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췌장암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둔 랜디 포쉬 교수님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과학)이 저술한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기억하는 분이 꽤 많을 것이다. 이 책에 스트레스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교수님이 오래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는 수백만원 가량의 빚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아주 괴로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스트레스 대처법의 일환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명상과 요가 수업을 다녔고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빚은 줄지 않았고 그녀는 계속 요가 수업만 다녔는데, 이를 보다 못한 포쉬 교수님은 어느날 그녀를 앉혀두고 요가 다닐 시간에 파트타임 알바를 뛰면 5개월안에 빚을 다 갚을 수 있다는 계획표를 짜줬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이를 그대로 실행해서 식당 알바로 수개월만에 빚을 갚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는 해피엔딩 이야기다.
상당히 공대형(?)스러운 스트레스 대처법이 아닌가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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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장생활을 한 11년 정도 했는데,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중 가장 컸던 것은 주로 frustration 이였다. 사전에는 이 단어가 ‘불만’ 혹은 ‘좌절’ 같은 단어로 번역이 되는데 frustration의 정확한 뉘앙스와는 좀 다른것 같다 — 뭔가 내가 생각한 방향과 윗선의 의견이 다르면 거기서 오는 갈등이나 답답함이 내 frustration 이였다. 내 성격상 상사와 직접적인 다툼이나 마찰은 많이 없었을지 몰라도, 이미 눈치로 어긋난 방향을 감지했을때 속마음은 괴로웠다. 그 외에도 내가 승진이 안되었을때 느낀 좌절감도 컸고, 투자나 펀딩으로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아무런 칭찬이나 인정해주는 것 없이 지나갔을때도 꽤 섭섭했다.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별로 없는데, 오히려 한가할때면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지, 이러다가 뒤쳐지는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에 두렵기도 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지, 한가한 때 테크니들 같은 걸 만들어서 괜히 일을 벌이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스트레스의 종류가 바뀌었다. 이제는 frustration 보다는 모든게 걱정(anxiety) 이다.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도 뭔가 시작하면 오만가지 결정해야 할일이 많다. 나의 경우 투자 방향이나 전략을 짜는 것, 개별 투자건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건 물론이고, 사람을 뽑는것, HR 정책을 만드는것, 사무실 구하는 것 등등 하루에도 결정할 일들이 넘쳐난다. 잘못된 결정을 할까봐 늘 걱정이 드는게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잘못된 판단이라는게 나타나면 마음이 너무 아플걸 알기 때문이다.
결정에 대한 걱정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걱정거리는 늘 넘친다. 내가 잘하고 있는걸까? 나때문에 회사가 크지 못하는건 아닌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 잘 하고 있는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건 아닌가? 전통적인 투자 모델이 앞으로도 계속 잘 될까? 다음에 펀드레이징은 어떻게 할건가? 등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은 끝도 없다. 어느정도야 건설적인 고민이 될 수 있겠지만, 꿈에서 이런 주제로 잠꼬대를 하다가 새벽에 벌떡 잠에서 깰 정도면 별로 정신 건강에 안 좋은것 같다.
나에게 무슨 기발한 스트레스 대처법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서 이 글을 클릭했으면 이쯤에서 실망하셔야 한다. 난 딱히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하는 행동이 없다. 종종 운동도 하고 친구와 맛있는거 먹으며 수다도 떨지만, 그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라기 보다 그냥 그자체가 즐거워서 하는거에 가깝다.
일에 대한 걱정거리로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그냥 일을 더한다. 작고하신 랜디 포쉬 교수님의 교훈을 생각하며.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 ㅎㅎ
ㅎ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