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입장에서 투자에 대한 판단이 맞을 때와 틀릴 때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4가지가 있을 것이다.
1. 잘 될거라 생각해서 투자했지만, 잘 되지 않는 경우
초기 투자자라면 이런 경우는 많이 겪게 된다. 투자 전에 이런저런 리스크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지만, 막상 회사가 잘 안되거나 망하는 경우에는 너무 다양한 루트가 존재하고 변수가 많아서 예측이 쉽지는 않다. 초기 투자업의 특성상 투자 실패 사례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거라고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돈도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써가면서 도왔는데 잘 안되면 VC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쓰리다 (물론 창업자 마음이 쓰라린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VC업을 하면서 스스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2. 잘 될거라 생각해서 투자했고, 정말 잘 되는 경우
VC가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경우이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다 잘 될거라고 생각하는 시점에 투자하는 경우는 이미 가격이 많이 올라 있어서 큰 돈을 벌기 어렵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거나 잘 안 될거라고 생각할때, 혹은 남들과 뭔가 다른 액세스가 있거나 특별한 인사이트가 있어서 높지 않은 가격에 투자할 수 있어야 돈을 벌게 된다. 가끔 엔젤 투자자 중에서는 잘 될거라는 확신 보다는 그냥 창업자와의 관계나 믿음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해서 좋은 수익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남의 돈을 투자하는 VC로서는 이런 투자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좀 입장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3. 잘 안될거라 생각해서 투자 안했지만, 대박이 날 경우
어찌 보면 투자해서 돈 날리는 것 보다 더 큰 손실이라고 볼 수도 있다 (큰 수익을 낼 기회를 걷어찬 것이므로). 경험있는 투자자라면 항상 이렇게 될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고, 뭔가 내가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못보고 있는게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Airbnb를 초창기에 만난 투자자들은 모두 거절로 일관했다. 아마 미국에서 민박 사업 플랫폼은 말이 안된다고 다들 생각했을거다. 그 투자자들이 어리석었다기 보다 아마 Airbnb 창업자들의 엄청난 실행력과 집요함, 끈질김 등을 간과했을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대박 투자 기회를 눈앞에서 거절한 건이 몇번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훌륭하신 창업자를 못 알아본 내가 원망스럽다 ㅎㅎ. 다행히 그 분들과 좋은 관계는 다 유지하고 있어서 만나게 되면 늘 반갑고 볼 때마다 경외심이 든다.
4. 잘 안될거라 생각해서 투자 안했고, 역시 잘 안 된 경우
대부분 투자자들이 이런 경우 별로 말을 안해서 그렇지 실제 꽤 많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거봐라 내가 안될거라고 하지 않았냐’ 라고 떠들고 다니는 투자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어리석음을 내뱉는거나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잘 안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안될거라고 예측해도 대충 맞는 경우가 훨씬 많다. VC로서 스스로 공부차원에서 복기 하고 싶다면, 특정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되기 어려운 이유나 리스크를 미리 적어 놓고, 몇년 후 그 팀이 그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못했는지 혼자서 조용히 챙겨보면 된다.
사족1. 수많은 투자/비투자 경우를 아주 단순화 시켜 4개의 버킷에 넣다보니 커버되지 않는 경우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 잘 될것 같아서 투자하고 싶었지만 투자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투자 room 이 없었던 경우, 클로징 스케줄을 맞출 수 없었던 경우, 회사내 다른 사람이 반대한 경우 등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사족2. VC가 투자를 안하는 이유는 꼭 그 회사가 잘 안될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건 아니다. 여러 다른 이유로 투자를 안하거나 못하는 경우도 많다. 투자 금액 사이즈가 안 맞는다든지, 사업 내용이 투자자가 다루는 영역과 다르다든지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VC가 투자를 못하게 되더라도 (큰 민폐를 끼친게 아니면) 너무 미워하지는 마시길 :)
캐 재밋네요! 팬되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