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CKA (Council of Korean Americans)에서 주최한 멘토십 행사에 패널로 초대 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실리콘 밸리등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학생들과 young professional 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는데, 한인으로서 법조인, 창업가, 기업가, 사회 운동가, 투자가등 미국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커리어 관련 조언도 해주고 네트워킹도 하는 그런 자리였다. 나는 사실 다른 연사님들에 비하면 경력도 일천하고 나이도 어려서 어찌 보면 낄 자리가 아니였는데, 잘 아는 분이 초청을 해주신 덕에 VC/PE 패널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 때,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3가지 사항을 전달하기로 하고 한장짜리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원래 슬라이드 길게 만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중에서 오늘 블로그에선 두번째 항목인 “Make yourself uncomfortable”에 관해 말해 보고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천성적으로 편한 것을 찾게 마련이다. 만나는 사람도 편한 사람이 좋고, 환경도 편한 곳이 좋다. 이런 성향은 직업에서도 나타나기 쉬워서 자신이 특별히 의식하고 바꾸지 않는한,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쉽다. 뭐 이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익숙하면 그만큼 능률도 오르고 실수도 적어질테니 말이다.
하지만 본인이 커리어 후반부 (은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아닌다음에는 이런 익숙함을 의식적으로라도 탈피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자기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꾸준히 성장시키고 싶은 사람들에 해당하는 말이다. 어떤 환경과 일에 대해 익숙하고 편하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별로 배우는게 없다는 의미도 된다. 새로운 스킬이나 경험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익숙한 일을 계속 하고 있으면 실수할 확률도 줄어들지만, 새로 배우고 깨닫고 성장할 일도 그만큼 없어진다. 요새 점점 더 느끼는건데 고통 없는 성장이 어디 있을까 싶다. 특히 커리어의 초기에 있는 20대 친구들에는 이런 ‘불편한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난 한국에서 대학시절에 휴학을 하고 우연한 기회로 미국에서 모 주립 대학교를 1년 다닌 적이 있다. 그 전에 외국 여행은 커녕 비행기도 타본적이 없던 터라, 참 모든게 낯설었다. 의식주 같은 민생고 문제도 해결하기 만만치 않았고, 영어도 서툴러서 암울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래도 19살이라는 젊음이 도와줬던지 이내 적응했고 학교 생활을 나름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만난 미국 친구들과 모임이나 주말 여행도 다니고, 한 친구의 권유로 캠퍼스 도서관 수위 같은 아르바이트도 하며 돈도 벌었다. 공부도 처음에는 영어가 딸려 숙제가 뭐였는지 알기 힘들정도 였지만, 나중엔 다른 미국 친구들 숙제를 도와줄 정도가 되었다. 그때 1년동안 의식적으로 노력한게 있다면 일부러 한국사람을 멀리한 것이였다. 짧은 기간인 만큼 영어와 미국 생활, 미국 사람들 문화에 푹 젖어보고 싶어서였다. 그 대학이 있던 동네는 한인 교포사회가 꽤 큰 곳으로,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면 먹고 사는 문제를 많이 도움 받을 수 있었겠지만, 되도록 일부러 피해다녔다 (아마 다른 한국 학생들은 이런 나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고 나도 알고 있었다). 짧은 1년이였지만 참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였고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미국으로 다시 유학가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한가지 더 개인적인 예를 들겠다. 나는 원래 공대 출신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그러다가 MBA를 하면서 커리어 전환을 해서 투자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내가 원했던 것이고 기회가 생겼으니 exciting 한 일이였지만 이 역시 사실은 처음에 많이 ‘불편한’ 일이였다. 경영이라고는 MBA하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런 저런 과목을 들은 것 밖에 없는데, 내가 감히 특정 인더스트리에서 20~30년 경력을 쌓은 사장님들 (그것도 나보다 말빨이 10배는 뛰어난 미국 사람들)을 독대하며 그들의 사업을 ‘평가’ 하고 결론을 내린다는게 어불성설 같았다. 고백하건데 그들이 나를 너무 애송이로 바라보지는 않을까와 같은 이상한 insecurity도 있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런 불편하고 불안했던 마음도 오래가지 않아 없어졌다. 물론 열정을 가지고 사업을 하시는 사업가 분들을 뵐때면 지금도 존경심이 팍팍 솟지만, 그분들을 만나는걸 불편해 하기 보다는 즐기게 되었다. 투자나 평가와 상관 없이 ‘만나서 배울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게 되었고, 내 질문에 교묘한 답으로 피해가시는 분들께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배짱도 생겼다.
그럼 어떻게 자기 자신을 ‘불편한 위치’에 있게 할 수 있나? 이건 우연한 기회에 생길수도 있지만, 역시 본인의 노력이 크게 좌우한다. 같은 회사에서 다른 기회, 다른 책임을 맡아 볼 수도 있고, 다른 회사, 다른 인더스트리,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안 찾아서 그렇지 찾으면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도전에 봉착하면 누구나 처음에는 낯설고 uncomfortable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느낀다면 ‘아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계속 나가면 된다. 결국은 편해진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과 같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힘들고 불편한 초기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만큼 성장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고민을 대변해주는 듯한 글이네요
저 자신을 내 던져야겠어요!
나이가 충분히! 든 다음에 미국땅을 처음 밟아서 직장다니는 저에게 많이 도움이 되네요..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공대생인데 현재 행정관련 일이라..여간 힘들지 않지만 많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