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 Dirty little secret

오늘 국내 신문을 보니 모 대학교의 교수가 남의 논문을 거의 통째로 베껴서 발표했다가 발각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보도 되었다.  내 전공인 전기 전자공학에서 (IEEE 논문) 이런일이 일어나서 더 안타깝다.

이 기사를 보다가 문득 옛날 대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학생들간에 수도 없이 베껴내는 숙제들, 실험 리포트, 프로젝트 등등.  교수님들이나 조교들도 뻔히 알면서 단속하지도 않았고, 학생들도 워낙 흔한 일이라 죄책감도 없었던듯 하다. 나도 생각해 보면 자유로울수 없는 것이 좀 양심의 가책이 있었지만  서울대 1학년때  “예비 실험 리포트”라는 이상한(!) 리포트 쓰는걸 깜박했을때 막판에 친구 것을 베껴쓴 적이 있던 것 같으니 확실한 죄인이다.  내 리포트를 빌려주는 일도 허다했는데, 뭐 좀 찜찜하긴 했지만 친구들과의 관계유지가 더 중요했던지 대부분 빌려줬던 것 같다.  교수님들에 따라서 베껴내는 것을 단속하겠다고 엄포 놓는 교수님도 있었지만, 그 많았던 “숙제 표절” 가운데 적발이 되서 학사 경고등의 큰 문제를 겪었다는 이야기는 내 주위에서 대학 4년 내내 한번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이런 귀찮은 숙제는 적당히 베껴서 내면서 학점 관리하고, 남는 시간에 술 잘먹고 잘 노는 친구들이 “쿨”하게 인식되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유학을 나오고서야 남의 것을 베끼는게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대학교에서 과제물이나 시험등에서 부정행위가 확인될 경우 처해지는 벌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과목에서 낙제하는것은 물론 성적증명서에 낙제한 이유가 “Academic Dishonesty”라고 명시하기도 하고, 죄질이 안좋은 경우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이러한 기록은 성적증명서등에 고스란히 남기때문에 취직이나 대학원 진학할때도 불이익이 생길수 밖에 없다.   일순간에 그야말로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이젠 한국에서 외국으로 유학오는 사람도 굉장히 많고 세월도 많이 흘렀으니 좀 나아졌을 법 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한국 대학교내에서의 이런 부정행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5년전에 미국 동부의 한 학교에서 MBA를 할때도 한국학생들 간의 숙제 베끼기는 주위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룹 프로젝트 같은 것들도 아니고, 네가 한것과 내가 찾은 답을 한번 맞춰보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시간이 없으니  “니가 한것을 통째로 빌려달라”는 부탁들 말이다.  심지어는 과제물중에 자신의 리더쉽 스타일등을 되돌아보는 personal essay까지 보여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 어디 성격이나 도덕성이 크게 문제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름 한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직장에 다니다가 오신 분들이다.  나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정도니 가치관이 덜 형성된 것도 아니다.  뭐 일일이 물어보진 않았지만 사회에 대한 정의감도 다 있으신 분들일 것이다.  근데 유독 숙제 하나 베껴 내는 것쯤은 거의 “껌”이다.

뭐가 잘못 되었나? 당연히 교육이 문제다.

적어도 내또래의 한국 사람들은 어렸을때부터 남의 것을 표절하는 것은 도둑질과 마찬가지라는 교육을 제대로 받질 못한 것이다.  먹고사는데 바빠서 그랬는지, 심각하게 가르치지도 않았고, 일부 선생님들이 가르쳤다 하더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문제가 일어났을때 이것을 제대로 문제삼고 훈계,처벌하는 건 더더욱 드물었다.  미국인들이라고 뭐 우리나라사람보다 특히 도덕성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이라고 남의것 편하게 베끼는것 생각 안해봤겠나?  다만 그들은 어렸을때부터 교육을 받아왔다.  표절은 도둑질이고 아주 저질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런 이야기가 나온김에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와 관련한 문제들까지 논하고 싶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한마디만 하면 Intellectual property가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할 수가 없다.  이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5 thoughts on “표절 — Dirty little secret

  1. 좋은 글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무시되는 것들이 많이 있지. ^^;; 난 한남대교를 건너 시내로 들어갈 때 고가도로에 새치기하는 차량 행렬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갖는데.. 누군들 먼저 가고 싶지 않을까.. 남보더 적은 기다림으로 더 빨리 가려는 마음.. 배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

  2. 미국에도 차가 좀 밀리기 시작하면 새치기 하는 사람 많다. 나도 본의아니게 새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익숙치 않은 길에서 exit을 놓치면서 버벅거릴 경우야 ^^

  3. 교육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한 가지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평가’의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보면 사회구조적 요인과 맞물려 학생에 대한 평가가 성적위주, 결과위주로 짜여져 있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공정성을 기한다는 이유로 객관식 시험이 중고교시절 대부분이었고 대학입학시험도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을 이어오며 객관식이 대부분이며 그나마 도입되었던 주관식 위주의 대학별고사나 논술, 면접도 폐지되거나 비중이 약해졌죠.
    그러다보니 ‘성공’의 길은 ‘좋은 결과’를 얻는 것 자체가 되어버렸고 대학에서도 직접 써서 내야 하는 시험들은 그냥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발판 정도로 취급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진짜 내 것’이 무엇인지 만들어야 할 동기부여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것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평가받는 제도 자체가 없으니까요.
    미국의 경우 중고교 시절부터 독후감이나 에세이류의 숙제가 많다고 합니다. 대학입학 때의 지원서, 추천서 등도 지원자라는 사람이 누군지를 평가하는 수단이라고 하고요. 아시다시피 대학원 지원 떄는 더욱 중요하죠. 한국인, 중국인 등이 GRE나 GMAT 점수에 목을 매지만 입학 후에는 모두들 알다시피 수강내역과 그 GPA, 그리고 지원서(SoP)가 더욱 중요한 평가기준이죠.
    논술의 취지가 퇴색된 가장 큰 이유도 평소에 이런 형식의 글을 쓸 일이 없던 고교생들이 사교육기관에서 비슷한 포맷으로 글을 배우다보니 변별력이 없어지고 이런 식의 평가에 익숙치 않은 학부모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운영이 어려워진 탓이라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엄격한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자신만의 글을 쓰고 성과를 쌓아 평가받는 제도가 갖추어져서 ‘남의 것’을 ‘내 것’으로 가져오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꺼려하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1.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그런지 객관식 시험 같은 아주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면 사람들이 인정 안하는 분위기죠. 논술이나 에세이등을 평가하는 대학이나 기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도 강하고, 에세이 대필등의 방법으로 시스템을 유린하는 행위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양심의 문제이고, 신뢰의 문제이고, 도덕의 문제인데 아직 갈길이 멀죠,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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