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언: 2011년 7월에 해병대 사건이 터졌을때 착찹한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썼던 글인데 여기 블로그로 옮깁니다. 얼마전 동급생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소년의 이야기는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단순히 아이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왕따 문제로 끝날게 아니고,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우리나라 사회 곳곳에 만연한 ‘획일주의’라는 저질문화가 초래하는 크나큰 병폐입니다. 사회 발전의 엄청난 장애요소이기도 하지요. 외국에 나와서 소수민족으로 몇년만 살아보면 다양성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로 피부로 느낍니다. 저도 한국에서 자랄때는 제가 획일주의에 길들여져가고 있다는걸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집단괴롭힘 이거 아주 큰 문제 입니다. 특히 제가 아래서도 지적했듯이 군대나 학교 같이 폐쇄된 조직에서의 집단괴롭힘은 아주 위험하고 일련의 사건에서 나타나듯이 준 살인행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터진 해병대 사건을 보며 마음이 착찹하다.
조직내 왕따, 집단 괴롭히기, 기수 열외 이런 문제가 해병대에만 있는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 만연한건 모두 잘 아는 사실일거다. 단지 군이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총기 사건으로 이어져 크게 일이 터졌을 뿐, 근본적인 문제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직적 괴롭힘’은 우리나라 온갖 조직에 널려 있다. 상대적으로 덜 폐쇄 되어있고 선택의 여지가 있는 조직 (예를 들면 대학교의 동아리등)에서도 왕따는 만연해 있지만 이런경우 당사자는 그나마 선택의 여지가 있으므로 (동아리 탈퇴등) 좀 나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선택의 경우가 없는 때는 정말 위험한 것이다. 폐쇄되어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조직 (예를 들면 중고등 학교나 군대)에서 사회적 약자가 이런 괴롭힘을 당한다면 곧 인간의 한계 상황에 몰리게 되고 극한 행동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런말 하면 욕 먹겠지만, 난 우리나라가 엄청난 경제 성장을 하고 예전에 비하면 민주화도 많이 이루었지만, 아직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왜냐, 답은 간단하다.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가 제대로 보호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때, 어떤 사회가 얼마나 성숙하고 ‘선진화’ 되었냐의 척도는 이러하다. 조직내에서 약자나 소수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제도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어떻게 보호되며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그 사회에서 얼마나 쉽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걸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얼마만큼 다양성 (diversity)이 인정되고 장려되는가 하는 문제다. 그림이 그려지나? 우리나라 만큼 획일주의가 만연해 있는 나라가 드물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 아주 작은 예로, 가끔 우리나라에선 성인 남자가 수염만 길러도 쉽사리 핀잔을 듣는다. 우리나라에선 조직의 강자/다수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기준하여 ‘획일’이 성립되고 그에 어긋나는 것들은 가차없이 잘려나간다는 것을. 여기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이번에 불거져 나온 기수열외가 뭔가? 누군가에 정해진 획일 (술마시기, 고문에 가까운 기합 견디기) 에 못 따라가는 인간들을 벼랑끝으로 몰아내고자 만든 것 아닌가? 이러한 방법으로 사회적 강자는 자신의 입지를 더 공고히 한다고 생각하고 고통받는 약자를 보며 동정은 커녕 희열을 느낀다. 이런 추악스러움이 인간 본성에 내재한다면 정말 슬픈일이다.
그럼 외국, 소위 선진국에선 약자나 소수가 진짜 잘 보호되는가라고 묻는 이도 있을 게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학교에서 왕따 (보통 bullying이라 함)는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차이점은 간단하다. 미국에선 이런걸 쉬쉬하고 덮으려 하지 않고 철저한 정책 (흔히 말하는 zero tolerance for bullies)을 세워놓고 많이들 노력한다. 선생, 학부모들의 관심도나 감시체계도 한국에서 느끼는 것 보다 훨씬 그 강도가 높다. 더 나아가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 장려는 이제 미국의 문화로 많이 자리 잡았다. 이건 하루 아침에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미국에서 보니 어렸을때 부터 그렇게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모든이는 다르다”는 것을. 대학교나 동네 community, 회사 등에 보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위한 각종 장치와 제도가 많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보게 된다. 직장내 여성들을 위한 모임, 장애인을 위한 특수 시설들, 성적 소수자를 위한 모임, 소수민족 사람들을 채용하는 제도 등등. 어떤때는 그들에 대한 배려가 배려를 넘어 “특혜”로 보일만큼 좋은 경우도 있다. 여기서 입아프게 미국 찬양하자는게 아니다. 미국도 아직 어떻게 보면 갈길이 멀다. (정부, 회사 요직들은 대부분 백인 남자가 차지하는 등) 하지만 배울건 많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장려. 이건 그들의 힘의 원천일 수도 있다.
“톨레랑스” — 이게 옛날 윤리 과목 시간엔가 첨에 봤을땐 신기한(?) 단어다라고만 생각하고 쉽게 넘어 갔는데 이제와 지나고 보니 이게 엄청 중요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