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자신감, 한국인의 겸손함

19살때 미국이란 나라에 처음 와보고 누구네 집에 초대 받아 간일이 있다. 아버지가 아는 어떤 미국 교수님의 집이였는데, 그집의 장남은 나보다 한 살 정도 어린 친구 였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려고 준비하던 때다. 그 친구 방에 들어가니 온갖 트로피와 메달과 상패등이 즐비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상이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각종 스포츠 대회와 악기 연주상 같은 것이였던 것 같다.  난 그때 그친구가 수퍼스타인줄 알았다. ‘저런 트로피와 메달을 받으려면 적어도 메릴랜드 주 단위의 대회나가서 순위에 들었을거야, 아니면 전국대회?  듣자하니 공부도 잘하는 친구라던데 수퍼스타가 틀림없네.’  내가 더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마 내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때 상 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였을 것 같다. 연말에 반에서 대충 몇명씩 받았던 종이 한장 짜리 우등상장 정도는 받았던 것 같긴하지만, 예체능은 완전히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 대회에 나가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런 대회에 설령 나간다고 해도 전국에서 몰려온 날고 긴다는 수천명(?)의 아이들을 제치고 순위에 들어야 비로소 저렇게 멋진 트로피를 받을거라 생각했다.  한참 후에 뉴저지에 살고 있는 사촌네 집에 방문했다. 나보다 두살 많은 사촌누나와 한살어린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이 집도 비슷했다. 상패, 트로피, 기념 사진이 집안 곳곳에 즐비했다.  어? 이 사촌들은 한국에서 같이 많이 논 적이 있어서 어느정도 잘 아는 사이인데, 수퍼스타라고 생각한적은 없는데.  암튼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한참뒤에 결혼하고 유학나온뒤 교포 가정인 와이프의 사촌네 집에 방문했다.  이 집도 마찬가지. 와 미국집들은 다 수퍼스타 아이들만 기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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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짜리 우리 아들이 오늘 오전에 리틀리그 야구 시즌을 끝마쳤다. 미국 교외지역에는 시별로 이런 리그가 아주 흔하다.  아들이 속한 리그에 모두 6팀이 있는데, 우리 팀은 오늘 5-6위전에서 간신히 승리해 5위를 했다.  이따가 메달 수여식이 있으니 오라는 거다.  1,2,3위 팀은 트로피를, 4,5,6위팀은 메달은 준단다. 아들도 귀찮아하고 나도 귀찮아서 안갔다.  이미 아들 방에는 작년, 재작년 시즌에 받은 트로피, 기념품이 많이 쌓여 있다.  오후에는 아들 태권도 학원에서 ‘경진대회’ 같은게 있었다.  태권도 학원 수련생들이 참가해서 품세, 줄넘기, 겨루기등을 하고, 부모님들도 구경오고, 음식도 좀 차리고, 뭐 그런자리다.  참가 수련생이 한 25명 정도 되었는데, 메달과 트로피가 준비된걸 보니 족히 70개는 되어보인다. 각 종목별, 체급별, 나이별등등으로 한 30분동안 시상식을 한 것 같다. 아이들 모두 평균 3개 이상씩은 뭔 상을 받아갔다. 우리 아들도 메달 두개, 트로피 하나를 받고 마냥 싱글 벙글.  약간 어이가 없었으나, 기분이 업된 아들앞에서 뭐라 하기도 좀 그랬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꼬마지만 이미 이아이의 방에도 트로피와 메달 상장등이 그득하다.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받은게 아니고, 그저 뭔가 시즌이 끝나거나 공연발표 하거나 할때마다 하나 둘씩 쌓인다. 이젠 좁은 집에 이런 거 놓을자리도 마땅치 않으니 좀 자원낭비, 공간낭비좀 그만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받을때마다 신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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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미국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Waiting for Superman“이라는 다큐멘타리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보면 진짜 미국에서 아이들 학교 안보내고 싶어진다. 특히 한국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미국으로 아이들 유학보낼 생각이 싹 사그라질 것이다. 암튼 이 영화에서 소개한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30개의 나라중 미국 학생들의 성적이 수학(math)은 25위, 과학은 21위로 형편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유일하게 1위를 차지한게 있는데, 그건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다”라는 설문에 72% 학생이 “그렇다”고 답해 자신감 (confidence) 부분에선 30개국중 1위를 차지했다.  실제 성적은 바닥을 기면서 자신감 하나는 하늘을 찌를듯 하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다보면 종종 미국학생들이 황당한 질문 하는 경우가 있다.  모르니까 질문하는건 참 좋은거긴 하지만서도,  “야.. 저런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쪽팔려 하지도 않고 아주 당당하게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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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직장생활 하다보면 종종 “야 저친구 아는건 없는데 말빨 하나와 자신감은 죽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물론 정말 똑똑하고 실력도 있으면서 자신감 많은 스타도 많다) 미국인의 이런 근거없는 자신감이 교육에 기인한 거라고 가정하면, 아까 위에서 말했던 상 남발이 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자라나는 새싹들이니 격려와 칭찬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이곳 현지에서 느끼기엔 지나치다 싶은 면이 종종 보인다.  너도 잘했고 재도 잘했고 나도 잘했고 다 “you are the best”라고 치켜세우는 분위기.  반대로 한국에선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겸손을 강요당하는 면이 있다.  잘 알고 있는게 있어도 그저 입다물고 경청하고 있어야 예의 바른 아이다. 어른들 앞에서 뭔가 한마디 거들라치면 ‘애가 뭘 아냐’라고 무시당하거나 ‘건방지다’는 핀잔듣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직장이나 대학원 다니는 아시아인들은 “실력이나 지식에 비해 너무 조용하다”라는 평가를 받을때가 아주 많다. 물론 영어가 장벽이여서 그런면도 있겠지만, 단순히 언어문제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건 미국과 한국이 좀 적절히 섞여서 중간쯤 되면 좋겠다.

10 thoughts on “미국인의 자신감, 한국인의 겸손함

  1. 잘 읽고 갑니다!
    미국인들의 자신감, 이건 어렸을때 부터 길러지는 군요.

  2. 주인장님, 혹시 블로그 내용을 RSS feed 로 배포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글을 맛깔스럽게 쓰시고 같은 미국에 계신 분이 쓰시는 글이라서 구독하고 싶은데, 새 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계속 웹사이트에 들어와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WordPress 에서 쉽게 가동시키실 수 있으니, 번거로우시겠지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드프레스 로긴이 있으시다면 제 블로그를 팔로우 하실수 있으실 텐데요.아니면 제 트위터를 팔로우 하시면 됩니다. RSS는 가능한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워드프레스 초보라..

  3. 저도 미국오니까 Superman된거 같아서 행복한게 있어요. 더 칭찬하고 긍정하고 인정해주는 문화. 이제 참 와닿더라고요. 감사합니다!

    1. Along the line –
      1- 미국애들 보면 정말 말도안되는 애도 가끔 있는듯. 정말 정말 뚱뚱한데 항상 -You are okay. You are just a little big. 이러니까. 한국에선 이렇게 남아있을순 도저히 없겠다 싶더라고요.
      2- 일본이 Extreme 이지만 한국도 남눈 신경쓰고 겸손하고 consistently seeking how I’m perceived from others 이 많은듯. Nike Women 캠페인 한 친구가 전세계를 돌며 여자들이 Sports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하고 조사했는데 한국에 대해선
      “For them, for women, sports it’s nothing more than pain and need to do thing to be skinny. They never associate sports with fun, competition, or joy. ”

      3- 나중에 자녀 나오면 전 미국 서부같은 자신감 심어주는 긍정의 환경에서 키워주고 싶어요. 단 겸손함 간직시킨채 – 이건 집에서 좀 가르치면 되지않을까요 ㅎㅎ
      4- 지금 한국의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도 더 자신감 심어주고 싶어요. You are the warrior 라고. 더 나아가 아시아에

  4. 이제 미국회사에 파견나와서 18개월째입니다. 이글을 보니 많이 공감이 가네요. 늘 당당히 자기의견을 말하는 자신감이 늘 부러웠는데 말이지요..우리나라랑 반반만 섞이면 참 좋겠네요…

  5. 글 말미에 반전이 있을 줄 알았으나 아니었네요 ㅎㅎ 5년전에 쓰신 글이라 제 댓글을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제가 생각한 ‘반전’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게 만든 ‘교육’시스템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올림픽에서도 ‘아쉬운 은메달’이라는 기사가 작성되는 등 1~3등만이 받을수 있는 특권인 ‘메달’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공부는 좋은대학, 돈 많이주는 좋은 기업.. 물론 요즘 젊은층의 시각은 많이 바뀌기는 하였지만 아직 갈길이 멀죠.
    ‘좋은 칭찬’의 방법에 관한 다큐가 있었는데, 1등을 하는 아이에게 ‘1등한 것’에 대한 칭찬을 해주면 그 아이는 오히려 다음에 또 1등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심리적 부담을 갖는다죠. 오히려 꼴등을 했더라도 그 노력에 대한 인정과 칭찬이 그 아이를 keep practicing 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70여개의 트로피’는 후자의 방식을 따르는 선진화된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하구요.
    우리나라의 시스템에서는 좋은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1등이 아니면’ 혹은 ‘실패한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그 꿈을 접고 좋은대학-기업-샐러리맨의 과정으로 가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는 결과와는 반대로 자신의 노력과 도전에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많아 실패하더라도 도전해 볼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것 같구요. 시도라도 해보는것과 그렇지 않는것은 큰 차이가 있지않겠습니까 ^^

    급작스레 경영과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선생님의 블로그까지 들어와 모든 글을 잘 읽고있습니다. 양질의 내용과 친근함까지 느껴지는 포스트에 늘 감사드립니다 :)

  6. 저는 국제결혼 해서 호주에서 살기로 하고 지금 resume 쓰다가 선생님 블로그에 오게 되었습니다. 자신감 없으면 시체인 시누이가 쓴 resume 참고하느라 읽고 나서 이 포스팅을 보는데, 정말 많이 공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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