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킹의 필요성 그리고 방법론

내가 어렸을때는 네트워킹이란 용어도 잘 몰랐고 필요성도 느끼질 못했다.  그저 학교나 모임등에 가면 “친구”가 있을 뿐이지 뭐 누구를 꼭 만나서 알아두어야 겠다던가 하는 생각이 없었다.  성격상 그다지 외향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 쑥맥도 아니였음) 친구는 그저 생기면 생기는 것이지 뭔가 인간관계에 대해 특별히 노력을 한다거나 하는 목적의식이 없었다.  대학교때 우리 과가 좀 큰 편이여서 한 학년에 270명 정도 있었는데, 인간관계에 눈이 밝았던 친구들은 270명 대부분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나는 그저 자연히 알게될 수 밖에 없는 우리 B반 친구들만 알고 지냈고 (모두 A,B,C,D 반이 있었음)  다른반 아이들은 얼굴도 몰랐다.  지금도 당연히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폭넓게 사귀어 둘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아득한 이야기다.

사회학에서 “The strength of weak tie” 라는 논문이 있다. 내 전공도 아니니 그 논문을 이해하려고 읽어본적은 없지만 주요 내용은 이러하다. 실제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던가, 직장을 구한다거나,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거나 할때 그 다리를 놔 주는 사람은 우리가 대충 알고 지내는 사람 (weak tie)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 (strong tie), 예를 들어 가족이나 절친등은 우리를 열심히 도우려고는 하지만 그 수도 적을 뿐더러 역량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고, 오히려 그저 안면식이 있는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다리를 놔 줌으로써 새로운 기회의 물꼬가 트인다는 것이다.  이런 weak tie의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사람의 포텐셜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외향적인 사람 (extrovert)에게는 네트워킹이란게 아주 생활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같은 내향적인 사람 (introvert)에게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말과 문화가 다른 타향살이 직장생활에서는 더더욱 노력을 해야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겠지만, 미국에서도 중요한 비지니스, 중요한 리크루팅, 중요한 투자등은 당사자의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속한 벤처 캐피탈 industry는 더더욱 그러해서 네트워킹에 대한 노력없이는 커리어가 성장하기 힘들 정도다.

그럼 네트워킹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자신이 속한 인더스트리에서 지인을 많이 만들고 싶은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명함을 뿌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Weak tie라고는 하지만 그 관계가 의미가 있으려면, 적어도 상대방이 내가 어디서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아야 하고, 어느정도 나에 대해 약간이나마 신뢰가 있어야 뭔가 앞으로 좋은 일을 조금이나마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가장 자연스럽게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방법은 상대방과 업무상으로 만나서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둘 다 서로 “일”이라는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같이 일하다 보니 서로 알게되고 신뢰도 쌓이게 되는 거다.  이런건 뭐 네트워킹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학창시절 노력하지 않아도 알게되는 같은 반 친구나 마찬가지다.

그럼 직접적인 일 관계가 없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친해지나? 누구나 방법이 다르므로 정답은 없겠지만 그간 나의 경험으로 몇가지 팁을 정리해 보겠다.  주로 미국에서의 경험이지만,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들이 꽤 있다고 생각하다.

  • 만나고 싶은 대상을 정하라 — 예전에 내가 job을 구하러 다닐때는 내가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타겟리스트를 엑셀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각 사람에 대해서 언제 이메일을 보냈는지, 언제 만났는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다 기록해 놓았다.  만나고 싶은 대상을 정리하다보면 내가 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가 가능할지, 어떤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지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한 agenda를 만들어라 — 내가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상대방도 나와 같은 시간을 쓰는 것이므로 그 사람도 뭔가 나를 만날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종종 한국에서는 “그저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는 명목으로 누군가와의 만남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미국에서는 그런식의 접근은 좀 곤란하다.  그래서 만남을 요구할때는 형식적이나마 agenda가 있어야 한다.  Agenda라고 해서 너무 거창한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고, 어떤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그 주제는 상대방이 관심있어할 만한 것이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내가 예전에 Intel에서 asso로 있을때 다른 회사의 파트너급 VC를 만나고자 할때 “최근 귀사에서 xyz 회사 투자/exit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도 그쪽에 관심이 많은데 시간이 되시면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요새 저희쪽 투자방향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고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상당수 점심식사 시간을 내주었다.  실제 그사람과 처음 만나서 말을 나누다 보면, 원래 agenda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참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상관없다. 네트워킹이란게 어차피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신뢰를 쌓아가는게 중요한 것이지 꼭 agenda를 논의해서 결론을 도출해야하는 미팅은 아니기 때문이다.
  • 만나기 전에 숙제를 하고 가라 — 이메일 등의 연락으로 만날 날짜가 정해지면, 만날 사람의 약력과 최근의 행보등을 숙지해야 된다. 이미 타게팅 단계에서 그 사람에 대해 어느정도 공부 했겠지만, 만나기 전날 다시한번 그 사람의 bio나 Linkedin 프로파일등을 검색해서 잘 알아두면 만나서 대화할때 반드시 도움이 된다.  Web에 생각보다 자료가 많다. 특히 유명한 사람일 수록.  내 지인 중에서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전화해서 그사람의 성향이나 관심사등에 관해 물어보는 것도 좋다.  얼마전 내가 졸업한 CMU 학교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수백명이 뒤섞여 자유롭게 네트워킹하는 시간이였는데 어떤 젊은 친구가 찾아와서는 본인이 VC에 관심있는데 조언을 구한다는 거였다. 내 이름, 회사, 경력을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절대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처음이여서 무척 당황했지만, registration list에서 내이름을 찾아서 열심히 뒷조사(?)를 하고 온 그 박사과정 학생이 기특해서 오랜 시간동안 VC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작은 정성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 만나고 나서 follow-up을 하라 — 대화 도중에 뭔가 “이렇게 저렇게 하자”라고 한게 있으면 반드시 follow-up하되 가능하면 그날 당일에 하는게 최고다. 업계에서 명망있는 사람일수록 만나는 사람도 많고 듣는 것도 많으니 오늘 나를 만난게 쉽게 잊혀지기 쉽다.  그렇게 되기전에 바로 follow-up을 하는게 중요하다.  몇년전에 어떤 conference에 갔다가 실리콘밸리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할수 있는 VC중 한사람과 우연히 같은 큰 원형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같은 인더스트리에 있어도 이런 유명인과 옆자리에 앉을 기회는 흔치 않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그 분이 자기네 모 portfolio회사를 나에게 소개해 줄테니 검토해 볼 의향이 있으면 자기에게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집에와서 그날 밤 10시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불과 3시간 후인 새벽 1시에 답장겸 소개 이메일을 받았다.  네트워킹 만남은 딱히 follow-up item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더라도 간단하게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정도의 짧은 이메일이라도 보내는게 좋다.  그리고 Linkedin을 쓴다면 그사람에게 그날 바로 connection request를 보내는 걸 권한다.

그리고 몇가지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 네트워킹이란게 상호작용이므로 나에게 주어지는 benefit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작은 부분이라도)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agenda를 세우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전혀 도움이 될 것 이 없는 만남은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서, 난 송혜교 팬이므로 송혜교를 만날수 있다면 참 기쁘겠지만, 송혜교는 나를 만나도 도움이 될게 전혀 없기 때문에 날 만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가끔 한국에서 불편한 부탁을 받는다.  “우리회사 모모 사장님이 이번에 미국 출장을 가시니 그쪽 포트폴리오 회사중 어디어디를 방문해서 CEO들과 미팅을 할 수 있게 주선해 달라”는 식의 부탁이다.  아마도 윗사람 스케줄 채우기 때문에 그런것 같은데,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agenda도 없고, 사업분야도 다르고, 연계성도 전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식의 부탁은 정중히 거절할 수 밖에 없다.
  • 하고 싶은 말이 확실하다면, 높은 사람 contact하는걸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안그런 사람도 많겠지만, 의외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중에 쿨하게 cold call을 받아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고등학생때 HP창업자인 Bill Hewlett에게 전화걸어서 여분의 부품좀 얻을 수 없겠냐고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결국 잡스는 부품을 얻는 것은 물론 HP에서 인턴쉽까지 얻어냈다.  (나도 대학생때 모 대기업의 사장님께 겁도 없이 이메일을 보내서 인턴쉽을 얻어낸 적이 있어서 참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이야기였음)

31 thoughts on “네트워킹의 필요성 그리고 방법론

    1.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그런데 글을 통째로 퍼가시는 건 자제해 주시면 감사. 링크를 거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글퍼가기를 제가 왜 반대하는지는 다음번에 블로그로 써볼까 합니다

  1. 음..이렇게 하는 거였군요 ^^;;;
    인맥이나 네트워킹에 대한 감이 거의 없었는데, 좀 명확해지는 거 같습니다 ^^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난 송혜교 팬이므로 송혜교를 만날수 있다면 참 기쁘겠지만, 송혜교는 나를 만나도 도움이 될게 전혀 없기 때문에 날 만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에서 괜히 빵 터졌네요… ^^;

  3. 저도 요즘 미국에서 있으면서 말씀하신 networking methodology에 대해서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Cold email을 보낼 때 딱 3가지 – 내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지,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 agenda는 무엇인지, 그리고 가능한 시간은 언제인지 – 만 담아서 보내라고 하더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 좋은 의견입니다. 그리고 스케줄에 관해서 말씀드리자면 본인이 시간이 많아서 상대방의 스케줄에 flexible하게 맞출수 있을때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 저보고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시간 안된다 저시간 안된다 그러면 도와줄려그러다가도 솔직히 좀 짜증이 나죠.

  4. 좋은글이네요, the tipping point라는 책에서 weak tie에 대해읽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미국에는 한국보다 네트워킹이벤트도 많아, 낯선사람과 mingle하기 더 편했던것 같아요, 앞으로는 ‘숙제’에 더 신경써서 가야겠네요. :)!

  5. 아이쿠, Anonymous가 되어 다시 포스팅 합니다. 요 글과 다른 글들도 깊은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저도 느끼고 있는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서 명쾌해 졌습니다 ^^

  6. 안녕하세요. 우연찮게 글을 읽고 용기를 얻게되어 감사의 글을 남깁니다. 잠시잠깐 미국에 연수를 오게되어 지내는 동안 어떻게 Social Networking을 해야하나 고민고민하고 있었는데..아주 좋은 방법을 알게되어 마음이 뿌듯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7. 문학에 몸을 담고 있는 저인지라 ‘사회적 활동성’ 에 대해서 그리고 네트워킹 개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포스팅 읽고, 깊이 반성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 가졌어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전 그동안 드넓은 인맥망을 만들 기회를 놓쳐왔군요. 그렇지만 지금부터 신경써보겠습니다^^

  8. 여성네트워킹에 관련된 정보를 찾다가 특히 비지니스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팁들을 주셔서 잘 배워갑니다. 일부 공유를 하더라도 저자의 출처를 꼭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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