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으로 외출하는 날을 꿈꾸며

나는 성격상 몸에 걸리적 거리는 걸 싫어한다.  목걸이, 반지 같은 장신구는 물론이고 시계 차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주머니에서 뭔가 철렁철렁하는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되도록 많이 안 가지고 다닌다. 외출할때는 어쩔 수 없이 몇개 소지품을 주머니에 가지고 시계도 차고 나가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즉시 시계도 풀르고, 주머니도 싹 비워서 작은 tray에 모두 놔눈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로 다 풀르고 다 비운다. 이런 이유로 기혼자 이면서 10여년동안 반지도 안끼고 다녔는데, 주위 시선이 좀 있어서 (미국에선 기혼자는 거의 반지를 다 끼고 다니는 것 같다) 몇년전에 반지끼고 다니는 연습을 몇달간 해봤다. 시계처럼 외출할때만 끼고 나갔다가 집에 오면 즉시 빼고, 회사에서도 뭔가 집중해서 일해야 할때는 반지를 옆에 잠시 빼놓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쳐서 이젠 그마저도 포기하고 말았다. 손가락에서 영 걸리적 거리는게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외출할때 가지고 나가는 건 딱 4가지다 — 지갑, 열쇠 꾸러미, 핸드폰, 시계.

내가 외출할때 들고 나가는 소지품들

이렇게 4개만 들고 다닌지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한 5년쯤 후에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나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남자들이야 주머니가 많으니 소지품 몇개 가지고 다니는게 큰 일은 아닌데, 한 껏 멋을 내고 외출 하는 여인네들에게는 입고 나가는 옷에 따라 걸리적 거리는 물건을 담아둘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으니 이것도 누군가 풀어야할 문제라면 문제다. (이런 이유에서 휴대 소지품을 대체할 스마트폰 기술은 여자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 것 같다) 우선 사진에 나온 필수품 만이라도 대체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물론 단시일내에는 어렵겠지만 지금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5년내에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5년 반 전에는 아이폰도 없었다.

1) 시계

이건 제일 쉬운거다. 이미 없어도 된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에 시계가 있은지 오래므로, 이제 손목시계는 그냥 멋을 위한 장신구라는 생각이다. 요새도 외출할때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등 격식이 전혀 필요 없는 때는 시계는 집에 두고 다닌다. 아날로그 시계가 숫자시계보다 좀 보기 편한 점은 있지만, 이미 스마트폰에도 아날로그 시계처럼 시간을 보여주는 앱은 많다. 이제 나에게는 ‘손목시계=장신구’ 로 굳어진지 오래다.

2) 열쇠

옛날에는 이상하게 이런저런 열쇠가 많았는데, 이젠 다 띠어버리고 진짜 필요한 열쇠 3개만 가지고 다닌다. 자동차, 집, 그리고 사무실.  자동차를 먼저 생각해 보면, 요새 나오는 고급 차종에는 keyless entry라는게 있어서 카드키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 저절로 문이 열리는 그런게 있다 (나도 써본적은 없음). 이게 정확히 어떤 기술인지는 조사해본적이 없지만, 카드키 대신 스마트 폰내의 칩을 프로그램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집, 사무실같이 정말 쇠로 만든 열쇠를 꽂고 돌려야 하는 곳이 미국에는 아직도 대부분인데, 금방 바뀌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한국 아파트에서 흔히 보는 번호 입력식 lock이 많이 도입되지 않을까? (너무 야무진 꿈인가?) 그렇게 되면 저 쇠 꾸러미를 바지에서 출렁이며 안가지고 다녀도 될텐데.

3) 지갑

내 지갑에 잡동사니가 여러개 있지만, 정말 필요한 건 신분증, 신용카드 몇장, 그리고 소액의 현금이다. 나머진 거의 쓸일도 없고, 없어도 된다. 아차, 수퍼마켓 회원카드도 돈아끼려면 있어야 되겠구나.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electronic wallet 개념은 많이 화자되었고 크고 작은 회사들이 뭔가 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중인데 아직 보편화 된 건 별로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어느정도 보편화된 핸드폰 지불도 미국에선 아직 요원한 이야기다. 아직 아이폰에는 NFC 칩 조차 없다. 누군가 ‘가상의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서 완벽히 구현해 주는 걸 발명해내면 내가 앞장서서 쓸 것 같다. 수퍼마켓, 커피숖등의 회원카드등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 카드로 대체될 기미가 보인다. 얼마전 iOS 6 발표때 Passbook이라는 새로운 아이폰 앱이 소개되었는데, 이게 아마 그 효시가 될 것 같다. 이게 제대로 되기만 하면 내 지갑에서 카드 세네장은 금방 빠진다. (와이프의 경우 아마 15장 ^^) 현금은 점차 통용이 줄어들테니 향후에 현금 쓸 일이 거의 없기를 바랄뿐이다. 그래도 남은건 신분증. 이걸 근시일 내에 대체할 디지털 기술은 내가 별로 들어본게 없다. (사람 몸속에 ID 칩 넣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하지말자) 복사하기 정말 어려운 ‘디지털 신분증’을 스마트폰에 넣는 기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정부라는 기관은 사기업처럼 빨리빨리 움직이는 데가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혹시 얼굴 인식 기술이 아주 보편화 되면, 얼굴 자체가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관공서에 가서 뭔가 신청할때 신분증을 보여주는 대신, 기계 앞에 잠시 서서 얼굴 보여주면 내 신분증명 기록이 ‘짜잔~’ 나온다면 쿨 할텐데.

4) 스마트폰

여태껏 이야기 한 것 (시계, 열쇠, 지갑)들이 모두 스마트폰의 뭔가로 대체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으니, 아마 스마트폰이 주머니에서 사라지기는 쉬울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모르지, 구글 안경 같은 게 스마트폰의 기능을 죄다 대체한다면 바지속에서 찰랑거리는 마지막 남은 이놈 마저 없애 버릴 수 있을지도.  그렇게 되면 정말 널럴하게 빈 손으로, 빈 주머니로 외출 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홀가분해진다. “디지털이 선사하는 진정한 자유”같은 미래의 광고 문구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그 날이 오기전까진 앞주머니에서 찰랑거리고 뒷주머니에서 묵직한 놈들을 어떻게든 참아보기로 한다.

6 thoughts on “빈 손으로 외출하는 날을 꿈꾸며

  1.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걸리적 거리는 게 싫어서 거의 안 가지고 다니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저는 모두 가방에 넣고 다니는 정도? 폰은 mp3 기능에 시계 기능도 해야 되어서 주머니에 넣지만 그 외 모든 것은 가방 안에..

    그런데 위와 같이 하다가 스마트폰 잃어 버리면 어떻게 하실려고?ㅋㅋㅋ 집에도 못 들어가, 차도 못 타, 돈도 못 써, 자칫 낯선 곳에서 스마트폰 잃어 버리면 답도 없는 경우가 생길 지도.ㅋ

  2. 우리입장에서 다공감해~! 그런데 한가지 다른 의견은..(아마 여자들도 나와같은 생각일거야..) 맵시를 위해 여자들이 스마트폰에 모든걸 축약하는걸 좋아한다..가 아니라 그렇게 많은걸 들고나가야하기 때문에…명품백이 필요하다..로 귀결될것야 ㅎㅎ 아마 스마트폰 하나로 다 정리되는 세상이오면 많은 여자분들이 백을 사야할 명분을 설명할 길이 없어 섭섭해할수도 있을듯~!!

    1. ㅋㅋ 역시 유상이의 의견은 정곡을 찌르는 면이 있어. 여자들이 그렇게 주장할때 남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다 정리되는데 왜 명품백이 필요하냐라는 논리로 맞서야 되나?

  3. 저도 기혼이지만 반지 안 끼고 시계도 안 차고 오직 스마트폰, 자동차키, 그리고 지갑입니다 ㅎㅎ
    제 인생에 시계 찬 건 군대있을 때 뿐이고 예물로 받는다는 시계도 극구 사양했지요
    남자와 여자는 소지품 들고 다니는 것도 참 다른 것 같아요
    해외여행이나 단기어학연수 갈 때도 남자들 짐은 대체로 간단한데 여자들 짐은 혼자서 절대 못 끌고 다닐 양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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