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MBA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학위도 없을 것이다. MBA를 마치고 성공적으로 커리어 전환을 한 사람들은 ‘MBA 간것이 내 인생에서 최고 잘한 결정이였다’고 말할정도지만, 간혹 내가 아는 사람중에는 MBA를 아예 혐오하다시피해서 인재 채용시 MBA 학위가 있는 사람에겐 마음속으로 감점을 주는 사람도 있다.
MBA 가는 것을 결정하는게 어려운 이유는 이게 꼭 필요한 학위가 아니라는데 있다. 예를들어 의사가 되려면 미국에선 일반적인 경우 무조건 medical school을 가야하고, 변호사가 되려면 무조건 law school을 가야하는데, 비지니스 맨이 되려고 꼭 business school을 가야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훌륭한 사업가나 비지니즈맨 중에 MBA를 안한 사람이 훨씬 많다. MBA를 하면 비지니스 전반에 관해 많이 배우면서 인맥도 넓히고 커리어 전환의 기회도 생기니 좋아 보이다가도,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고, 졸업한다고 해도 딱히 뭐가 보장되는게 없으니 한편으론 리스크가 큰 투자다.
재무에 밝은 이들은 MBA에 들어가는 총 비용과 미래의 예상 소득 증가량을 추정해 엑셀로 present value 모델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꼭 ROI로만 따질소냐.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 하지만 ‘정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전에 최대한 자기가 가고자 하는 분야에서 선배들 (MBA 한 사람, 안한 사람)과 많이 상담해보기를 추천한다.
나는 MBA를 한 사람으로서 MBA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비지니스 스쿨 가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사정과 처지는 너무 다르기에. 아래 MBA를 가고 싶어하는 가상의 이유를 들어 설명을 할테니 참고하시라.
1) 커리어 전환 – 미국 풀타임 MBA를 오는 가장 흔한 이유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난 컨설팅을 해야겠어’ 이런 결심이 들면 MBA가 좋은 통로가 된다. 비지니스 스쿨에는 MBA들에게 인기 있는 직종 (뱅킹이나 컨설팅)의 회사들이 늘상 사람 뽑으러 오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잡을 확률이 높아지고, 또 비슷한 관심분야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니 정보교환이나 네트워크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커리어 전환에는 종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암튼 자신이 속한 인더스트리가 아닌 곳으로 진출하는 것은 다 커리어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2) 한국에서 미국으로 진출 –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회사를 옮기면서 미국으로 나가고 싶은데 바로 가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MBA가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렇게 성공하신 분들도 좀 봤다. 물론 비자문제 등이 만만치 않지만, MBA를 대량으로 뽑는 회사들은 비자를 스폰서 해주는데가 많다. 다만 이런 경로로 성공하신 분들의 공통점은 어렸을때 외국에 거주한 경험등으로 영어가 거의 막힘이 없는 사람들이였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3)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찾고 싶다 – 이건 완전 내 경우다. MBA지원할때 물론 거창한 career plan을 써냈지만, 속으론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다. 이렇게 soul searching을 하러 MBA에 오는게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제가 좀 많다. 실제로 학교에 입학하고 1-2개월내로 서머인턴 리크루터들이 학교에 몰려오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거다. 물론 이런것에 안 휩쓸리고 계속 혼자서 묵묵히 쏘울서칭 할수도 있겠지만 생각만큼 쉽지않다. 비지니스 스쿨에 가면 항상 peer pressure라는게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남들 다 인턴쉽 받았는데 나만 없으면 그거 꽤 스트레스다.
4) 인맥을 넓히고 싶다 – 내가 생각하는 비지니스 스쿨의 가장 큰 장점중의 하나다. 사람들과 인맥 교류를 할려고 학교에 간다는건 좀 어불성설 같기는 하지만, 미국 탑 스쿨에 MBA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정말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진지한 대화도 나눠보고 놀기도 하고 교류를 쌓을 수 있었던건 다른데서 얻기 힘든 소중한 경험이다. 꼭 MBA에서 사귄 친구가 나중에 내 사업에 도움을 주는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성을 경험한건 그자체가 공부였고 재산이라고 본다.
5) 공부가 하고 싶다 – 비지니스 스쿨도 ‘학교’이니 공부가 주 목적이어야 하겠지만, 참 현실이란게 공부때문에 MBA오는 사람은 참 적은것 같다. 나는 사실 공부도 좀 목적이 있었다. 공대 출신으로 자꾸 비지니스 하는 쪽과 부딫히다보니 용어도 모르겠고 한계를 좀 느낀적도 있었다. 그래서 MBA 1학년땐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학부에서 경제학과목조차 한번 들은적 없는 나같은 사람에겐 MBA 필수 과목들은 상당히 유용했다. MBA 과정이란게 공학이나 과학에 비해 난해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지도 않은 것이 양이 장난아니게 많아서다. 파이낸스, 어카운팅, 오퍼레이션, 마케팅, 인사관리, 미시경제, 거시경제같은 기초과목들은 물론, 심지어 윤리, 법 과목도 있었다. 대부분 얇게 훑는 수준이지만, 첨보는 사람에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요는 MBA가서 공부가 하고 싶으면 실컷 할수도 있는데, 올 A를 받는다고 취직이 잘되거나 그런 일은 별로 없다.
6) MBA라는 간판을 따고 싶다 – 좀 불건전(?)한 목적 같아 보이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사람사는 세상이니 이런 생각으로 비지니스 스쿨 오는 사람도 어느정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MBA 간판이란게 졸업후 수년내에는 리크루팅과 같은 면에서 어느정도 효력을 발휘하지만, 그닥 오래가지 못한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졸업하고나서 4-5년 지나고나면 그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현재 무슨 일을 어디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해내고 있느냐이지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는 큰 고려사항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상황이 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7) 2년간 골프도 좀 치고 놀고 싶다 – 점점 이상한 목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겉으로 ‘난 MBA에 놀러 간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막상 와서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는데 집중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가만히 보면 노는데 집중하는 사람도 다 이유가 있다. 투자은행 같은데서 혹사당하다 온 친구들은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놀아보냐’는 생각들도 있는 것 같고, 네트워킹을 위해서 학교에 온 친구들은 ‘놀면서 사귄다’라는 철학도 있는 것 같다. MBA가 재미있는게 그 많은 과목들 케이스 다 분석하며 공부하려면 끝도 없지만, 놀라고 마음먹으면 또 놀 것도 끝없이 많다. 거의 매일 어디선가 파티가 있고, 소모임, 클럽활동, 각종 여행, 스포츠 등 다 나열할 수도 없다. 한국분들은 너무 골프에 집중하는 경향이 많은데 가능한 다양한 놀거리에 참가해 보기를 권한다. 이런 기회가 쉽지 않으므로.
그래서 결론은 본인이 MBA 가는데 관심이 있다면, 왜 가고 싶은지 그 이유를 솔직히 한번 적어보고 그게 정말 말이 되는 이유인지 주위 선배들이나 지인을 통해서 여러번 검증해보는 절차를 가지는게 좋다.
하하 7번 “점점 이상한 목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에 웃었습니다. 학교 졸업할 때 쯤에 동기들하고 얘기했었는데,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모든게 의욕상실이라 인생에 변화가 필요했다. 전혀 모르는 다른 도시 가서 살고싶었다.” 라고 말하는 미국친구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개인적인 이유도 그 목적을 이뤘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2번이었는데, 최근에는 외국 거주 경험이 없는 사람의 성공 케이스도 곧잘 나옵니다. 영어를 못하는 건 안되지만, 테크업계가 호황인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삼성 등 한국 IT인재를 존중하는 분위기도 있고요.
상당히 재미있는 포스팅이라 그냥 넘어갈 수 없네요…ㅎㅎㅎ 저는 석사로 경영대학원을 갈때 Master Science를 선택했지만 MBA에 대한 미련도 많이 남았었습니다… 시퍼렇게 젊다 못해 베이비에 가까운 제가 처음 대학원을 갈때는 7번(??????) 쪽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그런데 MBA는 정말 무엇을 배우기 보다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곳 같습니다. 미국의 유수 MBA 프로그램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전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정맣 내놓은??… 설마…) 양반들이 와서 사교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는 곳이니 당연 이상한 이유가 정당한 이유로 탈 바꿈할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 또 한가지 사실 공부를 위해서 MBA를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계중에 드물지만 또 흔할수도 있는 케이스로 MBA 에서 공부를 마치신 후 Ph.D 의 영역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혹은, 정말 더 흔치 않지만 DBA (Doctor of Business Adm.) 쪽으로 가시는 분들도 많지요… 희안하게도 한국의 유수 대학의 교수들의 프로필을 보면 MS 계열과 MBA 출신이 거의 반반 입니다. 뭐가 되었건 어떤 직업을 하던 혹은 공부를 더 하고 싶던… 배가크던 배꼽이크던… 분명 MBA는 돈은 많이 들지만 그만큼 얻어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학위이기는 한것 같습니다.
현재 제가 고민하는 부분을 잘 집어주셨네요. MBA 를 간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 데, 아직 ‘왜?’ 라는 질문의 답을 확실히 못 찾은 상황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들을 억지로 나열은 하면서 고민 중이지만 항상 그 끝에는 ‘이것을 이루기 위해 정말 MBA가 필요한가’ 혹은 ‘MBA를 졸업 후에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라는 질문에 막막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