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살생의 추억

고백하건대 난 직접 박쥐를 몇 마리 잡아 본 사람이다. 그것도 집에서 테니스 라켓으로. 아마 내 주위에 박쥐를 잡아본 사람은 나 말고 거의 없을 것 같다.

때는 2006년이니 거의 14년 전이다. 그해 여름에 직장을 그만두고 MBA 공부를 하러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갔고, 새로 이사간 집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우리 아이들이 만 6세, 4세였고, 학군을 고려해 필라델피아 외곽의 조용한 동네에 아담한 집을 월세로 얻었다. 지하에는 창고나 서재로 쓸만한 공간이 있었고, 1층에는 부엌과 거실, 2층에는 방이 2개 있었다. 2층의 방 한켠에는 다락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관심 없어서 처음엔 열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사한지 며칠 안되어 딸아이가 신기한 걸 봤다는 투로 자랑을 한다. 다락안에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걸 봤다는 거다. 너무 귀여워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니가 동화책을 많이 봤구나 ㅎㅎ. 혹시나 해서 다락문을 열고 안을 쓱 쳐다 봤는데 내 눈엔 별게 안 보여서 얼른 닫았다. 캄캄했던 다락 안은 왠지 캐캐묵은 먼지도 많고 더러울 것 같아 들어가 보기도 싫었고, 딸내미에게도 들어가거나 문 열어보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리고 며칠 더 지나서였다. 밤늦은 시각이였는데 난 지하실에서 책상과 책꽂이 등을 셋업하며 이사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와이프가 날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좀 빨리 올라와 봐”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냉큼 1층으로 올라갔더니 와이프가 다소 당황한 목소리로 천장을 가리키며 묻는다.

“저게 뭐야…”

정체 불명의 검은 새가 거실 천장을 큰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위잉위잉, 퍼덕퍼덕.

나도 너무 황당해서 처음 몇초는 멍하니 쳐다만 봤다. 그건 박쥐였다.

‘얼마전 딸아이가 말하던게 진짜였구나 ㅠㅠ’

괴기영화도 아니고 현실세계에서, 그것도 내가 사는 집에서 박쥐를 맞닥뜨리다니…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하나. 현관문을 열어 바깥으로 내보낼까? 현재진행형 사건이므로 뭔가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쩔줄 몰라 어버버 하고 있던 차에 박쥐가 2층으로 날아 올라갔다.

‘2층에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데! 방문도 열려 있을텐데!’

나도 허겁지겁 따라 올라가보니 박쥐는 이미 아들내미가 자고 있는 방에서 휘휘 날고 있었다. 비상사태다. 이때부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호 본능인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눈에 확 불이 켜지며 초 집중 상태가 되었다.

“빨리 아이 안고 내려가!”

와이프에게 꽥 소리를 질렀고, 일단 둘을 1층으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박쥐가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안에서 방문을 닫았다.

그래, 너랑 나랑 여기서 한판 하는거다.

마침 방에 뒹굴던 테니스 라켓이 보이길래 얼른 손에 쥐었다.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출구를 찾아 약간 낮게 날던 박쥐를 향해 강한 스매쉬를 날렸다.

“이야~~~압!!!!!!!!!!”

오밤중에 엄청난 기합 소리와 함께 라켓을 휘둘렀다. 의식적으로 낸 소리가 아니라 그냥 터져 나온거다. 박쥐 잡는데 기합소리가 왜 필요하겠나? 신기하게도 단 한번의 스트로크로 박쥐를 떨어뜨렸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난 테니스도 잘 못치고 운동신경이 대체로 별로인데. 테니스는 못쳐도, 아버지는 강하다 뭐 그런건가.

암튼 제대로 일격을 당한 박쥐는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방바닥에 뻗었다. 박쥐 vs 윤필구의 1:1 맞장 대결은 이렇게 싱겁게(?) 일단락 되었다. 날아다니던 박쥐는 꽤 커보였는데, 날개가 접힌 박쥐는 손바닥 크기의 반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정말 작았다. 이걸 잘 못 만졌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아서 일단 상자로 그 위를 덮어서 가두고, 내일 집 주인을 불러서 보여주기로 했다.

+++

정신을 가다듬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주변에도 물어보니, 박쥐는 떼지어 살기 때문에 한마리가 아닐거라고들 했다. 분명 집 한구석 어디선가 단체로 서식하고 있고,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밖으로 나갈거라는 거다. 확인해 보려면 저녁 해질 무렵 쯤 집 밖에 나와서 몇마리나 나가는지 관찰해 보라고 누가 귀띰해 줬다.

다음날 저녁 어스름 무렵 집 밖으로 나와서 지켜 봤더니, 과연…!

다락과 연결된 작은 환기구 같은 틈새로 뭔가 납작한 검은 물체가 쉬익~ 빠져 나온다. 2-3초 지나니 바로 또 쉬익, 쉬익~! 한번 나오기 시작하니 쉴새 없이 나온다. 마치 우주선에서 작은 전투기가 연속으로 출격하는 모양새다. 한 50마리 정도 세다가 포기했다. 재미있는건 옆집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저 집 주인은 저걸 알고 있으려나.

집주인이 불러준 pest control (해충 방제) 사람들이 집으로 왔는데, 이들이 해준 일이라곤 박쥐가 나가는 출구에 일종의 one-way exit 장치를 단 것 뿐이였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할 수 있고 다시 들어오지는 못하게 막는 장치인데, 저녁에 집 밖을 나간 박쥐가 다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셈이였다. 내 기분 같아서는 화염방사기를 들고 다락에 가서 박쥐를 다 불살랐으면 좋겠는데, 박쥐를 마구 죽이는건 불법이라고 죽일 수는 없댄다 (생태계 보호).

젠장.

그 장치를 설치한 날 밤이 최악이였다. 제대로 설치가 안 되었는지 다락에 있던 박쥐들이 아예 밖으로 나가질 못한 것이다. 다락에 갇힌 박쥐떼가 끼익 끼익 온갖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 공포스런 굉음은 아래층 까지 들렸고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락문은 철저히 봉쇄했지만, 행여 떼지어 나오기라도 한다면 바로 괴기영화 찍는거다.

가족들은 1층으로 대피해 있었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놈들이 날개를 접으면 몸체가 워낙 얇고 작기 때문에 어디 틈만 있으면 집안으로 침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텔로 피신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도 자정 근처여서 그 시간에 아이들 들쳐업고 어디 가기도 좀 애매했다. 그냥 내가 테니스 라켓을 들고 TV를 보며 밤을 새기로 했다.

그날 밤에 결국 박쥐가 2마리 정도 더 집안에 출몰했다. 한마리는 잡았고 한마리는 문밖으로 내보냈다. 첫 대결에서 처럼 단칼에 잡지는 못했지만 몇 번 보니 나름 차분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눈코입이 다 보이는데, 정신건강을 위해서 안보는게 나을뻔했다.

결국 그 집에서는 3주도 못 살고 이사를 나왔다. 엄청난 임무를 수행한 테니스 라켓은 어쩔수 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  잠도 잘 못 잔 상태에서 1달안에 이사를 두번 하려니 엄청 피곤했고 내 MBA 생활은 이렇게 시작부터 아주 드라마틱 했다 ㅎㅎ. 그래도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서 2년동안 다른 여러 학우들과 아주 친하게 자주 어울릴 수 있어서 돌이켜 보면 잘 된 일 같기도 하다.

박쥐는 여러 병을 옮길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동물이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배트맨 영화도 안 본다 난.

4 thoughts on “박쥐 살생의 추억

  1. 필라델피아 근교 미디어에서 살았던 기억때문에 필라델피아쪽에 계셨던 분들을 보면 참 반갑습니다.. ^^ 막상 닥쳤을때는 참 무서웠을것 같습니다. 물론 지나고 나면 재밌는 경험 일지라도요…. 잘 읽었습니다.

  2. 부모님한테 큰누나 집에 박쥐 나온대라고
    얘기 들었을때 멍미~~ 말도안돼~~ 거짓말~~ 이라고했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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