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영학과’의 엔젤 펀드가 말이 안되는 이유

오늘 일주일 일과를 마치고 잠시 트윗을 보고 있는데 타임라인에서 아래의 기사를 접했다.

“한국의 저커버그 육성… 서울대, 창조경영학과 만든다”

제목을 보니 ‘또 전시행정 시작이군’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정부 정책에 맞춰 학과를 만든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뭐 교육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사를 보다가 다음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고 말았다.

창조경영

이게 왜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짚어보자.

1) 일단 1000억원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두번째 문장을 봤을 땐, 서울대가 자체 기금등을 써서 이런 돈을 모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보니 학생들이 돈을 내는 것 같다.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 학과에 몇명이 정원인지는 모르겠지만, 500명이라고 해도 1명당 2억원씩 내야되네? 정부가 반을 보조해줘도 학생 1인당 1억원은 내야될텐데, 재벌집 자제들만 학생으로 받을려나?

2) 설령 학생들이 여유 자금이 다들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자기가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해야지 왜 수십, 수백명의 다른 학생들 회사에 투자하나? 내 사업에 투자했다가 망하면 돈을 다 날릴까봐 위험 분산? 위험 분산 하고 싶으면 여유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든지 그냥 은행에 넣어두면 된다. 기사내용으로 보면 별다른 검증 절차도 없어보이는데 동기생들이 창업한 회사 수십~수백개에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지는 펀드에서 수익률을 기대하라고? 제발 좀.

3) 그리고 결정타는 이거다 — 창업한 학생들이 서로의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면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된다? 이건 완전히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식으로 스타트업의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될 수 있으면, 옛날에 창투사들이 ‘학생 연합 엔젤 펀드’ 같은 것 만들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내 사업이 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동창생 100명이 투자해주면 사업의 실패 위험이 최소화 될 것 같은가? 지금껏 상품 전략이나 시장 전략등 여러가지 risk hedging 방법을 들어봤지만, 동창생 수백명에게 투자 받는 방법은 정말 처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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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에서 엔젤 투자는 이전부터 쭉 있어왔고, 특히 요새 더욱 활성화 되었다. 창업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다. 미국에서도 한 창업자가 다른 회사에 엔젤 투자하는 일은 꽤 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주로 그 창업자가 이전에 웬만큼 큰 성공을 해서 어느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 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엔젤 투자 할때도 나름 골라서 자기가 정말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든지, 사업 내용을 잘 알고 있다든지 하는 경우에 선택적으로 한다. 그리고 보통 투자하고 나서도 여러 조언과 도움을 주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가끔 씨뿌리듯이 눈에 보이는 스타트업마다 쫙 뿌리는 투자자도 있지만, 그건 돈이 아주 많은 엔젤이나 몇몇 VC가 하는 특수한 투자 전략이다. 1000억이라는 큰 돈을 ‘창조경영학과’ 학생들이 창업했다는 이유로 쭉 투자하고 나면, 그 펀드는 내가 보기에 수년내로 초전 박살이 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고 그 여파로 학과까지 철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엔젤 펀드’는 뭔가? 여기서 일반적인 엔젤 투자와 엔젤 펀드는 좀 다르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엔젤 투자는 앞서 말한대로 개인적으로 돈이 좀 되시는 분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큰 리스크를 떠안고 하는 ‘개인적’ 투자이다. 이런 엔젤 투자가 유행처럼 번지자 등장한 것이 ‘엔젤 펀드’이다. 별게 아니고 이렇게 초기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 돈을 여럿 모아서 하나의 펀드로 만들고 이를 전문 투자자가 굴리는 것이다. 아마 SV Angel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한다. 이런 엔젤 펀드는 말이 좋아서 엔젤이지 전문성이나 규모나 결국 VC나 마찬가지다 (큰 엔젤 펀드는 규모도 1000억대에 육박하기도 한다). VC도 그렇고 엔젤 펀드도 그렇고 보통 General Partner 라고 불리는 전문 투자자가 운영을 한다. 내로라 하는 경력을 가진 전문 투자가들이 수많은 스타트업중 고르고 골라서 투자해도 수익을 내는게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아무리 서울대라 하더라도 한 학과의 엔젤 펀드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지 느낌이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좋아하는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하겠다. 널리 알려진대로 홈브루 (Homebrew) 컴퓨터 클럽에서 꿈을 키우던 잡스와 워즈니악은 1976년 애플을 창업한다.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워즈니악은 자신이 애지중지 하던 HP65 계산기를 팔아 $500불을 마련했고, 잡스는 전재산에 가까운 폭스바겐 밴을 $1,500불에 팔아 아낌없이 올인했다. 시간을 37년쯤 거슬러 올라가 차를 팔고 온 잡스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차 판돈의 절반쯤 쓰셔서 홈브루 클럽 멤버들의 회사에 투자하는 엔젤 펀드에 가입하실래요?”

volkswagen bus
잡스가 당시 처분한 폭스바겐 밴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

(업데이트)

트윗과 댓글등으로 여러분들이 ‘설마 1000억을 학생들에서 모집하는 것이겠냐’라는 지적을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일이 없어야 겠죠. 기사는 다시 읽어도 정말 모호하군요. 설령 1000억 펀드는 별개의 문제라고 해도, 학생-학생간 투자는 2번 3번에서 지적한 문제가 여전히 남습니다.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하는가?

VC에서 일하다보니 스타트업 밸류에이션 (valuation)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다 . 물어보시는 분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뭔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시는데 사실 속시원한 대답이 없어서 은근 미안할 때가 많다. 밸류에이션이라는게 무슨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답도 없으며, 경우에 따라 천차 만별이니 뭐라 말하기 어렵다. 내가 산정한 밸류에이션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경험있는 사람이 한게 꼭 더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하나의 상품 가치를 매기고 적정 가격을 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러 상품, 서비스, 사람이 엮여 있는 하나의 기업은 어떻겠는가. 큰 기업을 밸류에이션 하는 것은 MBA에 한 과목으로 있을 정도다.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은 그보다는 좀 더 간단하겠지만, 이것도 꽤 여러가지 요소가 있어서 일일이 나열할려면 블로그를 몇번 정도는 써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한가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최종 밸류에이션은 사람들간의 네고라는 점이다. 즉, 주식을 팔고 사는 사람이 특정 밸류에이션에 만족하고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게 그 회사의 현재 가치다. 예를 들어, 펀드 레이징을 하는 사람이 다급해서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팔면 회사 매출이 지금 얼마이건 간에 그 낮은 가격이 현재 밸류에이션이다.  사람들간의 네고이니 전혀 정량적이지 않은 ‘감정’이라는 놈도 종종 작용하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과학적’이겠는가?

위 제목에는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하는가?”로 썼지만, 실제로는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가 좀 더 현실성 있는 질문이다. 밸류에이션은 혼자 책상에 앉아 엑셀돌려서 값을 산출해 내는 것이 아니고 투자를 하는 사람과 투자를 받는 사람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밸류에이션이 결정되는 방법은 좀 경우마다 다른데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 몇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헌데 명심하시라 – 이런 저런 방법이 있지만 결국은 네고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돈주고 지분 먹기]

마땅한 용어가 없어 이렇게 불러봤다. 회사의 아주 초창기에는 사람과 아이디어만 있고 아직 상품도 매출도 없다. 그러니 뭔가 밸류에이션의 근거로 삼을 만한 껀덕지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를 한번 보자. 3명으로 구성된 창업자 팀이 있는데 그들이 가진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첫 상품을 만들어내는데까지 필요한 돈이 20억이다. 여기에 관심을 보이며 투자하려는 한 VC가 찾아와서는 “우리가 20억을 투자해 줄 수 있고 그 댓가로 지분 40%를 원한다”며 제안을 해왔다. 주식을 파는 입장인 창업자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여기서 바로 밸류에이션이 결정이 난다 (이경우, 포스트 머니 기준으로 20억 나누기 0.4 해서 50억 밸류에이션). 이렇게 초기 (Series A) 투자를 할때 실리콘밸리 VC들은 보통 요구하는 지분율이 대충 있다. 이 회사가 잘 되었을 때 의미있는 exit을 하려면 보통 20% 안팎으로 지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들이 있어서, 나중에 희석될 것을 감안, 초기에 30~40% 정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감이 오는가? 전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물론 창업자가 과거에 성공 경험이 있다거나, 업계에서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거나 하면 당연히 밸류에이션이 높아지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초창기에 필요한 자금과, 투자자가 요구하는 지분율 이 두가지로 거의 대충 결정나버린다. 그럼 혹자는 밸류에이션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 팀은 초기 자금이 1000억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VC들은 어떤 산업/사업이 돈이 얼만큼 들어가는지를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뻥은 잘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VC들이 초기에 그렇게 큰 돈을 투자하지도 않는다. 모바일 앱만드는 신생 회사가 처음부터 1000억을 펀드레이징 한다고 하면 VC들은 아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부분 도망갈 것이다.

[사용자 수 기준]

인터넷 기업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삼는 밸류에이션 방법도 흔히 본다. 즉, 펀딩을 받으려는 회사가 이미 제품을 출시하여서 사용자가 어느정도 있을 경우,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간 사용자가 50만명이고, 1인당 가치를 2만원으로 친다면, 50만 곱하기 2만원 = 100억원으로 계산 할 수 있다. 내가 2만원으로 예를 든 숫자는 ‘user multiple’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숫자는 업종에 따라 다르고 같은 업종이라도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며, 또 회사가 성장 중이면 더 쳐 줄 수 밖에 없는 변동이 심한 숫자다. User multiple을 가늠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동종 업계 상장 회사의 시가 총액과 그 회사의 사용자 수를 조사하면 된다. 예를 들어, 현재 페이스북의 시총이 $64B 이고 월간 사용자가 대략 1B (10억) 정도이니, 페이스북의 user multiple은 $64불이다.  상당히 과학적인 것 같지만 실제는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 밖에 안된다 (실토하자면 VC 생활 5년 하는 동안 엑셀 돌려서 복잡한 모델로 밸류에이션을 도출해 낸 적이 한번도 없다). User multiple이 도입된 계기는 인터넷 기업들이 초기에 하도 돈을 못벌어서 였다. 돈을 벌고 있다면 수익에 근거해서 기업 가치 산정을 할텐데, 사용자는 많아도 비지니스 모델이 없어서 돈을 못벌고 있으니 수익이나 매출 대신 사용자 수를 그 대안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 발표가 나던 시점에 월 사용자가 약 3천만 정도로 알려져 있었고, 매출은 하나도 없었다. 인수 가격을 $1B 이라고 가정하면 (나중에 페이스북 주식이 떨어져서 실제는 이보다 낮음) 대략 인스타그램 사용자 1명의 가치를 33불로 보는 것이다. 매출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매출액 기준]

스타트업이 만약 어느정도의 안정적인 매출이 있다면, 이걸 밸류에이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소위 revenue multiple로 불리는 게 있는데 현 연간 매출액에 몇배를 쳐주는 가 하는 것이다. Revenue multiple도 인더스트리마다 다르고, 경기 상황따라 변동을 타는 등 늘상 변하는 숫자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애플의 매출은 연간 약 $165B 이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가 총액은 $391B 인데 이중 현금 보유액 $137B을 빼고 나면 순수 enterprise value는 $254B이다. 이것을 매출액으로 나누면 애플의 revenue multiple은 1.54 정도의 숫자가 나온다 (현금 보유액을 빼는게 맞냐는 논외에서 일단 제외한다). 애플의 주식이 저평가네 고평가네 말이 많지만, 1.5 정도의 revenue multiple은 다른 인더스트리에 비해서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애플 주식이 지금 싸니 많이들 사두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암튼 매출액이 있는 스타트업은 일단 revenue multiple로 한번 대충 밸류에이션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매출이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 고정적이지 않다든지 하면 별 의미 없는 게 되고 만다.

[이익 기준]

스타트업이 운좋게도(!) 이익을 내고 있다면 밸류에이션에 좀 더 객관적인 자료가 생기는 셈이다. 주식 시장에서 P/E Ratio 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게 별게 아니고 현재 회사의 가치를 순익으로 나눈 값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profit multiple 같은 것이다. 이 녀석도 위와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다르고, 경제 상황마다 다르며, 당연히 인더스트리마다 다르다. 하지만 주식시장등을 통해서 P/E ratio 들에 대한 자료는 많아서 참고할 만한게 많다. 지금 찾아보니 구글은 약 24, 인텔은 11.7 정도이다. 이익을 기준으로 밸류에이션을 하는 방법이 그나마 좀 객관적이긴 한데, 실용성이 떨어진다는게 문제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중에 이익을 내는 회사가 별로 없고, 이익을 내는 스타트업은 펀드레이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으니 밸류에이션을 할 일이 없다 (상장되거나 M&A가 아닌한).

[저번 밸류에이션으로 퉁치기]

우리 속담중에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스타트업도 첫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 스타트업이 재투자 (Series B)를 받게 될 경우, 항상 저번 1차 투자 (Series A) 밸류에이션이 커다란 기준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Series A에서 50억원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받은지 2년 후에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제품을 출시해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할 경우, Series B에서는 당연히 50억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 받을 가능성이 크다 (‘up round’라 불림). 반대로 상황이 악화되었다면 이전보다 더 낮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는 소위 ‘down round’ 라는 것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 중간쯤이여서 그럭저럭 버텨온 경우에는 지난 번과 같은 밸류에이션으로 퉁치는 ‘flat round’를 하기도 한다. 보시다시피 모든게 저번 밸류에이션 기준이다. 저번에 투자 받은 돈으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느냐, 그만한 가치를 창출해 냈느냐가 주요 관건이다. 그럼 첫 밸류에이션이 높으면 사업가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Series A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으면 Series B 투자를 검토하는 VC는 굉장히 부담된다. ‘저 회사 처음부터 저렇게 높은 가격이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높게 부를까?’ 하며 지레 짐작하고 꺼리기 때문이다. 가격을 낮추는 down round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업계의 관례상 기존 투자자들이 down round는 대부분 꺼려한다. 그러니까 첫단추가 중요한데, 요는 너무 낮게 꿰지도 말고, 높게 꿰지도 말고, 적당한 위치에 꿰는게 최고다.

[기타]

이밖에도 몇가지 더 언급할 수 있는게 있다. 나의 계산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제 3의 투자자가 나타나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르며 물을 흐려 버리면 경우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거기에 따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핫 딜’일 경우 투자자들끼리 이렇게 bidding이 붙어버리면 밸류에이션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그냥 부르는게 값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최근에 펀딩을 받았던 동종 업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참고하는 것이다. ‘내친구가 창업한 모 게임회사가 저정도 가격에 펀딩 받았으니, 우리 회사도 그쯤은 되겠지’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도 그 한 예이다. 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회사마다 속사정은 다 다르니 단순비교는 항상 위험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마쳐야 겠다. 요는 밸류에이션을 대충 가늠해 보기 위해서 참조할만한 방법은 이런 저런 것들이 있지만, 정확한 방법은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은 쌍방간에 네고 하기 나름이라는 거다. 그리고 펀딩 받을때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지금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되려 높은 밸류에이션이 위에선 말한대로 나중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업가 입장에서 밸류에이션이 크면 클수록 무조건 좋은 때는 회사가 상장되거나 M&A 될 때이다. 그 전에는 현금화가 안되는 그저 장부상의 가치일 뿐이다.

[심화학습]

칸 아카데미에 Pre-money, Post-money 같은 개념을 예를 들어서 아주 쉽게 설명한 비디오가 있다. 밸류에이션의 기본을 10분만에 터득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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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사람이 “페이팔 (Paypal) 마피아”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페이팔 창업자들과 직원들이 후에 그들의 인맥과 경험을 바탕으로 Tesla, Linkedin, YouTube, Yelp와 같이 훌륭한 스타트업을 세우고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말이 생긴 것이다 (페이팔 마피아에 관해서는 조성문님이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으니 참조).  페이팔보다 한세대 앞서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 있는 인재를 많이 배출한 회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Sun Microsystems)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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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은 2009년 경영난끝에 오라클에 인수되어 지금은 사라진 회사지만, 한때는 워크스테이션 업계를 주름잡던 정말 잘나가는 회사였다. 내가 개발자로 일할 무렵인 2000년대 초반만해도 썬 워크스테이션을 책상에 두고 솔라리스 OS 환경에서 작업하는게 보통이였다. 그당시 공학도나 엔지니어였던 사람은 썬 제품을 이런 저런 경로로 다 써봤을 거다. 꽤 안정적인 OS로 기억되는 솔라리스뿐 아니라, Java 언어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SPARC라는 자체 프로세서까지 만들던 회사였다. 암튼 내 기억에 2000년대 전반부까지만 해도 썬은 정말 잘나가는 회사였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고 NeXT를 창업하며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는 동영상이 있는데, 거기에서 잡스는 NeXT가 어떻게 썬과 차별화되는지, 어떻게 썬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전략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디오 링크 – 추천). 그만큼 업계의 벤치마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썬은 확실하고 훌륭한 회사였다. 훌륭한 회사뒤에는 항상 훌륭한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지금 텍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과거 경력을 보다보니 유난히 썬에서 일했던 사람이 많고, 그들간의 인연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럼 각설하고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앤디 벡톨샤임 (Andy Bechtolsheim): 썬의 첫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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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의 공동 창업자는 모두 4명이지만, 이사람이 1호 창업멤버라고 할 수 있다. 독일태생인 Bechtolsheim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실리콘 밸리로 건너와 인텔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대학교의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SUN (Stanford University Network – 알고 보면 약간 촌스런 이름)이라는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이것을 발판으로 창업을 하기로 결심, 곧 학교를 떠난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썬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그는 직원번호 1번을 차지하게 된다. 그는 95년 썬을 떠날때까지 하드웨어 디자인을 총괄하는 일을 하였고 썬의 성공으로 많은 돈도 벌게 되었다. 그 후로 투자 활동도 많이 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투자는 98년 두명의 스탠포드 대학원생이 찾아와 검색엔진회사를 창업하겠다고 해서 십만불짜리 수표를 써 준 것이였다 (수표를 끊어주고 이 셋은 자축하러 버거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회사는 다름아닌 구글이고, 그가 투자한 십만불은 나중에 몇십억불의 가치로 늘어났으니 아마 벤처 투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중 하나일 것이다. Bechtolsheim은 지금도 엔젤 투자, 강연 활동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

비노드 코슬라 (Vinod Khosla): 썬의 창업자 & 벤처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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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osla는 지금은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그는 썬의 창업멤버였고 CEO였다. 그는 인도의 IIT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Biomedical 공학 석사를 한후, 실리콘 밸리로 건너와 스탠포드에서 MBA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 Daisy Systems라는 반도체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던중 스탠포드 박사과정 학생인 Bechtolsheim을 만나 썬 창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는 썬 초창기인 82년부터 CEO로 일하다가 비교적 짧은 기간인 2년만에 회사를 떠나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86년 그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명성의 Kleiner Perkins VC에 합류하고, 여기서 Juniper Networks 같은 곳에 투자하여 큰 성공도 거두고 명성도 쌓게 된다. 2004년 Kleiner Perkins에서 나와서 자신의 이름을 딴 Khosla Ventures라는 VC를 만들어 독립하였고, 지금도 클린텍, IT 분야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가 이전에 어디선가 강연하던 내용중 인상적인 말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썬에서 CEO로 일할때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자신은 CEO라기 보다는 “glorified recruiter (허울좋은 리크루터)”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타이틀은 CEO 였지만 시간의 반이상은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발벗고 뛰어다니는데 썼다는 말이다. 스타트업 초기에 좋은 인재 영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걸 그는 잘 알고 있었던거다.

스캇 맥닐리 (Scott McNealy): 썬의 창업자 이자 오랜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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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Nealy는 Vinod Khosla의 스탠포드 MBA 클래스메이트이자 룸메이트였다. 스탠포드 졸업후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Khosla와의 인연으로 Bechtolsheim과 의기투합하여 썬을 창업하게 된다. 그는 84년 Khosla로부터 CEO자리를 물려받은 후 2006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썬을 이끌며 키워온 인물이다. 썬이 정말 잘나가던 시기에 CEO였으니 그만큼 주목받는 인물이였고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사업가 였다고 할 수 있다. 썬 이후의 행보는 잘 모르겠다.

빌 조이(Bill Joy): 썬의 창업자이자 천재 프로그래머

사진만 봐도 보통사람이 아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Bill Joy는,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 등장해서 더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제대로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있다는 이론의 예로 등장하는 사람인데, 천재 프로그래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버클리 박사과정에 있는동안 모든 유닉스 시스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BSD Unix의 주 개발자였다 (여러분이 쓰고 있을 iOS나 Android의 밑바탕은 모두 리눅스이고, 리눅스의 시초는 유닉스다). 유닉스 환경에서 대표적인 텍스트 에디터인 vi를 주말만에 썼다는 전설도 있고, 대학원 시절 인터넷 프로토콜인 TCP/IP를 혼자 만들기도 하였다. 암튼 Bill Joy는 다른 세명의 창업자보다는 6개월 정도 늦었지만 버클리를 떠나  썬에 공동창업자 자격으로 합류하게 된다. 그는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와 버클리 대학원 동기이자 친한 친구였는데, 이런 인연으로 에릭 슈미트를 후에 썬으로 데리고 왔고, 에릭 슈미트는 훗날 CTO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빌 조이는 2003년 썬을 떠난후 Vinod Khosla처럼 Kleiner Perkins에 합류하여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 썬의 CTO, 그리고 구글 CEO

eric schmidt

몇년전에 Bill Joy가 대담자로 나온 한 행사에 간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웃라이어를 막 읽었던 차라, Bill Joy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이 가득해서 거의 맨 앞줄에서 눈을 부릅뜨고 경청하였다. 행사가 끝날무렵 행사장 맨 뒤켠에서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낯익은 사람을 봤다. 다름아닌 구글 CEO인 에릭 슈미트였다. ‘아니 이런 거물 아저씨가 연사도 아닌데 여기는 왜 왔으며, 그것도 그냥 뒤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다니!’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빌 조이와 에릭 슈미트간의 인연을 몰랐었는데, 나중에 두사람이 대학원 친구였던 사실을 알고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옛친구 얼굴도 볼 겸 잠깐 들른 것이리라. 에릭 슈미트는 작년 한국 연세대에서 강연할때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빌 조이와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암튼 그는 친구따라 썬에 가서 승진을 거듭하여 CTO자리에 까지 오르고, 후에 회사를 옮겨 Novell의 CEO로 일하다가, 구글의 CEO가 되어 초대박을 터뜨린 인물이다. 아마 에릭 슈미트가 Larry Page와 Sergey Brin과 연결된 것도, 썬의 창업자이자 구글의 투자자였던 Bechtolsheim이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캐롤 바츠 (Carol Bartz): 썬의 부사장, 그리고 야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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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z는 실리콘 밸리의 흔치 않은 여성 CEO로, 공개 석상에서 f- word 같은 폭탄도 서슴없이 날릴 정도의 거친 입담으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녀는 썬에서 초창기부터 10년간 일했고 나중에는 Worldwide Field Operation (주로 영업, 기술지원 조직)을 총괄하는 부사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92년에 AutoDesk의 CEO로 옮겨가며 커리어 전성기를 맞게 된다. AutoDesk의 CEO로 재직한 14년 동안 회사 매출을 $300M에서 $1.5B 까지 끌어올리는 업적을 세웠다. Bartz는 AutoDesk의 CEO로 부임하기 며칠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암수술후 7개월간 그 험난한 화학약물치료(chemotherapy)를 받으면서도 풀타임으로 일하며 암을 이겨낸 이야기는 실리콘 밸리에서 유명하다. 2009년, 난관에 봉착한 야후의 CEO로 부임하지만 회사를 되돌리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2011년 물러나게 된다.

존 도어 (John Doerr): 썬의 투자자이자 전설적인 VC

john doerr

존 도어는 썬에서 직접 일하지는 않았지만, 썬의 초기 투자자이다. 그는 VC업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전설적인 인물로, 그가 속한 Kleiner Perkins VC가 오늘날 최고 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성공한 벤처투자를 다 열거하려면 글이 좀 길어지겠지만, 초대박에 속하는 회사만 몇개 꼽으라면 썬,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 등이 있다.  존 도어는 82년 썬에 초기 투자를 하게 되어 크게 성공하게 되고, 이 인연으로 맺어진 썬의 창업자였던 Vinod Khosla와 Bill Joy를 후에 자기 회사로 영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 구글에 투자하게 되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데, 여기에도 썬에서 맺어진 인연이 위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앞서 말한대로 썬의 창업자 Bechtolsheim가 구글의 첫 엔젤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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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 마피아”라는 말은 내가 그냥 지어낸 말이다. 위에 열거한 인물들은 지금 대부분 50대 후반 ~ 60대로, 30대~4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루는 페이팔 마피아보다는 한세대 윗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반쯤 은퇴한 사람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썬이라는 하나의 훌륭한 회사만 봐도, 회사의 성장과 성공을 통해 많은 인재와 부자가 나오고, 그들간의 끈끈한 네크워크도 만들어지며, 그들이 후대 창업가들에게 투자 및 이런 저런 영향과 도움을 주는걸 보면, 실리콘밸리의 선순환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것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sun founders
썬 창업초기의 창업자 4인방 – (왼편부터) 비노드 코슬라, 빌 조이, 앤디 벡톨샤임, 스캇 맥닐리

동료를 보스처럼, 보스를 동료처럼

예전에 인텔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 나는 회사내의 리더쉽 계발 프로그램에 속해 있었는데, 프로그램 과정중 한달에 한번씩 회사의 높은 사람이 와서 회사 이야기, 커리어 이야기등을 해주면서 자유롭게 질문도 주고 받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그날은 회사의 법무팀을 총괄하는 중역 (General Counsel)이 오는 날이였다. 법률쪽은 내가 생각하는 커리어와 거리가 있으니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날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을 들었다. 그분은 (편의상 B 전무님이라 칭함) 미디어 업계 변호사 출신으로, 역시 변호사답게 말도 조리있게 잘 했을 뿐아니라,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여러 흥미있는 주제들로 — 예를 들어 직장에서 포지션 네고하는 법등– 듣고 있던 우리 그룹 모두를 매료시켰다. 그 때 그분이 해 준 커리어 조언중에 특히 와닿은 말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동료를 보스 대하듯 하고, 보스를 동료 대하듯 하라

언듯 잘 이해가 안될 수 있지만, 부연 설명을 듣고나니 정말 그럴 듯 했다.

1) 동료를 보스처럼 우대하기: 일을 하다보면 상사로부터 받는 일도 많지만, 같은 그룹의 동료가 부탁하는 일이나, 같은 레벨의 다른 조직에 있는 사람이 부탁하는 일도 많기 마련이다. B전무님의 조언은 이런 수평적 관계를 중요시하고 그들을 보스 챙기듯이 하라는 것이다. 수평적인 관계이니 누가 누구에게 ‘지시’할 수는 없고 보통 ‘부탁’을 하게 되는데, 늘 마음 한 구석에 ‘저 사람이 이걸 성의있게 해줄까?’라는 의구심이 조금씩 있기 마련이다. 이런때 그 일을 정말 정성스럽게 챙겨서 해주면, 받는 사람의 감동은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조그만 감동이 쌓여서 그사람의 명성 (reputation)이 되고, 이런 명성이 커리어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2) 보스를 동료 대하듯 하기: 이말은 상사와 격의 없이 일을 논하고 나누어서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다. 즉, 상사에게 일을 지시받기만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그 상사의 입장에서 어떤 일이 도움이 될까 미리 생각해서 실천하고, 상사의 고민과 숙제를 가까이서 듣고 ‘같이’ 해결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면 상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등의 이유로 기회가 생길때 그 상사의 추천을 받을수 밖에 없다. “이 사람은 직급상으론 내 밑에서 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내 업무의 반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추천만큼 강력한 것도 드물테니 말이다. 물론 상명하복/위계질서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스들도 있지만, 보스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문제를 같이 공감하며 해결해 가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든든할 수 밖에 없다.

글로 옮기고 보니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같이 좀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동료를 보스 대하듯 하고, 보스를 동료 대하듯 한다는게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위의 조언을 해준 B 전무님은 내가 인텔에 있는 동안 애플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도 같은 직책을 맡으셨으니 그 분 직속상관은 스티브 잡스였을 것이다. 가끔 그분은 스티브 잡스를 ‘동료처럼’ 대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

스마트 TV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

나는 텍 업계에 있는 사람치곤 꽤 구식 TV를 쓰고 있다. 2003년에 산 소니의 50인치 LCD 프로젝션 TV이다. 이게 지금의 LCD TV처럼 평판이 아니고 뒤가 불룩 튀어나온 TV로, 예전의 DLP TV와 경쟁하던 제품이다. 10년이 되어가지만 HD이고 화질은 아직까지 참 좋아서 큰 불만없이 쓰고 있다. 오히려 요새 나오는 최고급 TV 보다 화질이 부드러운 것 같아 눈이 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뒤에 꼽는 단자에 HDMI가 없는게 큰 단점이지만, 그냥 RGB 인풋과 DVI만으로도 케이블 박스랑 Wii 연결에는 무리가 없다. 이 TV를 사고 이사도 3번이나 했으니 (장거리 이사 2번 포함) 그동안  TV를 업그레이드 할까 하는 생각도 몇번 했었다. 하지만 딱히 새 TV를 사야할 필요를 못느꼈다. 정말 얇게 나온 슬림 TV, 3D TV, 스마트 TV등 갖가지 상품들이 나왔지만, 어느것 하나 내 호주머니를 열지 못했다. 내가 텍 제품 사는데 그렇게 인색한 사람은 아닌데도 말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새 TV를 산다고 해도, 내 TV 보는 경험에 큰 향상이 없을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듯 하다. 이미 TV는 나에겐 그저 집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일 뿐이다.

우리집에 있는 10년된 TV
우리집에 있는 10년된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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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트위터를 통해 이찬진 대표님이 ‘스마트 TV가 안되는 이유, 또  앞으로 될 것 같은 이유’를 수집하여 올리신 글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평범한 소비자 관점에서 보았을때 스마트 TV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아래 3가지만 요약하였다. (이찬진 대표님이 요약하신 항목들과 중복되는 것도 있음)

1) TV 앞에서는 사람들 마인드가 달라진다

거짓말 좀 보태면 TV 사용자의 99%는 리모콘에서 딱 버튼 세개만 쓴다  – 전원, 볼륨, 채널. 그걸로 끝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온갖 복잡한 작업을 즐겨하던 사람도, TV 앞에만 앉으면 갑자기 귀차니즘의 화신으로 변한다. TV에서 뭔가 입력하고, 찾고, 조작한다는 그 자체가 그냥 싫은 것이다. 하루종일 시달렸던 일과에서 벗어나 TV 앞 소파에 반쯤 누워서 군것질도 해가면서 잠시 ‘두뇌휴식’을 하고 싶은데, 이 시간  조차 뭔가 ‘스마트’하게 기계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TV가 정말 스마트해져서 내가 원하는 걸 미리미리 알아서 척척 찾아서 보여주기 전까진 사실 스마트 TV는 말이 스마트이지, 그냥 내가 이런 저런 인풋을 많이 줘야하는 요구사항 많은 TV에 불과하다.  사용자는 말한다 — 나도 좀 쉬자.

2) 얼리 어답터들이 TV를 별로 안본다

스마트 TV 같이 어떤 새로운 제품이 메인 스트림으로 가기 위해선 초기에 얼리 어답터들이 사용하면서 입소문이 나고 퍼져야 되는데, 내 생각에 TV라는 종목은 이 점에서 확실히 불리해 보인다. 얼리 어답터들은 주로 테크에 관심이 많고 소득도 중산층 이상 되는 사람들로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점점 TV를 멀리하고 있다. 대부분 바쁜 사람들이니 TV 볼시간이 없는 것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여가시간도 컴퓨터나 태블릿, 스마트폰 앞에서 보내기 일쑤다. 내 경우만 봐도 10년전과 비교하면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웬만한 콘텐츠가 온라인상에서 온디맨드로 가능하니, 실시간으로 봐야 하는 스포츠 중계와 선거 개표방송등을 제외하면 굳이 TV를 틀어야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인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은 5시간 이상이라 한다)  암튼 스마트 TV는 “결국은 TV”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초기 사용자를 끌어들이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3) TV를 교체하는 사이클이 너무 길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와는 달리 TV를 2~3년마다 바꾸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자주 바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유지되면 좋겠다.)  최근 통계를 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TV교체 주기가 현재 대략 7년 정도이다. 아무리 최신식 기능이라고 해도 6개월이면 구식이 되는 세상이니, 5년~10년씩 쓰는 제품에 들어간 ‘스마트’기능은 그저 잠시 즐거운 장난감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뭐 일부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TV 앞에 앉아서 검색조차 하기 귀찮아 하는 사람들이 TV에 들어가는 OS를 업데이트 할까? 스마트폰이야 OS 잘못 건드리면 서비스센터에 가지고 가서 상담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50인치 TV가 먹통이 되는 날엔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참고로, 미국은 서비스센터 직원을 집으로 부르려먼 무척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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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Costco 매장에 가보았더니, 진열해논 TV중 대부분이 스마트 TV였다.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스마트 TV라 부를 수 있는지는 애매하지만, 간단한 인터넷이나 넷플릭스 정도는 기본적으로 지원이 되는 모델이 많았다.  하지만 그 TV를 사는 사람중에 ‘스마트 기능’을 꾸준히 사용하는 사람이 몇 %나 될까 궁금했다. 그냥 시중에 나와 있는 TV가 죄다 “스마트 TV”이니 어쩔수 없이 그중에 하나 사긴 하겠지만, 실제 사용행태는 평범한 TV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큰 웃돈을 얹어주면서까지 스마트 TV를 사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스마트폰의 경우, 보통 핸드폰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TV 제조사나 OS 공급자는 매년 상승하는 스마트 TV 판매대수를 자랑하고 싶겠지만, 난 그에 앞서 실제 그 TV들이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TV로 사용되고 있는지, 또 사람들이 그에 대한 프리미엄을 지급할 용의가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보고 싶다.

이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스마트 TV를 쓰고 계신 분도 많을 것이고, 나와 반대의견을 가진 분도 계실 것이다 (반대 의견 적극 환영). 스마트 TV를 제대로 써보지도 않은 내가 이런 글을 올리는게 좀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시일 내에 스마트 TV를 adopt할 의향이 없는 나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같아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는 의미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예전에 한 친한 동료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 친구도 어디서 들은 말인 듯)

“A product category in consumer electronics doesn’t exist… until Apple creates one (소비자 가전에서 제품군이란건 존재하지 않지. 애플이 만들어내기 전까진)”

스마트 TV가 지금 같은 형태와 사용 모델이면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혹시 아나? 애플이든 누구든 나와서 뭔가 확 시원하게 바꿔줄지. 그렇게 되면 또 블로그를 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