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Basin Capital 을 시작하며

블로그를 안쓴지 4달이 넘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쉬었던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간 신상에 변화가 있어서 다음 블로그는 그것에 관해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컸다.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일도 너무 많고, 생각도 정리되지 않아서 계속 미뤄왔다. 사실 그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심적,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었다. 연말이라 일을 쉬면서 이제야 한숨 돌리게 된다. 아직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 기록으로라도 지금 몇자 남겨두지 않으면 영영 못하고 후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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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asin Capital 이란 VC를 창업했다. 내 생에 처음해보는 창업이다. 직업상 늘 창업자들을 만나고 하루에도 ‘창업’에 관한 이야기를 열두번도 더 듣지만, 막상 내가 해보는건 처음이다. 물론 VC같은 투자회사를 세우는 것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회사를 창업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고, 관점에 따라 덜(?) 고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구축하는데는 많은 노력과 여러 마찰이 있다는건 공통적일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도 그렇지만 남의 돈을 끌어 온다는 것 (펀드 레이징)은 참 많은 인내와 끈기를 요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나도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의식적으로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리려 애쓴적이 여러번이다.

왜 이런일을 시작했나? 많은 사람이 물어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하고 싶었다. 뭔가를 처음 바닥부터 셋업해서 만들어 나간다는 일이 고될 줄은 알지만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고됨과 매력을 동시에 안고 가고 있다.  또 중요한 이유는 분명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고, 약간 똘아이 같은 교만일 수도 있지만, 이런 약간의 미침(?)이 없으면 창업하기 어려운 것 같다. 잡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친 사람만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Big Basin Capital을 시작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된 사건 같은 것은 없었다. 2010년 Walden에 부임해서 한국 투자 일을 맡게되며 선데이토즈 같은 회사에는 투자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데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저런 이유로 좋은 투자 건을 놓친적이 더 많았다. 이미 떠난 회사지만 사실 Walden의 지난 10년간 한국 투자 실적 (Leadis 나스닥 상장, 컴투스 상장, 엔도어스 넥슨에 매각등)은 상당히 좋은 편이여서 좀 더 한국 초기 단계 회사에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졌고, 그러기 위해선 한국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작은 펀드나마 내가 직접 셋업하고 운영하는 일을 구상하게 되었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아무 것도 안될 것 같아서 결국 회사를 나오고 이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펀드레이징이 제대로 될 지 안될지는 아주 불투명한 상황이였지만 말이다.

일반 회사 창업과 VC 창업의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펀드레이징일 것이다. 일반 회사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려면 규모 있는 외부 펀딩을 받게되겠지만, 우선 시작 단계에서는 본인의 돈이나 엔젤투자자의 비교적 적은 투자 금액으로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가며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VC같은 투자회사는 시작부터 규모있는 돈, 즉 펀드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일반 회사가 펀딩을 받을 때는 여러 투자자에게 거절 당해도 한 두 군데서 낙점을 받으면 보통 펀딩에 성공한다. 하지만 투자회사의 펀드는 (특별히 큰 투자자가 확 밀어주지 않는한) 여러 군데서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명에게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소위 LP (Limited Partner) 투자자라고 불리는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들은 다 제각각 보는 관점과 투자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그걸 align 하는게 쉽지 않을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해보니 정말 그렇다. 현재 펀드레이징은 여러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작은 규모이지만 일부 성공하였고 지금도 계속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규모나 액수에 상관없이 펀드레이징은 정말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고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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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는 분위기상(?) 누구나 고마웠던 분들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보게 마련이다. 나는 올해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그 과정에서 정말 여러 사람의 도움과 은혜를 입었는데, 공개된 글에서 일일이 거명하기는 어려운게 좀 아쉽다. 펀드 셋업하는데 여러가지 귀중한 정보를 주신 분, 좋은 사람을 나서서 소개시켜 주신 분 등 여러 길로 도와주신 분들이 많다. 특히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시고, 믿고 투자해주신 분들께는 정말 열번이라도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더 힘이나고, 몸이 피곤해도 좀 더 열심을 내어야 겠다는 마음이 솟는다.  그리고 Big Basin Capital의 벤처파트너로 조인해 주신 송승구, 이덕준 대표님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회사를 때려치고 미래가 불투명한 ‘생계형 VC’ 를 차리겠다는 나의 계획을 지지해준 아내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Big Basin Capital에서 추구하는 투자 전략이나 내가 투자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일 등은 추후에 블로그에서 천천히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서 그동안의 소회와 느낌을 정리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한국은 벌써 25일 오후지만,

Merry Christmas!

(Big Basin Capital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머니투데이의 유병률기자님이 써주신 기사를 참조해 주세요 — “애니팡 대박 실리콘밸리 투자가, 한국펀드 만든다”)

11 thoughts on “Big Basin Capital 을 시작하며

  1. 축하합니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불확실성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큰 결심을 했고, 오랜 산고끝에 결국 실행해 냈네요. 그동안 지켜본 바 큰 성공을 이루실 것으로 믿어 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좋은 스타트업을 많이 발굴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한국에서 만나죠. :-)

  2. 혹시 회사이름이 Big Basin Redwood State Park에서 따오신 건가요? (예전 트윗에서 사라토가 사신다고 봤어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ㅎㅎ) 작년에 마운틴뷰에 6개월 있을 때 주말마다 Big Basin가는 게 낙이었거든요 :) 창업 축하드리고 언젠가 좋은 인연으로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임대표님과 만나실 때 껴달라고 부탁드려 봐야 겠네요 ^^;) 건승을 빕니다!

    1. 맞습니다 ㅋㅋ 저희 집 앞길이 Big Basin Way 이기도 하고요. 한국어로 번역하면 ‘큰 그릇’ 이 되니 의미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1. 제이름이 대표(큰대 자루표)입니다
        신기하고 묘한기분이네요^^

  3. 투자팀에 있으면서 몇 번 윤 대표님 이름을 들었는데, semicon, software, content 뿐만 아니라 material, hardware, healthcare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회사를 발굴하시길.

    1. 감사합니다. 제 펀드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 투자는 당장은 어렵지만 좋은 기회라면 소개해 줄 곳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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