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아버지는 뭐하시니?”
생각해보니 어렸을때 이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그냥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 부모님들이 으례 물어보셨던것 같다. 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냥 ‘모 대학교 교수님이예요’ 라고 공손히 답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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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중학생이 되니 슬슬 가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저 나이 또래 미국 아이들에게 지금 내가 하는 벤처캐피탈은 이해하기도 모호하고 썩 매력있는 직종이 아니다. 아마 소방수나 경찰관, 혹은 게임회사 CEO 정도되야 ‘영웅’급에 속할테고, 그 정도는 아니라도 주위 친구들 아버지가 애플이나 구글 같이 쿨한 회사에 다니는 분들이 있는데 살짝 부러워 하는 눈치다. 어쩌랴 이 애비의 길은 다른 것을…
아들과 가끔 내가 하는 투자일에 관해 이야기 하기도 한다. 여러번 설명해서 이제 아빠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한다는 정도는 이해하는 것 같다. 아들이 관심을 보일때마다 이런 저런 회사에 투자했다고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어떤 투자건은 필요에 의해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아까 대화 말미에 살짝 주의를 주었다.
“아들아, 아빠가 어디에 투자했다고는 친구들에게 말하지 말아라”
“네 아빠. 어차피 내 친구중에 아빠가 뭐하는지 아는 애 없어요”
“$#^%&*”
읔.. 아빠 존재감의 대미지 게이지 상승중. 근데 그보다도 옛날의 내경험과 너무 다르다는게 신기하다.
“너에게 ‘아버지 뭐하시냐’ 라고 물어보는 사람 없니?”
“아무도 안물어 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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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를 바라보면 될 것이지 그 아이의 부모 직업을 알아서 뭐하겠나. 한국은 참 이래저래 많이 스펙을 중시한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때 선생님이나 친구 부모님들이 나에게 아버지 직업을 물어본건 일종의 ‘스펙 체크’ 였으리라. 아이들에게까지 이정도니 어른들이 스펙에서 느끼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말해 뭣하랴. 서양이라고 스펙이 완전 무시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정도의 차이는 꽤 커보인다.
내 생각에 어떤 조직이나 간부가 사람을 채용할때 스펙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는 사람의 능력이나 태도를 평가할 능력이 없어요’ 라고 대놓고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본다.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없으니 학벌과 같은 스펙을 믿고 간다는 생각 아닐까? 좋은 스펙의 인재만 후보로 받는다고 자랑할게 아니라, 자신이 해야하는 판단을 대학 입학 사정관에게 맡긴 꼴인거다.
틀려도 좋으니 나름의 판단기준, 나름의 평가기준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마 스펙이 좀 덜 중요한 사회가 올거다.
어릴 때 저 질문 굉장히 싫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미국은 대신 reference check이 한국보다 철저하지 않나요? 제 생각엔 스펙보다는 그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제가 신뢰하는 사람이 그 사람과 오래 일해봤는데 그 사람을 좋게 평가한다면, 그게 어디 대학을 나왔다는 스펙보다 훨씬 의미 있는거 같애요.
미국에서도 스펙이 좋으면 일단 인터뷰 따는데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담엔 인터뷰와 레퍼런스 체크가 중요하죠.
요새는 ‘부’의 체크를 하기 위해, ‘아버지 뭐하시냐?’ 보다는 ‘할아버지 뭐하셨냐?’ 하기도 한다고… 앞날이 안보이는 양극화된 한국… 털썩.
비슷한 맥락으로 그 친구 어디사니? 가가 있죠
아파트 광고마냥 사는 곳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생각하죠 털썩(2)
그래서인지 요새 맞선시장(?)에서도 남자의 거주지역이 중요한 요소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네요 ㅜㅜ
하하 저도 미국에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많아 공감이되네요.
얼마전에는 9살 짜리 딸들이 저에게 난생 처음으로 물어보더군요…아주 심각한 얼굴로..
“근데 아빠…아빠는 무슨 일 해?” 음…그러거 보니 아이가 9살이 되도록 한번도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ㅎㅎ 그 만큼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그런 말하지 않아도 이야기 거리는 차고 넘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