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사는 인생, 처음하는 벤처

12살난 아들마저 엄마 키를 넘어섰다. (지금 14살인 딸아이는 이미 몇년전에 엄마 키를 살짝 넘었는데 그 이후엔 별로 크지 않았다.) 지난 1년동안 아들은 10cm 폭풍성장을 해서 정말 ‘자고 일어나면 키가 커있더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몇년 후엔 내 키도 넘어설 태세다. 두명의 자식이 엄마 배속에서 나와서 이젠 모두 엄마 보다 육체적으로 커졌다니 내가 보기에도 정말 신기하지만 아내는 더 신기해 하는 눈치다. 아들놈은 키만 큰게 아니라 최근 변성기도 찾아와서 이젠 완전히 걸걸한 목소리를 내는데 나로선 영 적응이 안된다. 코밑에는 ‘솜털’이라고 불리는 콧수염의 징조까지 보이고 있다. 징그러우면서도 귀엽다고 해야할까? 하는 짓은 여전히 게임이나 좋아하고 아빠가 놀아주면 마냥 신나는 어린아이지만, 성인키에 육박하는 남자애가 걸걸한 목소리를 내며 집안을 돌아다니니 가끔 나도 흠칫 놀라는 때가 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쑥쑥 크고 있는 아이들이 마치 걸어다니는 커다란 시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고 난 이만큼 컸어요’ 라고 말해주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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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윤여정씨가 아래와 같은 명언을 했다.

“60이 되어도 인생을 몰라요. 이게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 블로그 제목이 “Live and Venture”인데, 주로 벤처 혹은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 그렇게 지었지만, 우리네 모두의 인생자체가 벤처라는 의미도 있다. 누구나 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해보는 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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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직업은 정말 큰 축복이면서도 참 낯선 역할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했다. 갓난 아이로 울며 보채던 때, 아장아장 걸으며 온갖 집안 물건을 들쑤시고 다니던 때, 유치원에 다니며 재롱을 피우던 때, 리틀리그 야구에서 안타치고 기뻐하던 때, 학교 회장선거에서 떨어지고 안타까워 하던 때, 이런때마다 모두 부모의 역할은 달라야 했고 진화/발전해야 했다.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건 안되었건 아이들의 성장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 말이다. 회사에서의 역할이야 자기가 마음먹기에 따라 변화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부분도 많겠지만, 부모의 역할은 그렇지 않다. 계속 ‘낯선 일’ 의 연속이다. 일예로 최근 딸네미의 남자친구를 졸업식에서 마주치는 일은 (대화도 안나눴지만) 정말 어색하고도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된 일이였다. 앞으로도 이런 준비안된 일이 정말 많겠지.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정말 잘 모르고 준비도 안되었지만 그냥 부딪혀 보는 벤처인것 같다. 누구나 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해보는 벤처.

7 thoughts on “처음사는 인생, 처음하는 벤처

  1. “우리네 모두의 인생자체가 벤처라는 의미도 있다. 누구나 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해보는 벤처.”라는 부분.. 정말 와닿는 말입니다. 늘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2.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건 안되었건 아이들의 성장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 말이다.”
    이 구절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모님도 아이도 기다려주지 않는건 마찬가지군요. 시간은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지나가니 그런거겠지요. 언젠가 제 아버지께서 저희 형제를 키우던 때를 떠올리며 하던 말씀을 들은적 있습니다.
    “저도 그땐 그게 맞는줄 알았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불안했거든요.”
    그 말을 듣고 ‘아 하긴 아버지도 아이 키우는 게 처음이셨겠지. 연습이 있는것도 아닌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했습니다.
    이 글 읽고나니 한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3. 이 글 너무 좋네요. 처음사는 인생이라는 멘트도 그렇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립니다. 근데 딸의 남자친구라니.. 그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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