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를 잘 이용하는 법

아마존의 일대기를 그린 책 Everything Store 라는 책 86페이지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Bezos deployed Doerr to talk to Howard Stringer at Sony America, but he got nowhere” (베조스는 도어를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미국 지사장에게 보내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 대목의 배경은 1999년에 아마존이 온라인에서 전자기기 상품 판매를 준비중이였던 때다. 아마존은 제품을 공급해줄 소니 같은 회사를 모집하고 있었고, 소니는 과연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하는게 현명한가를 재고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베조스는 누구나 다 아는 아마존 창업자/CEO 이고, 존 도어 (John Doerr)는 클라이너 퍼킨스의 전설적인 VC로 아마존의 초기 투자자였다. 베조스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니 사장과의 미팅에 도어를 보낸것이다. 베조스가 당시에 바빠서 그랬던 것일수도 있고, 도어가 스트링거 사장과 친분이 있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수도 있다. 책의 작가는 ‘deployed’ 라는 표현을 썼다. 전투기를 출격시킬때도 이 말을 쓰는데, 한마디로 믿을만한 인물이였던 도어를 소니로 ‘출격시켰다’라고 이해해도 좋을듯 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베조스는 역시 투자자를 ‘특사’처럼 잘 이용할줄 알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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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창업자는 투자자를 너무 어려워해서 연락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창업자는 투자자가 연락해오는 것을 ‘간섭’이라고 여기고 싫어하기도 한다. 둘 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서 회사를 잘 되게 하는게 가장 좋다.

그럼 창업자 입장에서 어떻게 투자자를 잘 ‘활용’해서 도움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투자자들마다 성향도 다르고 하니 내가 모든 투자자를 대변한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10년째 투자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몇가지 팁을 공유하려 한다.

일단 투자자가 회사를 잘 도와줄 수 있으려면, 투자자가 이 회사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뭘 만들고 있는지, 어떤 시장인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stage 인지 등등. 이 부분은 창업자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투자자에게 정보공유를 잘 해줘야 가능해진다 (물론 투자자도 회사를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많은 경우 월간 업데이트나 전화/대면 미팅을 정기적으로 하면 많이 해소된다.

또 좋은 도움을 이끌어내려면 창업자는 투자자라는 직업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 VC와 같은 전문 투자자라면 보통 여러개의 회사와 관계를 맺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회사에 대해 일주일 내내 고민하기 힘들다. 많은 경우 짧은 단위(몇시간~반나절)로 도와주고 다음 회사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의 깊이가 얕아 보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장점도 있다. 투자자는 도처에 아는 사람이 많다. 회사가 필요한 중요한 커넥션을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연결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각종 회사의 이런 저런 케이스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떤 현안에 대해서 짧지만 직관적이고 임팩트 있는 의견을 줄 수도 있다.

아래는 몇가지 바람직한 도움 요청의 예와 그렇지 못한 예를 적어 본 것이다.

<전략 고민>

  • No Good: 우리회사 글로벌 진출 전략좀 짜주세요
  • Good: 이번에 동남아 진출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위해 이런저런 시장 조사를 해보았는데, 조만간 한번 같이 논의했으면 합니다

<사람 소개>

  • No Good: 사업을 같이 해나갈 코파운더급 인재를 찾습니다. 똑똑하고 열정많고 성격도 좋은 사람좀 찾아주세요
  • Good: 이번에 우리가 E-commerce 업체들과 이런 제휴를 해보려 하는데 이분야 사업개발쪽에 아는 분이 있으면 소개좀 해주세요

<후속 펀딩>

  • No Good: 3개월후면 돈이 바닥날것 같은데 어떡하죠?
  • Good: [고구려창투] 회사가 우리회사 같은 분야 투자에 적극적이라고 하니 fit이 맞을것 같은데 소개해 주실수 있으신지요?

<피드백 요청>

  • No Good: 회사 소개자료에는 무슨 내용을 넣어야 하나요?
  • Good: 회사 소개자료 초안을 첨부와 같이 작성했습니다. 한번 리뷰해 주시고 의견 주시면 좋겠습니다.

<HR 이슈>

  • No Good: 새로 팀장 한명을 영입했는데 스톡옵션 몇주를 주면 될까요?
  • Good: 직급에 따른 2018년도 스톡옵션 발행 계획 초안을 마련중인데 조만간 같이 리뷰를 원합니다

위의 예시에서 No Good 에 적은 것들은 대부분 창업자나 경영진이 1차적으로 직접 풀어내야 하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글로벌 진출에 대해 투자자가 경영진의 1차적인 시장조사나 향후 계획을 들어보고 의견을 주거나 다른회사의 예를 공유하며 지혜를 나눠줄 수는 있지만, 몇날 몇일 동안 경영자 대신 전략을 대신 짜 줄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투자자에게 도움을 요청할때 한가지 주의할 점은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다. 투자자가 월간 미팅등을 통해서 회사 상황은 큰그림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창업자가 갑자기 네이버 광고팀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왜 이런 요구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context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앞뒤 배경을 잘 설명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이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는 하루종일 그 문제에 묻혀서 살다보니 그런 것일수도)

전문 투자자는 회사의 이런 저런 현안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도 있고, 필요한 사람을 소개해 줄 수도 있으며, 때에따라 후속펀딩이나 M&A 같이 중요하거나 민감한 건에 대해서는 ‘특사’처럼 발벗고 직접 뛰어줄 수도 있다. 이렇게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선 창업자와 투자자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 출발점은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말인데 투자자가 이메일 보내면 짧게라도 답해주시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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