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에 대하여

2008년 췌장암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둔 랜디 포쉬 교수님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과학)이 저술한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기억하는 분이 꽤 많을 것이다. 이 책에 스트레스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교수님이 오래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수백만원 가량의 빚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아주 괴로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트레스 대처법의 일환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명상과 요가 수업을  다녔고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빚은 줄지 않았고 그녀는 계속 요가 수업만 다녔는데, 이를 보다 못한 포쉬 교수님은 어느날 그녀를 앉혀두고 요가 다닐 시간에 파트타임 알바를 뛰면 5개월안에 빚을 다 갚을 수 있다는 계획표를 짜줬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이를 그대로 실행해서 식당 알바로 수개월만에 빚을 갚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는 해피엔딩 이야기다.

상당히 공대형(?)스러운 스트레스 대처법이 아닌가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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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생활을 한 11년 정도 했는데,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중 가장 컸던 것은 주로 frustration 이였다.  사전에는 이 단어가 ‘불만’ 혹은 ‘좌절’ 같은 단어로 번역이 되는데 frustration의 정확한 뉘앙스와는 좀 다른것 같다 — 뭔가 내가 생각한 방향과 윗선의 의견이 다르면 거기서 오는 갈등이나 답답함이 내 frustration 이였다. 내 성격상 상사와 직접적인 다툼이나 마찰은 많이 없었을지 몰라도, 이미 눈치로 어긋난 방향을 감지했을때 속마음은 괴로웠다. 그 외에도 내가 승진이 안되었을때 느낀 좌절감도 컸고, 투자나 펀딩으로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아무런 칭찬이나 인정해주는 것 없이 지나갔을때도 꽤 섭섭했다.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별로 없는데, 오히려 한가할때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지, 이러다가 뒤쳐지는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에 두렵기도 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지, 한가한 때 테크니들 같은 걸 만들어서 괜히 일을 벌이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스트레스의 종류가 바뀌었다. 이제는 frustration 보다는 모든게 걱정(anxiety) 이다.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도 뭔가 시작하면 오만가지 결정해야 할일이 많다. 나의 경우 투자 방향이나 전략을 짜는 것, 개별 투자건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건 물론이고, 사람을 뽑는것, HR 정책을 만드는것, 사무실 구하는 것 등등 하루에도 결정할 일들이 넘쳐난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봐 늘 걱정이 드는게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잘못된 판단이라는게 나타나면 마음이 너무 아플걸 알기 때문이다.

결정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걱정거리는 늘 넘친다. 내가 잘하고 있는걸까? 나때문에 회사가 크지 못하는건 아닌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 잘 하고 있는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건 아닌가? 전통적인 투자 모델이 앞으로도 계속 잘 될까?  다음에 펀드레이징은 어떻게 할건가? 등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은 끝도 없다. 어느정도야 건설적인 고민이 될 수 있겠지만, 꿈에서 이런 주제로 잠꼬대를 하다가 새벽에 벌떡 잠에서 깰 정도면 별로 정신 건강에 안 좋은것 같다.

나에게 무슨 기발한 스트레스 대처법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서 이 글을 클릭했으면 이쯤에서 실망하셔야 한다. 난 딱히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하는 행동이 없다. 종종 운동도 하고 친구와 맛있는거 먹으며 수다도 떨지만, 그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라기 보다 그냥 그자체가 즐거워서 하는거에 가깝다.

일에 대한 걱정거리로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그냥 일을 더한다. 작고하신 랜디 포쉬 교수님의 교훈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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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

“창업자가 되고 사업체의 대표가 되는 데 충분한 준비 같은 건 없어요. 아무리 준비를 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고, 어려운 일 투성이일 텐데요. 결국 그 모든 걸 무릅쓸 만큼 충분히 큰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넘어서야 할 어려움의 크기보다 ‘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가 더 커야만 그 괴로움을 뚫고 나갈 동력이 생기는 거니까요.”

오늘 단숨에 읽은 제현주 대표님의 [일하는 마음] 이라는 책에서 (허락도 없이) 발췌한 내용이다. 창업을 앞두고 본인이 과연 준비된 사람인지 아닌지 조언을 구하러 온 후배에게 저자인 제현주 대표님이 해 준 말이다.  깊이 공감했다. 나에게도 비슷한 질문 해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이제 이 말을 해주면 되니까 뭔가 정답 하나 득템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 라니 인용하기에도 얼마나 멋진 말인가.

창업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내적 동기(motivation)일 것이다. 왜 창업이 하고 싶은가의 문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창업을 하니 저마다의 동기가 있겠지만 주변에 많이 보이는 이유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면 이런것들이 있다.

  1. 돈을 벌고 싶다
  2. 시장의 문제를 풀고 싶다
  3. 시장에 딱히 문제가 있는건 아니지만 큰 시장 기회라서 해보고 싶다
  4. 멋진 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잡스 옹)
  5. 마음 맞는 사람과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6. 내가 이런거 해낼 수 있다는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7. 남이 시키는 일 보다 내 일을 하고 싶다
  8. 내가 가진 기술이나 재능을 이대로 썩히기에는 아까워 사업화 해야 한다
  9. 사업을 통해 타인을 도와주고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
  10. 인류를 화성에 안착시키고 싶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ㅎㅎ)

난 꼭 모든 사람이 사회 공헌이나 시장 문제 해결 같은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창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서 창업하는 것도 괜찮다 (특히 자영업 성격의 창업이라면).  이런 저런 동기로 창업을 머릿속에서 꿈꾸는 사람은 참 많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소수일텐데, 아마 예상할수 있는 ‘어려움의 크기’가 커서 엄두를 못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거다. 현재 직장이 있는 사람이면 당장 수입원이 끊기는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창업에 수반되는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일반화는 어렵지만 아마 창업을 하면서 받는 고통, 책임감, 압박감, 스트레스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의 몇배는 되지 않을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나도 빅베이슨을 시작할때 첫 펀드 자금을 모으느라 받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한게 아니었다.  이미 다니던 회사를 뛰쳐 나왔기 때문에 만약 펀드가 조성되지 않으면 난 직업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부담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겉으론 태연한척 했지만 마음속으론 절박했다. 여러 지인분들이 그냥 믿어주고 밀어주신 덕에 결국 35명의 국내외 투자자들에게서 승낙을 받아 약 150억 정도를 모았는데, 거절당한 사람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아마 100명 정도의 잠재적 투자자들을 만나고 설득하러 다닌 셈이다. 기간은 꼬박 1년 반 정도가 걸렸고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전투력은 향상되었지만, 그런걸 바라고 창업한건 아니였다. 우여곡절 끝에 막상 클로징 한 날은 에너지가 다 고갈된 상태여서 기쁜 마음 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야 자금을 모집할 수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에도 그러했듯, 창업에 수반되는 ‘어려움의 크기’는 미리 가늠하기가 참 쉽지 않다. 막연히 험난한 길이려니 예상은 해도 무슨 종류의 일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는 미지수다. ‘산넘어 산’이라는 말처럼 하나 해결하면 바로 다음 과제가 있다. 어려운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어려움의 크기’를 알기 어려운 이상 우리는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위의 책에서 말한 것 처럼 뭔가 이루고 싶은 마음의 크기가 여러 난관을 뚫게 해주는 동력일테니, 창업을 앞둔 사람은 시간을 두고 차분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이걸 얼마나 하고 싶은지, 단단히 각오는 되어있는지 정말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도 중요하고, 여기서 그 밑바탕이 되는 동기나 이유도 중요해 진다. 예를 들어,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하는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을 위한 창업이라면 멀리 못가서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창업을 시작한 동기가 무엇이든간에 잘 기억하고 있다가 힘들고 괴로울 때 얼른 떠올릴 수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를 아주 크게 오랜 기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 성장에 따라 점점 커지는 ‘어려움의 크기’를 극복해 갈 수 있다. 옛 어른들은 이런걸 두고 ‘초심을 잃지 마라’ 라고 가르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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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초 집중

얼마전 빌 게이츠가 명상에 관한 책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 책의 도움을 받아 명상에 입문했고 삶이 더 윤택해졌다는 내용인데, 나에게 인상 깊게 꽂힌 대목은 명상에 관한게 아니라 그가 젊은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어떻게 일했는지에 관한 몇몇 대목이였다.

I stopped listening to music and watching TV in my 20s. (20대때 음악듣는 것과 TV 보는 것을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I was monomaniacally focused. (광적으로 한가지에 집중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시절 인 20대때 TV도 안보고 심지어 음악도 듣지 않으며 한가지 일에 몰두했다고 회고한다. 요즘엔 TV를 거의 안보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주변에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넷플릭스, 유투브, 페이스북 같은 오락거리가 있기 때문인거고, 1980년대에 TV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 지금으로 치면 인터넷 없이 살겠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아무튼 20대 청년의 빌 게이츠는 TV 시청이나 음악 감상이 소프트웨어를 생각하는 일에 distraction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이라고 단정짓고 5년간 자신의 삶에서 잘라내었다 (이와는 달리,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만드는 동안에도 밥 딜런과 비틀즈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그래서 애플의 제품들이 마이크로소프트 보다는 좀 더 감성적인지도 모르겠다 ㅎㅎ)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인터뷰등에 나와서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이런 말도 여러번 했다.

“I was quite fanatical about work. I worked weekends. I didn’t really believe in vacations”
(저는 일에 대해서 광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주말에도 일했죠. 휴가라는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휴가 제도라는게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의 말인데, 본인이 휴가를 안간거는 물론이고 아마 직원들이 휴가가는 것도 엄청 눈총을 줬을것 같다. 직원들이 휴가 쓰는데 눈치주는게 바람직한 경영자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빌 게이츠가 이렇게 광적으로 몰두한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초기 성장에 원동력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거다.*

얼마전 일론 머스크도 세상을 바꿀 만한 일을 하려면 주당 80시간은 쏟아야 하고, 필요하다면 때때로 100시간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트윗을 한적이 있다. 52시간이 법으로 정해진 나라에서 이런 발언은 논란의 소지가 많겠지만, 그래도 뭔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창업가는 일반 노동자와는 달라야 할테다.

집중해서 오래 일한다고 다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근무시간에만 일하고 주말과 개인시간을 다 즐기면서 성공한 창업가는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없다. 하다못해 대학교에서 A+를 받기 위해서도 수업시간 이외에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사업 성공은 과목에서 A+ 받는거 보다 100배는 어렵다.

빌 게이츠가 위에서 말한것 처럼 한가지 일 (그의 경우에는 소프트웨어)에 푹 빠져서 몰입한 상태를 평생 지속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커리어에서 한두번쯤 그런 기간을 몇년이라도 가져보는 경험은 아주 소중하지 않을까? 또, 큰 뜻을 품고 시작한 창업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각오와 실천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의 시선 따위에는 신경 안쓰고 밥만먹고 한가지만 생각하는 사람, 심지어 밥먹으면서도 그 생각만 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존경심이 든다. 그렇게 몰입한 가운데서 혁신이 나오고 예술도 탄생하는 것 같다. 이 글 읽는 분 중에 그런 창업자 계시면 잠깐 쉬실때 저에게 연락 주시면 좋겠다. 투자를 떠나서 꼭 만나보고 싶다. 배우고 싶고 영감을 얻고 싶다.

*사족: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에 비해 빌 게이츠는 좀 온화한 범생이 스타일 창업자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 듯 하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초창기 일화들을 읽어보면 빌 게이츠는 절대 얌전한 성품의 사람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도 굉장히 intense 했다고 말하고, 쉴새없이 회사 사람들을 몰아부쳤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차 번호판을 다 외우고 있었고, 창 밖 주차장을 내다보며 누가 언제 출퇴근 하는지 다 체크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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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터링 투자에서 엑시트까지

<첫만남>

때는 2016년 여름. 튜터링 팀을 소개해 주신분은 이택경 대표님이였다. 튜터링이 막 매쉬업엔젤스의 투자를 받았던 때였고, 내가 한국 방문시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셨다.

그렇게 김미희, 최경희 두 공동창업자 분들과의 첫 만남은 2016년 8월 27일 토요일 오전 9시에 있었다. 당시 우리 사무실이였던 디캠프로 오셨는데, 그날도 꽤 더웠던지라 도착하셔서 한동안은 선풍기 앞에서 열을 식히면서 자연스레 아이스 브레이킹을 했던것 같다.

토요일 아침이여서 그랬는지 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있었고, 딱딱한 피칭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레 사업에 관해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미팅후 남긴 메모를 보니 실행력, 기획력도 좋고 내가 던진 많은 질문에도 차분히 잘 대답하셔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적혀있다. 소개해주신 이택경 대표님께는 ‘창업자들이 원하면 소액투자 (1억이하)는 바로 가능하고, 지금 당장 펀딩을 원하지 않는다면 몇달쯤 진행상황을 보며 더 큰 라운드로 고려하고 싶다’고 미팅한 다음날 바로 알려드렸다.

<투자 검토>

2016년 11월, 12월에 업데이트 차원에서 몇번 더 만남을 가지며 튜터링의 사업모델과 팀의 역량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사용자 수나 유료결제액은 매월 상승하고 있었고, 나도 틈날때 몇번 써보며 해외튜터와 대화도 나눠보는 등, 서비스에 대한 감을 느껴 보았다. 재방문율, 결제율 같은 지표들도 좋았지만, 튜터링의 온디맨드 모델이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딱 좋다고 봤다. 영어학원을 다니든, 전화영어를 하든 뭘하든 간에 미리 시간을 정해놔야 하는데, 이게 바쁜 사람들에게는 여간 부담이 아니다. 튜터링은 온디맨드 방식 과외수업이라, 자투리 시간에 10초만에 선생님을 호출해서 회화연습이 가능하니 미리 시간 약속 없이도 누구든 의지만 있으면 잘 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마음맞는 선생님과 튜터링 밖에서 따로 만나는 일도 잘 없을것 같았다. 이런 ‘플랫폼 이탈’ 현상은 O2O서비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이슈인데, 튜터링은 그런면에선 안전했다.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르는 바쁜 직장인들이 선생님과 미리 개인약속을 하고, Skype 연결하고, 해외로 과외비를 보내주는 등의 일은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튜터링이 좋은 서비스가 되려면 선생님 퀄리티가 결정적인데, 양질의 해외 튜터를 선발하고, 교육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였다. 이부분에서 많은 노하우를 축적한것 같았다.

<투자 진행>

주주명부등의 자료를 요청하며 본격적인 투자집행 모드에 들어간 것은 2017년 1월쯤이다. 튜터링 팀은 주단위로 수업수를 측정하고 있었는데, 주당 14%씩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월매출은 5천만원에 다다르며 꾸준한 상승세였다. 투자 적기라고 봤다.

나는 튜터링 팀에 5억 투자를 제의하였다. 빅베이슨에서 보통 첫번째 투자할때 하는 액수다. RCPS (상환전환 우선주)가 아닌 CPS(전환 우선주) 조건이였다. 1월초쯤 내부적으로 투자결정은 되었기에 1월내로 클로징이 될것으로 생각했지만, 많은 딜에서 그렇듯 늘 복병은 숨어있게 마련이다 — 갑자기 더 높은 밸류에 보통주로 투자한다는 투자자가 나와서 우리는 투자를 못하게 되는가 싶었다. 두어달간 난항이 있었지만, 결국 그 투자자의 제안은 일반적인 보통주와는 달리 여러 제약조건이 붙는 것이여서, 튜터링 팀은 최종적으로 깨끗한 텀의 빅베이슨측 투자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3월말 계약서에 싸인하고 5억 단독투자를 집행하였다. 그리고 1달쯤 후에 한 영어교육 회사로부터 3억을 추가로 투자 받았다. 튜터링의 영업이나 제휴쪽에 도움을 받기위한 포석이였다. 그리고 이걸 합쳐서 8억 투자 유치 PR 기사를 내었다.

<투자후 활동>

투자 집행이 되자마자 나는 튜터링의 사외이사에 취임하였다. 빅베이슨은 단독투자를 하거나 리드투자를 하는 경우에 보통 투자자를 대표해서 사외이사를 맡곤 한다. 이사회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익숙치 않은 VC도 많은데, 회사 초기부터 좋은 이사회를 구성하고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초기에야 창업자 중심의 경영일수 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 훨씬 장점이 많다고 보는데 이건 내가 30대때 워낙 미국VC에서 훈련 받으며 세뇌당한게 있어서 어느정도 bias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사외이사라고 시어머니 노릇하려는 것도 아니고, 뭔가 뒤에서 컨트롤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투자자-경영진의 관계는 상호 존중하는 파트너십이다. 주요 사안들에 대해서 같이 의논하고 머리를 맞대고 결정하는 파트너. 그러기 위해선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튜터링 팀과는 정기적으로 1달에 1번, 혹은 늦어도 2달에 1번은 직접 만나서 회사 진행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멘토링’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내가 누굴 가르치려고 만나는게 아니다. 파트너십인데 누가 누굴 가르치겠나? 보통 만나면 회사의 기본적인 숫자들을 리뷰한 후, 각종 현안들에 대해 토의를 한다. 매출 계획, 자금 집행 계획, 제품 전략 등에 대해 경영진의 의견을 듣고 내 생각도 피력하곤 한다. 일종의 약식 이사회 미팅이라고 봐도 좋다.

2017년 3월. 튜터링의 사무실이였던 위워크 을지로 점에서 두 대표님과 함께

튜터링 팀은 올해초 이런 미팅에서 2018년 100억 매출 목표를 제시했다. 100억이면 꽤 높은 숫자였지만, 난 그런 공격적인 목표 설정이 좋았다. 스타트업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성장세가 좋았기 때문에, 팀이 집중해서 실행하고 마케팅에 좀 더 투자를 하면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나는 투자자로서 100억 목표 열렬히 지지했고 꼭 달성하시라고 당부드렸다 ^^

2017년 9월에는 튜터링이 빅베이슨을 통해 TIPS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무사히 한번에 통과가 되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심사위원들 앞에서 튜터링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 발표해야 했는데, 나름 새로운 경험이였고 결과가 좋아서 뿌듯했다. TIPS를 통해 튜터링은 2년간 정부로부터 기술개발 지원금으로 5억원을 받게되어 R&D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몇달전에는 튜터링의 사업개발을 직접 도와준 일도 있었다. EnglishinKorean 을 만드시는 마이클 선생님을 콜드 이메일을 통해 직접 만나서 설득하였고, 튜터링과 콘텐츠 제휴및 마케팅 협업을 성사시켰다. 내가 보기에 마이클 선생님은 영어회화에 관한한 최고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분으로서, 튜터링 팀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M&A 까지>

튜터링이 이름이 점차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튜터링으로 중국어 공부를 하시는 임정욱 센터장님이 페이스북에 몇 번 공유를 해주셔서 입소문이 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2018년 상반기에는 튜터링에 인수제안을 하는 회사들도 꽤 여러곳 있었는데, 반가운 징조이긴 하지만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개인적인 생각으론 아직 때가 아니라고 봤다. 한편으론 이렇게 인수제의가 여러곳에서 들어오다보면 생각보다 빨리 엑시트가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 봄쯤부터는 튜터링이 본격적인 확장을 위해 후속투자 유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마켓디자이너스에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인수 제안을 줬다.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결국 두 회사가 한배를 타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빅베이슨은 다소 설명이 복잡한 이해상충문제로 인해 캐쉬아웃을 해야했고, 투자금의 몇배를 회수하는 선에서 마감이 되었다. 투자기간이 1년 반이 채 안되기 때문에 수익률 관점에서는 아주 좋은 편이지만, 아쉬움은 늘 남기 마련이다. VC는 업의 특성상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10배, 20배 수익을 내는 홈런을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맺는말>

튜터링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오롯이 창업자들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밤낮없는 노고 덕택이다. 나는 운좋게 훌륭한 창업자를 만나 옆에서 응원해 드릴 기회를 얻은 것이다. 가끔 잘되는 스타트업을 두고 ‘내가 키웠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쓰는 투자자도 있는데 솔직히 듣기에 거북하다. 투자자가 창업자를 키우는게 아니다. 창업자는 스스로 성장한다.

튜터링은 앞으로도 훨씬 큰 성장을 할 것이라 믿는다. 합병으로 인해 빅베이슨과의 공식적인 관계는 일단락 되었지만, 두 창업자분들과 나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아마 오래 갈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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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코파운더인가?

폴 그램 (Paul Graham, 와이 콤비네이터 창시자)은 코파운더 (co-founder, 공동창업자)의 관계에 대해 함축적으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출처1, 출처2)

“It’s like marriage, but without the fucking” (결혼 같은겁니다. 단, 섹스는 없는 결혼이요)

즉, 결혼생활처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고 공동운명체가 되지만, 섹스나 로맨스 같이 즐거운 요소는 별로 없고, 주로 고난의 길만 같이 걷게 된다는 뜻이리라. 그만큼 공동창업 한다는 것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고 어렵고 힘든 일이다. 단순히 월급받고 스타트업에 조인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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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잘 된다 싶은 스타트업이 나오면 스스로 그 회사의 코파운더라 칭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내가 보기에  여러 정황상 초기 직원 (early employee) 혹은 핵심 인재 (key talent)는 될지언정 공동창업자는 아닌데, 본인 PR 욕심이 과해서인지 본인의 이력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있다. 우리나라보다 셀프 PR이 더 일반화된 미국에서 그런 일을 더 자주 보는것 같다.

코파운더라는게 무슨 CEO나 CTO 처럼 회사의 공식 직함이 아니다보니 약간 명예스런 타이틀 느낌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그 명예가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회사의 CEO가 한참뒤에 조인한 인재에게 “당신도 코파운더로 쳐줄께” 라고 말한다고 그 사람이 코파운더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누가 코파운더인가? 모든 초기 멤버가 동시에 시작하는게 아닐 수 있으니 경우에 따라 애매할 수도 있고, 코파운더를 어떻게 정의할지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아래 정리한 내용은 내가 VC를 10년째 해오면서 본 경험을 토대로 형성한 순수 개인적인 관점이다. 어느 한가지 조건이 절대적일 수는 없고, 다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즉, 아래 질문이나 조건에 대해 거의 다 Yes 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코파운더로 불릴 자격과 요건이 된다고 봐도 좋다고 본다.

[외적인 조건들]

  • 초기에 월급을 받지 않고 상당기간 (수개월이상) 일했나? — 보통의 경우 처음에 창업하면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제대로된 외부 펀딩을 받기까지 창업자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기 자본금에서 월급을 가져가더라도 이전 직장에서 받던 연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저임금 수준으로만 가져가는게 일반적이다.  시세에 준하는 월급을 보장받고 회사에 조인했다면 그 사람은 공동창업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 지분 (common stock)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스톡옵션 (stock option)을 가지고 있는가? — 공동 창업자들은 보통 초기에 상호간의 합의(주주간 계약서등)에 의해 지분을 나누게 된다. 어떻게 지분을 나누는게 좋은건지는 또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아무튼, 공동창업자이고 핵심인물로 인정 받는다면 10%이상 의미있는 지분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 (외부 투자등으로 희석되기 전). 반대로 스톡옵션을 보장받고 조인한 사람은 코파운더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 1주일에 보내는 시간 — 회사에 매일 출근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업 초기에 아이디어나 기술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코파운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파트타임 코파운더는 좀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아이디어나 기술보다 훨씬 중요한게 그걸 제품으로 구현해내고 사업적으로 실행해 내는거다.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풀타임으로 일하는게 아닌 사람에게는 코파운더가 아닌 더 적합한 타이틀이 있을 것이라 본다.

 

[내적인 조건들] — ‘조건’이라기 보다 스스로에게 던져볼만한 질문들

  •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있나? — 이건 예전에 장병규 대표님이 하신 이야기이다. 공동창업자는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만약 CEO가 당신에게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면 당신은 코파운더가 아니라 그냥 직원일 것이다.
  • 회사 사정이 어려워질 때 드는 생각? — 회사가 어려울때 이를 악물고 한건이라도 더 매출을 내려하고, 한푼이라도 더 펀딩을 받아 오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코파운더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더 늦기 전에 이직 기회를 알아봐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아마 직원일 것이다.
  • 야근이나 주말 근무 후 드는 생각? — 금요일 저녁, 친구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화려한 불금을 보내고 있지만, 본인은 사무실에서 배달음식 시켜 먹으며 야근을 하고 있다. 자정무렵 집으로 돌아가며 오늘 성취한 일에 뿌듯하고 심지어 주말인 내일 할 일까지 기대가 되면 코파운더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오늘도 뭔가 희생했다는 느낌이라면 아마 코파운더는 아닐 것이다. (야근은 한국에서 많은 이에게 굉장히 민감한 문제로, 스타트업이라고 임직원의 야근이 당연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람)

코파운더가 아니라고 해서 회사에 대한 공헌도가 떨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에릭 슈미트는 구글의 코파운더가 아니고 나중에 CEO로 영입된 사람이지만, 그가 구글의 성공에 끼친 영향력이나 공헌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코파운더인 사람은 코파운더인 거고, 아닌사람은 아닌거다.

사족: 이 글은 관점에 따라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걸 안다. 그리고 누군가를 염두하고 쓴 글은 절대 아니니 오해나 상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코파운더라는 것을 완벽히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서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가능할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글은 초기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내 개인적인 생각의 정리이고, 다른이의 의견도 들어볼 기회로 봐주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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