱턴, 크리스 프랫, 이썬 호크, 이병헌 등)

주인공인 덴젤 와싱턴이 나쁜놈에게 ‘여기서 빨리 썩 꺼져!’ 라는 의미로 “Git!” 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전후 사정상 대충 그런뜻인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단어는 처음보는 것 같았다. 내가 git라는 단어를 볼때 머리속에 떠오르는 건 영화분위기와 전혀 상관없는 Github 웹사이트 밖에 없다.  같이 영화 보던  아이들(미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미국서 초등생 시절만 보낸 와이프도 단어뜻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는 이런 것도 모르냐~’는 핀잔도 함께 날려준다. 날 쳐다보며 피식 웃는 아들놈의 썩소 속에는 우월감과 쾌감이 그득하다.  (그 나이때는 왜 아빠를 이기는데서 즐거움을 느낄까?). 그래 이것들아… 무식한 아빠를 용서해 다오 우쒸 ㅠㅠ

GIT. 흠…스펠링도 딸랑 알파벳 3글자 밖에 안되고 누구나 다 아는 말 같은데, 영어 공부를 그렇게 오래 했음에도 난 왜 이 단어를 몰랐을까? 들어봤는데 스치고 지나간걸까? 아이들의 핀잔까지 들으면 나는 또 으례 나 나름대로의 항변을 한다.

“아빠 고등학교때 영어공부 진짜 욜씸히 했거든? 근데 이런 단어는 한국에서 절대 안가르쳐 줬다고!”

미국으로 건너온지가 만 19년이 되어가기 때문에 ‘고등학교때 어쩌구’ 운운하는 것은 아주 빈약한 변명밖에 안된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안다.

실은 쉬워보이는 영어 단어 몰라서 당황스러웠던 것은 예전부터 자주 겪은 일이다.  아이들이 훨씬 어렸을때 봤던 그림동화책에도 제대로 모르거나 처음보는 단어는 즐비했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들은 아마 만 2-3세용 ‘그림책’이였다. 나비도 날아서 놀러오고, 기어다니는 벌레가 말도하고, 상상속의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그런 책들말이다. 한페이지에 문장은 한두개 씩 밖에 없었지만, 갑자기 flutter (나비같은 것들이 날개를 펄럭일때 쓰는 동사), mutter (낮은 목소리로 궁시렁댈때 쓰는 동사) 같이 평소에 못보던 단어들이 튀어나오면 책 읽어주다말고 잔뜩 긴장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원어민에 좀 더 가까운 영어를 구사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지에선 유치원생도 아는 말이지만 나만 몰랐던 단어들은 꽤 많았는데, 그 중 몇가지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면,

  • puddle (퍼들) – 비오고 나면 길거리 곳곳에 물이 고여있을수 있는데 그런걸 말하는 명사
  • scrumptious (스크럼셔스) – 엄청 맛있다는 뜻의 형용사로 delicious보다 좀 뜻이 강함
  • skip (스킵) – 어른들은 뭔가 빼먹고 지나가다는 뜻으로 많이들 쓰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한발로 뛰는 ‘깽깽이’나 깡총깡총 뛰는 걸 뜻할 경우가 많음
  • rickety (리케티) – 뭔가 허접하고 곧 무너질것 같은 조형물 같은걸 표현할때 쓰는 형용사
  • purr (펄) – 고양이가 만족감을 표할때 낮게 내는 소리를 본뜬 의성어 (동사)

원래 이것 말고도 상당히 많았는데, 막상 기억해내려고 하니 쉽지 않다. 예전엔 공대 책들은 원서로 많이 봤고, 지금도 종종 영어로 쓰인 경영관련 책들을 읽지만, 해리포터 같은 책은 원서로 재미있게 볼 자신이 없다.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올걸 알기 때문이다.

참 언어라는 것만큼 쉽고도 어려운게 없는것 같다. 언어를 생활로 접하고 배운 사람에게는 말처럼 쉬운게 없지만, 이걸 ‘외국어’입장에서 공부로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참 어렵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30년이 되어가고 나름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지만, 아직 아이들 동화책만 봐도 모르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허점이 많다.

그래도 어쩌랴. 결론은 꾸준히 하는 수 밖에 없다. 한가지 방법은 원어민과의 접촉을 늘리는 일인데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기회가 제한적일수 밖에 없다. 원어민과의 소통 기회를 틈틈히 가지고자 하는 분께는 튜터링 이라는 모바일 앱을 추천한다. 이걸 쓰면 아무때나 원하는 주제로 원어민 선생님과 실시간 대화를 나눌수 있으니 말이다 (깨알광고 ^^).

사족 – git는 나중에 찾아보니 영국쪽에서는 ‘얼간이’ 를 뜻하는 명사로 쓰이는 것 같고, 미국에서는 주로 남부등지에서 ‘빨리 떠나라’는 명령등을 할때 쓰는 속어 (동사)로 쓰이는 것 같다.

대통령을 뽑는 나의 소박한 기준

한국에선 대선이 불과 몇 주 앞으로 다가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내가 옳네 네가 옳네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토론을 떠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상호비방 공세를 보다보면, 나름 국가대표급 지도자란 사람들이 나와서 벌이는 한탕 진흙탕 싸움 같아서 ‘정치환멸’을 또 느끼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게 이번엔 선거기간이 짧아서, 더러운 싸움을 비교적 적게 보게 된다는게 위안거리).

그러나 어쩌랴.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어쩔수 없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이과정을 통해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것이니, 국민 각자가 나름 최선을 다해서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내가 대통령을 뽑는 기준은 딱 두가지다.

(1) 자질

특정 후보가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잘 수행할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사실 많은 것이 들어가 있다.  국가 지도자로서 국민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성품은 물론, 국민들의 힘을 모으는 리더십, 정치성향이 다른 이들까지 안고 나갈수 있는 포용력도 필요하다.  또 현재 심각한 안보위기에 처해있는 만큼, 현명한 외교적 판단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줄수 있는 사람이여야겠고, 실업률이나 저출산, 환경오염 같은 산적한 많은 경제/민생 문제도 지혜롭게 풀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문제를 혼자 다 도맡아 할수는 없을테니, 주변에 훌륭한 인재를 두고 팀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할테고, 국민과 잘 소통할수 있는 인물이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위에서 열거한걸 다 완벽히 해내는 수퍼맨 대통령은 불가능할테니,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중 서너개에서 A가 예상되고 나머지는 B정도만 해도 대통령의 ‘자질’면에서 합격선은 된다고 본다.

(2) 자격

말 그대로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를 물어봐야 한다. 이 ‘자격’이라는 것이 물론 주관적인 잣대이기는 하다. 대통령 후보가 비리나 큰 도덕적 결함이 없는 청렴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 일것이다. 내생각엔 그것에서 더 나아가 그 사람의 과거 인생이 과연 남을 위해서, 또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인가를 봐야 한다. 나같은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먹고 살기 바쁘므로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나 사업을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을 낮게 평가하는게 절대 아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늘 아름답다). 하지만,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삶을 통해 본인보다 더 큰 공동체의 대의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한 사람이어야 그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이는 지역사회에서 평생 공복으로 일하며 주민을 섬긴분도 있을테고, 약자와 소수의 인권을 위해 법정에서 싸운이도 있을 것이며, 과거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 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방식이야 어찌되었든, 사익추구가 아닌 대의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 다같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이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 후보들마다 현란한 공약들을 내세우며 주의를 끌지만, 실제 그 사람이 지난 3-40년간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잘 살펴보면 대통령의 자격에 대한 질문이 어느정도 해소될 것이다.

한국에도 똑똑하고 훌륭한 인재가 많기 때문에 ‘자질’만 살펴보면 대통령직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꽤 여럿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대통령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행 민주주의 제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통령의 자격과 자질을 동시에 갖춘사람을 깊이 고민해 보고 뽑는 것이다. 좋은 대통령을 뽑는다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선진국이 된다거나 국민 모두가 잘먹고 잘살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지도자를 잘 못 뽑았을때 국민들이 입는 피해는 그야말로 참담하다. 정말 잘 뽑아야 한다 ㅜㅜ

 

 

어머니와 택시

“필구야, 나 이제 버스 못탄다”

허리가 많이 굽으신 어머니가 교회문을 나서며 나지막히 말하셨다. 난 내 귀를 의심하면서 자세를 낮춰 다시 잘 들었다. 이제 버스를 못 타시니 택시를 부르자고 하신다.

‘헐…엄마가 택시를 타자고 하시다니.’

어머니는 평생 택시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오신 분이다. 30분, 1시간 거리도 늘 걸어다니셨고, 그보다 먼길은 반드시 버스나 지하철만 이용하셨다. 지하철이 무료가 된 나이부터는 지하철을 더욱 애용하셨던것 같다.

어렸을때 어머니와 외출이 썩 즐겁지 않았던 이유는 어딜 가더라도 많이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야 했다. 어쩌다가 외식 한번 해도 집까지 한참 걸어가야 했다.  버스비도 아까워하시기 때문에 택시는 언감생심이였다. 아주 드물게 택시가 ‘허용’되는 때는 4명정도 일행이 있어서 예상 택시비가 4명의 버스비보다 쌀 때 였다. 반항심인지 몰라도 어렸을땐 이런 어머니의 행보에 불만이 많았다. 괜히 궁상 맞아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 어머니와 어디갈때면 묵묵히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버스나 지하철을 탔다. 어머니 마음 편하게 가는데 조금이나마 효도이려니 생각해서다. 뭐 나도 버스나 지하철이 크게 불편한건 아니다. 단, 파킨슨 병으로 조금씩 몸 상태가 안좋아 지시는 어머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말이다.

요새 내가 한국에서 출장중에는 외부 일정들이 많아 하루에도 여러번 택시를 탄다. 지하철이 빠를땐 지하철을 타지만, 지하철 연결이 애매한 목적지까지는 시간이 아까워 그냥 택시를 탄다. 하지만 아직도 택시타고 1만원 이상 거리를 갈때면 ‘내가 좀 사치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일종의 죄책감이 스친다. 아마 어렸을때부터 택시는 사치라는 걸 세뇌(?) 당해서 그랬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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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교회에서 나와 여느때처럼 당연히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려 했는데, 한달만에 뵌 어머니가 택시를 타자고 하신다. 더이상 버스를 올라탈 기력이 안되신다고. 급하게 택시를 불러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뒷자리에 앉혀드리고, 나는 운전사 옆 앞자리에 앉아서 갔다. 집으로 가는 15분동안 나는 앞에서 눈물만 줄줄 흘렸다. 내가 우는걸 아실까봐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런날은 꼭 택시 기사 아저씨가 라디오도 안틀더라. 그나마 어머니가 날 볼 수 없는 앞자리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면서 어머니는 다소 심기가 불편하신 표정으로 뭐라고 중얼거리신다. 아침에 똑같은 거리를 타고 가셨을때는 요금이 4천원이였는데, 지금은 4천8백원이 나왔다고.

이따가 난 강남까지 2만원 정도 거리를 타고 갈 예정인데 벌써부터 죄책감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