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영학과’의 엔젤 펀드가 말이 안되는 이유

오늘 일주일 일과를 마치고 잠시 트윗을 보고 있는데 타임라인에서 아래의 기사를 접했다.

“한국의 저커버그 육성… 서울대, 창조경영학과 만든다”

제목을 보니 ‘또 전시행정 시작이군’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정부 정책에 맞춰 학과를 만든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뭐 교육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사를 보다가 다음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창조경영

이게 왜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짚어보자.

1) 일단 1000억원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두번째 문장을 봤을 땐, 서울대가 자체 기금등을 써서 이런 돈을 모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보니 학생들이 돈을 내는 것 같다.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 학과에 몇명이 정원인지는 모르겠지만, 500명이라고 해도 1명당 2억원씩 내야되네? 정부가 반을 보조해줘도 학생 1인당 1억원은 내야될텐데, 재벌집 자제들만 학생으로 받을려나?

2) 설령 학생들이 여유 자금이 다들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자기가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해야지 왜 수십, 수백명의 다른 학생들 회사에 투자하나? 내 사업에 투자했다가 망하면 돈을 다 날릴까봐 위험 분산? 위험 분산 하고 싶으면 여유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든지 그냥 은행에 넣어두면 된다. 기사내용으로 보면 별다른 검증 절차도 없어보이는데 동기생들이 창업한 회사 수십~수백개에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지는 펀드에서 수익률을 기대하라고? 제발 좀.

3) 그리고 결정타는 이거다 — 창업한 학생들이 서로의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면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된다? 이건 완전히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식으로 스타트업의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될 수 있으면, 옛날에 창투사들이 ‘학생 연합 엔젤 펀드’ 같은 것 만들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사업이 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동창생 100명이 투자해주면 사업의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될 것 같은가? 지금껏 상품 전략이나 시장 전략등 여러가지 risk hedging 방법을 들어봤지만, 동창생 수백명에게 투자 받는 방법은 정말 처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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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에서 엔젤 투자는 이전부터 쭉 있어왔고, 특히 요새 더욱 활성화 되었다. 창업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다. 미국에서도 한 창업자가 다른 회사에 엔젤 투자하는 일은 꽤 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주로 그 창업자가 이전에 웬만큼 큰 성공을 해서 어느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 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엔젤 투자 할때도 나름 골라서 자기가 정말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든지, 사업 내용을 잘 알고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선택적으로 한다. 그리고 보통 투자하고 나서도 여러 조언과 도움을 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가끔 씨뿌리듯이 눈에 보이는 스타트업마다 쫙 뿌리는 투자자도 있지만, 그건 돈이 아주 많은 엔젤이나 몇몇 VC가 하는 특수한 투자 전략이다. 1000억이라는 큰 돈을 ‘창조경영학과’ 학생들이 창업했다는 이유로 쭉 투자하고 나면, 그 펀드는 내가 보기에 수년내로 초전 박살이 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고 그 여파로 학과까지 철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엔젤 펀드’는 뭔가? 여기서 일반적인 엔젤 투자와 엔젤 펀드는 좀 다르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엔젤 투자는 앞서 말한대로 개인적으로 돈이 좀 되시는 분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큰 리스크를 떠안고 하는 ‘개인적’ 투자이다. 이런 엔젤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자 등장한 것이 ‘엔젤 펀드’이다. 별게 아니고 이렇게 초기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 돈을 여럿 모아서 하나의 펀드로 만들고 이를 전문 투자자가 굴리는 것이다. 아마 SV Angel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한다. 이런 엔젤 펀드는 말이 좋아서 엔젤이지 전문성이나 규모나 결국 VC나 마찬가지다 (큰 엔젤 펀드는 규모도 1000억대에 육박하기도 한다). VC도 그렇고 엔젤 펀드도 그렇고 보통 General Partner 라고 불리는 전문 투자자가 운영을 한다. 내로라 하는 경력을 가진 전문 투자가들이 수많은 스타트업중 고르고 골라서 투자해도 수익을 내는게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아무리 서울대라 하더라도 한 학과의 엔젤 펀드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지 느낌이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하겠다. 널리 알려진대로 홈브루 (Homebrew) 컴퓨터 클럽에서 꿈을 키우던 잡스와 워즈니악은 1976년 애플을 창업한다.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워즈니악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던 HP65 계산기를 팔아 $500불을 마련했고, 잡스는 전재산에 가까운 폭스바겐 밴을 $1,500불에 팔아 아낌없이 올인했다. 시간을 37년쯤 거슬러 올라가 차를 팔고 온 잡스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차 판돈의 절반쯤 쓰셔서 홈브루 클럽 멤버들의 회사에 투자하는 엔젤 펀드에 가입하실래요?”

volkswagen bus
잡스가 당시 처분한 폭스바겐 밴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

(업데이트)

트윗과 댓글등으로 여러분들이 ‘설마 1000억을 학생들에서 모집하는 것이겠냐’라는 지적을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일이 없어야 겠죠. 기사는 다시 읽어도 정말 모호하군요. 설령 1000억 펀드는 별개의 문제라고 해도, 학생-학생간 투자는 2번 3번에서 지적한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5 thoughts on “‘창조경영학과’의 엔젤 펀드가 말이 안되는 이유

  1.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다만 기사의 내용으로 추정컨데 정부 주도로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구성하고 별개로 모럴해저드를 막기위해 창업한 학생들이 상호투자하겠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다고 모럴해저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2. 글을 쓰신 의도는 알겠지만 박근혜도 그래도 명색에 대통령인데…당연히 학생이 1억씩 부담할 리가 없고…상식 선에서 생각했을때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 싶네요. 단순히 기자의 오보일 수도 있고 그저 정부가 대부분은 다 지원해주고 학생들은 등록금에서 뭐 몇퍼센트 조끔씩 떼가서 펀드를 조성한다던가 하는게 현실적인 생각인데 정확한 언급도 안나온 상황에서 섣부른 예단인 듯 합니다.

  3. 그냥 5년짜리 학과 탄생 기념으로 천억원 축하금이 쓰이는게 아닐까 하는….

    이럴 땐 시류편승 제대로 하는 분들이 어딜가나 계시더라고요…

    근데 그 천억원이 국가에서 나간다고 해도 좀 웃기네요

  4. 전시 행정의 대표격이라고 보입니다.^^;;

    전 진심으로 지금 새 정부 출범을 응원하는 사람이지만, 이런 식의 행정은 정말 절망적이죠.

    모든 경제 주체들의 활동이 그렇듯 경제, 경영, 정책 모두 굉장히 깊이 있고 오랫동안 지속된 철학이 동반되어 긴 시간 기다리는 끈기가 성공을 가져오는 법이죠.

    이런 식의 ‘아이디어’에 기대는 ‘철학’없는 정책들이 결국 전시 행정을 불러오는거 같습니다.
    ‘청년 지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정부가 주도하는 대부분의 활동들이 실패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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