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과 벤처캐피탈

저널리즘과 벤처캐피탈은 언듯보면 별로 상관없는 두 단어처럼 들린다. 한쪽은 ‘글’을 다루는 업이고 다른 한쪽은 ‘돈’을 다루는 업이니 그러하리라. 하지만 내가 실리콘 밸리에서 보는 두 업종은 점차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성장하고 있고, 상호간에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며, 저널리스트 (혹은 블로거)에서 벤처캐피탈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전혀 다른 업종 같은데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할까? 아직 국내에서는 그런 예가 없어서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예가 많다.

우선 저널리스트나 블로거 출신으로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된 사람들의 예를 보자.

  • 마이클 모리츠

MICHAEL_MORITZ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VC중 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야후, 페이팔, 구글, 유튜브등의 회사에 투자해 초대박 엑시트를 여러번 일군 전설적인 인물이다. 오늘날 Sequoia Capital의 이름이 있게 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특이한 경력이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와튼스쿨에서 MBA를 한뒤 타임지의 기자로 일했다. 그는 타임지에서 실리콘 밸리소식이나 테크놀로지 분야를 많이 다루었는데, 스티브 잡스를 취재한 기사가 잡스의 심기를 건드려 두 사람의 사이가 영영 틀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무튼 그는 Sequoia의 창시자인 돈 발렌타인의 눈에 띄어 발탁되었고, 벤처캐피탈에 입문하여서는 많은 성공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며 승승장구 하였다. 최근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 운영에서는 한발짝 물러났지만, 투자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 마이클 애링턴

michael arrington

이 사람은 유명한 테크 블로그인 테크크런치 (TechCrunch)의 창시자이다. 테크크런치는 2005년에 애링턴이 설립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이제는 실리콘 밸리의 여러 테크 블로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며 특히 스타트업의 소식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매체의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다. 테크크런치는 2010년 AOL에 매각되었고, 지금도 AOL 산하의 독립적인(?) 매체로 이어오고 있다. 애링턴은 2011년 테크크런치를 떠나 ‘크런치 펀드’라는 벤처캐피탈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도 테크크런치 행사에 나오기도 하고 개인 블로그인 Uncrunched에서 저술활동도 하고 있으니 블로그와 벤처캐피탈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 MG 씨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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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현재 구글 벤처스의 파트너 이지만 본래 테크크런치와 벤처비트의 기자(칼럼니스트)였다. 그는 구글 벤처스로 옮긴 뒤에도 테크크런치에 종종 기고하고 있다. 1년전 그가 삼성을 자세히 분석한 기사 “5번째 기수 (The Fifth Horseman): 삼성”는 국내 언론에서도 많이 인용보도되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반대로 본래 벤처캐피탈리스트이지만 저널리스트 혹은 칼럼니스트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있고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예를 보자

  • 프레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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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스퀘어 벤처스를 이끌고 있으며, 트위터, 텀블러등에 초기 투자한 윌슨은 A VC라는 블로그를 오랫동안 써오고 있다. 아마도 스타트업이나 VC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블로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길지 않지만 핵심을 찌르는 내용이나, 10여년째 거의 매일 글을 올리고 있는 꾸준함도 많은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좋은 내용인 만큼 올라오는 글마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개인적으로 A VC 블로그를 읽으며 배운게 많고, 이것이 inspiration이 되어 2년전쯤 Live & Venture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 폴 그램

paul graham

Y Combinator의 창시자인 폴 그램은 이제 실리콘 밸리에서 흔히 ‘스타트업의 대부’라 불리게 되었다. 그만큼 이 곳 대표적인 인큐베이터인 Y Combinator의 위치나 폴 그램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이 분은 자신의 블로그에 에세이 형식으로 스타트업 경영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다. 한번 올라오는 에세이는 보통 다른 블로그보다 양이 꽤 길어서 정독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다. 글의 깊이와 양이 상당한 만큼 자주 글이 올라오진 않지만, 한번 올라오면 소셜 미디어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진다. 이제까지 올라온 에세이를 합치면 아마 책 몇권의 분량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한다. 에세이 몇개만 읽어봐도 이분의 내공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 크리스 딕슨

Chris-Dixon

그는 예전에 몇개 회사를 창업해 엑시트한 사업가였지만, 온라인 상에선 블로거로 더 유명했던 인물이다. cdixon.org 는 오래전부터 스타트업/VC 업계의 손꼽히는 블로그중 하나였다. 그는 약 1년전 유명 벤처캐피탈 회사인 앤드리신-호로위츠의 파트너가 되어 현재 활발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블로그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서, 최근 비트코인의 유용성을 쉽게 풀어쓴 “내가 비트코인에 관심 있는 이유“라는 글로 많은 이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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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이 저널리스트 혹은 블로거이다가 벤처캐피탈 하는 사람도 꽤 있고,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활발한 블로깅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두 직업군간의 공통점을 굳이 꼽자면 아마 ‘인사이트’가 중요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IT 산업 소식을 전하는 각종 뉴스나 블로그를 접하면 글쓰는 이들의 식견이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단순히 보도자료를 가공해서 전달하는 수준이 아니고, 예리한 분석과 더불어 문제점 지적, 향후 전망등을 콕콕 짚어내는 기자들을 보면 그 산업에 종사하고 있진 않지만 가히 전문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벤처캐피탈리스트도 자기가 투자하는 분야의 동향등을 잘 파악하고 나름대로의 인사이트에 기반해서 투자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두 직업 모두 남에게 질문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또, 인적 네트워크가 두 직업군에 무척 중요하다는 것도 공통점일 것이다. 기자들이 특종을 캐내는 것이나, 투자자가 좋은 투자건을 발굴해 내는 것이나 모두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AllThingsD를 나와서 Re/Code를 창립한 유명 블로거인 왈트 모스버그는 1991년부터 20여년째 소비자 기술제품만을 다루고 있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모스버그의 애플 제품 리뷰를 주의 깊게 챙겨 볼 정도로, 그의 목소리가 업계나 매출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개인적인 바램은 우리나라 언론에도 이렇게 ‘전문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기자, 저널리스트, 블로거가 많이 탄생했으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한 사람이 해당 분야 (예를 들어 IT 혹은 경제)를 깊이있게 5년 이상 꾸준히 파야 할텐데, 어디서 들은바에 의하면 한국 언론사의 현실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고 한다 (잦은 부서간 이동). 한국에서도 특정 분야에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춘 기자나 블로거가 실제 전문가 집단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나오지 말란 법 없으니 여건만 갖추어지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단, 정치 전문가는 충분히 많은 것 같으니 그건 논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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