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상담 1 – 학부전공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자신의 진로나 전공에 관해 상담 요청을 받는다. VC쪽에 있다보니 주로 경영, 창업 혹은 기술분야에 종사하시거나 관심이 많은 분들로부터 문의를 주로 받는다. 지금 내 커리어도 코가 석자인데 남을 상담해 주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스울수도 있는데,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가급적 도우려 노력하는 편이다. 워낙 질문들이 다양해서 블로그에서 한꺼번에 다 다루기는 그렇고 오늘은 대학 학부 전공에 관한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해 보려 한다. (이 연재는 오늘 끝날지도 모른다 ^^)

우선 난 학부 전공은 최대한 본인 자율에 맡기는게 좋다고 본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진로나 취직문제 떠나서 그냥 한번 푹 빠져서 공부해 보고 싶은게 있으면 그게 중세 사학이든 원자핵 물리든 대학때 해보는게 좋다. 나이가 들면 점점 그런 기회가 없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진로 상담을 해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뭘 공부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거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대충 취직 잘 된다는 전공 중 몇개를 놓고 고민하다가, 주위의 조언을 들어가며 ‘무난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의 큰 문제이기도 하다. 입시위주의 교육만 받다보니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해도 자신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도 좀 그랬다. 주어진 과제는 잘 풀어갔지만, 막상 과목을 선택 하라면 당황스러웠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은근 더 불안하고, 결정에 자신도 없고, 조언도 더 많이 구하게 되는 것 같다. 선택의 기로에 있을때 조언도 조언이지만, 실은 그런때 일수록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 어느 누구라도 날더러 ‘넌 화학을 좋아해야되’라고 강요할 순 없잖은가. 딱히 완전히 맘에 드는 전공이 없더라도 그나마 좀 흥미를 느꼈던 것 몇개라도 추리고, 조언을 받으러 갈 땐 자신이 생각해 놓은 몇가지 옵션을 말해주고 시작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건축학과 물리학 두개중 택일하고 싶다면 각 전공을 왜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전공을 통해서 얻고 싶은게 뭔지등의 배경 설명을 해주면 상담해 주는 사람이 훨씬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다. 특히 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면.

나는 내가 공부해 본 공학과 경영학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둘중에 학부 전공으로 뭐가 좋겠냐고 물어본다면 난 주저 없이 공학을 택하라고 한다. 공학이 나름 재미도 있고 전망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난 보통의 경우 학부생 전공으로 경영을 추천하지 않는다. MBA를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게 좀 이상할 수 도 있지만, 경영을 학부전공으로 추천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1) 딱히 교실에서 안배워도 비지니스는 직관적인 내용이 많다 –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CEO나 비지니스 리더들이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고도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물론 accounting이나 finance와 같이 테크니컬한 분야는 좀 다르지만, 마케팅, 전략, 인사, 생산 관리등은 직관적인 내용들이 많아서 실전에서 부딪히면서 익혀도 회사생활에 큰 문제 없는 경우가 많다.

2) 나중에 배울 기회가 많다 – 회사를 나와서 MBA를 갈 수도 있고,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 MBA 프로그램 같은 것을 할 수도 있고, 그냥 경영서적을 찾아서 읽으며 탐독할 수도 있고 등등 경영은 나중에라도 이런 저런 경로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공학의 푸리에 트랜스폼이나 컴퓨터의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을 체계적으로 터득하기는 훨씬 어렵다.

3) 경영은 ‘학문’의 성격보다 ‘job skill’에 가깝다 – 경영학 교수님들은 아마 이런 주장에 반대하실 것 같다. 물론 경영도 깊이 들어가면 학문적 성향이 강하겠지만, 비지니스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늘상 경험하고 있는 ‘경영’이라는 분야는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skill set과 관련이 깊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법대와 의대는 ‘professional school (직업학교)’이라는 명명하에 학부를 졸업한 사람들이 지원하는 대학원 체제로 운영되어 온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비지니스 전공은 학교마다 달라서 대학원 과정인 MBA에서만 제공하기도 하고, 학부에서부터 제공하기도 한다 )

암튼 생각보다 말이 길어졌는데, 요는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스펙, 취직 그런거 생각말고 그거 공부하면 된다. 그런게 뚜렷이 없더라도 본인의 흥미와 적성을 잘 관찰해서 결정하되 학부에서는 ‘job skill’ 보다는 ‘어려운 학문’을 추천.

About these ads

About Phil Yoon

Venture capitalist & Blogger
This entry was posted in Live. Bookmark the permalink.

6 Responses to 커리어 상담 1 – 학부전공

  1. Lim says:

    블로그와 트위터, 테크니들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블로그 내용도 좋고 유익하지만 요즘 대한민국 현실에 아무리 역사를 좋아한다고 해도 역사를 전공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몇이나 될까 의문입니다. 등록금 걱정 없이 부모님이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하도록 지원 해줄 수 있으면 모를까 아르바이트 하고 등록금 대출 받아 다니면서 취직과 관련 없는 공부를 순전히 공부가 좋아서 할 수 있는 학생이 몇 프로나 될까요?

    • Phil Yoon says:

      Lim님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상주의자여서 그런진 몰라도 적성도 없고 관심도 없는 분야의 공부를 단지 취직을 위해서 4년동안 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참 딱한 인생일겁니다.

  2. IS says:

    학과와 전공을 선택할 때, 비록 그 시점에서일 뿐이겠지만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마켓에서의 소용이나 유무익에 견주어 조정하는 것이 가장 자기다운 선택을 하고 열정이 지속되는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특히, 빠른 변화의 시대에 살다보니(?) 기존 또는 현재의 상식이 곧바로 후퇴하더라는 점을 알게 되네요. 가장 안전해 보이는 것이 가장 불안한 시대입니다. 이럴 땐, 부침이 있는 움직임이 균형을 잘 잡아주는 것 같네요.

    • Phil Yoon says: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적극 공감합니다. 현재 교육 현실이 그럴 기회를 많이 못주는게 안타깝지요

  3. 블로그, 트위터, 테크니들로만 접하다가 처음으로 댓글 답니다. ^^

    우선 하고 싶은 공부와 취업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는 그런 선택을 학생 스스로 능동적으로 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서도 일찍부터 컴퓨터나 음악 같은 자기분야를 찾은 녀석들은 대학때는 좀 쳐지는 것처럼 보여도 10년 가까이 하면 어느정도 그 분야에서 자기 자리는 만들더라구요. 그런데 지금 20대 30대는 자기가 어떤 분야에 재미를 느끼는지 영영 모르거나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것 같아요.

    XX학과가 취업이 잘 된다는 말도 잘 따져봐야 하는 게 어떤 학과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지면 대학들은 앞다퉈 해당 학과를 신설하기 때문에 그 학생들이 졸업할 때 즈음에는 공급과잉이 발생해서 취업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사대 출신인데 공급과잉 + 정부의 비정규 교사 확대정책이 맞물려서 주위에 애매하게 된 동기들 굉장히 많습니다. 아버지가 한의사인 친구 말로는 한의사도 기존에 단골고객 확보한 곳들은 괜찮지만 지금 나오는 졸업자들은 그냥 월급쟁이라고 보면 된다고 하더군요. 학부모나 학생 수준에서 취업이 잘 된다고 하는 선택도 사실은 그만큼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학부시절 부전공으로 사회계열 과목을 들었는데, 그때 들었던 경제나 국제정치, 역사, 환경 같은 과목들이 관련된 책을 볼 때 진입장벽을 낮춰주었고 세상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취업 VS 하고싶은 학문 어느쪽이든 리스크가 있다면 학부는 하고 싶은걸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위에 근무하는 분들도 좋아서 하는 분들과 그냥 안정적이니까 다니는 분들은 업무에서도 차이가 크더라구요.

    • Phil Yoon says: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의 소식을 들었는데 그친구는 자칭 ‘꼴지에서 세번째’라고 할정도로 공부에는 관심없는 친구였으나 지금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화감독중 한명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