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영학과’의 엔젤 펀드가 말이 안되는 이유

오늘 일주일 일과를 마치고 잠시 트윗을 보고 있는데 타임라인에서 아래의 기사를 접했다.

“한국의 저커버그 육성… 서울대, 창조경영학과 만든다”

제목을 보니 ‘또 전시행정 시작이군’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정부 정책에 맞춰 학과를 만든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뭐 교육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사를 보다가 다음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창조경영

이게 왜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짚어보자.

1) 일단 1000억원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두번째 문장을 봤을 땐, 서울대가 자체 기금등을 써서 이런 돈을 모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보니 학생들이 돈을 내는 것 같다.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 학과에 몇명이 정원인지는 모르겠지만, 500명이라고 해도 1명당 2억원씩 내야되네? 정부가 반을 보조해줘도 학생 1인당 1억원은 내야될텐데, 재벌집 자제들만 학생으로 받을려나?

2) 설령 학생들이 여유 자금이 다들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자기가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해야지 왜 수십, 수백명의 다른 학생들 회사에 투자하나? 내 사업에 투자했다가 망하면 돈을 다 날릴까봐 위험 분산? 위험 분산 하고 싶으면 여유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든지 그냥 은행에 넣어두면 된다. 기사내용으로 보면 별다른 검증 절차도 없어보이는데 동기생들이 창업한 회사 수십~수백개에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지는 펀드에서 수익률을 기대하라고? 제발 좀.

3) 그리고 결정타는 이거다 — 창업한 학생들이 서로의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면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된다? 이건 완전히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식으로 스타트업의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될 수 있으면, 옛날에 창투사들이 ‘학생 연합 엔젤 펀드’ 같은 것 만들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사업이 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동창생 100명이 투자해주면 사업의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될 것 같은가? 지금껏 상품 전략이나 시장 전략등 여러가지 risk hedging 방법을 들어봤지만, 동창생 수백명에게 투자 받는 방법은 정말 처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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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에서 엔젤 투자는 이전부터 쭉 있어왔고, 특히 요새 더욱 활성화 되었다. 창업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다. 미국에서도 한 창업자가 다른 회사에 엔젤 투자하는 일은 꽤 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주로 그 창업자가 이전에 웬만큼 큰 성공을 해서 어느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 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엔젤 투자 할때도 나름 골라서 자기가 정말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든지, 사업 내용을 잘 알고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선택적으로 한다. 그리고 보통 투자하고 나서도 여러 조언과 도움을 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가끔 씨뿌리듯이 눈에 보이는 스타트업마다 쫙 뿌리는 투자자도 있지만, 그건 돈이 아주 많은 엔젤이나 몇몇 VC가 하는 특수한 투자 전략이다. 1000억이라는 큰 돈을 ‘창조경영학과’ 학생들이 창업했다는 이유로 쭉 투자하고 나면, 그 펀드는 내가 보기에 수년내로 초전 박살이 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고 그 여파로 학과까지 철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엔젤 펀드’는 뭔가? 여기서 일반적인 엔젤 투자와 엔젤 펀드는 좀 다르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엔젤 투자는 앞서 말한대로 개인적으로 돈이 좀 되시는 분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큰 리스크를 떠안고 하는 ‘개인적’ 투자이다. 이런 엔젤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자 등장한 것이 ‘엔젤 펀드’이다. 별게 아니고 이렇게 초기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 돈을 여럿 모아서 하나의 펀드로 만들고 이를 전문 투자자가 굴리는 것이다. 아마 SV Angel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한다. 이런 엔젤 펀드는 말이 좋아서 엔젤이지 전문성이나 규모나 결국 VC나 마찬가지다 (큰 엔젤 펀드는 규모도 1000억대에 육박하기도 한다). VC도 그렇고 엔젤 펀드도 그렇고 보통 General Partner 라고 불리는 전문 투자자가 운영을 한다. 내로라 하는 경력을 가진 전문 투자가들이 수많은 스타트업중 고르고 골라서 투자해도 수익을 내는게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아무리 서울대라 하더라도 한 학과의 엔젤 펀드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지 느낌이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하겠다. 널리 알려진대로 홈브루 (Homebrew) 컴퓨터 클럽에서 꿈을 키우던 잡스와 워즈니악은 1976년 애플을 창업한다.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워즈니악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던 HP65 계산기를 팔아 $500불을 마련했고, 잡스는 전재산에 가까운 폭스바겐 밴을 $1,500불에 팔아 아낌없이 올인했다. 시간을 37년쯤 거슬러 올라가 차를 팔고 온 잡스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차 판돈의 절반쯤 쓰셔서 홈브루 클럽 멤버들의 회사에 투자하는 엔젤 펀드에 가입하실래요?”

volkswagen bus
잡스가 당시 처분한 폭스바겐 밴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

(업데이트)

트윗과 댓글등으로 여러분들이 ‘설마 1000억을 학생들에서 모집하는 것이겠냐’라는 지적을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일이 없어야 겠죠. 기사는 다시 읽어도 정말 모호하군요. 설령 1000억 펀드는 별개의 문제라고 해도, 학생-학생간 투자는 2번 3번에서 지적한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내가 iCloud를 안쓰는 이유

오늘 아침 BusinessInsider를 보니 전직 한 애플 엔지니어가 쓴 애플이 만드는 온라인 서비스는 대부분 다 엉망”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생각해 보니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였던 MobileMe도 처참한 실패로 끝났고 (담당자는 스티브 잡스에게 엄청 혼나고 짤렸다는 후문) 옛날부터 있었던 .Mac 서비스도 주위에 쓰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지금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iCloud로 다 통합되어 제공되고 있는데 내 짐작으론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원래 애플빠는 아니였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집에 아이맥,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등이 생겨서 이모든 기기들을 iCloud로 동기화를 해볼까 하고 몇번 시도했지만 결국 접었다. iCloud 기능이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고, 다른 훨씬 좋은 서비스들이 이미 인터넷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조목조목 살펴보자.

Mail – 회사메일, 개인적인 메일, 블로그 메일등 5개 정도의 메일 계정을 거의 매일 액세스하고 있다. 어차피 회사메일은 회사 서버에 저장이 되어있으니 iCloud가 필요가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쓰는 Yahoo와 Gmail등도 마찬가지로 서비스자체가 클라우드 기반이니 더이상 동기화하고 말고 할게 없다.

Contacts/Calendars/Reminders – 주소록과 일정은 회사에서 쓰는 Outlook을 이용해서 관리하고 있고, 메일처럼 회사 서버에 저장이 된다. 그리고 언제든 아이폰등으로 액세스 할 수 있어서, iCloud 나오기 한참 전부터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Outlook상에서 저장한 일정에 따라, 약속시간 15분전에 Reminder가 아이폰에 팍팍 뜨니 이것도 전혀 문제가 없다

Safari – 애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난 맥북과 아이맥에서 크롬을 쓰고 있다. 윈도우즈 PC도 하나 쓰고 있어서 (지금도 이 글은 윈도우즈에서 쓰는중) 하나의 계정으로 북마크를 통합 관리하고 어느 기기를 쓰던 비슷한 브라우징 환경을 제공하는데는 크롬이 최고다. 따라서 사파리를 iCloud로 동기화하는게 별 의미가 없다.

Notes – 역시 애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간단한 메모를 위해서는 에버노트를 쓰고 있다. 사용자 환경도 수려하고 무엇보다 윈도우즈, 안드로이드 폰까지 커버가 되는게 큰 장점이다 (미국전화는 아이폰을 쓰지만, 한국전화는 안드로이드를 쓰는중). 내가 어디에 있든 전자기기를 적어도 하나는 내 옆에 두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에버노트에 저장한 내용을 언제든 쉽게 액세스 할 수 있다.

Passbook – 이건 아직 제대로 테스트 해 볼 기회가 아직 없었다. 내가 아는 Passbook 내용에 비추어 볼때, 여기에 iCloud가 필요한지는 의문스럽다.

Photo Stream – 처음에는 이게 꽤 신기했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아이맥에 자동으로 뜨니 말이다. 근데 맥에서 사진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iPhoto가 영 맘에 안들었다. 이녀석은 도대체 사진 파일을 어디다가 저장하는지 가르쳐 주질 않는다. 그냥 “나만 믿어라”는 식이다. 나는 사진을 연도별, 이벤트별로 폴더에 나눠 저장하고 외장하드 2개를 써서 백업을 받아 놓는데 iPhoto로 이렇게 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꼼수가 있는지는 모르겠음). iPhoto를 안쓰게 되니 Photo Stream 기능도 쓸 일이 없다. 그리고 아이폰 사진이 디카로 찍은 사진과 엉키는 것 보단, 차라리 아이폰 사진을 1년에 한번 다운 받아서 따로 저장해 놓는게 낫겠단 생각이 굳었다.

Document & Data – 이건 테스트 해 보진 않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파일’이란 개념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Dropbox 와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려는 것 같은데 자세히 알아보기 귀찮기도 하거니와 이미 Dropbox와 구글 드라이브를 너무 잘 쓰고 있어서 필요가 없다.

Find My iPhone – 유일하게 켜 놓고 있는 iCloud 서비스이다. 다만 쓸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동기화 서비스라는게 정말 잘 만들면 인생을 편하게 해주지만, 이게 한번 잘 못 엉키기 시작하면 이거 푸는 것 만큼 골치아픈 일도 드물기 때문에 서비스 선택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iCloud는 내가 보기에 아직 이걸 꼭 써야하는 구체적인 필요성이 부족하고, 애플 제품 (맥북, 아이폰등) 위주 서비스라는 태생적 한계도 무시 못할 단점이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iCloud가 아주 쓸모없는 기능이라고 할 수는 없을테지만, 내가 보기에 아직 매력적으로 보이는 서비스는 아니다. 와이프님은 나보다 컴퓨팅 환경이 비교적 간단한데 (아이폰 1대 + PC 1대), 그분께서도 iCloud 필요성은 못느끼고 계시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뭐냐고 자꾸 물어보긴 한다 ^^)

노키아 지도 vs 구글 지도

노키아 지도 앱이 iOS에 나왔다고 해서 바로 아이패드에 다운로드 받아서 실행해 보았다. 현재 내 아이패드는 iOS 5를 쓰고 있어서 구글맵이 건재하고 있으니 노키아 지도를 다운 받으면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할 수 있다. 비교 대상으로 정한 곳은 양측에 공평하게(!) 애플의 본사 건물이 있는 곳으로 하기로 했다. (구글은 미국 회사이고 노키아는 핀란드회사이니, 장소 선정이 구글에 좀 더 유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것이면 이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긴 설명이 필요없이 아래의 스크린 샷을 보면 승자가 누구인지 한눈에 보인다. 지도의 세세함에 있어서 노키아 지도는 한참 멀었다. 구글 지도에는 애플 본사 앞의 유명한 레스토랑인 BJ’s는 물론 애플 사옥들의 건물 번호까지 나오는데, 노키아 지도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아니, 이동네 와본 사람이 아니면 지도만 보고 여기가 애플 본사가 있는 곳인지 알 방법이 없다. 혹시 노키아 지도의 줌 레벨을 더 높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시도했지만 헛탕이였다.

이로서 iOS 6으로 업그레이드는 무한정 연기다.

구글 지도
노키아 지도

빈 손으로 외출하는 날을 꿈꾸며

나는 성격상 몸에 걸리적 거리는 걸 싫어한다.  목걸이, 반지 같은 장신구는 물론이고 시계 차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주머니에서 뭔가 철렁철렁하는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되도록 많이 안 가지고 다닌다. 외출할때는 어쩔 수 없이 몇개 소지품을 주머니에 가지고 시계도 차고 나가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즉시 시계도 풀르고, 주머니도 싹 비워서 작은 tray에 모두 놔눈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로 다 풀르고 다 비운다. 이런 이유로 기혼자 이면서 10여년동안 반지도 안끼고 다녔는데, 주위 시선이 좀 있어서 (미국에선 기혼자는 거의 반지를 다 끼고 다니는 것 같다) 몇년전에 반지끼고 다니는 연습을 몇달간 해봤다. 시계처럼 외출할때만 끼고 나갔다가 집에 오면 즉시 빼고, 회사에서도 뭔가 집중해서 일해야 할때는 반지를 옆에 잠시 빼놓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쳐서 이젠 그마저도 포기하고 말았다. 손가락에서 영 걸리적 거리는게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외출할때 가지고 나가는 건 딱 4가지다 — 지갑, 열쇠 꾸러미, 핸드폰, 시계.

내가 외출할때 들고 나가는 소지품들

이렇게 4개만 들고 다닌지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한 5년쯤 후에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나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남자들이야 주머니가 많으니 소지품 몇개 가지고 다니는게 큰 일은 아닌데, 한 껏 멋을 내고 외출 하는 여인네들에게는 입고 나가는 옷에 따라 걸리적 거리는 물건을 담아둘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으니 이것도 누군가 풀어야할 문제라면 문제다. (이런 이유에서 휴대 소지품을 대체할 스마트폰 기술은 여자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 것 같다) 우선 사진에 나온 필수품 만이라도 대체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물론 단시일내에는 어렵겠지만 지금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5년내에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5년 반 전에는 아이폰도 없었다.

1) 시계

이건 제일 쉬운거다. 이미 없어도 된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에 시계가 있은지 오래므로, 이제 손목시계는 그냥 멋을 위한 장신구라는 생각이다. 요새도 외출할때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등 격식이 전혀 필요 없는 때는 시계는 집에 두고 다닌다. 아날로그 시계가 숫자시계보다 좀 보기 편한 점은 있지만, 이미 스마트폰에도 아날로그 시계처럼 시간을 보여주는 앱은 많다. 이제 나에게는 ‘손목시계=장신구’ 로 굳어진지 오래다.

2) 열쇠

옛날에는 이상하게 이런저런 열쇠가 많았는데, 이젠 다 띠어버리고 진짜 필요한 열쇠 3개만 가지고 다닌다. 자동차, 집, 그리고 사무실.  자동차를 먼저 생각해 보면, 요새 나오는 고급 차종에는 keyless entry라는게 있어서 카드키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 저절로 문이 열리는 그런게 있다 (나도 써본적은 없음). 이게 정확히 어떤 기술인지는 조사해본적이 없지만, 카드키 대신 스마트 폰내의 칩을 프로그램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집, 사무실같이 정말 쇠로 만든 열쇠를 꽂고 돌려야 하는 곳이 미국에는 아직도 대부분인데, 금방 바뀌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한국 아파트에서 흔히 보는 번호 입력식 lock이 많이 도입되지 않을까? (너무 야무진 꿈인가?) 그렇게 되면 저 쇠 꾸러미를 바지에서 출렁이며 안가지고 다녀도 될텐데.

3) 지갑

내 지갑에 잡동사니가 여러개 있지만, 정말 필요한 건 신분증, 신용카드 몇장, 그리고 소액의 현금이다. 나머진 거의 쓸일도 없고, 없어도 된다. 아차, 수퍼마켓 회원카드도 돈아끼려면 있어야 되겠구나.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electronic wallet 개념은 많이 화자되었고 크고 작은 회사들이 뭔가 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중인데 아직 보편화 된 건 별로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어느정도 보편화된 핸드폰 지불도 미국에선 아직 요원한 이야기다. 아직 아이폰에는 NFC 칩 조차 없다. 누군가 ‘가상의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서 완벽히 구현해 주는 걸 발명해내면 내가 앞장서서 쓸 것 같다. 수퍼마켓, 커피숖등의 회원카드등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 카드로 대체될 기미가 보인다. 얼마전 iOS 6 발표때 Passbook이라는 새로운 아이폰 앱이 소개되었는데, 이게 아마 그 효시가 될 것 같다. 이게 제대로 되기만 하면 내 지갑에서 카드 세네장은 금방 빠진다. (와이프의 경우 아마 15장 ^^) 현금은 점차 통용이 줄어들테니 향후에 현금 쓸 일이 거의 없기를 바랄뿐이다. 그래도 남은건 신분증. 이걸 근시일 내에 대체할 디지털 기술은 내가 별로 들어본게 없다. (사람 몸속에 ID 칩 넣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하지말자) 복사하기 정말 어려운 ‘디지털 신분증’을 스마트폰에 넣는 기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정부라는 기관은 사기업처럼 빨리빨리 움직이는 데가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혹시 얼굴 인식 기술이 아주 보편화 되면, 얼굴 자체가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관공서에 가서 뭔가 신청할때 신분증을 보여주는 대신, 기계 앞에 잠시 서서 얼굴 보여주면 내 신분증명 기록이 ‘짜잔~’ 나온다면 쿨 할텐데.

4) 스마트폰

여태껏 이야기 한 것 (시계, 열쇠, 지갑)들이 모두 스마트폰의 뭔가로 대체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으니, 아마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사라지기는 쉬울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모르지, 구글 안경 같은 게 스마트폰의 기능을 죄다 대체한다면 바지속에서 찰랑거리는 마지막 남은 이놈 마저 없애 버릴 수 있을지도.  그렇게 되면 정말 널럴하게 빈 손으로, 빈 주머니로 외출 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홀가분해진다. “디지털이 선사하는 진정한 자유”같은 미래의 광고 문구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 날이 오기전까진 앞주머니에서 찰랑거리고 뒷주머니에서 묵직한 놈들을 어떻게든 참아보기로 한다.

네트워킹의 필요성 그리고 방법론

내가 어렸을때는 네트워킹이란 용어도 잘 몰랐고 필요성도 느끼질 못했다.  그저 학교나 모임등에 가면 “친구”가 있을 뿐이지 뭐 누구를 꼭 만나서 알아두어야 겠다던가 하는 생각이 없었다.  성격상 그다지 외향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 쑥맥도 아니였음) 친구는 그저 생기면 생기는 것이지 뭔가 인간관계에 대해 특별히 노력을 한다거나 하는 목적의식이 없었다.  대학교때 우리 과가 좀 큰 편이여서 한 학년에 270명 정도 있었는데, 인간관계에 눈이 밝았던 친구들은 270명 대부분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나는 그저 자연히 알게될 수 밖에 없는 우리 B반 친구들만 알고 지냈고 (모두 A,B,C,D 반이 있었음)  다른반 아이들은 얼굴도 몰랐다.  지금도 당연히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폭넓게 사귀어 둘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아득한 이야기다.

사회학에서 “The strength of weak tie” 라는 논문이 있다. 내 전공도 아니니 그 논문을 이해하려고 읽어본적은 없지만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실제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던가, 직장을 구한다거나,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거나 할때 그 다리를 놔 주는 사람은 우리가 대충 알고 지내는 사람 (weak tie)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 (strong tie), 예를 들어 가족이나 절친등은 우리를 열심히 도우려고는 하지만 그 수도 적을 뿐더러 역량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고, 오히려 그저 안면식이 있는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다리를 놔 줌으로써 새로운 기회의 물꼬가 트인다는 것이다.  이런 weak tie의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사람의 포텐셜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외향적인 사람 (extrovert)에게는 네트워킹이란게 아주 생활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같은 내향적인 사람 (introvert)에게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말과 문화가 다른 타향살이 직장생활에서는 더더욱 노력을 해야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겠지만, 미국에서도 중요한 비지니스, 중요한 리크루팅, 중요한 투자등은 당사자의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속한 벤처 캐피탈 industry는 더더욱 그러해서 네트워킹에 대한 노력없이는 커리어가 성장하기 힘들 정도다.

그럼 네트워킹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자신이 속한 인더스트리에서 지인을 많이 만들고 싶은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명함을 뿌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Weak tie라고는 하지만 그 관계가 의미가 있으려면, 적어도 상대방이 내가 어디서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아야 하고, 어느정도 나에 대해 약간이나마 신뢰가 있어야 뭔가 앞으로 좋은 일을 조금이나마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가장 자연스럽게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방법은 상대방과 업무상으로 만나서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둘 다 서로 “일”이라는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같이 일하다 보니 서로 알게되고 신뢰도 쌓이게 되는 거다.  이런건 뭐 네트워킹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학창시절 노력하지 않아도 알게되는 같은 반 친구나 마찬가지다.

그럼 직접적인 일 관계가 없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친해지나? 누구나 방법이 다르므로 정답은 없겠지만 그간 나의 경험으로 몇가지 팁을 정리해 보겠다.  주로 미국에서의 경험이지만,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들이 꽤 있다고 생각하다.

  • 만나고 싶은 대상을 정하라 — 예전에 내가 job을 구하러 다닐때는 내가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타겟리스트를 엑셀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각 사람에 대해서 언제 이메일을 보냈는지, 언제 만났는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다 기록해 놓았다.  만나고 싶은 대상을 정리하다보면 내가 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가 가능할지, 어떤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지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한 agenda를 만들어라 — 내가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상대방도 나와 같은 시간을 쓰는 것이므로 그 사람도 뭔가 나를 만날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종종 한국에서는 “그저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는 명목으로 누군가와의 만남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미국에서는 그런식의 접근은 좀 곤란하다.  그래서 만남을 요구할때는 형식적이나마 agenda가 있어야 한다.  Agenda라고 해서 너무 거창한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고, 어떤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그 주제는 상대방이 관심있어할 만한 것이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내가 예전에 Intel에서 asso로 있을때 다른 회사의 파트너급 VC를 만나고자 할때 “최근 귀사에서 xyz 회사 투자/exit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도 그쪽에 관심이 많은데 시간이 되시면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요새 저희쪽 투자방향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고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상당수 점심식사 시간을 내주었다.  실제 그사람과 처음 만나서 말을 나누다 보면, 원래 agenda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참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상관없다. 네트워킹이란게 어차피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신뢰를 쌓아가는게 중요한 것이지 꼭 agenda를 논의해서 결론을 도출해야하는 미팅은 아니기 때문이다.
  • 만나기 전에 숙제를 하고 가라 — 이메일 등의 연락으로 만날 날짜가 정해지면, 만날 사람의 약력과 최근의 행보등을 숙지해야 된다. 이미 타게팅 단계에서 그 사람에 대해 어느정도 공부 했겠지만, 만나기 전날 다시한번 그 사람의 bio나 Linkedin 프로파일등을 검색해서 잘 알아두면 만나서 대화할때 반드시 도움이 된다.  Web에 생각보다 자료가 많다. 특히 유명한 사람일 수록.  내 지인 중에서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전화해서 그사람의 성향이나 관심사등에 관해 물어보는 것도 좋다.  얼마전 내가 졸업한 CMU 학교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수백명이 뒤섞여 자유롭게 네트워킹하는 시간이였는데 어떤 젊은 친구가 찾아와서는 본인이 VC에 관심있는데 조언을 구한다는 거였다. 내 이름, 회사, 경력을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절대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처음이여서 무척 당황했지만, registration list에서 내이름을 찾아서 열심히 뒷조사(?)를 하고 온 그 박사과정 학생이 기특해서 오랜 시간동안 VC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작은 정성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 만나고 나서 follow-up을 하라 — 대화 도중에 뭔가 “이렇게 저렇게 하자”라고 한게 있으면 반드시 follow-up하되 가능하면 그날 당일에 하는게 최고다. 업계에서 명망있는 사람일수록 만나는 사람도 많고 듣는 것도 많으니 오늘 나를 만난게 쉽게 잊혀지기 쉽다.  그렇게 되기전에 바로 follow-up을 하는게 중요하다.  몇년전에 어떤 conference에 갔다가 실리콘밸리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할수 있는 VC중 한사람과 우연히 같은 큰 원형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같은 인더스트리에 있어도 이런 유명인과 옆자리에 앉을 기회는 흔치 않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그 분이 자기네 모 portfolio회사를 나에게 소개해 줄테니 검토해 볼 의향이 있으면 자기에게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집에와서 그날 밤 10시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불과 3시간 후인 새벽 1시에 답장겸 소개 이메일을 받았다.  네트워킹 만남은 딱히 follow-up item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더라도 간단하게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정도의 짧은 이메일이라도 보내는게 좋다.  그리고 Linkedin을 쓴다면 그사람에게 그날 바로 connection request를 보내는 걸 권한다.

그리고 몇가지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 네트워킹이란게 상호작용이므로 나에게 주어지는 benefit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작은 부분이라도)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agenda를 세우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전혀 도움이 될 것 이 없는 만남은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서, 난 송혜교 팬이므로 송혜교를 만날수 있다면 참 기쁘겠지만, 송혜교는 나를 만나도 도움이 될게 전혀 없기 때문에 날 만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가끔 한국에서 불편한 부탁을 받는다.  “우리회사 모모 사장님이 이번에 미국 출장을 가시니 그쪽 포트폴리오 회사중 어디어디를 방문해서 CEO들과 미팅을 할 수 있게 주선해 달라”는 식의 부탁이다.  아마도 윗사람 스케줄 채우기 때문에 그런것 같은데,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agenda도 없고, 사업분야도 다르고, 연계성도 전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식의 부탁은 정중히 거절할 수 밖에 없다.
  • 하고 싶은 말이 확실하다면, 높은 사람 contact하는걸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안그런 사람도 많겠지만, 의외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중에 쿨하게 cold call을 받아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고등학생때 HP창업자인 Bill Hewlett에게 전화걸어서 여분의 부품좀 얻을 수 없겠냐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결국 잡스는 부품을 얻는 것은 물론 HP에서 인턴쉽까지 얻어냈다.  (나도 대학생때 모 대기업의 사장님께 겁도 없이 이메일을 보내서 인턴쉽을 얻어낸 적이 있어서 참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이야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