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기에 적합한 나이는 존재하는가?

(이 포스팅은 일반화의 오류로 점철된 글 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투자자로서 창업자의 나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소 민감한 문제다. 대략 경력을 듣고 얼굴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만, 처음 피칭하는 창업자에게 대놓고 나이를 물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 회사들은 채용 인터뷰에서 나이를 물어보는 것도 불법이고, 채용후에도 나이로 차별하는 경우가 드러나면 소송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조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투자일을 하면서 갖은 연령대의 창업자를 만났다. 실제 투자한 기업들 중에도 20대 청년 창업자 부터 40대 중반까지 나름 꽤 스펙트럼이 있다.  어찌 생각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쓸때 그 회사의 창업자가 누군지, 몇살인지 웬만해선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쓸 이유도 없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의 유니콘으로 촉망받는 Slack이라는 회사가 만든 협업 소프트웨어를 한국에서도 많이들 쓰는데, 그 창업자가 73년 캐나다 출생으로 43세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하지만 비지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복잡하고 고되기 마련인데, 그 도전의 과정에 나이라는 것이 좋든 싫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건 어쩔 수 없는 현상같다.

그럼 본론에 들어가면서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만한 그래프를 한번 생각해보자.

age graph

먼저 이 그래프에는 일반화의 오류가 많다는 점을 일러둔다. 환갑의 나이에도 마라톤 완주하는 분도 있는가 하면, 20대중에도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에너지=0에 가까운 청년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긴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정도 이 트렌드를 따라가기 마련이므로, 한가지씩 살펴보자.

<경험, 지식>

본인이 창업하려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경우 대부분 많은 도움이 된다.  해당 업계의 배경지식은 물론 실무 처리해 본 경험은 좋은 자산이 된다. 그리고 꼭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일반 직장생활은 여러모로 소중한 경험이 된다.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하는 법, 깔끔하게 소통하는 법, 팀을 리드하는 법, 프로젝트 관리하는 법, 고객 상대하는 법 등등 이런 모든 것들 (soft skill이라고도 한다)이 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지만 아주 중요한 것들이고, 창업자로서 회사를 키워나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보통 이런 저런 경력들이 쌓이게 되고, 여기서 체득한 경험, 지식, 스킬등은 더 ‘준비된 창업가’로서의 자질을 만들게 마련이다.

<네트워크>

세상에 내 혼자 힘으로 다 하는 사업은 없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된다. 보통 많은 이의 도움을 받게되고, 훌륭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을수록 사업 성공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  유능한 개발자를 회사로 영입하는 일이라든지 영업에 필요한 고객 정보를 얻는 것이라든지 남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무궁무진하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 보통 아는 사람이 많아진다. 분명히 유리한 점이다. 예를 들어 구글과 파트너쉽을 끌어내고자 할때, 구글에 다니는 친한 친구가 담당자를 소개해주는 것과 콜드 이메일을 보내서 혼자서 어떻게 뚫어보려는 것은 천지차이다.

<체력>

사업이 올림픽도 아닌데 웬 체력이야기를 하냐고 물을수도 있지만,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다. 언제 고생이 끝난다는 보장도 없어서 더 힘들다.  초기 창업팀들을 보면 주당 80-100시간 일하는 이들도 흔하다. 장기간 이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려면 우선 열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열정은 잠깐 타다 꺼지는 성냥불이나 마찬가지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운동과 식사등을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보통 30대중반 넘어가면서 체력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번 밤샘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창업 초기에는 회사의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하므로 잡일이 엄청 많기 마련인데 나이가 들 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귀찮은게 많아진다. 20대때보다 부지런해지기 쉽지 않다.  물론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유지를 할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인게 나이가 들수록 바쁜일은 더 많아지고 운동할 시간 내기는 더 어렵다 (물론 핑계다). 암튼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는 리더의 체력은 중요한 자산이다.

<가용시간>

나이가 들면 대부분 삶이 복잡해진다. 결혼과 육아, 부모님 봉양, 주위의 경조사, 친구, 챙겨야 하는 사람, 만나야 하는 사람, 새로생긴 취미 등등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드는 물리적 시간이 보통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만큼 사업에 몰두할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싱글 시절에는 맘놓고 주말에도 일할 수 있었어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주말에 회사나가려면 뭔가 남편/아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물론 무턱대고 오랜시간을 일하는 것보다 스마트하게 효율적으로 일하는게 중요하지만, 리소스가 턱없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보통 많은 물리적 시간을 투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삶이 복잡해지면 시간만 모자르는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신경이 분산되기 마련이다. 사업말고도 신경써야 할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 돌보는 일등을 제껴두고 모두 사업에 몰두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동시에 저글링(juggling) 해야하는 일들이 보통 많아진다는 현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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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몇살때 창업을 하는 것이 좋단 말인가? 정답은 없다. 이상적으로야 본인이 열정을 느끼는 분야에서 일정기간 동안 다른 회사에서 많은 학습을 거치며 경험치와 네트워크를 충분히 쌓은후 아직 체력과 가용시간이 철철 넘쳐날때 창업하는게 좋겠지만, 사람일이 어디 그렇게 수학 방정식처럼 딱 떨어지던가. 각자 처한 개인사정도 다르고, 또 ‘시장의 기회’라는 놈은 내가 경력 쌓을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경험’이란 것의 상대적 중요성이 아닐까 한다. 이미 존재하는 기존 시장, 기존 산업군에서 경쟁하는 사업이라면 상대적으로 창업자의 경험이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제 대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 실무경험 없이 반도체 회사를 창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로, 완전히 새로 생기기 시작하는 산업에 도전하는 경우는 경험이라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그걸 해 본 사람이 세상에 몇 없으니 말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창업하던 시절의 PC 산업이 그러했을거고, 90년대 한국에서 태동한 인터넷 회사나 온라인게임 회사들도 이에 해당할거다. 어차피 다들 처음해보는 거라 출발선이 비슷하다면, 체력좋고 다른일에 신경쓸 일이 없는 똑똑한 청년들이 모인 팀이 경쟁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글 서두에 ‘소비자는 창업자의 나이에 관심도 없고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근데 이게 어찌보면 매우 비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쩌면 시장은 당신이 최고의 지식+경험+네트워크를 동원해 마라톤선수의 체력을 가지고 무한대 가용시간을 투자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창업팀의 약점이나 사정을 ‘이해’해주면서 만족하기 힘든 제품에 돈을 지불하는 커스터머는 없다. 이 글의 의도는 나이 적은 창업자 혹은 나이 많은 창업자의 의지를 꺾으려는 게 아니다. 다만, 창업이란 것도 한 개인의 커리어중 일부라는 관점에서 스스로 ‘지금이 적기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는 있다. 시장은 나의 개인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냉혹한 곳이기에 지금 내가 가진 능력치(경험, 네트워크, 체력, 가용시간등)가 얼만큼 경쟁력있는 것인지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결론은 각자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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