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 되어가는 용어 (1): 멘토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이 애플에서 쫓겨난 후 허망한 마음에 평소 자신의 멘토 역할을 해주던 David Packard (HP 창업자)와 Bob Noyce (인텔 창업자)를 찾아간 일을 언급했다. 그들을 만나서 (다른 이야기도 했겠지만) 애플이란 회사를 완전히 망쳐버리게 된 걸 사과했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잡스는 젊은 시절에 특히 Bob Noyce의 집에 연락도 없이 수시로 들락 거리며 밥도 얻어먹고 조언을 구했던걸 알 수 있다. 잡스를 Noyce에게 연결시켜 준 인물은 Noyce의 아내인 Ann Bowers 였다. Ann은 인텔의 인사담당으로 있다가 Noyce와 결혼한 후 인텔을 나와 애플로 옮겨간 인물로, 당시 혈기 넘치던 잡스에게는 차분한 어머니상과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Noyce와 잡스는 정말 온갖 주제에 관해 밤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기를 즐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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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 창업붐이 일면서 각종 스타트업 관련 행사도 많고, 이런 저런 곳으로부터 ‘멘토’로 초청받는 일이 있다. 보통 임무는 참가하는 몇몇 팀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거나 업계의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연결시켜 달라는 것등이다. 보통 단기간 행사이기 때문에 오피스 아워처럼 한번만 만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끽해봐야 두번정도 만나게 되는것 같다.

멘토는 원래 이런 ‘단발성 코칭’의 의미가 아니다. 멘토-멘티는 오랜 기간동안 두 사람간의 교류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잘 알 뿐더러, 깊은 신뢰가 전제 되며 그 관계가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직업적인 문맥에서의 멘토라면 꼭 같은 회사나 같은 업종일 필요는 없겠지만, 관련업에 경험많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멘토는 멘티의 전후 사정은 물론 개인적인 성향까지 파악하고 있어서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멘토’라는 말의 본래 의미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서 ‘나의 멘토가 되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고, 한번으로 끝나고 마는 ‘멘토링 세션’이라는 말도 좀 이상하게 들린다. 그래서 난 보통 ‘멘토님’라는 직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행사 등에서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느덧 모두들 나를 ‘멘토니~임’ 으로 부르고 있는걸 본다.

‘멘토’라는 말이 한국에서 급 남용되면서 그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아 몇 줄 적다가 말이 길어졌다. 아무튼 결론은 단 한두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을 정말 잘 이해하고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멘토를 찾고 그와 지속적인 교분을 쌓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찾는 그 멘토는 아마 창업 경진 대회에서 처음 만난 심사위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PS – 다음에는 <변질 되어가는 용어> 2탄으로 ‘플랫폼’을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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