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추모하며

아래 10여초 짜리 영상은 올해 3월 어머니와 산책하며 셀카 비디오를 찍은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이상한 광경인데, 멀쩡해 보이는 40대 아저씨는 휠체어에 앉아있고 허리가 많이 굽은 노모는 뒤에서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반대가 되어야 할텐데 말이다. 이렇게 이상한 광경으로 30분 정도 어머니와 산책을 하노라면, 지나가던 행인 중 꼭 몇명은 어머니에게 다가와서 “제가 밀어드릴까요?” 하고 호의를 베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 괜찮습니다. 어머니 운동 하시는거에요” 라고 손사래를 저어야 했다.

사연은 이렇다. 어머니가 공원 산책길 까지는 휠체어를 타고 가셔야 했고, 공원에 도착해서는 휠체어를 보행기 삼아 걷기 연습을 하시곤 했다. 그런데 빈 휠체어를 보행기로 쓰면 무게감이 없어서 앞쪽이 들려 버리기 때문에 누군가 앉아 있어야 훨씬 안정감 있는 보행기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앉아서 휠체어에 무게감을 주고, 두발을 땅에 딛으면서 언덕 등에서는 휠체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조금씩 도와드렸다.

(사진처럼 빈 휠체어를 밀면 휠체어 앞쪽이 들려서 다소 불안해진다)

주중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찾아뵙지 못했지만, 주말에 이렇게 근처 공원에서 어머니와 산책을 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소중한 시간이였다. 중간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던 기억도 많다. 언제 한번은 어머니가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을때 내가 다소 무리해서 모시고 나왔는데, 조금 걸으시고 힘에겨워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시면서도 ‘한바퀴 더 돌겠다’ 라고 하셨을 땐, 의지가 굉장히 강하신 분임을 깨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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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렸던 적이 별로 없던것 같다.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이야 엄마 손을 잡고 다녔을 테지만 그건 기억에 안 남아 있고, 청소년기 이후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깊은 이야기를 하거나 동네 길을 다니거나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은것도 있겠지만, 종종 한국에 출장 나와서 어머니를 뵈러 가서도 그저 인사나 하고, 밥이나 먹고, 멀뚱멀뚱 앉아서 스마트폰이나 보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때가 대부분 이였다. 어머니와 사이가 나쁘거나 그런건 아니였는데, 그냥 생각해 보면 어렸을때 부터 우리집은 가족끼리 소위 스킨십 이라는 걸 하지 않는 집이였다. 어렸을때 집안 분위기는 화목함 보다는 갈등과 냉랭함이 더 많았고, 막내인 나는 그런 집안 분위기에 불만이 많았다.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말이나 서로 안아주는 것은 외국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 같았고 내가 처한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자랐으니 커서도 어머니 손을 잡거나 하려면 너무 어색해서 시도조차 못했다.

그러다가 어머니 손을 자주 잡게 되기 시작한건 어머니가 파킨슨 병으로 혼자 걷기 힘드시게 되었을 때다. 이때는 참 어머니 손을 잡아드릴 기회가 많았다. 처음에는 버스에 오르내리거나 계단 내려가실때 주로 잡아 드렸는데, 나중에는 평지에서 걸을 때도 잡아드려야 했다. 거동이 불편해 지신건 안타까왔지만, 어머니 손을 어색함 없이 자주 잡아드릴 수 있는건 참 좋았다. 이렇게 작은 도움이나마 드릴 수 있어서 좋았고, 어머니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마음 깊은 곳까지 다가왔다. 어머니도 별로 내색은 안하셨지만 내가 손 잡아 드리는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어머니와 손잡고 같이 길을 걷는 시절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파킨슨 병이 더 진행되면서 보행기나 휠체어에 의존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어머니와 손잡는 일도 잘 없었으니 허그, 포옹 같은 건 더욱 기억에 없다. 아마 공항에서도 안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자주 안아드리게 된건 정말 최근인데, 휠체어에서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시게 되면서다. 휠체어에서 침대나 화장실로 옮겨드리려면 어머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씨름하는 것처럼 자세를 구부린 후 번쩍 안아서 일으켜 드려야 했다. 건강이 많이 나빠지고 다리에 힘이 다 빠지고 나서야 아들로부터 반강제 포옹을 받으시게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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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가 소천하신지 1주일이 되는 날이다. 지난 일요일 입관식에서 어머니를 마주했을때 내 심정을 표현할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 뵙는 것이라 비장한 마음도 들었고 심호흡 여러번 하고 들어갔지만, 들어가면서부터 그냥 펑펑 울기만 했다. 어머니 손을 마지막으로 꼭 한번 잡고 싶은 생각에 수의로 입으신 장갑 같은 것을 걷어내고 긴 옷소매에 숨겨진 어머니 손을 조심스레 꺼냈다. 이틀만에 잡아보는 어머니의 손은 말할 수 없을만큼 차가왔다. 안치실에서 나오셔서 그렇다는건 알았지만, 마치 어디 추운데서 고생하시다가 온 것 같은 생각만 들었다.

“엄마 추웠지… 내가 미안해”

미친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뭐라도 하나 같이 보내드리고 싶어서 눈물 닦던 손수건을 고이 잠드신 어머니 품에 넣어드렸다. 불효자식은 그렇게 작별인사를 드려야 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때 손도 많이 잡아드리고 맛있는 것도 더 많이 대접해 드리고 그럴걸 그랬다.

시리즈 A 란 무엇인가?

스타트업 업계에 잠깐이라도 발을 들여본 사람이라면 아마 ‘시리즈 A’ 라는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어는 분명히 아닌데 이 낯선 외래어의 기원은 무엇이고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거두절미 하고 바로 시작.

1.법률적 (legal) 의미로서의 시리즈 A

일단 미국 기준으로 먼저 이야기를 좀 해야 한다. 시리즈 A 라는 말은 본래 회사의 우선주 주식의 종류를 일컫는 말에서 출발했다. 창업자로서 회사를 처음 만들게 되면 보통주(common stock)를 발행하게 되고 이 보통주는 공동창업자들이 나눠 갖게 된다. 창업후에 기관 투자자를 만나서 투자계약을 하게 되면, 주당 발행가격을 정하고 우선주(preferred stock)를 발행할 수도 있는데, 이때 첫번째로 발행이 되는 우선주 주식 묶음을 Series A Preferred Stock 이라고 부르게 된다. 즉, 회사가 발행한 첫번째 우선주라서 그냥 편의상 ‘A’ 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음번에 발행하는 우선주의 묶음은 ‘Series B’ 라고 부를 수 있다. 우선주를 발행할때 꼭 어떤 이름을 써야 한다거나 알파벳 순으로 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냥 발행가격과 시점이 다른 주식들의 종류를 구별하기 좋게끔 계약 당사자들 간에 이름을 붙일 뿐이다. 요새는 첫번째 라운드에서 ‘Series Seed’ 라는 이름도 흔하고, Series B 이전에 Series A-1, Series A-2 라는 파생(?) 이름을 쓰는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엿장수 맘이다.

한국으로 넘어와서 보면, 스타트업 회사의 주주명부에서 “제1종 전환 우선주” 혹은 “제2종 상환전환 우선주” 와 같은 말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제1종” 이라는 것이 위에서 말한 미국의 Series A (A종)와 동등한 개념으로 봐도 좋다. 모두가 예상하듯이, “제2종”은 제1종 후에 발행된 우선주 종류주식일 것이다. 전환우선주 (Convertible Preferred Stock, CPS)와 상환전환우선주(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 RCPS)의 차이점은 결국 투자금 상환조건이 있냐 없냐의 차이인데, 이것은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나중에 시간나면 다뤄 보도록 하겠다.

 

2.펀딩 라운드 혹은 펀딩 규모로서의 시리즈 A

“저희 회사는 6개월전 씨드펀딩을 받았고, 내년 상반기에 시리즈 A 펀딩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핀테크 스타트업 ‘헬로우머니’, 50억 시리즈 A 펀딩 성공”

스타트업이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런 기사나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런 예에서 시리즈 A라는 말은 펀딩 라운드 혹은 그 규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럼 과연 얼마짜리 펀딩을 받아야 시리즈 A 라고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대로 우선주 종류의 이름을 붙이는 건 엿장수 맘이라서 1억만 투자를 받고도 시리즈 A 라고 명명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요새 스타트업에서 시리즈 A 라운드 라고 하면 보통의 경우 수십억 이상이고, 100억 이상도 많다. 예전보다 사이즈가 많이 커졌다.

내가 미국에서 VC에 입문하던 2000년대 후반에는 ‘씨드(Seed)’ 펀딩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창업후 뭔가 첫 펀딩을 받을때 $1M~$2M (약 10억~20억) 정도 투자 받으면서 ‘시리즈 A 라운드’ 라고 하는게 자연스러웠다. 즉, 시리즈 A는 창업의 아주 초창기에 팀과 아이디어만 존재할때 들어가는 투자금이라는 인식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씨드펀딩이라는 말이 인기를 얻으며, 시리즈 A는 자연스럽게 그 뒷단계 펀딩이라는 의미로 바뀌어져 갔다. 그래서 사이즈가 커진거다. 10년전에 Series B 라고 부르던 걸 요새는 그냥 Series A 라고 부를 뿐이다.

통계치를 찾아보니 미국에서 Series A 라운드 평균 금액은 이제 100억을 훨씬 넘어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게 창업 초기부터 다들 100억을 받고 시작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Series A 전에 창업자들은 보통 작은 규모의 펀딩들을 각고의 노력 끝에 받아내며 거기까지 왔을 가능성이 높다. Series A 까지 오는데 3-4년 걸렸으면 나름 준수한 편인거다.

 

3.회사 성장 단계로서의 시리즈 A

이런 대화에서 말하는 시리즈 A 라는 말은 스타트업의 성장단계에서 어느 지점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지점인지는 말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많이 다를수 있다는게 함정이기는 하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시대에 따라서 이말의 의미도 좀 변해왔다.

여기는 내 블로그이니 내 주관이 잔뜩 들어간 100% 객관적(!) 의견으로 말하자면, 요새 말하는 시리즈 A 단계 회사는 어느정도 product-market fit (제품의 시장 적합성)을 찾아내고 매출을 성장시키고 있는 회사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매출이 어느 정도되어야 하는지는 산업군 마다 너무 달라서 말하기 힘들지만, 소프트웨어 회사의 경우 기준으로 적어도 연간 10~20억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매출이 있어도 대부분 적자이기 때문에 보통은 계속 펀딩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정도 된 회사는 펀딩을 통한 자금도 있고, 매출을 통한 cash flow가 있기 때문에 다음달에 갑자기 회사가 문닫는 사태같은 일은 잘 벌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성공적인 앞날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리스크가 여전히 꽤 있는 스타트업일 뿐이다.

직원으로서 시리즈 A 단계 회사에 스톡옵션을 받고 들어간다면, 먼 훗날 회사가 잘 되어서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가능성도 꽤 있다. 하지만 단기간 (2-3년) 안에 회사가 상장해서 대박 칠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시리즈 A 스타트업에 조인한다면 단기간의 금전적 보상 보다는, 회사와 내가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창업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걸 추천한다.

 

사족 및 여담

지난 10여년간 지켜봤을때 재미있는 트렌드는 스타트업들 마다 시리즈 A를 늦게 가려는 현상이 많이 보인다.  은근 초기 창업자들 사이에 본인의 회사가 시리즈 A 회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듯 하다 — 뭔가 언론에 보도되는 시리즈 A 회사들은 엄청난 규모의 펀딩도 받았고, 매출이나 직원수도 상당해 보여서, 우리 회사는 아직 그정도는 아니니 편안하게(?) 씨드단계로 남아있자는 마음일 수 있다.  그래서 Seed 펀딩 후에도 Seed-1, Seed-2, Post-seed, Pre-A, Bridge라운드 등등 온갖 파생이름들이 동원된다 ㅎㅎ. 이렇다보니 펀딩 라운드 이름은 이제 다소 말장난 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 초기 스타트업에 중요한 것은 이런 인위적인 알파벳 놀이는 아니고, 심지어 50억, 100억 같은 펀딩 규모도 아니다. 결국 고객이 얼만큼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랑하고 있고 그걸 돈으로(!) 표현해 주느냐가 제일 중요한 마일스톤 아닐까 생각한다.

창업 아이템 고르는 법

오래전 일이다. 2008년에 인텔에 입사했을때 오리엔테이션의 일환으로 회사의 최고위급 중역들이 한명씩 와서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고 질문도 받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인텔의 최고 법률 담당 임원 (General Counsel 이라 불림)이 오셔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기 위해 생각해 볼 프레임을 알려주셨다. 너무나도 명료하고 공감가는 메시지라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히 난다. (그 분은 바로 이듬해에 애플의 General Counsel 로 이직하였고, 스티브 잡스 아래에서 그 유명한 애플-삼성간의 법률 공방전을 진두지휘했다)

성공적인 커리어는 아래 3가지가 조화롭게 겹치는 영역에서 나타난다는 이론이였다. TOP 모델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3가지는 아래와 같다.

  • T (Talent, 재능)
  • O (Organization, 조직)
  • P (Passion, 열정)

즉, 개인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고, 하는 일에 열정이 있어야 하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 해줄 좋은 조직 (회사, 상사, 동료 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였다. 한번만 들어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내용이였다.

내 직업상 창업자, 혹은 예비 창업자들과 많은 상담을 하게 되는데, 성공적인 창업을 위해 아이템을 고르는 방법도 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즉, 위의 프레임에서 조금만 변형하면 이렇게 된다.

  • 내가 잘하는 것 (재능, 경험치)
  • 시장의 니즈가 있는 것 (마켓)
  • 내가 하고 싶은 것 (열정, 관심)

성공적인 창업 케이스들을 보면 위의 3가지가 겹치는 영역에서 생기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2가지는 확실해야 할 것 같다. 3가지 중에 굳이 경중을 좀 둔다면, 시장의 니즈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재능이나 열정은 창업을 하면서 발전할 수도 있는데, 시장의 니즈는 쉽게 바뀌지 않아서 그렇다. 공동 창업자가 있다면 ‘내가’ 대신 ‘우리가’로 치환해서 생각하면 된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아들에게 감탄하듯 뱉어낸 말이다. 블랙 코미디 성격이 강하지만, 짧고 강렬한 메시지라서 그런지 명대사 중 하나로 많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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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참 힘든 시기다.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불확실 때문에도 힘들다. 10여년 동안 많은 수의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일을 해 보면서 느낀게 있는데, 사업을 잘 하시는 대표님들을 보면 여러가지 불확실한 변수에 대해 계획을 미리 짜 놓는다는 것이다. 제품을 출시했을때 시장 반응이 좋았을 경우는 어떻게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떻게 대처한다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계획을 말한다. 이게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계획과 준비를 실천하는 CEO는 생각보다 드물다.

많은 경우 Plan A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린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라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열심히 달리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본인과 팀의 ‘열심’과는 상관 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자는 항상 리스크를 생각해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스타트업 대표가 펀딩을 나선다고 가정했을때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할 것이다.

  • Plan A: 원하는 목표금액 30억을 펀딩 받아, 개발자도 충원하고 마케팅도 늘려서 내년까지 매출 3배 성장하겠다.
  • Plan B: 30억 펀딩이 여의치 않으면 좀 더 낮은 밸류에 10억을 펀딩 받아 최소한의 인력만 뽑고, 매출 20% 성장을 꾀하며 다음번 도약의 때를 기다리겠다.
  • Plan Z: 펀딩이 아예 안될경우,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철수하고 인력 감원해서 현금이 바닥 나기전에 BEP를 맞춰 일단 생존한다.

사람의 본성이란게 잘 안풀리는 경우를 계속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기 마련이다. 특히 스타트업을 하는 창업자들은 낙관적인 성격을 가진 분이 많으니 Plan A가 잘 풀릴거라고 믿고 거기에 몰빵해서 정진하는 습성이 강할 수 있다. Plan Z는 상상만 해도 괴롭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를 내보내야 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는 일이니 얼마나 괴롭겠는가. 허나 그 괴로운 경우에 대한 생각을 해야하는게 CEO의 임무다. 그것도 미리미리.

한가지 결과 — 그것이 제품이든, 펀딩이든 –로 인해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와 같은 구조가 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배수의 진’을 치고 사력을 다했더니 대박이 났다 같은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나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그런 길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도 이런 말을 했다.

I don’t believe in the bet-the-company bets. (회사의 사활을 거는 베팅 같은건 믿지 않는다)

아마존도 실험정신이 뛰어난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시도 (혹은 삽질) 많이 했고 망한 것도 많다. 대표적인게 Fire Phone 이라 불리던 스마트폰이다. Fire Phone 이 망했다고 아마존이 망했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게 망해도 안전하게끔 다 구조를 만들어 놓고 한거다. 물론 대기업이니까 그게 가능했을거다. 하지만 베조스는 왠지 초창기 스타트업 때부터 저런 리스크 관리를 해왔을 것으로 짐작한다.

어떤 사업이라도 리스크가 없을 수는 없다. 스타트업의 경우는 특히 이런 저런 리스크가 클 수 밖에 없다. 간혹 언론에는 창업자가 리스크테이킹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비춰지기도 하는데, 영민한 CEO는 사업성공을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하나씩 하나씩 줄여가는 사람이다. 현금흐름 이슈가 있을거 같으면 펀딩이나 대출을 미리미리 확보한다든지, 6개월후 개발속도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면 개발자 인력 후보를 미리미리 섭외해 둔다든지 와 같은 일들 말이다.

벼랑끝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해서 계획을 세워두는 것. 그게 CEO의 임무다.

박쥐 살생의 추억

고백하건대 난 직접 박쥐를 몇 마리 잡아 본 사람이다. 그것도 집에서 테니스 라켓으로. 아마 내 주위에 박쥐를 잡아본 사람은 나 말고 거의 없을 것 같다.

때는 2006년이니 거의 14년 전이다. 그해 여름에 직장을 그만두고 MBA 공부를 하러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갔고, 새로 이사간 집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우리 아이들이 만 6세, 4세였고, 학군을 고려해 필라델피아 외곽의 조용한 동네에 아담한 집을 월세로 얻었다. 지하에는 창고나 서재로 쓸만한 공간이 있었고, 1층에는 부엌과 거실, 2층에는 방이 2개 있었다. 2층의 방 한켠에는 다락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관심 없어서 처음엔 열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사한지 며칠 안되어 딸아이가 신기한 걸 봤다는 투로 자랑을 한다. 다락안에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걸 봤다는 거다. 너무 귀여워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니가 동화책을 많이 봤구나 ㅎㅎ. 혹시나 해서 다락문을 열고 안을 쓱 쳐다 봤는데 내 눈엔 별게 안 보여서 얼른 닫았다. 캄캄했던 다락 안은 왠지 캐캐묵은 먼지도 많고 더러울 것 같아 들어가 보기도 싫었고, 딸내미에게도 들어가거나 문 열어보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리고 며칠 더 지나서였다. 밤늦은 시각이였는데 난 지하실에서 책상과 책꽂이 등을 셋업하며 이사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와이프가 날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좀 빨리 올라와 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냉큼 1층으로 올라갔더니 와이프가 다소 당황한 목소리로 천장을 가리키며 묻는다.

“저게 뭐야…”

정체 불명의 검은 새가 거실 천장을 큰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위잉위잉, 퍼덕퍼덕.

나도 너무 황당해서 처음 몇초는 멍하니 쳐다만 봤다. 그건 박쥐였다.

‘얼마전 딸아이가 말하던게 진짜였구나 ㅠㅠ’

괴기영화도 아니고 현실세계에서, 그것도 내가 사는 집에서 박쥐를 맞닥뜨리다니…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하나. 현관문을 열어 바깥으로 내보낼까? 현재진행형 사건이므로 뭔가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쩔줄 몰라 어버버 하고 있던 차에 박쥐가 2층으로 날아 올라갔다.

‘2층에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데! 방문도 열려 있을텐데!’

나도 허겁지겁 따라 올라가보니 박쥐는 이미 아들내미가 자고 있는 방에서 휘휘 날고 있었다. 비상사태다. 이때부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호 본능인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눈에 확 불이 켜지며 초 집중 상태가 되었다.

“빨리 아이 안고 내려가!”

와이프에게 꽥 소리를 질렀고, 일단 둘을 1층으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박쥐가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안에서 방문을 닫았다.

그래, 너랑 나랑 여기서 한판 하는거다.

마침 방에 뒹굴던 테니스 라켓이 보이길래 얼른 손에 쥐었다.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출구를 찾아 약간 낮게 날던 박쥐를 향해 강한 스매쉬를 날렸다.

“이야~~~압!!!!!!!!!!”

오밤중에 엄청난 기합 소리와 함께 라켓을 휘둘렀다. 의식적으로 낸 소리가 아니라 그냥 터져 나온거다. 박쥐 잡는데 기합소리가 왜 필요하겠나? 신기하게도 단 한번의 스트로크로 박쥐를 떨어뜨렸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난 테니스도 잘 못치고 운동신경이 대체로 별로인데. 테니스는 못쳐도, 아버지는 강하다 뭐 그런건가.

암튼 제대로 일격을 당한 박쥐는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방바닥에 뻗었다. 박쥐 vs 윤필구의 1:1 맞장 대결은 이렇게 싱겁게(?) 일단락 되었다. 날아다니던 박쥐는 꽤 커보였는데, 날개가 접힌 박쥐는 손바닥 크기의 반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정말 작았다. 이걸 잘 못 만졌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아서 일단 상자로 그 위를 덮어서 가두고, 내일 집 주인을 불러서 보여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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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가다듬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주변에도 물어보니, 박쥐는 떼지어 살기 때문에 한마리가 아닐거라고들 했다. 분명 집 한구석 어디선가 단체로 서식하고 있고,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밖으로 나갈거라는 거다. 확인해 보려면 저녁 해질 무렵 쯤 집 밖에 나와서 몇마리나 나가는지 관찰해 보라고 누가 귀띰해 줬다.

다음날 저녁 어스름 무렵 집 밖으로 나와서 지켜 봤더니, 과연…!

다락과 연결된 작은 환기구 같은 틈새로 뭔가 납작한 검은 물체가 쉬익~ 빠져 나온다. 2-3초 지나니 바로 또 쉬익, 쉬익~! 한번 나오기 시작하니 쉴새 없이 나온다. 마치 우주선에서 작은 전투기가 연속으로 출격하는 모양새다. 한 50마리 정도 세다가 포기했다. 재미있는건 옆집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저 집 주인은 저걸 알고 있으려나.

집주인이 불러준 pest control (해충 방제) 사람들이 집으로 왔는데, 이들이 해준 일이라곤 박쥐가 나가는 출구에 일종의 one-way exit 장치를 단 것 뿐이였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할 수 있고 다시 들어오지는 못하게 막는 장치인데, 저녁에 집 밖을 나간 박쥐가 다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셈이였다. 내 기분 같아서는 화염방사기를 들고 다락에 가서 박쥐를 다 불살랐으면 좋겠는데, 박쥐를 마구 죽이는건 불법이라고 죽일 수는 없댄다 (생태계 보호).

젠장.

그 장치를 설치한 날 밤이 최악이였다. 제대로 설치가 안 되었는지 다락에 있던 박쥐들이 아예 밖으로 나가질 못한 것이다. 다락에 갇힌 박쥐떼가 끼익 끼익 온갖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 공포스런 굉음은 아래층 까지 들렸고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락문은 철저히 봉쇄했지만, 행여 떼지어 나오기라도 한다면 바로 괴기영화 찍는거다.

가족들은 1층으로 대피해 있었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놈들이 날개를 접으면 몸체가 워낙 얇고 작기 때문에 어디 틈만 있으면 집안으로 침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텔로 피신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도 자정 근처여서 그 시간에 아이들 들쳐업고 어디 가기도 좀 애매했다. 그냥 내가 테니스 라켓을 들고 TV를 보며 밤을 새기로 했다.

그날 밤에 결국 박쥐가 2마리 정도 더 집안에 출몰했다. 한마리는 잡았고 한마리는 문밖으로 내보냈다. 첫 대결에서 처럼 단칼에 잡지는 못했지만 몇 번 보니 나름 차분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눈코입이 다 보이는데, 정신건강을 위해서 안보는게 나을뻔했다.

결국 그 집에서는 3주도 못 살고 이사를 나왔다. 엄청난 임무를 수행한 테니스 라켓은 어쩔수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  잠도 잘 못 잔 상태에서 1달안에 이사를 두번 하려니 엄청 피곤했고 내 MBA 생활은 이렇게 시작부터 아주 드라마틱 했다 ㅎㅎ. 그래도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서 2년동안 다른 여러 학우들과 아주 친하게 자주 어울릴 수 있어서 돌이켜 보면 잘 된 일 같기도 하다.

박쥐는 여러 병을 옮길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동물이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배트맨 영화도 안 본다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