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이 돈을 아껴야 하는 이유

초기 스타트업은 왜 돈을 아껴야 할까?

뭐 쉽게 생각하면 스타트업은 보통 돈이 늘 부족하기 마련이니 돈 아끼는게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이유는 초기 스타트업이 지불하는 비용은 뭐든지 비싸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지불하는 비용이 비싸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스타트업은 물건 살 때 바가지라도 쓴단 말인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런 저런 경로로 투자를 받게 마련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서 회사의 주식(equity)를 팔게 된다.  그런데 초기 스타트업은 주식을 낮은 가격에 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비용이 비싼거나 마찬가지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XYZ라는 스타트업이 10만주 (10%의 지분에 해당)를 팔아서 1억원을 투자 받았다고 가정하자. 주당 가격은 1천원인 셈이다. 이 투자 받은 돈으로 사무실에 놓을 100만원 짜리 고급진 책상과 의자를 샀다고 하자.  XYZ는 이 책상과 의자를 사기 위해 회사 주식 1000주를 쓴 것이다. 나중에 이 회사가 잘되서 주당 가치가 100배 상승했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주당가치 100배 상승이 되는 경우도 스타트업에선 꽤 있다). 그럼 결국 이 XYZ 회사는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는데 미래가치 1억원 (100만원의 100배)을 쓴 셈이다.

자, 당신은 정말 1억원 짜리 책상과 의자 세트를 구입하고 싶은가? 아니면 IKEA가서 1천만원짜리로 퉁치고 나머지 9천만원은 세이브할텐가?

물론 이렇게만 생각하면 100만원짜리 컴퓨터 한대를 사려도 1억원일테니 돈을 쓰기가 힘들 것이다.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꼭 필요한 물품을 사는데 에 돈을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초기 창업자라면 모든 가격표에 곱하기 100을 해서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의 회사가 향후 100배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가격에 0을 두개 더 붙이고 나면, 사무실에서 굴러다니는 5천원짜리 소모품도 아껴 쓸 수 밖에 없다.

Series A 투자를 규모있게 받은 회사라면 모든 가격표에 곱하기 10 정도 하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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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기에 적합한 나이는 존재하는가?

(이 포스팅은 일반화의 오류로 점철된 글 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투자자로서 창업자의 나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소 민감한 문제다. 대략 경력을 듣고 얼굴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처음 피칭하는 창업자에게 대놓고 나이를 물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 회사들은 채용 인터뷰에서 나이를 물어보는 것도 불법이고, 채용후에도 나이로 차별하는 경우가 드러나면 소송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조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투자일을 하면서 갖은 연령대의 창업자를 만났다. 실제 투자한 기업들 중에도 20대 청년 창업자 부터 40대 중반까지 나름 꽤 스펙트럼이 있다.  어찌 생각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쓸때 그 회사의 창업자가 누군지, 몇살인지 웬만해선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쓸 이유도 없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의 유니콘으로 촉망받는 Slack이라는 회사가 만든 협업 소프트웨어를 한국에서도 많이들 쓰는데, 그 창업자가 73년 캐나다 출생으로 43세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하지만 비지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복잡하고 고되기 마련인데, 그 도전의 과정에 나이라는 것이 좋든 싫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건 어쩔 수 없는 현상같다.

그럼 본론에 들어가면서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만한 그래프를 한번 생각해보자.

age graph

먼저 이 그래프에는 일반화의 오류가 많다는 점을 일러둔다. 환갑의 나이에도 마라톤 완주하는 분도 있는가 하면, 20대중에도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에너지=0에 가까운 청년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긴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정도 이 트렌드를 따라가기 마련이므로, 한가지씩 살펴보자.

<경험, 지식>

본인이 창업하려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경우 대부분 많은 도움이 된다.  해당 업계의 배경지식은 물론 실무 처리해 본 경험은 좋은 자산이 된다. 그리고 꼭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일반 직장생활은 여러모로 소중한 경험이 된다.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하는 법, 깔끔하게 소통하는 법, 팀을 리드하는 법, 프로젝트 관리하는 법, 고객 상대하는 법 등등 이런 모든 것들 (soft skill이라고도 한다)이 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지만 아주 중요한 것들이고, 창업자로서 회사를 키워나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보통 이런 저런 경력들이 쌓이게 되고, 여기서 체득한 경험, 지식, 스킬등은 더 ‘준비된 창업가’로서의 자질을 만들게 마련이다.

<네트워크>

세상에 내 혼자 힘으로 다 하는 사업은 없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된다. 보통 많은 이의 도움을 받게되고, 훌륭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수록 사업 성공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  유능한 개발자를 회사로 영입하는 일이라든지 영업에 필요한 고객 정보를 얻는 것이라든지 남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무궁무진하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보통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 분명히 유리한 점이다. 예를 들어 구글과 파트너쉽을 끌어내고자 할때, 구글에 다니는 친한 친구가 담당자를 소개해주는 것과 콜드 이메일을 보내서 혼자서 어떻게 뚫어보려는 것은 천지차이다.

<체력>

사업이 올림픽도 아닌데 웬 체력이야기를 하냐고 물을수도 있지만,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다. 언제 고생이 끝난다는 보장도 없어서 더 힘들다.  초기 창업팀들을 보면 주당 80-100시간 일하는 이들도 흔하다. 장기간 이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려면 우선 열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열정은 잠깐 타다 꺼지는 성냥불이나 마찬가지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운동과 식사등을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보통 30대중반 넘어가면서 체력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번 밤샘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창업 초기에는 회사의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하므로 잡일이 엄청 많기 마련인데 나이가 들 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귀찮은게 많아진다. 20대때보다 부지런해지기 쉽지 않다.  물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유지를 할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인게 나이가 들수록 바쁜일은 더 많아지고 운동할 시간 내기는 더 어렵다 (물론 핑계다). 암튼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는 리더의 체력은 중요한 자산이다.

<가용시간>

나이가 들면 대부분 삶이 복잡해진다. 결혼과 육아, 부모님 봉양, 주위의 경조사, 친구, 챙겨야 하는 사람, 만나야 하는 사람, 새로생긴 취미 등등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드는 물리적 시간이 보통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만큼 사업에 몰두할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싱글 시절에는 맘놓고 주말에도 일할 수 있었어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주말에 회사나가려면 뭔가 남편/아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물론 무턱대고 오랜시간을 일하는 것보다 스마트하게 효율적으로 일하는게 중요하지만, 리소스가 턱없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보통 많은 물리적 시간을 투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삶이 복잡해지면 시간만 모자르는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신경이 분산되기 마련이다. 사업말고도 신경써야 할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 돌보는 일등을 제껴두고 모두 사업에 몰두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동시에 저글링(juggling) 해야하는 일들이 보통 많아진다는 현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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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몇살때 창업을 하는 것이 좋단 말인가? 정답은 없다. 이상적으로야 본인이 열정을 느끼는 분야에서 일정기간 동안 다른 회사에서 많은 학습을 거치며 경험치와 네트워크를 충분히 쌓은후 아직 체력과 가용시간이 철철 넘쳐날때 창업하는게 좋겠지만, 사람일이 어디 그렇게 수학 방정식처럼 딱 떨어지던가. 각자 처한 개인사정도 다르고, 또 ‘시장의 기회’라는 놈은 내가 경력 쌓을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경험’이란 것의 상대적 중요성이 아닐까 한다. 이미 존재하는 기존 시장, 기존 산업군에서 경쟁하는 사업이라면 상대적으로 창업자의 경험이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제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 실무경험 없이 반도체 회사를 창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로, 완전히 새로 생기기 시작하는 산업에 도전하는 경우는 경험이라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그걸 해 본 사람이 세상에 몇 없으니 말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창업하던 시절의 PC 산업이 그러했을거고, 90년대 한국에서 태동한 인터넷 회사나 온라인게임 회사들도 이에 해당할거다. 어차피 다들 처음해보는 거라 출발선이 비슷하다면, 체력좋고 다른일에 신경쓸 일이 없는 똑똑한 청년들이 모인 팀이 경쟁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글 서두에 ‘소비자는 창업자의 나이에 관심도 없고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근데 이게 어찌보면 매우 비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쩌면 시장은 당신이 최고의 지식+경험+네트워크를 동원해 마라톤선수의 체력을 가지고 무한대 가용시간을 투자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창업팀의 약점이나 사정을 ‘이해’해주면서 만족하기 힘든 제품에 돈을 지불하는 커스터머는 없다. 이 글의 의도는 나이 적은 창업자 혹은 나이 많은 창업자의 의지를 꺾으려는 게 아니다. 다만, 창업이란 것도 한 개인의 커리어중 일부라는 관점에서 스스로 ‘지금이 적기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는 있다. 시장은 나의 개인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냉혹한 곳이기에 지금 내가 가진 능력치(경험, 네트워크, 체력, 가용시간등)가 얼만큼 경쟁력있는 것인지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결론은 각자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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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페이스북에서 배우는 ‘아하 모먼트’

(이 글은 A dozen things I’ve learned from Chamath Palihapitiya about Investing and business 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하고 요약했으며, 내 개인적인 의견을 가미하였음)

Chamath Palihapitiya

Chamath Palihapitiya

페이스북의 초기~성장기라고 볼 수 있는 2007년쯤 페이스북의 성장을 담당한 부사장이 있었다. 이름은 Chamath Palihapitiya 이고 당시 공식 직함은 VP of Growth, Mobile & International 이였다.  본래 스리랑카 태생인 Palihapitiya는  어려서 캐나다로 이민왔으며 젊은 나이에 AOL에서 승승장구 하다가 저커버그의 부름을 받고 페이스북으로 이직하였다.  2007년부터 약 2011년까지 페이스북의 성장과 해외진출을 책임진 임원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부와 명예를 획득한 후, 지금은 벤처투자자로 변신해 맹활약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꽤 유명한 인물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름이 너무 어려워 그의 명성이 입소문 타는데 좀 불리함을 겪는것 같다.

그가 몇몇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당시 오로지 한가지 핵심 목표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모든 신규 사용자에게 10일내로 친구 7명을 찾아준다”

라는 그들만의 지상과제였다.  그의 팀은 온갖 실험과 측정끝에 사용자가 10일내에(원래 알던) 친구 7명과 페이스북에서 연결되는 순간 떠나지 않고 남는다는 걸 알아냈고,  이것이 그들의 진정한 ‘아하 모먼트(A-ha moment, 깨달음의 순간)’가 되었다. 그 후로 페이스북은 모든 회의나 사내 Q&A에서 딴거는 다 제쳐두고 이것만 팠다. 수익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고, 플랫폼사업 구상 같은 것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CEO를 비롯한 전 임직원이 하나의 잣대를 기준삼아 전력질주 한 셈이다.

“10일내 친구 7명” 지표가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이게 페이스북의 핵심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페이스북을 한가지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초기 페이스북의 핵심가치는 뭐였을까? 아마 오프라인에서 아는 친구들과 연결해서 사진 공유하고 서로 소식도 주고 받는게 아니였을까? 사용자 입장에서 단기간내에 친구를 7명이나 찾아서 그들의 사진과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일테니 페이스북에 다시 방문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였을거다.  페이스북의 핵심목표가 “월 몇 %성장” 혹은 “매출 몇억 달성” 같은 공급자 입장의 언어가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느끼는 가치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건 정말 훌륭한 교훈이다.

Palihapitiya의 부연설명을 들어보면, 대부분의 회사들이 일일 사용자수 (DAU), 초대장 발송 수 같은 것을 측정하고는 있지만 이게 제품의 핵심가치와 직결되는 지표가 아니면 의미없고, 오히려 (엉뚱한 지표는) 독이 된다고 경고한다. 잠깐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어떤 유틸리티 앱이 있을때 다운로드수가 많다고 그 자체가 사용자인 나에게 별다른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니 그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그에 따르면 많은 회사들이 어떤 지표가 제품의 핵심 가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지 모르고 있고, 따라서 아하모먼트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게 되며, 제품은 정체되고 만다.

이쯤에서 창업자라면 생각해 볼 문제:

  • 우리 회사는 현재 어떤 지표를 측정하고 있나?
  • 그 지표는 우리 제품의 핵심 가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나?
  • 그 지표를 찾았다면, 그걸 끌어 올리기 위해 얼만큼 집중하고 있나?
  • 그 지표를 못찾았다면, 그걸 찾을때까지 끊임없는 실험과 노력을 기울일 용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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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Seven Jobs

요새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의 첫 7개 직업이 무엇이였는지 밝히는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해쉬태그 #firstsevenjobs).  내 첫 직업들은 뭐였었나 생각해 봤는데, 별로 재미있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못해 본 것 같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돈 아니라 경험을 위해서라도 좀 더 다양한 일을 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내 첫 7개 직업은 아래와 같다.

  • 과외교사 – 대학 1학년때부터 용돈 벌 요량으로 주로 고등학생들 영어, 수학등 방문지도. 한 학생당 일주일에 두번가고 매번 2시간 정도는 했던것 같음. 어떤 학생은 잠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살아서 학교에서 가려면 1시간도 넘게 걸렸는데, 그래도 부모님에게 손벌리기 싫어서 마다 않고 열심히 벌었음.  한 학생당 40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은데 당시로선 짭잘한 수입.
  • 도서관 수위 – 대학시절 미국 University of Maryland에 교환학생 비스무리한 것으로 1년 다닌 적이 있는데, 파키스탄 룸메이트가 추천해준 꿀 알바. 공식 명칭은 ‘Student Police Aide’로 학생 신분이지만, 동네 경찰과 교신할 수 있는 무전기를 공급받고 교내를 순찰하는 직업. 영어 못해도 문제 없었음. 내가 주로 근무한 곳은 학교 도서관 출입구에서 책 훔쳐나가는 사람 없나 감시하는 일. 실제 그런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서 책 읽거나 숙제하면서 자리만 채워도 시간당 약 6불 받았던 기억. 가끔 저녁에 캠퍼스 순시하고 있으면 학생들이 내가 경찰인줄 알고 이런저런 신고나 부탁을 해서 웃겼음 ^^ (이 학교 주변 물정은 미국온지 3달된 나보다 니가 더 잘 안다구 ㅋㅋ)
  • 통역 – 한국에 돌아와서 복학후, 출장나온 미국인들 통역 알바를 함. 주로 해당 미국인의 호텔에서 한국 회사들에 대신 전화 걸어주는게 임무였고, 종종 비지니스 미팅에 따라가서 서툰 영어로 통역. Broken English였지만 뜻만 통하면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고, 오히려 내가 한국에서도 영어를 계속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음. 친구들에게도 소개시켜 줘서 재미있게들 알바 뜀. 어린나이였지만 이런 중개사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는데.
  • 대기업 인턴 – 대학 4학년 학사 일정을 겨울에 마치고 유학을 떠나기전 공백기간이 약 7개월은 족히 되므로 뭔가 해야할 것 같아서 대기업 인턴을 신청. 모기업 전자회사 였는데, 나름 전자공학도 출신이라 의미있는 일을 할 줄 알았지만, 막상 5개월동안 한 일은 오전내내 타이핑 (책을 워드로 옮기는 일) 내지 복사같은 잡일. 물론 오후엔 시뮬레이션같은 것도 돌렸지만 일이 너무 단조롭다고 느낌. 기업문화도 숨막힐 것 같았음. 얻은 것이라곤 ‘나는 대기업과 잘 안맞는구나’ 하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것.
  • 연구 조교 (Research Assistant) – CMU로 유학온게 98년 이였는데 당시 IMF 여파로 살인적인 환율에도 유학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학교에서 Research Assistant 자리를 주며 학비와 생활비를 보조해 줬기 때문. 직업이라고 하기는 좀 힘든게, 그냥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석사 대학원생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연구를 하는 것. 행정 잡일은 전혀 없었음.  매달 세금 제하고 $1100(약 120만원)정도의 월급을 받았는데, 당시에 와이프와 같이 살던 원베드 아파트 렌트비가 $605불 이였고, 나머지 $500불로 둘이서 어떻게든 한달을 살아보려 발버둥 쳤다 ㅎㅎ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 CMU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얻은 첫 직업. Neolinear라는 피츠버그 소재 스타트업으로, 반도체 디자인 CAD 툴을 만들었다. 당시 개발자로서 나의 코딩 실력은 내가 봐도 참 형편없었는데, 단지 컴싸 전공자들 보다는 반도체를 좀 안다는 구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골치아픈 C++는 많이 안써도 되었고, TCL이나 LISP류의 스크립트 언어로 근근히 먹고 살 수 있었음
  •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 –  위 회사에서 CMU 출신의 동료 개발자 들의 솜씨를 보자니 거의 넘사벽 수준이였음. 일예로 바로 내 옆자리 친구는 Caltech학부와 CMU대학원을 나왔는데, 코딩 짜는 속도가 내 타이핑 속도보다 빨랐음 (절대 과장 아님). 당장 짤리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내 실력으론 경쟁력이 없다는 걸 깨닫고, 코딩 많이 안해도 되는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가 되기로 자원. 주로 커스터머 만나서 지원해주고 문제도 해결해 주고 교육도 하는 일. 기술적인 일이지만 회사 밖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개발 이외의 세상에 눈을 뜨게한 좋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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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를 키우지 않는 사회

얼마전 페이스북에서 유럽계은행에 다니는 딸과 한국계 은행에 다니는 아들을 비교한 최동석님의 글을 접했다. 이 글에서 내 눈에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유럽계 은행에서는 직원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반면, 한국계 은행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였다. 그 글에 따르면 딸이 재직중인 유럽계 은행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타 부서로 인사이동이 없기 때문에 같은 분야에 장기 근속할 수 있고 어느새 ‘압도적인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반면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한국계 은행에서는 2-3년마다 일어나는 보직순환제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제대로된 업무 습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게 비단 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계열사를 여럿 거느린 한국의 재벌기업도 비슷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가끔 신문에도 나는 재벌 기업들의 사장단 인사나 그에 따른 임원들 이동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도체쪽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 갑자기 소프트웨어 회사 사장으로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IT쪽에 계셨던분이 IT와는 상관없는 물류나 건설회사 같은데로 이동하기도 한다. 탑레벨이 그렇게 움직일 때 ‘자기 사람’을 데리고 다니다 보니 그밑의 실무진도 동일한 운명이다. 당사자의 역량이나 희망보다는, 그때 그때 그룹의 사정에 따라 옮겨다니며 ‘배치’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회사 자체를 옮기는 보직순환도 허다하니, 회사 내에서 부서 옮겨다니는 건 이야기거리도 안될거다. 주위에 종종 미국 파견근무나 장기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분들을 보는데, 그 중 상당수는 자신이 어느 부서에 ‘발령’ 날지 모르는 채로 귀국한다. 이렇게 여러 부서를 돌다보면 여러가지를 겉핥기 식으로 배울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분야에 식견과 비전을 가진 전문가는 결코 될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의 전문성 결여에서 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은 성과보다 인간관계 다지기에 더욱 목을 매게 만든다.

언론사는 또 어떠한가?  아는 기자님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기자가 한 분야에서만 10년이상 파고 들어야 깊이 있는 취재나 기사가 나올 법한데, 국내 언론사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원천봉쇄 되고 있다.  대부분 기자들이 2-3년을 주기로 부서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부에서 3년 있다가 막 국제부로 넘어온 기자에게 시리아 내전의 깊은 의미를 우려낸 기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뉴욕타임즈나 테크크런치 같은 매체를 보면 기자의 깊은 지식과 통찰력에 감탄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이미 그 분야를 아주 오랫동안 파헤친 사람들로서 전문가로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당연히 해당 업계의 인맥도 좋아서 고급 정보 제보도 받고, 남들이 하기 어려운 취재나 인터뷰도 가능할 것이다. 내 생각에 한국 기자가 머리가 딸려서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수준 낮은 기사가 생성되는게 아니다.  그럴 환경이 아예 주어지지 않는것 같다.

공무원 조직은 또 어떠한가? 공무원들의 보직 변경은 밖에서 보기에도 정신이 없다. 도대체 같은 자리에 2-3년 이상 있는 사람을 본 일이 드물다. 정치적인 자리인 장/차관 자리야 그렇다고 쳐도, 실무자/담당자 들도 계속 자리가 바뀌기 때문에, 바깥 입장에서 보기엔 계속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부담과 비효율이 생긴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해야 ‘공무원 비리’를 차단할 수 있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사람과 계속 일할때 서로 알고 있는 일의 맥락이나 전문성은 큰 효율을 가져온다. 원래 하던 사람이면 간단히 전화 한통이면 끝났을 일을, 새 담당자가 오면 일단 만나서 얼굴 보여주고, 히스토리 다시 설명해주고, 이걸 왜 해야하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다시 설명과 설득을 반복해야 했던 경험을 많이들 해봤을거다. 공무원들의 돌고도는 인사이동은 내부 역량의 전문성 결여라는 문제와 민간 사업자의 비효율을 동시에 초래한다.

이렇듯 끊임없는 자리이동을 거치고나면 조직내 가득한건 generalist (다방면을 많이 아는 사람, 일반 관료)요, specialist (전문가)는 가뭄에 콩 나듯 하게 된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속 성장을 하던 시절에는 전문성이 다소 떨어지는 제품이나 서비스도 내수 시장에서 그럭저럭 팔렸으니 먹고 살만 했다. 하지만 국가간 장벽이 점점 낮아지는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전문가 부족 현상은 결국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 위에서 인용한 최동석님 글의 예만 봐도 쉽게 감이 온다. 도대체 우리나라 금융기관중에 국제 경쟁력을 가진데가 과연 있을까?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금이라도 정부와 기업들은 전문가를 많이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좀 적극 도입했으면 좋겠다. 고도의 지식사회에서 우리를 먹여 살릴 사람들은 그들이다.

 

++ +

사족: 이런 글을 쓸때면 누워서 침뱉기 같아서 사실 마음이 불편하다. 전쟁을 극복하고 기적같은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지만, 당연히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 기준으로 바라보면 아직 부족하고 비합리적인 것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과 답답한 마음에 이런 글을 토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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