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A 란 무엇인가?

스타트업 업계에 잠깐이라도 발을 들여본 사람이라면 아마 ‘시리즈 A’ 라는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어는 분명히 아닌데 이 낯선 외래어의 기원은 무엇이고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거두절미 하고 바로 시작.

1.법률적 (legal) 의미로서의 시리즈 A

일단 미국 기준으로 먼저 이야기를 좀 해야 한다. 시리즈 A 라는 말은 본래 회사의 우선주 주식의 종류를 일컫는 말에서 출발했다. 창업자로서 회사를 처음 만들게 되면 보통주(common stock)를 발행하게 되고 이 보통주는 공동창업자들이 나눠 갖게 된다. 창업후에 기관 투자자를 만나서 투자계약을 하게 되면, 주당 발행가격을 정하고 우선주(preferred stock)를 발행할 수도 있는데, 이때 첫번째로 발행이 되는 우선주 주식 묶음을 Series A Preferred Stock 이라고 부르게 된다. 즉, 회사가 발행한 첫번째 우선주라서 그냥 편의상 ‘A’ 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음번에 발행하는 우선주의 묶음은 ‘Series B’ 라고 부를 수 있다. 우선주를 발행할때 꼭 어떤 이름을 써야 한다거나 알파벳 순으로 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냥 발행가격과 시점이 다른 주식들의 종류를 구별하기 좋게끔 계약 당사자들 간에 이름을 붙일 뿐이다. 요새는 첫번째 라운드에서 ‘Series Seed’ 라는 이름도 흔하고, Series B 이전에 Series A-1, Series A-2 라는 파생(?) 이름을 쓰는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엿장수 맘이다.

한국으로 넘어와서 보면, 스타트업 회사의 주주명부에서 “제1종 전환 우선주” 혹은 “제2종 상환전환 우선주” 와 같은 말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제1종” 이라는 것이 위에서 말한 미국의 Series A (A종)와 동등한 개념으로 봐도 좋다. 모두가 예상하듯이, “제2종”은 제1종 후에 발행된 우선주 종류주식일 것이다. 전환우선주 (Convertible Preferred Stock, CPS)와 상환전환우선주(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 RCPS)의 차이점은 결국 투자금 상환조건이 있냐 없냐의 차이인데, 이것은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나중에 시간나면 다뤄 보도록 하겠다.

 

2.펀딩 라운드 혹은 펀딩 규모로서의 시리즈 A

“저희 회사는 6개월전 씨드펀딩을 받았고, 내년 상반기에 시리즈 A 펀딩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핀테크 스타트업 ‘헬로우머니’, 50억 시리즈 A 펀딩 성공”

스타트업이나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런 기사나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런 예에서 시리즈 A라는 말은 펀딩 라운드 혹은 그 규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럼 과연 얼마짜리 펀딩을 받아야 시리즈 A 라고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대로 우선주 종류의 이름을 붙이는 건 엿장수 맘이라서 1억만 투자를 받고도 시리즈 A 라고 명명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요새 스타트업에서 시리즈 A 라운드 라고 하면 보통의 경우 수십억 이상이고, 100억 이상도 많다. 예전보다 사이즈가 많이 커졌다.

내가 미국에서 VC에 입문하던 2000년대 후반에는 ‘씨드(Seed)’ 펀딩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창업후 뭔가 첫 펀딩을 받을때 $1M~$2M (약 10억~20억) 정도 투자 받으면서 ‘시리즈 A 라운드’ 라고 하는게 자연스러웠다. 즉, 시리즈 A는 창업의 아주 초창기에 팀과 아이디어만 존재할때 들어가는 투자금이라는 인식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씨드펀딩이라는 말이 인기를 얻으며, 시리즈 A는 자연스럽게 그 뒷단계 펀딩이라는 의미로 바뀌어져 갔다. 그래서 사이즈가 커진거다. 10년전에 Series B 라고 부르던 걸 요새는 그냥 Series A 라고 부를 뿐이다.

통계치를 찾아보니 미국에서 Series A 라운드 평균 금액은 이제 100억을 훨씬 넘어간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게 창업 초기부터 다들 100억을 받고 시작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Series A 전에 창업자들은 보통 작은 규모의 펀딩들을 각고의 노력 끝에 받아내며 거기까지 왔을 가능성이 높다. Series A 까지 오는데 3-4년 걸렸으면 나름 준수한 편인거다.

 

3.회사 성장 단계로서의 시리즈 A

이런 대화에서 말하는 시리즈 A 라는 말은 스타트업의 성장단계에서 어느 지점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지점인지는 말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많이 다를수 있다는게 함정이기는 하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시대에 따라서 이말의 의미도 좀 변해왔다.

여기는 내 블로그이니 내 주관이 잔뜩 들어간 100% 객관적(!) 의견으로 말하자면, 요새 말하는 시리즈 A 단계 회사는 어느정도 product-market fit (제품의 시장 적합성)을 찾아내고 매출을 성장시키고 있는 회사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매출이 어느 정도되어야 하는지는 산업군 마다 너무 달라서 말하기 힘들지만, 소프트웨어 회사의 경우 기준으로 적어도 연간 10~20억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매출이 있어도 대부분 적자이기 때문에 보통은 계속 펀딩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정도 된 회사는 펀딩을 통한 자금도 있고, 매출을 통한 cash flow가 있기 때문에 다음달에 갑자기 회사가 문닫는 사태같은 일은 잘 벌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성공적인 앞날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리스크가 여전히 꽤 있는 스타트업일 뿐이다.

직원으로서 시리즈 A 단계 회사에 스톡옵션을 받고 들어간다면, 먼 훗날 회사가 잘 되어서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가능성도 꽤 있다. 하지만 단기간 (2-3년) 안에 회사가 상장해서 대박 칠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시리즈 A 스타트업에 조인한다면 단기간의 금전적 보상 보다는, 회사와 내가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창업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걸 추천한다.

 

사족 및 여담

지난 10여년간 지켜봤을때 재미있는 트렌드는 스타트업들 마다 시리즈 A를 늦게 가려는 현상이 많이 보인다.  은근 초기 창업자들 사이에 본인의 회사가 시리즈 A 회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듯 하다 — 뭔가 언론에 보도되는 시리즈 A 회사들은 엄청난 규모의 펀딩도 받았고, 매출이나 직원수도 상당해 보여서, 우리 회사는 아직 그정도는 아니니 편안하게(?) 씨드단계로 남아있자는 마음일 수 있다.  그래서 Seed 펀딩 후에도 Seed-1, Seed-2, Post-seed, Pre-A, Bridge라운드 등등 온갖 파생이름들이 동원된다 ㅎㅎ. 이렇다보니 펀딩 라운드 이름은 이제 다소 말장난 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 초기 스타트업에 중요한 것은 이런 인위적인 알파벳 놀이는 아니고, 심지어 50억, 100억 같은 펀딩 규모도 아니다. 결국 고객이 얼만큼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랑하고 있고 그걸 돈으로(!) 표현해 주느냐가 제일 중요한 마일스톤 아닐까 생각한다.

2 thoughts on “시리즈 A 란 무엇인가?

  1.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투자 시 보통주를 발행해서 시리즈 A라고 부르는 경우도 혹시 있을까요? 투자자가 원치 않겠지만 친구에게 시리즈 A를 받는다던가 극단적인 경우가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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