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하는가?

VC에서 일하다보니 스타트업 밸류에이션 (valuation)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다 . 물어보시는 분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뭔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시는데 사실 속시원한 대답이 없어서 은근 미안할 때가 많다. 밸류에이션이라는게 무슨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답도 없으며, 경우에 따라 천차 만별이니 뭐라 말하기 어렵다. 내가 산정한 밸류에이션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경험있는 사람이 한게 꼭 더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하나의 상품 가치를 매기고 적정 가격을 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여러 상품, 서비스, 사람이 엮여 있는 하나의 기업은 어떻겠는가. 큰 기업을 밸류에이션 하는 것은 MBA에 한 과목으로 있을 정도다.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은 그보다는 좀 더 간단하겠지만, 이것도 꽤 여러가지 요소가 있어서 일일이 나열할려면 블로그를 몇번 정도는 써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한가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최종 밸류에이션은 사람들간의 네고라는 점이다. 즉, 주식을 팔고 사는 사람이 특정 밸류에이션에 만족하고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게 그 회사의 현재 가치다. 예를 들어, 펀드 레이징을 하는 사람이 다급해서 낮은 가격에 주식을 팔면 회사 매출이 지금 얼마이건 간에 그 낮은 가격이 현재 밸류에이션이다.  사람들간의 네고이니 전혀 정량적이지 않은 ‘감정’이라는 놈도 종종 작용하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과학적’이겠는가?

위 제목에는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하는가?”로 썼지만, 실제로는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가 좀 더 현실성 있는 질문이다. 밸류에이션은 혼자 책상에 앉아 엑셀돌려서 값을 산출해 내는 것이 아니고 투자를 하는 사람과 투자를 받는 사람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밸류에이션이 결정되는 방법은 좀 경우마다 다른데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 몇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헌데 명심하시라 – 이런 저런 방법이 있지만 결국은 네고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돈주고 지분 먹기]

마땅한 용어가 없어 이렇게 불러봤다. 회사의 아주 초창기에는 사람과 아이디어만 있고 아직 상품도 매출도 없다. 그러니 뭔가 밸류에이션의 근거로 삼을 만한 껀덕지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를 한번 보자. 3명으로 구성된 창업자 팀이 있는데 그들이 가진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첫 상품을 만들어내는데까지 필요한 돈이 20억이다. 여기에 관심을 보이며 투자하려는 한 VC가 찾아와서는 “우리가 20억을 투자해 줄 수 있고 그 댓가로 지분 40%를 원한다”며 제안을 해왔다. 주식을 파는 입장인 창업자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여기서 바로 밸류에이션이 결정이 난다 (이경우, 포스트 머니 기준으로 20억 나누기 0.4 해서 50억 밸류에이션). 이렇게 초기 (Series A) 투자를 할때 실리콘밸리 VC들은 보통 요구하는 지분율이 대충 있다. 이 회사가 잘 되었을 때 의미있는 exit을 하려면 보통 20% 안팎으로 지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들이 있어서, 나중에 희석될 것을 감안, 초기에 30~40% 정도 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감이 오는가? 전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물론 창업자가 과거에 성공 경험이 있다거나, 업계에서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거나 하면 당연히 밸류에이션이 높아지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초창기에 필요한 자금과, 투자자가 요구하는 지분율 이 두가지로 거의 대충 결정나버린다. 그럼 혹자는 밸류에이션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 팀은 초기 자금이 1000억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VC들은 어떤 산업/사업이 돈이 얼만큼 들어가는지를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뻥은 잘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VC들이 초기에 그렇게 큰 돈을 투자하지도 않는다. 모바일 앱만드는 신생 회사가 처음부터 1000억을 펀드레이징 한다고 하면 VC들은 아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부분 도망갈 것이다.

[사용자 수 기준]

인터넷 기업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삼는 밸류에이션 방법도 흔히 본다. 즉, 펀딩을 받으려는 회사가 이미 제품을 출시하여서 사용자가 어느정도 있을 경우,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간 사용자가 50만명이고, 1인당 가치를 2만원으로 친다면, 50만 곱하기 2만원 = 100억원으로 계산 할 수 있다. 내가 2만원으로 예를 든 숫자는 ‘user multiple’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숫자는 업종에 따라 다르고 같은 업종이라도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며, 또 회사가 성장 중이면 더 쳐 줄 수 밖에 없는 변동이 심한 숫자다. User multiple을 가늠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동종 업계 상장 회사의 시가 총액과 그 회사의 사용자 수를 조사하면 된다. 예를 들어, 현재 페이스북의 시총이 $64B 이고 월간 사용자가 대략 1B (10억) 정도이니, 페이스북의 user multiple은 $64불이다.  상당히 과학적인 것 같지만 실제는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 밖에 안된다 (실토하자면 VC 생활 5년 하는 동안 엑셀 돌려서 복잡한 모델로 밸류에이션을 도출해 낸 적이 한번도 없다). User multiple이 도입된 계기는 인터넷 기업들이 초기에 하도 돈을 못벌어서 였다. 돈을 벌고 있다면 수익에 근거해서 기업 가치 산정을 할텐데, 사용자는 많아도 비지니스 모델이 없어서 돈을 못벌고 있으니 수익이나 매출 대신 사용자 수를 그 대안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인스타그램이 페이스북에 인수 발표가 나던 시점에 월 사용자가 약 3천만 정도로 알려져 있었고, 매출은 하나도 없었다. 인수 가격을 $1B 이라고 가정하면 (나중에 페이스북 주식이 떨어져서 실제는 이보다 낮음) 대략 인스타그램 사용자 1명의 가치를 33불로 보는 것이다. 매출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매출액 기준]

스타트업이 만약 어느정도의 안정적인 매출이 있다면, 이걸 밸류에이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소위 revenue multiple로 불리는 게 있는데 현 연간 매출액에 몇배를 쳐주는 가 하는 것이다. Revenue multiple도 인더스트리마다 다르고, 경기 상황따라 변동을 타는 등 늘상 변하는 숫자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애플의 매출은 연간 약 $165B 이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가 총액은 $391B 인데 이중 현금 보유액 $137B을 빼고 나면 순수 enterprise value는 $254B이다. 이것을 매출액으로 나누면 애플의 revenue multiple은 1.54 정도의 숫자가 나온다 (현금 보유액을 빼는게 맞냐는 논외에서 일단 제외한다). 애플의 주식이 저평가네 고평가네 말이 많지만, 1.5 정도의 revenue multiple은 다른 인더스트리에 비해서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애플 주식이 지금 싸니 많이들 사두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암튼 매출액이 있는 스타트업은 일단 revenue multiple로 한번 대충 밸류에이션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매출이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 고정적이지 않다든지 하면 별 의미 없는 게 되고 만다.

[이익 기준]

스타트업이 운좋게도(!) 이익을 내고 있다면 밸류에이션에 좀 더 객관적인 자료가 생기는 셈이다. 주식 시장에서 P/E Ratio 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게 별게 아니고 현재 회사의 가치를 순익으로 나눈 값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profit multiple 같은 것이다. 이 녀석도 위와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다르고, 경제 상황마다 다르며, 당연히 인더스트리마다 다르다. 하지만 주식시장등을 통해서 P/E ratio 들에 대한 자료는 많아서 참고할 만한게 많다. 지금 찾아보니 구글은 약 24, 인텔은 11.7 정도이다. 이익을 기준으로 밸류에이션을 하는 방법이 그나마 좀 객관적이긴 한데, 실용성이 떨어진다는게 문제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중에 이익을 내는 회사가 별로 없고, 이익을 내는 스타트업은 펀드레이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으니 밸류에이션을 할 일이 없다 (상장되거나 M&A가 아닌한).

[저번 밸류에이션으로 퉁치기]

우리 속담중에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스타트업도 첫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 스타트업이 재투자 (Series B)를 받게 될 경우, 항상 저번 1차 투자 (Series A) 밸류에이션이 커다란 기준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Series A에서 50억원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받은지 2년 후에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제품을 출시해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할 경우, Series B에서는 당연히 50억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 받을 가능성이 크다 (‘up round’라 불림). 반대로 상황이 악화되었다면 이전보다 더 낮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는 소위 ‘down round’ 라는 것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 중간쯤이여서 그럭저럭 버텨온 경우에는 지난 번과 같은 밸류에이션으로 퉁치는 ‘flat round’를 하기도 한다. 보시다시피 모든게 저번 밸류에이션 기준이다. 저번에 투자 받은 돈으로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느냐, 그만한 가치를 창출해 냈느냐가 주요 관건이다. 그럼 첫 밸류에이션이 높으면 사업가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Series A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으면 Series B 투자를 검토하는 VC는 굉장히 부담된다. ‘저 회사 처음부터 저렇게 높은 가격이였는데 지금은 얼마나 높게 부를까?’ 하며 지레 짐작하고 꺼리기 때문이다. 가격을 낮추는 down round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업계의 관례상 기존 투자자들이 down round는 대부분 꺼려한다. 그러니까 첫단추가 중요한데, 요는 너무 낮게 꿰지도 말고, 높게 꿰지도 말고, 적당한 위치에 꿰는게 최고다.

[기타]

이밖에도 몇가지 더 언급할 수 있는게 있다. 나의 계산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제 3의 투자자가 나타나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르며 물을 흐려 버리면 경우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로 거기에 따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핫 딜’일 경우 투자자들끼리 이렇게 bidding이 붙어버리면 밸류에이션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그냥 부르는게 값이다. 또 한가지 방법은 최근에 펀딩을 받았던 동종 업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참고하는 것이다. ‘내친구가 창업한 모 게임회사가 저정도 가격에 펀딩 받았으니, 우리 회사도 그쯤은 되겠지’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도 그 한 예이다. 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회사마다 속사정은 다 다르니 단순비교는 항상 위험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마쳐야 겠다. 요는 밸류에이션을 대충 가늠해 보기 위해서 참조할만한 방법은 이런 저런 것들이 있지만, 정확한 방법은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은 쌍방간에 네고 하기 나름이라는 거다. 그리고 펀딩 받을때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지금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되려 높은 밸류에이션이 위에선 말한대로 나중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업가 입장에서 밸류에이션이 크면 클수록 무조건 좋은 때는 회사가 상장되거나 M&A 될 때이다. 그 전에는 현금화가 안되는 그저 장부상의 가치일 뿐이다.

[심화학습]

칸 아카데미에 Pre-money, Post-money 같은 개념을 예를 들어서 아주 쉽게 설명한 비디오가 있다. 밸류에이션의 기본을 10분만에 터득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강의이다.

썬 마피아

아마 많은 사람이 “페이팔 (Paypal) 마피아”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페이팔 창업자들과 직원들이 후에 그들의 인맥과 경험을 바탕으로 Tesla, Linkedin, YouTube, Yelp와 같이 훌륭한 스타트업을 세우고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말이 생긴 것이다 (페이팔 마피아에 관해서는 조성문님이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으니 참조).  페이팔보다 한세대 앞서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 있는 인재를 많이 배출한 회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Sun Microsystems)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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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은 2009년 경영난끝에 오라클에 인수되어 지금은 사라진 회사지만, 한때는 워크스테이션 업계를 주름잡던 정말 잘나가는 회사였다. 내가 개발자로 일할 무렵인 2000년대 초반만해도 썬 워크스테이션을 책상에 두고 솔라리스 OS 환경에서 작업하는게 보통이였다. 그당시 공학도나 엔지니어였던 사람은 썬 제품을 이런 저런 경로로 다 써봤을 거다. 꽤 안정적인 OS로 기억되는 솔라리스뿐 아니라, Java 언어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SPARC라는 자체 프로세서까지 만들던 회사였다. 암튼 내 기억에 2000년대 전반부까지만 해도 썬은 정말 잘나가는 회사였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고 NeXT를 창업하며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는 동영상이 있는데, 거기에서 잡스는 NeXT가 어떻게 썬과 차별화되는지, 어떻게 썬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전략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디오 링크 – 추천). 그만큼 업계의 벤치마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썬은 확실하고 훌륭한 회사였다. 훌륭한 회사뒤에는 항상 훌륭한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지금 텍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과거 경력을 보다보니 유난히 썬에서 일했던 사람이 많고, 그들간의 인연도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럼 각설하고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보자.

앤디 벡톨샤임 (Andy Bechtolsheim): 썬의 첫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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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의 공동 창업자는 모두 4명이지만, 이사람이 1호 창업멤버라고 할 수 있다. 독일태생인 Bechtolsheim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실리콘 밸리로 건너와 인텔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대학교의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SUN (Stanford University Network – 알고 보면 약간 촌스런 이름)이라는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이것을 발판으로 창업을 하기로 결심, 곧 학교를 떠난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썬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그는 직원번호 1번을 차지하게 된다. 그는 95년 썬을 떠날때까지 하드웨어 디자인을 총괄하는 일을 하였고 썬의 성공으로 많은 돈도 벌게 되었다. 그 후로 투자 활동도 많이 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투자는 98년 두명의 스탠포드 대학원생이 찾아와 검색엔진회사를 창업하겠다고 해서 십만불짜리 수표를 써 준 것이였다 (수표를 끊어주고 이 셋은 자축하러 버거킹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회사는 다름아닌 구글이고, 그가 투자한 십만불은 나중에 몇십억불의 가치로 늘어났으니 아마 벤처 투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중 하나일 것이다. Bechtolsheim은 지금도 엔젤 투자, 강연 활동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

비노드 코슬라 (Vinod Khosla): 썬의 창업자 & 벤처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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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osla는 지금은 벤처캐피탈리스트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그는 썬의 창업멤버였고 CEO였다. 그는 인도의 IIT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Biomedical 공학 석사를 한후, 실리콘 밸리로 건너와 스탠포드에서 MBA를 마쳤다. 그리고 나서 Daisy Systems라는 반도체 디자인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던중 스탠포드 박사과정 학생인 Bechtolsheim을 만나 썬 창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는 썬 초창기인 82년부터 CEO로 일하다가 비교적 짧은 기간인 2년만에 회사를 떠나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86년 그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명성의 Kleiner Perkins VC에 합류하고, 여기서 Juniper Networks 같은 곳에 투자하여 큰 성공도 거두고 명성도 쌓게 된다. 2004년 Kleiner Perkins에서 나와서 자신의 이름을 딴 Khosla Ventures라는 VC를 만들어 독립하였고, 지금도 클린텍, IT 분야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가 이전에 어디선가 강연하던 내용중 인상적인 말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썬에서 CEO로 일할때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자신은 CEO라기 보다는 “glorified recruiter (허울좋은 리크루터)”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타이틀은 CEO 였지만 시간의 반이상은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발벗고 뛰어다니는데 썼다는 말이다. 스타트업 초기에 좋은 인재 영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걸 그는 잘 알고 있었던거다.

스캇 맥닐리 (Scott McNealy): 썬의 창업자 이자 오랜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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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Nealy는 Vinod Khosla의 스탠포드 MBA 클래스메이트이자 룸메이트였다. 스탠포드 졸업후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Khosla와의 인연으로 Bechtolsheim과 의기투합하여 썬을 창업하게 된다. 그는 84년 Khosla로부터 CEO자리를 물려받은 후 2006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썬을 이끌며 키워온 인물이다. 썬이 정말 잘나가던 시기에 CEO였으니 그만큼 주목받는 인물이였고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사업가 였다고 할 수 있다. 썬 이후의 행보는 잘 모르겠다.

빌 조이(Bill Joy): 썬의 창업자이자 천재 프로그래머

사진만 봐도 보통사람이 아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Bill Joy는,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 등장해서 더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제대로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있다는 이론의 예로 등장하는 사람인데, 천재 프로그래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버클리 박사과정에 있는동안 모든 유닉스 시스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BSD Unix의 주 개발자였다 (여러분이 쓰고 있을 iOS나 Android의 밑바탕은 모두 리눅스이고, 리눅스의 시초는 유닉스다). 유닉스 환경에서 대표적인 텍스트 에디터인 vi를 주말만에 썼다는 전설도 있고, 대학원 시절 인터넷 프로토콜인 TCP/IP를 혼자 만들기도 하였다. 암튼 Bill Joy는 다른 세명의 창업자보다는 6개월 정도 늦었지만 버클리를 떠나  썬에 공동창업자 자격으로 합류하게 된다. 그는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와 버클리 대학원 동기이자 친한 친구였는데, 이런 인연으로 에릭 슈미트를 후에 썬으로 데리고 왔고, 에릭 슈미트는 훗날 CTO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빌 조이는 2003년 썬을 떠난후 Vinod Khosla처럼 Kleiner Perkins에 합류하여 벤처캐피탈리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 썬의 CTO, 그리고 구글 CEO

eric schmidt

몇년전에 Bill Joy가 대담자로 나온 한 행사에 간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웃라이어를 막 읽었던 차라, Bill Joy에 대한 존경심과 호기심이 가득해서 거의 맨 앞줄에서 눈을 부릅뜨고 경청하였다. 행사가 끝날무렵 행사장 맨 뒤켠에서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낯익은 사람을 봤다. 다름아닌 구글 CEO인 에릭 슈미트였다. ‘아니 이런 거물 아저씨가 연사도 아닌데 여기는 왜 왔으며, 그것도 그냥 뒤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다니!’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빌 조이와 에릭 슈미트간의 인연을 몰랐었는데, 나중에 두사람이 대학원 친구였던 사실을 알고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옛친구 얼굴도 볼 겸 잠깐 들른 것이리라. 에릭 슈미트는 작년 한국 연세대에서 강연할때 자신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빌 조이와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암튼 그는 친구따라 썬에 가서 승진을 거듭하여 CTO자리에 까지 오르고, 후에 회사를 옮겨 Novell의 CEO로 일하다가, 구글의 CEO가 되어 초대박을 터뜨린 인물이다. 아마 에릭 슈미트가 Larry Page와 Sergey Brin과 연결된 것도, 썬의 창업자이자 구글의 투자자였던 Bechtolsheim이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했을 수도 있을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캐롤 바츠 (Carol Bartz): 썬의 부사장, 그리고 야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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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z는 실리콘 밸리의 흔치 않은 여성 CEO로, 공개 석상에서 f- word 같은 폭탄도 서슴없이 날릴 정도의 거친 입담으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녀는 썬에서 초창기부터 10년간 일했고 나중에는 Worldwide Field Operation (주로 영업, 기술지원 조직)을 총괄하는 부사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92년에 AutoDesk의 CEO로 옮겨가며 커리어 전성기를 맞게 된다. AutoDesk의 CEO로 재직한 14년 동안 회사 매출을 $300M에서 $1.5B 까지 끌어올리는 업적을 세웠다. Bartz는 AutoDesk의 CEO로 부임하기 며칠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암수술후 7개월간 그 험난한 화학약물치료(chemotherapy)를 받으면서도 풀타임으로 일하며 암을 이겨낸 이야기는 실리콘 밸리에서 유명하다. 2009년, 난관에 봉착한 야후의 CEO로 부임하지만 회사를 되돌리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2011년 물러나게 된다.

존 도어 (John Doerr): 썬의 투자자이자 전설적인 VC

john doerr

존 도어는 썬에서 직접 일하지는 않았지만, 썬의 초기 투자자이다. 그는 VC업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전설적인 인물로, 그가 속한 Kleiner Perkins VC가 오늘날 최고 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성공한 벤처투자를 다 열거하려면 글이 좀 길어지겠지만, 초대박에 속하는 회사만 몇개 꼽으라면 썬,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 등이 있다.  존 도어는 82년 썬에 초기 투자를 하게 되어 크게 성공하게 되고, 이 인연으로 맺어진 썬의 창업자였던 Vinod Khosla와 Bill Joy를 후에 자기 회사로 영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 구글에 투자하게 되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는데, 여기에도 썬에서 맺어진 인연이 위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앞서 말한대로 썬의 창업자 Bechtolsheim가 구글의 첫 엔젤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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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 마피아”라는 말은 내가 그냥 지어낸 말이다. 위에 열거한 인물들은 지금 대부분 50대 후반 ~ 60대로, 30대~4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루는 페이팔 마피아보다는 한세대 윗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반쯤 은퇴한 사람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썬이라는 하나의 훌륭한 회사만 봐도, 회사의 성장과 성공을 통해 많은 인재와 부자가 나오고, 그들간의 끈끈한 네크워크도 만들어지며, 그들이 후대 창업가들에게 투자 및 이런 저런 영향과 도움을 주는걸 보면, 실리콘밸리의 선순환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것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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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 창업초기의 창업자 4인방 – (왼편부터) 비노드 코슬라, 빌 조이, 앤디 벡톨샤임, 스캇 맥닐리

스마트 TV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

나는 텍 업계에 있는 사람치곤 꽤 구식 TV를 쓰고 있다. 2003년에 산 소니의 50인치 LCD 프로젝션 TV이다. 이게 지금의 LCD TV처럼 평판이 아니고 뒤가 불룩 튀어나온 TV로, 예전의 DLP TV와 경쟁하던 제품이다. 10년이 되어가지만 HD이고 화질은 아직까지 참 좋아서 큰 불만없이 쓰고 있다. 오히려 요새 나오는 최고급 TV 보다 화질이 부드러운 것 같아 눈이 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뒤에 꼽는 단자에 HDMI가 없는게 큰 단점이지만, 그냥 RGB 인풋과 DVI만으로도 케이블 박스랑 Wii 연결에는 무리가 없다. 이 TV를 사고 이사도 3번이나 했으니 (장거리 이사 2번 포함) 그동안  TV를 업그레이드 할까 하는 생각도 몇번 했었다. 하지만 딱히 새 TV를 사야할 필요를 못느꼈다. 정말 얇게 나온 슬림 TV, 3D TV, 스마트 TV등 갖가지 상품들이 나왔지만, 어느것 하나 내 호주머니를 열지 못했다. 내가 텍 제품 사는데 그렇게 인색한 사람은 아닌데도 말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새 TV를 산다고 해도, 내 TV 보는 경험에 큰 향상이 없을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듯 하다. 이미 TV는 나에겐 그저 집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일 뿐이다.

우리집에 있는 10년된 TV

우리집에 있는 10년된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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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트위터를 통해 이찬진 대표님이 ‘스마트 TV가 안되는 이유, 또  앞으로 될 것 같은 이유’를 수집하여 올리신 글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평범한 소비자 관점에서 보았을때 스마트 TV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아래 3가지만 요약하였다. (이찬진 대표님이 요약하신 항목들과 중복되는 것도 있음)

1) TV 앞에서는 사람들 마인드가 달라진다

거짓말 좀 보태면 TV 사용자의 99%는 리모콘에서 딱 버튼 세개만 쓴다  - 전원, 볼륨, 채널. 그걸로 끝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키보드와 마우스로 온갖 복잡한 작업을 즐겨하던 사람도, TV 앞에만 앉으면 갑자기 귀차니즘의 화신으로 변한다. TV에서 뭔가 입력하고, 찾고, 조작한다는 그 자체가 그냥 싫은 것이다. 하루종일 시달렸던 일과에서 벗어나 TV 앞 소파에 반쯤 누워서 군것질도 해가면서 잠시 ‘두뇌휴식’을 하고 싶은데, 이 시간  조차 뭔가 ‘스마트’하게 기계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TV가 정말 스마트해져서 내가 원하는 걸 미리미리 알아서 척척 찾아서 보여주기 전까진 사실 스마트 TV는 말이 스마트이지, 그냥 내가 이런 저런 인풋을 많이 줘야하는 요구사항 많은 TV에 불과하다.  사용자는 말한다 — 나도 좀 쉬자.

2) 얼리 어답터들이 TV를 별로 안본다

스마트 TV 같이 어떤 새로운 제품이 메인 스트림으로 가기 위해선 초기에 얼리 어답터들이 사용하면서 입소문이 나고 퍼져야 되는데, 내 생각에 TV라는 종목은 이 점에서 확실히 불리해 보인다. 얼리 어답터들은 주로 테크에 관심이 많고 소득도 중산층 이상 되는 사람들로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점점 TV를 멀리하고 있다. 대부분 바쁜 사람들이니 TV 볼시간이 없는 것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여가시간도 컴퓨터나 태블릿, 스마트폰 앞에서 보내기 일쑤다. 내 경우만 봐도 10년전과 비교하면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웬만한 콘텐츠가 온라인상에서 온디맨드로 가능하니, 실시간으로 봐야 하는 스포츠 중계와 선거 개표방송등을 제외하면 굳이 TV를 틀어야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인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은 5시간 이상이라 한다)  암튼 스마트 TV는 “결국은 TV”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초기 사용자를 끌어들이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3) TV를 교체하는 사이클이 너무 길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와는 달리 TV를 2~3년마다 바꾸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자주 바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유지되면 좋겠다.)  최근 통계를 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TV교체 주기가 현재 대략 7년 정도이다. 아무리 최신식 기능이라고 해도 6개월이면 구식이 되는 세상이니, 5년~10년씩 쓰는 제품에 들어간 ‘스마트’기능은 그저 잠시 즐거운 장난감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뭐 일부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TV 앞에 앉아서 검색조차 하기 귀찮아 하는 사람들이 TV에 들어가는 OS를 업데이트 할까? 스마트폰이야 OS 잘못 건드리면 서비스센터에 가지고 가서 상담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50인치 TV가 먹통이 되는 날엔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참고로, 미국은 서비스센터 직원을 집으로 부르려먼 무척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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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Costco 매장에 가보았더니, 진열해논 TV중 대부분이 스마트 TV였다.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스마트 TV라 부를 수 있는지는 애매하지만, 간단한 인터넷이나 넷플릭스 정도는 기본적으로 지원이 되는 모델이 많았다.  하지만 그 TV를 사는 사람중에 ‘스마트 기능’을 꾸준히 사용하는 사람이 몇 %나 될까 궁금했다. 그냥 시중에 나와 있는 TV가 죄다 “스마트 TV”이니 어쩔수 없이 그중에 하나 사긴 하겠지만, 실제 사용행태는 평범한 TV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큰 웃돈을 얹어주면서까지 스마트 TV를 사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스마트폰의 경우, 보통 핸드폰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TV 제조사나 OS 공급자는 매년 상승하는 스마트 TV 판매대수를 자랑하고 싶겠지만, 난 그에 앞서 실제 그 TV들이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TV로 사용되고 있는지, 또 사람들이 그에 대한 프리미엄을 지급할 용의가 있는지에 대한 조사가 보고 싶다.

이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스마트 TV를 쓰고 계신 분도 많을 것이고, 나와 반대의견을 가진 분도 계실 것이다 (반대 의견 적극 환영). 스마트 TV를 제대로 써보지도 않은 내가 이런 글을 올리는게 좀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시일 내에 스마트 TV를 adopt할 의향이 없는 나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같아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는 의미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예전에 한 친한 동료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 (그 친구도 어디서 들은 말인 듯)

“A product category in consumer electronics doesn’t exist… until Apple creates one (소비자 가전에서 제품군이란건 존재하지 않지. 애플이 만들어내기 전까진)”

스마트 TV가 지금 같은 형태와 사용 모델이면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혹시 아나? 애플이든 누구든 나와서 뭔가 확 시원하게 바꿔줄지. 그렇게 되면 또 블로그를 쓰리라.

회사의 조직 쉽게 이해하기

이글에서 말하려는 회사 조직 이해하기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관점이다. 체계적인 지식은 경영학의 ‘조직관리’나 ‘인사관리’ 같은 과목에서 배울수 있겠지만, 배워도 금방 까먹게 되고 현실과 차이가 있는 경우도 많다. 나도 MBA할때 이런 과목을 이수하긴 하였으나 지금 기억에 남는건 수업이 무척 지루했다는 것 밖에 없다.

나는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잠깐의 인턴사원 시절빼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20명짜리 스타트업에도 있어봤고 8만여명 직원의 인텔에도 있어봤다. 물론 그 중간크기의 회사들에도 있어봤다. 내가 직접 경험한 회사들뿐 아니라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보게된 회사는 훨씬 많다. 나는 이런 직/간접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회사 조직을 아래와 같이 아주 간단하게 3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다.

1) 만드는 조직 – 주로 R&D, 개발팀, 프로덕트팀 등으로 불리는 조직이다. 회사가 제조업이든 소프트웨어업이든 당연히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좀 특수한 경우 (예를 들어 투자회사)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회사에는 뭔가 ‘만드는’ 조직이 있다. 인텔에는 수만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칩설계를 하고 있고 많은 수의 공장 근로자들이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은 인터넷 서비스회사에도 당연히 코딩하고 테스팅하는 조직들이 있다. 치킨집을 한다고 해도 주방에서 누군가가 치킨을 구워야 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는 이 조직의 역량이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외주를 주기 어렵다.

2) 파는 조직 – 영업, 세일즈, 마케팅, 필드 엔지니어등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자동차 영업사원과 구글의 마케터는 역할이 많이 다르겠지만, 결국은 우리 제품을 사람들이 더 많이 사고, 많이 쓰게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큰 관점에서는 한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내맘대로 생각한다. 이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에게 이런 저런 input을 줄 순 있지만 직접적으로 물건 만드는데 관여하지는 않는다. (관여할라고 하면 개발자들한데 ‘꺼지라’는 핀잔듣기 십상이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아직 팔 물건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 조직이 간과되기 쉽지만, 제대로된 물건을 만들려면 잠재적 소비자를 만나서 그들의 의견을 제대로 종합/분석/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즉 매출이 없거나 적을때도 이런 핵심적인 역할을 해 줄 사람 한두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3) 서포트 조직 – 법무팀, 인사팀, IT, 재무팀등이 이에 속한다. Back office function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주로 회사내에서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무를 띠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회사의 핵심 역량과는 거리가 있으므로 외주를 줄려면 줄 수 있다. 예를들어 법률관계일은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초기에는 외부 변호사를 쓰게되고, 상장이 되거나 어느정도 규모가 되면 자체 법무팀을 꾸리게 된다 (일예로 삼성전자의 법무팀은 국내 웬만한 로펌보다도 크다고 함). IT 분야도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outsourcing할 수 있는 길이 아주 많아졌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AWS 같은 것을 쓰면 자체 서버관리등의 부담이 덜어지게되어, 인력이나 시설에 들어가는 초기 투자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암튼 서포트 조직은 비용과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여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외주를 줄지 아니면 내부적으로 해결할지 결정하면 되는 경우가 많다.

위 세가지 조직에서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제품을 ‘기획하는 조직’일 것이다. 즉 어떤 제품을 만들어서 어떤 시장을 공략할지를 정하는 일을 하는 부서일텐데, 회사에 따라서 ‘만드는 조직’에 편입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CSO 나 CTO 조직을 따로 두어서 별도로 운영하기도 한다. 회사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역할이여서 스타트업에서는 보통 CEO가 좋던 싫던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회사가 커져서 전략 구상하는 조직이 따로 있더라도 결국은 CEO 책임이다.

써 놓고 보니 어찌보면 누구나 다 아는 걸 쓴것 같기도 하지만, 커리어 관점에서 한번쯤은 자기가 어떤 조직에 속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그 조직에 계속 남고 싶은지도 되씹어 보아야 한다. 나는 예전에 한번 같은 회사내에서 ‘만드는 조직’에서 ‘파는 조직’으로 이전한 경험이 있다. 누가 시킨건 아니였지만 그냥 그게 하고 싶었다.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이내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현실적인 팁을 공유한다면 회사내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야망이 있는 사람은 되도록 만드는 조직 아니면 파는 조직에 있는게 유리하다. 써포트 조직에서는 한계가 많다. 적어도 미국에선 그렇다.

여담으로 스티브 잡스는 물건 파는데도 달인이였지만 주관심은 늘 ‘만드는 것’에 있었다. 그의 전기에 보면 그가 나름대로 생각해낸 ‘회사가 망해가는 길’에 관한 이론이 소개된다. 회사들이 보통 처음에는 좋은 물건 만들기에 치중하지만, 일단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회사내에서 디자이너나 엔지니어 같은 사람보다 매출을 크게 올릴수 있는 세일즈맨이 더 대우를 받게 되고, 제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세일즈맨들이 최고의 위치에서 회사를 경영하게 되어 결국 나락의 길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론이다. IBM, Xerox, 80년대의 애플이 그런 전철을 밟았고, 마이크로소프트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회사의 CEO라면 자신의 역량, 조직의 역량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한다. 만드는 조직이 강한회사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파는 조직이나 서포트가 강한 조직으로 키울 것인가?

회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6년전 와튼 스쿨에서 파이낸스 기초과목을 수강할때였다. 파이낸스, 경제학에서 유명하신 프랭클린 앨런 교수님 수업이였는데 하루는 학생들이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회사의 주인이 주주들 (shareholders)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대충 30%정도가 손을 들었던것 같다. 이어서 또 이런 질문을 하셨다.

“그럼 회사의 주인이 직원들(employees)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까와 비슷한 숫자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나는 이때 엔지니어 출신으로 비지니스 스쿨에 갓 입학했던 차라 shareholder고 뭐고 이런 개념이 없었다. ‘회사의 주인은 사장 아닌가?’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주들과 직원들중 택일하라면 주식시장에서 단기 투자하며 치고 빠지는 주주들보다야 비교적 오랜기간 회사에 머물게 되는 직원들이 ‘주인’에 가깝다고 1초만에 단정짓고 후자에 손을 들어줬다.

이어진 교수님의 설명이 재미있었다. 학생들이 매년 거의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데, 그 즉슨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주주들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답하고,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은 직원들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사고방식은 ‘정상적인’ 아시아 학생인 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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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후 어찌어찌 하다가 VC쪽에 몸을 담게 되어 주로 shareholder의 입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회사의 주인은 당연히 주주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물론 상식적으로도 회사의 주인은 주주인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가 파산보호가 들어간 상태가 아닌 담에야) 주주들이 회사의 주인이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회가 회사의 경영권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사회는 CEO를 선임 혹은 해임할 수 있으며, CEO는 주어진 책무를 위해서 직원을 고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게 된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CEO를 비롯한 직원들은 회사의 주인이기는 커녕 주주들의 가치 (shareholders’ value)를 극대화 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좀 슬프게 들릴지 몰라도 자본주의 회사 지배 구조 (corporate governance)가 그렇다. 그래서 미국회사에서는 이사회에서 CEO를 짜르는 일이 빈번한 것이다. CEO는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라고 임명한 자리이니, 그 일을 제대로 못하면 이사회가 짤라버리는 것이다. (한국 회사에서는 대주주가 CEO이자 이사회를 장악한 경우가 많아 경우가 좀 다르다)

회사의 주인이 주주인것은 맞는것 같은데, 요새 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주주의 가치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정말 맞는 mission인가 하는 문제다. 오늘 BusinessInsider를 보니 이런 기사가 나왔다. 지금 미국 회사들의 GDP대비 이익률은 역대 최고이지만, 임금수준은 역대 최저라고 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주주의 가치 극대화’라는 사명을 각 회사들의 경영진이 투철하게 수행했기 때문이리라. 임금은 어디까지나 ‘비용’의 항목이므로, 이익률을 최대화 하려면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한 낮은 임금을 유지해야한다. 이렇게 최소화된 비용으로 이익률이 올라가면 그 수치는 결국 주가로 직결되고, 그 혜택은 주주가 보게 된다. 뭐 꼭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누구 좋자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수 없다.

상장회사도 그렇고 비상장회사도 그렇고 회사의 주주는 대부분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회사의 지분투자라는 것이 은행에 예금해두는 것등에 비해 훨씬 위험한 자산이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도 마찬가지다. 당장 한달 벌어 먹고살기 빠듯한 노동자가 펀드 투자하는 것 봤나? 회사의 주주가 되는 경로는 이런 저런 길이 있겠지만, 결국 돈있는 사람들의 몫일 확률이 절대적으로 크다. 그리고 회사의 경영진과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창출한 가치는 결국 그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자본주의가 그렇다. 2007년 통계에 의하면 상위 1%가 미국 국부의 40%를 넘게 차지하고 있고, 하위 80%는 고작 7%를 차지한다고 한다. 아마 2012년 현재는 이 불균형이 더 심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녀석은 우리가 mission이라고 생각하는 ‘주주의 가치 극대화’를 더 잘 실현하면 할 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인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직원들의 복지와 문화에 큰 신경을 쓰는 회사들은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무료 음식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한 구글도 있지만,  항상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리스트 상위에 랭크되는 SAS Institute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사내 복지로 유명한 회사다. 회사 조경을 관리하는 인력이나 빌딩 경비원도 의료보험등의 혜택이 있고, 회사내에 기본 건강 검진은 물론 응급 수술까지 가능한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공적인 온라인 신발가게로 지금은 아마존에 인수된 Zappos도 직원들의 행복이 회사의 최우선순위 였다는 후문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잘나가는 스타트업인 Evernote는 최근에 직원들 집으로 청소 도우미까지 보내줄 정도로 복지에 신경쓰고 있다. 물론 이런 복지혜택으로 직원들이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만약 회사의 목표가 단기 수익성 향상이라면 이런데 돈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임을 상기해 보면 신선하긴 신선하다. 이렇게 돈과 재원을 써가며 직원들을 챙겨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주주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회사구조에서는 회사가 잘 되었을때의 혜택이 대부분 주주에게 돌아가고 직원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스타트업에서는 그나마 직원들에게 나누어주는 스탁 옵션제도가 활성화 되어있어 좀 낫지만, 큰 회사에서는 주주가 이익을 독식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애플, 삼성이 요새 돈을 그렇게 많이 벌고 있지만 일부 최고위 간부들을 빼고 직원중에 부자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나에게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한 명쾌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이익 배분 불균형은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 할 수밖에 없어서 우려스럽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하자는 건 아니니 빨갱이라고 몰아세우진 마시길 ^^

VC를 만날때 알아두면 좋은 팁

VC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동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수많은 회사를 만나면서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데, 오늘은 창업가가 VC를 만날때 미리 알아두면 도움이 될 만한 점들을 몇개 적어보고자 한다

1) 가능한 소개를 통해서 VC를 만날 것 – 콜드 콜, 콜드 이메일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응답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건 비단 VC뿐만이 아니라 비지니스의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 아니, 비지니스가 아니라 연애도 그렇다. 다들 바쁜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무작정 연락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아는 누군가가 소개시켜주는 사람에 먼저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소개를 받는 VC 입장에서도 지인을 통해 한번 걸러진 사람/회사를 만나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좋은 만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조금 노력하면 중간에서 다리를 놔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요새는 더군다나 Linkedin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활성화 되어있어서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에 많으니 적극 활용할만 하다.

2) 회사 정보는 적당한 레벨에서 천천히 전달할 것 – VC와 미팅을 할때 ‘기회는 이때다’ 라고 생각하고 온갖 자료와 웅변을 늘어 놓는 분들이 가끔 있다. 작은 폰트로 빽빽하게 들어찬 50장짜리 슬라이드를 건네주기도 하고, 요구 하지도 않은 각종 회사 첨부자료까지 보내서 이메일이 수십메가 파일들로 홍수를 이루기도 한다. 별로 효율적이지 못한 접근 방법이다. 내가 권장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누군가의 소개로 VC와 연결이 되면, 회사에 대한 관심을 끌어 내기 위해서 처음에는 teaser형식의 executive summary를 보내는게 좋다. 여기에는 회사내 민감한 정보는 제외하고 회사의 개략적인 내용 (뭘 만들고 있고, 왜 이게 말이되고, 누가 하고 있는지 정도)들 위주로 2페이지 정도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미팅이 성사되면 미팅에서 사용할 15장 내외의 슬라이드 자료가 있으면 좋다. 슬라이드는 아까 executive summary의 좀 더 구체적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 이외의 자료는 VC가 관심이 있다면 알아서 요구하게 되어있다 (기술 설명 보충 자료, 향후 계획, 재무제표, 정관, 주주 구성표 등등). 이런 것들은 준비하고 있다가 그때 그때 하나씩 보내주고 설명해 주면 된다. 즉 요는 처음 만날때 data dump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차피 읽어보지도 않고, 오히려 핵심 메시지가 희석되는 악영향이 있다.

3) VC 와의 미팅은 일종의 인터뷰 - VC와 미팅을 할때 적당한 자료를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것은 일종의 인터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번에 당락이 결정되는 면접시험과는 좀 성격이 다르겠지만, 좋든 싫든 VC의 머릿속엔 사업가에 대한 인상이 남게 된다. 그 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표정, 톤, 몸짓등 세세한 면에서 다 나타나게 된다.  뭔가에 대해 깊은 열정이 있는 사람은 미팅에서 그 열정이 묻어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해 보면 얼마나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는지 답변 내용과 어조에서 어느정도 감이 오게 마련이다. 이런 내공은 평소에 많이 쌓아두는 수 밖에 없다. 인터뷰라고 해서 마치 딴 사람이 된 양 행동할 필요는 없고, 단지 미팅 전에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해 두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자신감 있게 전달하면 된다. 자만도 문제지만, 너무 겸손한 나머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것도 문제다. 자기 사업 내용이라면 언제 누굴 만나든지 아무 자료 없어도 말로 설득할 정도의 준비는 늘 하고 있어야 한다.

4) ‘투자자’보다는 ‘소비자’를 대하는 기분으로 설명 – 많은 분들이 VC를 만날때 너무 ‘투자’쪽에 집중해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게 엄청나게 큰 기회이고 우리회사에 투자하면 몇년 내로 몇배이상 돈을 벌 수 있다는 식의 설명들이다. 앞으로 매년 2배 이상 성장하는 곡선도 보여준다.  하지만 업계에 웬만큼 있었던 VC들은 이런 말에 별 감흥이 없다. 왜냐하면, 이런 말을 하도 많이 듣기 때문에 식상하기도 하고, 경험에 비추어 볼때 막상 그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VC들이 주로 궁금해 하는 건 “이 사업이 커스터머들에게 어떻게 큰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간단히 말해 회사가 만들어내는 서비스나 제품이 소비자 관점에서 큰 가치가 있으면 투자할 만한 사업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B2B 사업의 경우 “내가 바이어라면 이걸 사겠나?” 라고 자꾸 되묻고, 인터넷 업종같은 경우는 “내가 솔직히 앞으로 이걸 자꾸 쓸 것 같나?” 라고 생각해 본다. 투자자 보다는 소비자가 훌륭하게 생각하는 사업이 진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VC와 미팅에서도 투자자를 설득한다기 보다는 소비자를 설득한다는 기분으로 하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몇가지 더 있지만 저녁을 먹으러 가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쯤에서 접기로 한다 ^^

전략은 변한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현존하는 기업가중에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중 하나이다. 아마존 주식을 재미 삼아 개인적으로 몇년째 소유하고 있는데 (아주 적은 양임), 난 아마존의 수익구조나 대차 대조표를 제대로 분석해 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순전히 제프 베조스에 대한 막연한 믿음(?)으로 그냥 들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하면 그냥 온라인 서점 내지는 온라인 상점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지만, 그걸 뛰어넘어 아마존이 이룬 혁신은 정말 눈부시다. 그 예로 아마존 웹 서비스(AWS)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용어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인 2006년에 상품화되었고 지금은 명실공히 클라우드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몇달전에 정전사태로 AWS가 다운되어 여기에 의존하던 넷플릭스, 인스타그램등이 줄줄이 다운된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실감할만 하다. 그리고 또 아마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킨들일 것이다. 2007년에 전자책 리더로 출발한 킨들은 진화를 거듭해 지금은 태블릿 마켓의 2인자이다. 아직 아이패드와 격차는 많지만, 이번에 출시된 킨들 파이어 HD는 아이패드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다. 2007년에 아마존이 킨들을 내놓을때만해도 시장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참 많았다. 인터넷회사가 전혀 새로운 사업인 하드웨어에 뛰어들어서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의문도 많이 제기되었고, 수천년간 이어온 종이책을 전자책이 대신할 수 있겠냐는 원론적인 논쟁도 많았다. 불과 5년이 지난 지금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다. 제프 베조스,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그저께 킨들 파이어 HD 발표를 보면서 문득 재미있는 상념이 떠올라 글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 발표된 8.9인치 제품 사양을 보면 1920 x 1200 해상도에 254 ppi 를 자랑해서 아이패드 레티나 급에 가까워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참고로 아이패드 레티나는 9.7인치 2048 x 1536 해상도에 264 ppi이니, 정말 ppi로만 보면 육안으로 레티나와 구별이 안될 것 같다.  그런데 2010년 제프 베조스의 인터뷰를 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시는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고, 킨들은 아직 흑백의 전자책 리더만 나와있던 시점이였는데, 찰리 로즈쇼에 나온 제프 베조스는 킨들과 아이패드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기에 애쓰는 모습을 볼 수있다 (아래 동영상 참조). 그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킨들은 뭔가 조용하면서도 문학적이기도 하며 고상한 즐거움을 주는 디바이스로 포지셔닝하고 있고, 아이패드는 컬러디스플레이로 화려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그걸로 앵그리버드게임이나 하고 있다고 치부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존의 색깔은 아이패드의 화려함, 현란함을 따라가는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니즈에 맞추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디스플레이도 컬러 LCD가 아닌 (눈에 부담이 덜 가는) 흑백의 E-ink를 썼다고 하고, 심지어는 “헤밍웨이를 컬러로 읽는다고 더 감동을 받는건 아니다”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킨들은 지금도 흑백의 전자책 리더를 제공하긴 하지만, 주력 제품은 역시 킨들 파이어 태블릿이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킨들 파이어 HD는 아이패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킨들 파이어는 아이패드처럼 컬러이고, LCD이며, 전자책을 읽는 킨들 앱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해보진 않았지만 킨들 파이어에서도 앵그리버드 실행 잘 될 것이다.  2년전 TV 인터뷰에 나와 킨들의 아이덴터티는 아이패드와는 완전히 다르다라는 주장을 하며 컬러 디스플레이나 비디오등에는 관심없다고 말한 그였지만, 애플이 열어논 태블릿 시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전략은 변한다.

2010년 7월에 찰리로즈쇼에 나온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

인터뷰 풀 버전 링크는 여기에  (처음부터 5분정도까지 위의 이야기가 나옴. 보너스 – 베조스가 말하는 “sex it up”이란 말의 뜻을 터득하게 됨 ^^)

니가 원하는게 뭔지 내가 알려주마

오늘 아마존 CEO인 제프 베조스가 킨들 발표를 하면서 한 말이 화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서비스이지 Gadget이 아니다”라고 천명했다.  태블릿, 스마트폰 같은 기기들은 이제 서로 비슷비슷해질 것이여서 비교나 구분이 큰 의미 없어질테고, 이제 중요한 것은 콘텐츠 제공과 같은 서비스를 어떻게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내고 전달하느냐는 것이다. 제프 베조스의 메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재미 있는 부분이 있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를 자신이 정의하고 있는 점이다. 즉, “소비자들이 이러이러한 걸 원해서 우리가 이런걸 만들었다” 라는게 아니라, 만들어 놓은 것 (킨들)을 던져주며 “잘 생각해봐.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 이거야”라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다소 당돌하게 들릴수도 있는 말이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는 소비자가 가장 잘 알텐데, 그걸 사업가인 베조스가 짚어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가 세살짜리 아이 장난감을 대신 골라주듯이 말이다. 제프 베조스는 좋게 보면 비전이 앞서나가는 사람이고, 나쁘게 보면 소비자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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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니가 원하는건 내가 알려주마”라는 식의 접근을 좋아했던 사람이 또 있었으니,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 전기 143쪽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Customers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we’ve shown them

소비자는 우리가 물건을 만들어서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그는 언론 인터뷰등에서 “그렇게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비결이 뭔가?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하는가?” 와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았는데 그때 마다 그는 위와 같은 대답을 반복하며 애플과 자신의 창의적인 능력을 은근 자랑했다. 그는 또 포드 자동차 회사의 창립자인 헨리 포드의 말도 자주 인용하였는데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뭘 원하냐고 물어보고 다녔다면, 아마 그들은 더 빨리 달리는 말을 원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즉 세상을 바꿀만한 혁신은 소비자를 인터뷰 하고 시장조사 한다고 나오는게 아니고, 누군가에 머리에서 나와서 세상에 공개되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간다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도 가만히 보면 제프 베조스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니가 원하는 건 내가 가르쳐주마” 내지는 “내가 만든게 진짜 니가 원하는 거야” 라는 메시지다. 스티즈 잡스는 좋게 보면 비전이 앞서나가는 사람이고, 나쁘게 보면 그럴듯한 말로 소비자를 홀리는(?) 사람이다.

그러면 아마존이나 애플같은 회사들이 소비자 취향에는 별 관심 없고 시장조사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애플도 시장조사, 소비자 행동 분석등을 열심히 하고 있다 (얼마전 삼성-애플간 법정 공방과정에서 드러남) . Data-driven 문화가 강한 아마존도 아마 소비자에 관한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정량화하고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CEO가 제품 발표때 나와서 하는 말은 일종의 마케팅 메시지이므로 현실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한시대를 이끌어가는 사업가들이 나와서 이런 비전있는 말을 던지면 멋있다. 비전있는 CEO라면 “당신이 뭘 원하는지 오늘 내가 확실히 보여 주겠다”라고 말할 배짱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파워포인트를 싫어한 텍 업계의 거장들

어제 저녁에 텍 크런치 기사를 읽다가 “마리사 메이어의 첫 30일“이란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내용중에 인상적인게 있었는데, 그녀가 야후에 와서 처음으로 한 일 중의 하나가 VP들이 그녀에게 보고할때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쓰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아래와 같이 트윗했더니 삽시간에 50번이상 리트윗 되는등 여러 반응이 있었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미팅에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오랜 직장생활을 뒤돌아보면 슬라이드 때문에 ‘버려지는’ 시간이 참 많았다.  성격상 디테일한 것도 신경 많이 쓰는 편이고 약간 완벽 추구에의 집착을 가졌던 때도 있어서 (지금은 아님 ^^), 이런것 저런것 하나씩 고치다보면 슬라이드 한장에 이틀을 소비한 적도 있었다.  특히 여러명이 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관한 슬라이드는 이사람 저사람이 만든 것을 취합해서 깔끔하게 다듬어야되고, 어느 한명이 리뷰하고 고치고, 그걸 또 다른이가 문제 제기하고 등등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몇주는 금방 소진된다. 물론 슬라이드의 장점도 있다. 만들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되고, 미팅 방향의 나침반이 될수도 있으며, 향후 documentation의 역할도 하게되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팅에서 슬라이드 사용은 아예 안하거나 minimal로 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슬라이드 제작에 걸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미팅 흐름이 지루해지거나 미팅 본연의 목적이 흐려지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파워포인트를 줄줄이 읽어나가는 지루한 미팅은 아마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거다) 미팅의 주 목적은 서로 대화와 토의를 통해서 정보와 의견을 주고 받거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인데, 슬라이드에 전적으로 의존한 미팅은 자칫 이게 어려워질 수 있다 — 슬라이드만 첫장 부터 끝장까지 별탈없이 발표하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모두 착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슬라이드의 비효율성을 깨닫고 난뒤, 가끔 어디서 세미나같은 발표 부탁을 받으면 슬라이드는 형식상 5-6장만 아주 간단하게 준비해 간다.  일단 멋있는 슬라이드를 만들 재주와 시간이 별로 없을 뿐더러,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세미나를 듣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라이드에 긴 텍스트는 넣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내가 발표하는 동안 사람들이 그것을 읽느라고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텍스트는 아예 넣지 않거나, 넣더라도 몇초내로 읽을 수 있게 bullet point로 아주 짧게 나열한다.  최근에 Bay Area K Group에서 세미나 발표한 적이 있는데, 링크의 사진에서 보듯 텍스트를 되도록 넣지 않는다. (슬라이드 만드는 시간이 확 준다 ^^)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암튼 내가 슬라이드의 비효율성을 깨닫게 된데는 개인적인 경험도 있었지만, 내가 접한 텍 업계의 거장들의 이야기가 영향이 컸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와 원문을 여러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글을 쓰게 되었다.

1)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Steve Yegge라는 한 구글 직원이 자신의 전 직장 아마존에서 제프 베조스에게 프리젠테이션 했던 기억을 살려 쓴 블로그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내용에서 보듯이 제프 베조스는 이미 오래전에 아마존에서 파워포인트 금지령을 내렸고, 그에게 뭔가 제안을 하려면 산문체의 글을 적어내야 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창업가중 한명인 만큼, 그는 스피드와 실용성을 중시했을테고 현란한 그래픽이 있는 슬라이드 보다는 “확실한” 내용이 있는 텍스트를 선호한 것으로 짐작된다.

2) 쉐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샌드버그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구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저커버그의 부름을 받고 페이스북에서 COO로 재직중인 실리콘 밸리에서 몇 안되는 여성 최고위직 임원 중의 한명이다. 얼마전 그녀가 그녀의 모교인 하버드 비지니스 스쿨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So one of the things I tried to do was encourage people not to do formal PowerPoint presentations for meetings with me. I would say things like, “Don’t do PowerPoint presentations for meetings with me. Instead, come in with a list of what you want to discuss.” But everyone ignored me and they kept doing their presentations meeting after meeting, month after month. So about two years in, I said, “OK, I hate rules but I have a rule: no more PowerPoint in my meetings.”

쉐릴 샌드버그의 연설 (12분쯤에 파워포인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옴)

(연설을 계속들어보면 샌드버그가 이 일화를 이야기한 배경은 “올바르지 못한 권위나 룰에 대한 도전”등을 설명하려고 이런 예를 들게 되었는데, 암튼 그녀가 파워포인트를 싫어한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3) 스티브 잡스 (소개 생략)

파워포인트를 혐오했던 사람의 선봉장(?)이라면 아마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그의 전기를 보면 그가 암투병 중일때 그의 의사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그의 병세에 관해 설명했다가 잡스에게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가 이렇게 파워포인트를 혐오하게 된데는 우선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업계를 평정했던 점도 어느정도 작용을 했을테지만, 더 나아가 그는 어떤 아이디어를 전달함에 있어서 슬라이드는 별로 필요없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제품 발표등을 할때면 자사제품인 Keynote라는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쓰기는 했지만, 복잡한 텍스트는 거의 없고 굉장히 심플한 그림이나 사진을 주로 백그라운드에 깔아놓고 이야기를 풀어가곤 했다) 스티브 잡스 전기 337쪽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One of the first things Jobs did during the product review process was ban PowerPoints. “I hate the way people use slide presentations instead of thinking,” Jobs later recalled. “People would confront a problem by creating a presentation. I wanted them to engage, to hash things out at the table, rather than show a bunch of slides. People who know what they’re talking about don’t need PowerPoint.”

그는 문제의 핵심을 ‘생각’으로 맞서야지 파워포인트 만드는 걸로 빗겨가지 말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잡스의 전기에서 읽은 이 내용이 사실 나에게도 영향을 미쳐, 나도 이제는 복잡한 슬라이드는 만드는 것도, 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직업상 entrepreneur들을 만나 프리젠테이션 듣는일이 아주 많지만, 사실 내가 더 좋아하는 포맷은 그냥 커피숍에서 만나서 슬라이드 없이 그냥 그사람의 사업 스토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느끼는건데 내공이 깊은 사람은 슬라이드 없이도 듣는 사람이 잘 이해가 되게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잡스가 위에서 말한 맨 마지막 문장이 정말 맞다고 느끼는 적이 많다.

영문 이메일 case study: 야후의 새 CEO 마리사 메이어

프롤로그: 올해 초에 영문 이메일 쉽게 쓰는 법이란 블로그를 큰 생각 없이 썼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다. 네이버 검색어에 걸려서 그런지 아직도 하루에 수십번씩 꾸준히 그 글이 조회되고 있다. 그에 용기를 얻어 아래글도 도움이 될까해서 작성했다.

야후의 새 CEO: 마리사 메이어

야후의 새 수장이 된 마리사 메이어 (Marissa Mayer)가 오늘 전 직원들에게 첫 이메일을 보낸게 화제다. 한국 기업 같으면 거창한 취임식이라도 있을 법 하지만, 미국 텍 기업은 그런 형식 절차와는 거리가 멀어서 취임 연설 같은 건 없는게 보통이고 이메일로 대신 하는 경우가 많다.  메이어의 이메일을 보니 깔끔하게 잘 썼고, 하고자 하는 말도 전달이 잘 되었으며, 나름 겸손한 이미지를 위한 흔적도 보이는 등, 배울점이 많다고 느껴 이메일 case study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우선 이메일 전문을 읽지 않은 사람은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 밖에 안되니 이곳에 가서 먼저 읽고 시작하는 게 좋다.

이메일 맨 상단에 보면 아래와 같은 문구가 보인다.

Privileged and confidential — Do not forward

야후 직원이 약 12,000명 정도 되는데, 전체 이메일을 보내면서 이런 문구를 쓴다고 이게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실제로 메이어가 보낸 이 이메일은 몇시간 내로 누군가에 의해 AllThingsD에 전송되어 바로 언론에 대문짝 만하게 나왔다. 그럼 메이어는 이렇게 될걸 모르나?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난 사람인데 모를리 없다. 그래도 이런 문구를 넣었다. 왜? 속으로는 이 메시지가 언론에 퍼질 것을 알고 있어도, 겉으로는 (원칙상으로는) 회사 내부 communication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메시지를 받는 사람도 은근 기분 좋다.  내용상에 실제로 큰 비밀은 없어도 ‘나는 야후라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 은밀한 메시지를 받는 것이다’ 라는 순간적인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비밀이야기를 해주면 그 사람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니 기분이 괜히 좋아지지 않던가?

이메일 도입부를 보면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I couldn’t be more excited to be here — thank you for the warm welcome over the past two days!

이메일을 쓸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있는데, 이전의 블로그에도 말했듯이 상대방에 대한 감사의 말로 시작하면 가장 무난하다.  메이어도 그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부드럽게 이어가기 위한 기본 예의다.  또 서두인 만큼 상대방과 나의 공통 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의 이메일 도입부를 계속 들여다 보면 자신이 94년 스탠포드 시절 야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는등 야후 직원들과 공통 분모 찾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메일 받는 사람은 자신과 관련된 말이 나오는 이메일을 열심히 읽는 법이다.

서두에 놓치기 쉽지만 중요한 표현이 있다.

I’m incredibly honored to now be a part of the team and work with all of you.

그녀는 언론의 조명을 한 껏 받으며 스타 CEO가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팀에 조인하게 되어 믿을 수 없는 영광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보통 말단 직원이 새 회사에 들어가서 동료들에게 첫 이메일을 보낼 때 봄직한 표현이다. 그녀가 속으로도 겸손한지 겉으로만 그런지는 내가 알수 없지만, 적어도 회사의 수장으로서, 그것도 외부에서 영입된 CEO로서, 최선을 다해 예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실리콘 밸리에서 자신의 위치나 권력을 자기 입밖으로 내세우는 리더는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만약 그녀가 위의 문장 대신 “I’m very happy to be the CEO of our company and manage all of you” 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밥맛없다고 다들 한마디씩 했을 것이다. 자신이 CEO가 된 건 이미 전 직원이 다 들어서 아는 것이고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된 것도 다 아는 거다. 그걸 자기 입으로 되뇌이는 건 스스로 점수를 깎는 일이다.  그리고 “work with you” 라는 표현은 영문 이메일에서 참 흔히 쓰는 표현인데, 어감이 좋아서 그렇다. 메이어가 CEO니 누가 위에서 일하는 지는 뻔하지만, 그래도 이런 말로 상대를 높여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면 이제 정작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이 나온다. 요약하면 하던일 멈추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야후가 요새 안팎으로 아주 어수선했고 회사가 존폐위기에 몰리는 분위기여서 많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났고, 아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손에 일이 안 잡혔을거다. 이런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메이어는 이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The company has been through a lot of change in the past few months, leaving many open questions around strategy and how to move forward. I am sensitive to this.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데서 시작하는데, 위의 말로 메이어는 야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완곡히 말하며 직원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취임한지 며칠 안되었으므로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없을지언정, CEO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원들은 어느정도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야후의 그간의 문제점을 다 말하려면 끝도 없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기 회사를 비판하는 꼴이 되니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그간의 야후는 아주 x판이였고 이제 내가 고치려 한다”라고 말하면 어땠을까? 솔직해서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식의 표현은 지금까지 남아있던 야후 직원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으므로 적절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핵심 내용인 다음 문구를 보자.

In the meantime, please do not stop. You are doing important work. Please don’t stop.

지금 메이어가 걱정하는 것은 직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에 구멍이 생기는 것일터, 멈추지 말고 전진하라고 독려한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상장 즈음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리고자 자신의 책상위에 Stay Focused & Keep Shipping이라는 푯말을 걸은게 한때 화제였는데, 그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역시 중요한 내용이므로 강조하기 위해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나도 처음 읽을때 “don’t stop”이라는 말이 두번 아주 강하게 효과적으로 와닿는 느낌을 받았다.  이메일에서 상대방이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은 이처럼 한번쯤 반복해 주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하단부에는 이런말이 보인다.

Ross has done a terrific job for the company.

Ross Levinsohn은 몇 개월간 야후의 임시 CEO로 있다가 이번에 자리를 내주게 된 인물이다. 항간에는 그가 정식 CEO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소문이였으나 야후 이사진은 메이어를 깜짝 영입하면서, 그로서는 아쉽게 되었다. 그가 회사를 나간다고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그한테나 새로 부임한 CEO한테나 여러모로 껄끄러울테니 아마 나갈 것 같다. 암튼, 회사내 최고 권력을 향한 복잡한 배경은 있었을지언정, 메이어는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깎듯이 하고 있다. 이건 아주 기본이다. 이번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 회사내 탑 레벨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한명이 회사 나가는 일은 아주 비일비재한데, 그래도 외부 발표를 할때는 다 좋은 이야기 해주는게 보통이다. “아무개씨는 그간 회사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됨을 무척 아쉽게 생각하며, 우리는 그를 정말 그리워 할 것이다” 뭐 이런말. 가끔 뒷 사정을 알게되는 나로써는 웃음이 나올때도 있지만, 그래도 예의는 예의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인다.

Looking forward, we need to continue…

… I cannot wait to hear your ideas for Yahoo!’s future.

이전 블로그 글에서 이메일의 마지막에는 미래에 대한 관망이나 향후 action item을 제시하는게 좋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메이어는 센스있는 리더 답게 “Looking forward” 나 “Yahoo!’s future”와 같은 말로 그녀의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현재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언정 ‘앞으로 우리가 힘을 합하면 이겨나갈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인 톤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선 무척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맨 마지막 줄은 간단히 자신의 이름으로 끝마치고 있다.

Marissa

굳이 자신의 이름뒤에 직함이나 현란한 시그너춰를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기가 누구인지는 사람들이 다 아는것이니 그냥 자신의 first name으로만 조용히 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메이어의 이메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

Ph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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