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으로 외출하는 날을 꿈꾸며

나는 성격상 몸에 걸리적 거리는 걸 싫어한다.  목걸이, 반지 같은 장신구는 물론이고 시계 차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주머니에서 뭔가 철렁철렁하는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되도록 많이 안 가지고 다닌다. 외출할때는 어쩔 수 없이 몇개 소지품을 주머니에 가지고 시계도 차고 나가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즉시 시계도 풀르고, 주머니도 싹 비워서 작은 tray에 모두 놔눈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로 다 풀르고 다 비운다. 이런 이유로 기혼자 이면서 10여년동안 반지도 안끼고 다녔는데, 주위 시선이 좀 있어서 (미국에선 기혼자는 거의 반지를 다 끼고 다니는 것 같다) 몇년전에 반지끼고 다니는 연습을 몇달간 해봤다. 시계처럼 외출할때만 끼고 나갔다가 집에 오면 즉시 빼고, 회사에서도 뭔가 집중해서 일해야 할때는 반지를 옆에 잠시 빼놓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쳐서 이젠 그마저도 포기하고 말았다. 손가락에서 영 걸리적 거리는게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외출할때 가지고 나가는 건 딱 4가지다 — 지갑, 열쇠 꾸러미, 핸드폰, 시계.

내가 외출할때 들고 나가는 소지품들

이렇게 4개만 들고 다닌지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한 5년쯤 후에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나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남자들이야 주머니가 많으니 소지품 몇개 가지고 다니는게 큰 일은 아닌데, 한 껏 멋을 내고 외출 하는 여인네들에게는 입고 나가는 옷에 따라 걸리적 거리는 물건을 담아둘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으니 이것도 누군가 풀어야할 문제라면 문제다. (이런 이유에서 휴대 소지품을 대체할 스마트폰 기술은 여자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 것 같다) 우선 사진에 나온 필수품 만이라도 대체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물론 단시일내에는 어렵겠지만 지금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5년내에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5년 반 전에는 아이폰도 없었다.

1) 시계

이건 제일 쉬운거다. 이미 없어도 된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에 시계가 있은지 오래므로, 이제 손목시계는 그냥 멋을 위한 장신구라는 생각이다. 요새도 외출할때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등 격식이 전혀 필요 없는 때는 시계는 집에 두고 다닌다. 아날로그 시계가 숫자시계보다 좀 보기 편한 점은 있지만, 이미 스마트폰에도 아날로그 시계처럼 시간을 보여주는 앱은 많다. 이제 나에게는 ‘손목시계=장신구’ 로 굳어진지 오래다.

2) 열쇠

옛날에는 이상하게 이런저런 열쇠가 많았는데, 이젠 다 띠어버리고 진짜 필요한 열쇠 3개만 가지고 다닌다. 자동차, 집, 그리고 사무실.  자동차를 먼저 생각해 보면, 요새 나오는 고급 차종에는 keyless entry라는게 있어서 카드키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 저절로 문이 열리는 그런게 있다 (나도 써본적은 없음). 이게 정확히 어떤 기술인지는 조사해본적이 없지만, 카드키 대신 스마트 폰내의 칩을 프로그램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집, 사무실같이 정말 쇠로 만든 열쇠를 꽂고 돌려야 하는 곳이 미국에는 아직도 대부분인데, 금방 바뀌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한국 아파트에서 흔히 보는 번호 입력식 lock이 많이 도입되지 않을까? (너무 야무진 꿈인가?) 그렇게 되면 저 쇠 꾸러미를 바지에서 출렁이며 안가지고 다녀도 될텐데.

3) 지갑

내 지갑에 잡동사니가 여러개 있지만, 정말 필요한 건 신분증, 신용카드 몇장, 그리고 소액의 현금이다. 나머진 거의 쓸일도 없고, 없어도 된다. 아차, 수퍼마켓 회원카드도 돈아끼려면 있어야 되겠구나.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electronic wallet 개념은 많이 화자되었고 크고 작은 회사들이 뭔가 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중인데 아직 보편화 된 건 별로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어느정도 보편화된 핸드폰 지불도 미국에선 아직 요원한 이야기다. 아직 아이폰에는 NFC 칩 조차 없다. 누군가 ‘가상의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서 완벽히 구현해 주는 걸 발명해내면 내가 앞장서서 쓸 것 같다. 수퍼마켓, 커피숖등의 회원카드등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 카드로 대체될 기미가 보인다. 얼마전 iOS 6 발표때 Passbook이라는 새로운 아이폰 앱이 소개되었는데, 이게 아마 그 효시가 될 것 같다. 이게 제대로 되기만 하면 내 지갑에서 카드 세네장은 금방 빠진다. (와이프의 경우 아마 15장 ^^) 현금은 점차 통용이 줄어들테니 향후에 현금 쓸 일이 거의 없기를 바랄뿐이다. 그래도 남은건 신분증. 이걸 근시일 내에 대체할 디지털 기술은 내가 별로 들어본게 없다. (사람 몸속에 ID 칩 넣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하지말자) 복사하기 정말 어려운 ‘디지털 신분증’을 스마트폰에 넣는 기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정부라는 기관은 사기업처럼 빨리빨리 움직이는 데가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혹시 얼굴 인식 기술이 아주 보편화 되면, 얼굴 자체가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관공서에 가서 뭔가 신청할때 신분증을 보여주는 대신, 기계 앞에 잠시 서서 얼굴 보여주면 내 신분증명 기록이 ‘짜잔~’ 나온다면 쿨 할텐데.

4) 스마트폰

여태껏 이야기 한 것 (시계, 열쇠, 지갑)들이 모두 스마트폰의 뭔가로 대체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으니, 아마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사라지기는 쉬울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모르지, 구글 안경 같은 게 스마트폰의 기능을 죄다 대체한다면 바지속에서 찰랑거리는 마지막 남은 이놈 마저 없애 버릴 수 있을지도.  그렇게 되면 정말 널럴하게 빈 손으로, 빈 주머니로 외출 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홀가분해진다. “디지털이 선사하는 진정한 자유”같은 미래의 광고 문구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 날이 오기전까진 앞주머니에서 찰랑거리고 뒷주머니에서 묵직한 놈들을 어떻게든 참아보기로 한다.

PC에 있는 사진을 아이패드로 옮기는 법

나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연도별/이벤트별로 폴더에 나눠서 보관하는데 아이패드를 사고 나서 이 사진들을 아이패드로 좀 옮겨 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아이패드는 16GB 밖에 안되므로 모든 사진을 옮기지는 못하지만, 최근 이벤트에서 찍은 사진이나 옛날 추억의 사진들중 일부를 옮겨 놓고 레티나 디스플레이 고해상도로 보고 싶어졌다. 현재 우리집에 있는 디바이스중 아이패드의 해상도가 가장 높으니까 말이다.  근데 이게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걸 오랜 삽질 끝에 알게 되었다.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을 PC로 옮기는건 쉬워도, 반대는 간단치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요약하자면

  • 다량의 사진 (적어도 7 GB정도 분량)을 PC에서 아이패드로 옮기기
  • 옮기는 과정에서 사진의 해상도에 손상이 가는건 용납 못함 ^^
  • 옮기고 나서 아이패드의 “Photo” 앱에서 사진을 고해상도로 감상할 수 있어야 함. (슬라이드 모드등)

비교적 간단한 작업인것 처럼 보이긴 하는데 무료료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럼 왜 아래의 방법들이 각각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 그냥 아이패드를 PC에 꼽고 파일 복사 하면 안되여?  답: iOS는 기본적으로 ‘폴더’라는 개념을 싫어합니다. 아이패드에 파일 브라우저가 없는 것만 봐도 알수 있죠. PC에 꼽으면 아이패드 기기아래 사진 폴더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그 폴더안의 사진을 불러오기는 되어도 그 폴더에 쓸 수는 없습니다. 즉, 아이패드 사진을 PC로 복사는 되는데, 반대가 안되죠.
  • 그냥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면 되잖아요? 답: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수천장의 이메일을 어느세월에 보냅니까? zip file로 묶어서 보낼수도 있겠지만, 웬만한 이메일은 10M 넘어가면 뱉어버리거나 버벅거리는 경우가 대부분. 이거 하자고 대용량 이메일 서비스를 sign up하기도 귀찮고.
  • iTunes의 사진 sync 기능을 이용하면 안되여? 답: iTunes를 꽂으면 음악이나 앱등을 모두 동기화 할 수 있듯이 사진도 동기화 할 수 있습니다. (디바이스 동기화 페이지의 맨 오른쪽의 “Photo” 탭상에 존재) 그런데 이런식으로 사진을 아이패드에 옮길 경우 고해상도 사진이 저해상도 사진으로 바뀝니다. 인터넷에서 뒤져보니 애플이 동기화 속도를 빠르게 하고 저장용량을 적게 차지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었다는데 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저해상도로 바뀐 사진을 레티나 화면으로 보면 짜증만 납니다. (거의 눈뜨고 볼 수 없을 수준 ^^)
  • iCloud (포토 스트림)을 쓰면 어떨까요? 답: 대충 되긴 합니다. 저도 처음엔 이방법을 썼습니다. 포토스트림으로 사진을 옮길 경우 고해상도로 잘 보입니다.  아마 이 방법이 애플이 권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포토 스트림은 제한이 있습니다. 1000장 까지만 되고 지난 30일간의 사진만 포토스트림에 뜬다고 합니다. 시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30일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믿음이 안갑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 Dropbox나 구글 드라이브 쓰면 되지 않나요? 답: 물론 이런 파일 동기화 서비스를 쓰면 파일을 아이패드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Dropbox로 sync된 사진 파일은 Dropbox 폴더내에 존재하지 iOS 사진 폴더안에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즉, 동기화 된 후에도 아애패드의 Photo 앱을 가보면 사진이 없습니다. 일일이 Dropbox에 가서 사진 한장 한장 클릭하고 “Save Photo” 버튼을 눌러주어야 그제서 iOS가 이 사진을 자기의 폴더에 저장합니다. 따라서 이 방법은 가능하긴 하지만 노가다가 많이 소요. 그리고 Dropbox 무료는 2GB 밖에 안 줍니다.
  • 애플이 제공하는 아이패드 camera connection kit 사서 써보시죠? 답: 물론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일 겁니다. Camera connection kit에는 SD 카드 리더가 있어서 그냥 플래쉬 메모리를 꽂기만 하면 아이패드가 저절로 사진을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금 $30불이 맘에 걸려서… 제가 하려는 일은 단순히 파일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건데 이걸 위해 왜 저런 큰 돈을 써야하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 파일 이동을 전문으로 해결해 주는 앱은 어떨까요? 답: 네, 지금까지 제가 찾은 솔루션 중에 제일 맘에 드는 겁니다. 단지 이것도 무료는 아니고 유료 앱이여서 좀 찜찜하긴 하지만, 광고한대로 작동은 하네요. 제가 사서 써본 앱은 PhotoSync라는 앱입니다. ($1.99) 사용법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PC에서 돌아가는 PhotoSync 앱을 무료로 하나 다운 받고, 사진을 drop 하면 지정한 아이패드 앨범으로 갑니다. WiFi를 통하므로 속도는 상당히 느림보죠. 그래도 해상도에 손상 없고, 아이패드의 Photo 앱에서 사진이 잘 보이므로 90%는 만족. Photo Transfer App이라는것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들 앱 제작자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

결론: 애플은 복잡한 걸 간단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지만, 이와 같이 간단한 것 (파일 복사)을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도 많습니다.

영문 이메일 case study: 야후의 새 CEO 마리사 메이어

프롤로그: 올해 초에 영문 이메일 쉽게 쓰는 법이란 블로그를 큰 생각 없이 썼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다. 네이버 검색어에 걸려서 그런지 아직도 하루에 수십번씩 꾸준히 그 글이 조회되고 있다. 그에 용기를 얻어 아래글도 도움이 될까해서 작성했다.

야후의 새 CEO: 마리사 메이어

야후의 새 수장이 된 마리사 메이어 (Marissa Mayer)가 오늘 전 직원들에게 첫 이메일을 보낸게 화제다. 한국 기업 같으면 거창한 취임식이라도 있을 법 하지만, 미국 텍 기업은 그런 형식 절차와는 거리가 멀어서 취임 연설 같은 건 없는게 보통이고 이메일로 대신 하는 경우가 많다.  메이어의 이메일을 보니 깔끔하게 잘 썼고, 하고자 하는 말도 전달이 잘 되었으며, 나름 겸손한 이미지를 위한 흔적도 보이는 등, 배울점이 많다고 느껴 이메일 case study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우선 이메일 전문을 읽지 않은 사람은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 밖에 안되니 이곳에 가서 먼저 읽고 시작하는 게 좋다.

이메일 맨 상단에 보면 아래와 같은 문구가 보인다.

Privileged and confidential — Do not forward

야후 직원이 약 12,000명 정도 되는데, 전체 이메일을 보내면서 이런 문구를 쓴다고 이게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실제로 메이어가 보낸 이 이메일은 몇시간 내로 누군가에 의해 AllThingsD에 전송되어 바로 언론에 대문짝 만하게 나왔다. 그럼 메이어는 이렇게 될걸 모르나?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난 사람인데 모를리 없다. 그래도 이런 문구를 넣었다. 왜? 속으로는 이 메시지가 언론에 퍼질 것을 알고 있어도, 겉으로는 (원칙상으로는) 회사 내부 communication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메시지를 받는 사람도 은근 기분 좋다.  내용상에 실제로 큰 비밀은 없어도 ‘나는 야후라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 은밀한 메시지를 받는 것이다’ 라는 순간적인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비밀이야기를 해주면 그 사람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니 기분이 괜히 좋아지지 않던가?

이메일 도입부를 보면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I couldn’t be more excited to be here — thank you for the warm welcome over the past two days!

이메일을 쓸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있는데, 이전의 블로그에도 말했듯이 상대방에 대한 감사의 말로 시작하면 가장 무난하다.  메이어도 그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부드럽게 이어가기 위한 기본 예의다.  또 서두인 만큼 상대방과 나의 공통 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의 이메일 도입부를 계속 들여다 보면 자신이 94년 스탠포드 시절 야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는등 야후 직원들과 공통 분모 찾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메일 받는 사람은 자신과 관련된 말이 나오는 이메일을 열심히 읽는 법이다.

서두에 놓치기 쉽지만 중요한 표현이 있다.

I’m incredibly honored to now be a part of the team and work with all of you.

그녀는 언론의 조명을 한 껏 받으며 스타 CEO가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팀에 조인하게 되어 믿을 수 없는 영광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보통 말단 직원이 새 회사에 들어가서 동료들에게 첫 이메일을 보낼 때 봄직한 표현이다. 그녀가 속으로도 겸손한지 겉으로만 그런지는 내가 알수 없지만, 적어도 회사의 수장으로서, 그것도 외부에서 영입된 CEO로서, 최선을 다해 예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자기 입밖으로 내세우는 리더는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만약 그녀가 위의 문장 대신 “I’m very happy to be the CEO of our company and manage all of you” 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밥맛없다고 다들 한마디씩 했을 것이다. 자신이 CEO가 된 건 이미 전 직원이 다 들어서 아는 것이고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된 것도 다 아는 거다. 그걸 자기 입으로 되뇌이는 건 스스로 점수를 깎는 일이다.  그리고 “work with you” 라는 표현은 영문 이메일에서 참 흔히 쓰는 표현인데, 어감이 좋아서 그렇다. 메이어가 CEO니 누가 위에서 일하는 지는 뻔하지만, 그래도 이런 말로 상대를 높여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면 이제 정작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이 나온다. 요약하면 하던일 멈추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야후가 요새 안팎으로 아주 어수선했고 회사가 존폐위기에 몰리는 분위기여서 많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났고, 아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손에 일이 안 잡혔을거다. 이런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메이어는 이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The company has been through a lot of change in the past few months, leaving many open questions around strategy and how to move forward. I am sensitive to this.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데서 시작하는데, 위의 말로 메이어는 야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완곡히 말하며 직원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취임한지 며칠 안되었으므로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없을지언정, CEO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원들은 어느정도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야후의 그간의 문제점을 다 말하려면 끝도 없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기 회사를 비판하는 꼴이 되니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간의 야후는 아주 x판이였고 이제 내가 고치려 한다”라고 말하면 어땠을까? 솔직해서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식의 표현은 지금까지 남아있던 야후 직원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으므로 적절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핵심 내용인 다음 문구를 보자.

In the meantime, please do not stop. You are doing important work. Please don’t stop.

지금 메이어가 걱정하는 것은 직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에 구멍이 생기는 것일터, 멈추지 말고 전진하라고 독려한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상장 즈음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리고자 자신의 책상위에 Stay Focused & Keep Shipping이라는 푯말을 걸은게 한때 화제였는데, 그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역시 중요한 내용이므로 강조하기 위해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나도 처음 읽을때 “don’t stop”이라는 말이 두번 아주 강하게 효과적으로 와닿는 느낌을 받았다.  이메일에서 상대방이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은 이처럼 한번쯤 반복해 주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하단부에는 이런말이 보인다.

Ross has done a terrific job for the company.

Ross Levinsohn은 몇 개월간 야후의 임시 CEO로 있다가 이번에 자리를 내주게 된 인물이다. 항간에는 그가 정식 CEO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소문이였으나 야후 이사진은 메이어를 깜짝 영입하면서, 그로서는 아쉽게 되었다. 그가 회사를 나간다고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그한테나 새로 부임한 CEO한테나 여러모로 껄끄러울테니 아마 나갈 것 같다. 암튼, 회사내 최고 권력을 향한 복잡한 배경은 있었을지언정, 메이어는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깎듯이 하고 있다. 이건 아주 기본이다. 이번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회사내 탑 레벨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한명이 회사 나가는 일은 아주 비일비재한데, 그래도 외부 발표를 할때는 다 좋은 이야기 해주는게 보통이다. “아무개씨는 그간 회사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됨을 무척 아쉽게 생각하며, 우리는 그를 정말 그리워 할 것이다” 뭐 이런말. 가끔 뒷 사정을 알게되는 나로써는 웃음이 나올때도 있지만, 그래도 예의는 예의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인다.

Looking forward, we need to continue…

… I cannot wait to hear your ideas for Yahoo!’s future.

이전 블로그 글에서 이메일의 마지막에는 미래에 대한 관망이나 향후 action item을 제시하는게 좋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메이어는 센스있는 리더 답게 “Looking forward” 나 “Yahoo!’s future”와 같은 말로 그녀의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현재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언정 ‘앞으로 우리가 힘을 합하면 이겨나갈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인 톤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선 무척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맨 마지막 줄은 간단히 자신의 이름으로 끝마치고 있다.

Marissa

굳이 자신의 이름뒤에 직함이나 현란한 시그너춰를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기가 누구인지는 사람들이 다 아는것이니 그냥 자신의 first name으로만 조용히 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메이어의 이메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

Phil ^^

인종적 편견과 싸우기

실리콘 밸리에는 당연히 엔지니어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시아계 엔지니어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동네 사는 아시안 남자는 다 엔지니어인줄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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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친구와 동네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데 모르는 미국사람 두명과 같은 조를 이루게 되었다.  다른때 처럼 서로 통성명도 하고 악수도 하고 몇홀 돌다 보니 서로 어디서 무슨일 하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그때는 나는 인텔 캐피탈에서 associate 으로 투자업무를 하던 시절이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주저리 주저리 말하기도 거시기 하고 해서 그냥 인텔에 다닌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한데 대뜸 하는 말이

“Are you a hardware engineer or a software engineer?” (하드웨어 엔지니어세요 아니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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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인의 소개로 인도계 컨설턴트이자 변호사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되었다. 듣자하니 아주 예전에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 아래서 일한적도 있고 나름 꽤 잘나갔던 사람인것 같다.  역시 일하는 곳을 물어 보길래 월든 인터내셔널 벤처 캐피탈에 다닌다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우리 회사를 예전에 들어 본것 같다며 물어보는 말이

“Are you on the technical side?” (여러가지로 해석할수 있으나 내가 듣기론 회사의 IT 지원 같은데서일하냐고 묻는 것 같았음)

내가 “No. I’m an investor” 라고 하니 “Oh” 라고 하며 살짝 놀라는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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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이동네 사는 한국사람들 조차 한국아저씨는 다 엔지니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전 어떤 한국인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났는데, 그 아줌마가 자신이 의뢰인들을 위해 자료정리를 얼마나 잘해주는지 자랑을 하면서

“제가 엔지니어 분들 좋아하는 스타일로 엑셀에 쫙 정리해 드려요”

“저 엔지니어 아닌데요”

그리고 나서 괜히 미안하셨는지 직업이 뭔지 묻지도 않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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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같이 훌륭한 직업으로 오해되는 것은 즐거운 일일수도 있으나, 그저 사람들이 내 인종만 보고 직업을 판단하는데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 나도 반성하는 것이 나도 비슷한 실수나 잘못을 얼마나 저질렀을까 하는거다. 이동네 멕시칸을 보면 맥도날드 같은데서 허드렛일 하는 사람이겠거니 지레짐작하는 것 말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있는 동남아 분들이라고 다 공장 노동자는 아니고, 미국 시골에 사는 백인이라고 다 카우보이는 아니다.

미국인의 자신감, 한국인의 겸손함

19살때 미국이란 나라에 처음 와보고 누구네 집에 초대 받아 간일이 있다. 아버지가 아는 어떤 미국 교수님의 집이였는데, 그집의 장남은 나보다 한 살 정도 어린 친구 였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려고 준비하던 때다. 그 친구 방에 들어가니 온갖 트로피와 메달과 상패등이 즐비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상이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각종 스포츠 대회와 악기 연주상 같은 것이였던 것 같다.  난 그때 그친구가 수퍼스타인줄 알았다. ‘저런 트로피와 메달을 받으려면 적어도 메릴랜드 주 단위의 대회나가서 순위에 들었을거야, 아니면 전국대회?  듣자하니 공부도 잘하는 친구라던데 수퍼스타가 틀림없네.’  내가 더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마 내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때 상 받은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였을 것 같다. 연말에 반에서 대충 몇명씩 받았던 종이 한장 짜리 우등상장 정도는 받았던 것 같긴하지만, 예체능은 완전히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 대회에 나가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런 대회에 설령 나간다고 해도 전국에서 몰려온 날고 긴다는 수천명(?)의 아이들을 제치고 순위에 들어야 비로소 저렇게 멋진 트로피를 받을거라 생각했다.  한참 후에 뉴저지에 살고 있는 사촌네 집에 방문했다. 나보다 두살 많은 사촌누나와 한살어린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이 집도 비슷했다. 상패, 트로피, 기념 사진이 집안 곳곳에 즐비했다.  어? 이 사촌들은 한국에서 같이 많이 논 적이 있어서 어느정도 잘 아는 사이인데, 수퍼스타라고 생각한적은 없는데.  암튼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한참뒤에 결혼하고 유학나온뒤 교포 가정인 와이프의 사촌네 집에 방문했다.  이 집도 마찬가지. 와 미국집들은 다 수퍼스타 아이들만 기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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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짜리 우리 아들이 오늘 오전에 리틀리그 야구 시즌을 끝마쳤다. 미국 교외지역에는 시별로 이런 리그가 아주 흔하다.  아들이 속한 리그에 모두 6팀이 있는데, 우리 팀은 오늘 5-6위전에서 간신히 승리해 5위를 했다.  이따가 메달 수여식이 있으니 오라는 거다.  1,2,3위 팀은 트로피를, 4,5,6위팀은 메달은 준단다. 아들도 귀찮아하고 나도 귀찮아서 안갔다.  이미 아들 방에는 작년, 재작년 시즌에 받은 트로피, 기념품이 많이 쌓여 있다.  오후에는 아들 태권도 학원에서 ‘경진대회’ 같은게 있었다.  태권도 학원 수련생들이 참가해서 품세, 줄넘기, 겨루기등을 하고, 부모님들도 구경오고, 음식도 좀 차리고, 뭐 그런자리다.  참가 수련생이 한 25명 정도 되었는데, 메달과 트로피가 준비된걸 보니 족히 70개는 되어보인다. 각 종목별, 체급별, 나이별등등으로 한 30분동안 시상식을 한 것 같다. 아이들 모두 평균 3개 이상씩은 뭔 상을 받아갔다. 우리 아들도 메달 두개, 트로피 하나를 받고 마냥 싱글 벙글.  약간 어이가 없었으나, 기분이 업된 아들앞에서 뭐라 하기도 좀 그랬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꼬마지만 이미 이아이의 방에도 트로피와 메달 상장등이 그득하다.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받은게 아니고, 그저 뭔가 시즌이 끝나거나 공연발표 하거나 할때마다 하나 둘씩 쌓인다. 이젠 좁은 집에 이런 거 놓을자리도 마땅치 않으니 좀 자원낭비, 공간낭비좀 그만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받을때마다 신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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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미국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Waiting for Superman“이라는 다큐멘타리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보면 진짜 미국에서 아이들 학교 안보내고 싶어진다. 특히 한국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미국으로 아이들 유학보낼 생각이 싹 사그라질 것이다. 암튼 이 영화에서 소개한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30개의 나라중 미국 학생들의 성적이 수학(math)은 25위, 과학은 21위로 형편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유일하게 1위를 차지한게 있는데, 그건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다”라는 설문에 72% 학생이 “그렇다”고 답해 자신감 (confidence) 부분에선 30개국중 1위를 차지했다.  실제 성적은 바닥을 기면서 자신감 하나는 하늘을 찌를듯 하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다보면 종종 미국학생들이 황당한 질문 하는 경우가 있다.  모르니까 질문하는건 참 좋은거긴 하지만서도,  “야.. 저런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쪽팔려 하지도 않고 아주 당당하게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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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직장생활 하다보면 종종 “야 저친구 아는건 없는데 말빨 하나와 자신감은 죽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물론 정말 똑똑하고 실력도 있으면서 자신감 많은 스타도 많다) 미국인의 이런 근거없는 자신감이 교육에 기인한 거라고 가정하면, 아까 위에서 말했던 상 남발이 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자라나는 새싹들이니 격려와 칭찬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이곳 현지에서 느끼기엔 지나치다 싶은 면이 종종 보인다.  너도 잘했고 재도 잘했고 나도 잘했고 다 “you are the best”라고 치켜세우는 분위기.  반대로 한국에선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겸손을 강요당하는 면이 있다.  잘 알고 있는게 있어도 그저 입다물고 경청하고 있어야 예의 바른 아이다. 어른들 앞에서 뭔가 한마디 거들라치면 ‘애가 뭘 아냐’라고 무시당하거나 ‘건방지다’는 핀잔듣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직장이나 대학원 다니는 아시아인들은 “실력이나 지식에 비해 너무 조용하다”라는 평가를 받을때가 아주 많다. 물론 영어가 장벽이여서 그런면도 있겠지만, 단순히 언어문제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건 미국과 한국이 좀 적절히 섞여서 중간쯤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