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이메일 case study: 야후의 새 CEO 마리사 메이어

프롤로그: 올해 초에 영문 이메일 쉽게 쓰는 법이란 블로그를 큰 생각 없이 썼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다. 네이버 검색어에 걸려서 그런지 아직도 하루에 수십번씩 꾸준히 그 글이 조회되고 있다. 그에 용기를 얻어 아래글도 도움이 될까해서 작성했다.

야후의 새 CEO: 마리사 메이어

야후의 새 수장이 된 마리사 메이어 (Marissa Mayer)가 오늘 전 직원들에게 첫 이메일을 보낸게 화제다. 한국 기업 같으면 거창한 취임식이라도 있을 법 하지만, 미국 텍 기업은 그런 형식 절차와는 거리가 멀어서 취임 연설 같은 건 없는게 보통이고 이메일로 대신 하는 경우가 많다.  메이어의 이메일을 보니 깔끔하게 잘 썼고, 하고자 하는 말도 전달이 잘 되었으며, 나름 겸손한 이미지를 위한 흔적도 보이는 등, 배울점이 많다고 느껴 이메일 case study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우선 이메일 전문을 읽지 않은 사람은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 밖에 안되니 이곳에 가서 먼저 읽고 시작하는 게 좋다.

이메일 맨 상단에 보면 아래와 같은 문구가 보인다.

Privileged and confidential — Do not forward

야후 직원이 약 12,000명 정도 되는데, 전체 이메일을 보내면서 이런 문구를 쓴다고 이게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실제로 메이어가 보낸 이 이메일은 몇시간 내로 누군가에 의해 AllThingsD에 전송되어 바로 언론에 대문짝 만하게 나왔다. 그럼 메이어는 이렇게 될걸 모르나?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난 사람인데 모를리 없다. 그래도 이런 문구를 넣었다. 왜? 속으로는 이 메시지가 언론에 퍼질 것을 알고 있어도, 겉으로는 (원칙상으로는) 회사 내부 communication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메시지를 받는 사람도 은근 기분 좋다.  내용상에 실제로 큰 비밀은 없어도 ‘나는 야후라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 은밀한 메시지를 받는 것이다’ 라는 순간적인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비밀이야기를 해주면 그 사람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니 기분이 괜히 좋아지지 않던가?

이메일 도입부를 보면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I couldn’t be more excited to be here — thank you for the warm welcome over the past two days!

이메일을 쓸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있는데, 이전의 블로그에도 말했듯이 상대방에 대한 감사의 말로 시작하면 가장 무난하다.  메이어도 그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부드럽게 이어가기 위한 기본 예의다.  또 서두인 만큼 상대방과 나의 공통 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의 이메일 도입부를 계속 들여다 보면 자신이 94년 스탠포드 시절 야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는등 야후 직원들과 공통 분모 찾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메일 받는 사람은 자신과 관련된 말이 나오는 이메일을 열심히 읽는 법이다.

서두에 놓치기 쉽지만 중요한 표현이 있다.

I’m incredibly honored to now be a part of the team and work with all of you.

그녀는 언론의 조명을 한 껏 받으며 스타 CEO가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팀에 조인하게 되어 믿을 수 없는 영광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보통 말단 직원이 새 회사에 들어가서 동료들에게 첫 이메일을 보낼 때 봄직한 표현이다. 그녀가 속으로도 겸손한지 겉으로만 그런지는 내가 알수 없지만, 적어도 회사의 수장으로서, 그것도 외부에서 영입된 CEO로서, 최선을 다해 예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자기 입밖으로 내세우는 리더는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만약 그녀가 위의 문장 대신 “I’m very happy to be the CEO of our company and manage all of you” 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밥맛없다고 다들 한마디씩 했을 것이다. 자신이 CEO가 된 건 이미 전 직원이 다 들어서 아는 것이고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된 것도 다 아는 거다. 그걸 자기 입으로 되뇌이는 건 스스로 점수를 깎는 일이다.  그리고 “work with you” 라는 표현은 영문 이메일에서 참 흔히 쓰는 표현인데, 어감이 좋아서 그렇다. 메이어가 CEO니 누가 위에서 일하는 지는 뻔하지만, 그래도 이런 말로 상대를 높여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면 이제 정작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이 나온다. 요약하면 하던일 멈추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야후가 요새 안팎으로 아주 어수선했고 회사가 존폐위기에 몰리는 분위기여서 많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났고, 아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손에 일이 안 잡혔을거다. 이런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메이어는 이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The company has been through a lot of change in the past few months, leaving many open questions around strategy and how to move forward. I am sensitive to this.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데서 시작하는데, 위의 말로 메이어는 야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완곡히 말하며 직원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취임한지 며칠 안되었으므로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없을지언정, CEO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원들은 어느정도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야후의 그간의 문제점을 다 말하려면 끝도 없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기 회사를 비판하는 꼴이 되니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간의 야후는 아주 x판이였고 이제 내가 고치려 한다”라고 말하면 어땠을까? 솔직해서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식의 표현은 지금까지 남아있던 야후 직원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으므로 적절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핵심 내용인 다음 문구를 보자.

In the meantime, please do not stop. You are doing important work. Please don’t stop.

지금 메이어가 걱정하는 것은 직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에 구멍이 생기는 것일터, 멈추지 말고 전진하라고 독려한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상장 즈음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리고자 자신의 책상위에 Stay Focused & Keep Shipping이라는 푯말을 걸은게 한때 화제였는데, 그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역시 중요한 내용이므로 강조하기 위해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나도 처음 읽을때 “don’t stop”이라는 말이 두번 아주 강하게 효과적으로 와닿는 느낌을 받았다.  이메일에서 상대방이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은 이처럼 한번쯤 반복해 주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하단부에는 이런말이 보인다.

Ross has done a terrific job for the company.

Ross Levinsohn은 몇 개월간 야후의 임시 CEO로 있다가 이번에 자리를 내주게 된 인물이다. 항간에는 그가 정식 CEO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소문이였으나 야후 이사진은 메이어를 깜짝 영입하면서, 그로서는 아쉽게 되었다. 그가 회사를 나간다고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그한테나 새로 부임한 CEO한테나 여러모로 껄끄러울테니 아마 나갈 것 같다. 암튼, 회사내 최고 권력을 향한 복잡한 배경은 있었을지언정, 메이어는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깎듯이 하고 있다. 이건 아주 기본이다. 이번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회사내 탑 레벨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한명이 회사 나가는 일은 아주 비일비재한데, 그래도 외부 발표를 할때는 다 좋은 이야기 해주는게 보통이다. “아무개씨는 그간 회사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됨을 무척 아쉽게 생각하며, 우리는 그를 정말 그리워 할 것이다” 뭐 이런말. 가끔 뒷 사정을 알게되는 나로써는 웃음이 나올때도 있지만, 그래도 예의는 예의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인다.

Looking forward, we need to continue…

… I cannot wait to hear your ideas for Yahoo!’s future.

이전 블로그 글에서 이메일의 마지막에는 미래에 대한 관망이나 향후 action item을 제시하는게 좋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메이어는 센스있는 리더 답게 “Looking forward” 나 “Yahoo!’s future”와 같은 말로 그녀의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현재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언정 ‘앞으로 우리가 힘을 합하면 이겨나갈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인 톤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선 무척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맨 마지막 줄은 간단히 자신의 이름으로 끝마치고 있다.

Marissa

굳이 자신의 이름뒤에 직함이나 현란한 시그너춰를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기가 누구인지는 사람들이 다 아는것이니 그냥 자신의 first name으로만 조용히 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메이어의 이메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

Phil ^^

13 thoughts on “영문 이메일 case study: 야후의 새 CEO 마리사 메이어

  1. 이 좋은 분석 때문인가요, 마리사라는 이름의 간결한 끝맺음에도 메일 전체내용이 잔상으로 남는것 같습니다! 좋은 글 늘 감사드리고요..페북으로 공유해도 되겠죠!!

  2. 이 좋은 분석 때문인가요, 마리사라는 이름의 간결한 끝맺음에도 메일 전체내용이 잔상으로 남는것 같습니다! 좋은 글 늘 감사드리고요..페북으로 공유해도 되겠죠!!

    제 댓글이 익명으로 처리되어서 다시..그런 건 좋은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아무튼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3. 예전에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고 등용할 때 쓰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이제는 미국에서 더
    잘 살피고,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경과 인맥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한국에서는 CEO의 이메일과 같이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방과 소통할 때 필요한 이러한 기술이 점점 퇴화하거나 변형되지 않았나 혼자 생각해 봅니다.

  4. 잘 읽었습니다.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네요,
    앞으로도 종종 들르겠습니다.

  5. Pingback: TeamWork | #e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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