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되어가는 용어 (2): 플랫폼

“저희는 모바일 결제 플랫폼 회삽니다”

“오프라인 주문 및 배달 플랫폼을 론칭합니다”

“온라인 비디오 콘텐츠 관리 플랫폼을 만들고 있어요”

요새 스타트업들 만나면 ‘플랫폼’처럼 자주 듣는 단어도 드물다. 뭐를 만들고 있건간에 웬만한 회사는 모두 플랫폼이라고 주장한다. 뉴스 같은데서도 적당한 용어가 없으면 그냥 ‘머시기 플랫폼’ 회사라고 쉽게 불러버린다. 그냥 ‘앱 만드는 회사’나 ‘인터넷 서비스 회사’라는 말 보다는 ‘플랫폼 회사’라 하면 좀 있어보여서 그런가?

플랫폼이란 말자체가 나쁘다는건 절대 아니다. 사람마다 플랫폼이란 단어에 대한 정의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플랫폼은 이렇다. 내가 만든 그 무엇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에 다른 회사들이나 외부 사용자가 잔뜩 몰려와서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서 올리고 거기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며 그안에서 크고 작은 생태계가 이루어지는거다. 너무 추상적인 말 같은데 아주 쉽게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아이폰은 거대한 플랫폼이다. 아이폰이라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결합체에 수많은 앱과 주변기기들이 새로운 유용성과 가치를 창출해내고 그 안에 생태계가 조성되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로 가장 유명하지만 이제는 게임 플랫폼이기도 하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에 수많은 게임들이 얹혀져서 친구와 함께 즐기는 게임이라는 가치를 창출한다. 지금은 저물고 있지만 PC도 플랫폼이다. 몇십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PC에서 구동하는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했다.

그럼 플랫폼이 아닌건 뭘까? 지금 내옆에 내가 아주 애용하는 스캐너가 하나 있는데, 이놈은 플랫폼이 아니다. 스캐너는 자체로 유용한 것이지 그 위에 뭘 얹고 붙여서 하는게 없다. 그런데 요새 스타트업 유행을 따르면 스캐너를 꼭 ‘문서 카피 플랫폼’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사실 자신을 플랫폼이라고 부르는 스타트업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다. 아까 맨위에서 가상의 예를 든 ‘모바일 결제 플랫폼’이라고 하는 회사는 그냥 ‘모바일 결제 솔루션’을 만드는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 ‘콘텐츠 관리 플랫폼’ 회사도 뚜껑을 열면 아마 ‘콘텐츠 관리 솔루션’ 회사일거다. 그리고 그게 전혀 나쁜게 아니다. 나는 사실 엉성하게 플랫폼이라고 주장하는 회사보다는, 시장의 니즈와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가 더 맘에 든다.  즉, 플랫폼보다는 ‘문제해결’ 혹은 ‘미션’이 앞서야 한다고 본다.

현재 강력한 플랫폼을 가진 회사들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보면, 그들은 초기에 플랫폼보다는 문제해결이나 미션을 달성하는데 더 초점을 맞추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며 그 제품에 몰려들었고, 추가적인 기능과 API들이 붙고 앱개발자들이 생겨나며 자연스럽게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페이스북의 예를 들어보자. 지금의 페이스북은 게임, 미디어 공유, 로그인등과 같은 플랫폼을 구축했지만, 처음엔 그저 실제 생활에서의 친구를 온라인에서 잘 연결시켜주고 사진공유를 쉽게 해주는 핵심적인 미션에 집중했고, 사용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써드파티 앱 개발자들도 몰려들었고 여러가지 연동기능 확장을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플랫폼이 플랫폼으로서의 가치가 있으려면 일단 사용하는 사람이 무조건 많아야 한다. 사람이 없는 플랫폼에 API가 있다한들 어느 개발자나 회사가 와서 새로운걸 만들겠는가? 사람을 많이 모으려면 차별화된 ‘킬러 프로덕트’가 있어야 하고, 초기 스타트업은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게 없이 우리는 플랫폼 회사라고 백날 외쳐봐야 아무도 없는 썰렁한 플랫폼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럼 스타트업들은 왜 자꾸 플랫폼 회사를 꿈꾸고 심지어 시작부터 플랫폼 회사라고 우길까? (먼저 말하지만 플랫폼 회사로 성장하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아마 플랫폼이 구축되면 내가 힘들이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일종의 요행심리(?)가 작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즉, 내가 판만 만들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여기와서 뭔가 만들고, 놀고, 지지고 볶고 그러면 나에게 지속적인 수입이 떨어질것 같은 그런 상상말이다. 물론 이런게 전혀 불가능한건 아니다. 실제로 앱스토어 예만 봐도 전체 매출의 30%를 플랫폼회사가 가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예는 정말 드물다. 앱스토어 플랫폼 이전에 스마트폰이라는 킬러 프로덕트가 있었음을 잊어선 안된다 (물론 앱스토어덕에 스마트폰의 가치가 몇배 상승하기도 했다).  ‘내 판’을 자꾸 플랫폼화 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왜 내 판에 와야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확실했으면 좋겠다.

역시 오늘도 짧게 쓰려다 글이 길어졌다. 요는 (일반화의 오류가 있겠지만) 회사초기에 플랫폼 구축보다는 ‘핵심가치(core value)’나 ‘문제해결(solution)’이 우선이라는거다. 플랫폼은 남이 와주고 남이 인정해 주는 것이지 내가 외쳐봐야 허망한 메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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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hil Yoon

Founding Partner at Big Basin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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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esponses to 변질되어가는 용어 (2): 플랫폼

  1. Anonymous says:

    좋은 설명 입니다… 국내엔 너무 멋만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2. Pingback: 201409 IT Articles | P.Angler

  3. cornwolf says: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참 그리고 제가 이 내용 너무 공감 받아서 링크를 제 링크드인에 가져 가고 싶은데 그것도 혹시 ‘퍼가는’ 행위인지 허락 받고 싶습니다. 솔직히 링크를 가져 갔다가 다시 삭제 했어요! 허락받고 링크 가져가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 감사합니다.

  4. smart 란 단어만큼 너무나 남발되는 플랫폼 인 것 같습니다.

  5. 김재명 says:

    요즘은 플랫폼이란 말을 하는 사람이랑 대화가 하기 싫어집니다. 핵심을 잘 짚어준 글이라 생각해서 퍼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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