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 직급 체계 이해하기

벌써 오래전 일이다. 미국 대기업에 다니던 때였는데 나는 미국 본사 소속으로 한국일은 관여하지 않던 시절이였다. 여름에 가족과 한국에 방문한 틈을 타서 한국 지사에서 근무하시는 어떤분을 찾아 뵙기로 했다. 이전에 미국에서 한번 뵙고 인사한적이 있는 분으로, 그 분과 직접 같이 하는 일은 없었지만, 큰 범위에서 같은 조직이고 한국 분이시고 하니 그저 한국에 간김에 찾아뵙고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나보다 연배는 아마 적어도 6-7년 정도는 더 높은 분이고, 영문 타이틀은 Senior Director 였다. 한국 대기업에선 부장쯤 된다고 보면 된다. 시간에 맞춰 그분 오피스를 갔는데, 현관에서 나를 맞아준 직원이 그분한데 가서 “전무님, 손님 오셨는데요” 그러는거다.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나는 순간 속으로는 ‘전무? 이 아저씨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나는 대기업 전무라는 타이틀은 중견급 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분이 정확히 어떤 레벨에 있는 분인지 아주 잘 알고 있던 터라 좀 황당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본사에서는 한국 지사에서 한국말 직함을 뭐라고 부르던 거의 신경을 안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차피 직함이라는게 딱 맞게 번역하기도 어렵기도 해서 그런지 보통 현지 직원들이 알아서 하게 놔두는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한국 지사는 미국에서 보기에 작은 조직이므로, 본사에서 현지 언어의 직급/직함까지 꼼꼼하게 챙기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께도 이런 틈을 타서 위와 같은 직급 뻥튀기가 너무 비일비재 한 것 또한 현실이다. 미국 본사 기준으로 ‘Senior Manager’ 급이, 한국 명함으론 ‘상무’로 둔갑하는 경우도 허다하니, 양쪽 문화를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엔 좀 어이가 없다.

먼저 미국 회사 직급 체계를 한번 살펴보자. 물론 회사마다 다르므로 일반화의 오류가 많겠지만, 내가 경험하고 본 것을 토대로 보면 아래와 같다.

  • CEO – 대표이사 혹은 사장
  • Executive Vice President 혹은 Senior Vice President – CEO에 바로 리포트 하는 자리로 보통 회사의 큰 조직 하나씩 맡고 있다. 부사장 혹은 전무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CFO 같이 C로 시작하는 자리도 보통 이급에 속한다. 본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정도 레벨이면 리더쉽, 소프트스킬, 인맥, 정치적 능력이 다 수준급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 Vice President – 보통 EVP나 SVP에 리포트 하며 보통 중규모 조직을 관할한다. 상무쯤으로 이해해도 되고, 이레벨 부터 임원 (executive)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다. 특정 프로덕트 라인에 P&L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General Manager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세일즈로 보면 아태지역 총괄하는 사람 정도가 될 수 있다. 내부적인 웬만한 결정은 할 수 있지만, 외부와 맺는 협약같은 결정은 역시 위로 올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 Senior Director 혹은 Director – 보통 VP에게 리포트 하며 ‘팀’이라 불릴수 있는 소규모 조직을 맡거나 경우에 따라 조직 없이 혼자인 경우도 있다. 이사나 부장쯤이라고 보면 대충 맞다. 중간레벨 관리자로서 아래 사람도 챙겨야 하고, 밖에 나가서 뛰기도 해야하며, 승진을 바란다면 윗선도 챙겨야 한다. 보통 큰 정치적 능력 없어도 이정도 레벨까지는 꾸준한 노력이면 가능하다.
  • Senior Manager 혹은 Manager – 한국에서 차장, 과장쯤이 이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예외적으로 VP레벨에 리포트할수도 있지만, 보통 Director가 관할하는 팀에 소속된다. 팀 내에서는 실무에 대한 경험이 많은 편이므로 신입 사원이나 경력이 몇년 안된 직원들 업무를 교육하거나 도와주는 ‘사수’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인사적인 책임은 보통 없다. 즉 people manager가 아닌 individual contributor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Staff, Engineer, 혹은 Analyst 등 – 대학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이나, 경력이 몇년 안된 사원으로 junior 레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위에서 나열한 계층은 회사의 규모나 문화에 따라 많이 다르다. 대기업의 경우 CEO에서 맨 아래까지 7레벨은 쉽게 된다고 봐도 좋다. 스타트업은 당연히 레벨 수가 적다 (보통 3레벨 정도).

미국 회사에서 온 누군가의 명함만을 보고 어떤 레벨인지 가늠하기 힘들다면 위의 리스트를 참고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애매하다면 당사자에게 ‘당신은 누구에게 리포트 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도 그렇게 큰 실례는 아니다. 그 사람 보스의 타이틀을 보고 대충 상대방이 어떤 직급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단, CEO에게 ‘당신은 누구에게 리포트 하냐?’고 물어보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

혹자는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오피스의 우두머리가 본사에서는 Director 레벨이라고 할때, 지사의 우두머리는 ‘사장’이라 부르니 그 밑의 매니저 급은 ‘전무’ 혹은 ‘상무’가 되는게 당연한것 아니냐고. 뭐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데, 경우에 따라서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야후 재팬을 예로 들어보자. 내 기억에 야후 재팬은 아마 야후와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합작으로 만든 것이고, 거의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들었다. 이런 경우 “야후 재팬”이라는 조직내에서 사장, 전무, 상무로 쭉 직급이 나가는건 별 문제 없는 것 같다. 야후 본사가 아닌 야후 재팬이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미국 회사는 그냥 한국에 세일즈/마케팅 오피스가 있는 것이다. 물론 법/세금 문제등으로 한국 법인은 만들었겠지만, 그렇다고 이게 독립적인 개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직원 10명을 둔 세일즈 오피스가 있는 것과, 진정한 의미의 “지사”가 있는 것이랑은 좀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10명짜리 세일즈 오피스만 관리하고 있으면 ‘사장’이고 그 아래서 일하는 평직원에 가까운 이들이 ‘전무’ 혹은 ‘상무’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걸 보게 되면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관습을 따르게 된 사람도 많겠지만, 보통 있어보이는 타이틀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으니 이런 웃지 못할 일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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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Responses to 미국 회사 직급 체계 이해하기

  1. Chang Kim says:

    이게 또 전체적인 외국계회사 직급 인플레 현상과도 관계있는거 같아요. 우리회사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회사 또는 우리가 갑 또는 을의 관계에서 거래해야 하는 회사에서 직급 인플레가 있으면 우리회사만 낮게 부르면 손해보는 면도 있겠죠. 그리고 동종업계에서 이직하는 경우도 많으니, A라는 기업에서 가졌던 타이틀이 있는데 비슷한 B라는 회사에 가서 그게 너무 달라지면 그걸 꺼리는 것도 있을듯. 근데 또 웃기는게, 외국계회사 직급 인플레가 다 알려져 있어서, 알아서들 디스카운트 해서 받아들이더라구요. 마치 돈의 인플레가 있으면 0 세개 알아서 떼고 계산하는 식.

  2. energykim says:

    Reblogged this on energykim's Blog and commented:
    Original

  3. 지나가는 일인 says:

    미국회사에서 14년째 직장생활 중인데요….Manager/Sr. Manager 와 Director/Sr. Director에 대한 설명은 좀 맞지 않는듯 해요. 한국의 어떤 직급인지는 한국에서는 직장생활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책임업무나 레벨에 대한 설명을 많이 다른듯 합니다…아마 직종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겠지요.

  4. 지나가는 일인 2 says:

    Staff, Engineer, 혹은 Analyst 등 – 대학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이나, 경력이 몇년 안된 사원으로 junior 레벨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도 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 팀의 성격상 staff, analyst 등의 타이틀을 오랬동안 달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5. Mark Kim says:

    주인장님의 글 간간이 보고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반대 의견이 댓글에 달리는 것을 보고 한 마디 적습니다. 저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외국계 회사 세 군데를 총 14년 정도 다닌 사람인데요. 주인장님이 쓰신 직급 관련 내용은 제가 경험한 세 회사에서 공히 적용되는 일반적인 내용으로 전혀 오류가 없음을 코멘트 드립니다.GM(General Manager)은 Director 몇 명을 거느리고 있는 꽤 높은 직급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장이 GM을 달고 있고, 이사나 상무가 Director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걸 본 외국 사람들은 좀 의아해 하더군요. ^^

  6. Anonymous says:

    한국의 사무직은 단계가 너무 많아서 거기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면 미국내 존재하는 직급이 다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위에 열거한 직급들이 한회사에 모두 공존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짬밥 됐다고 진급시켜주는 문화가 없기때문에 직급이 위에 나온것처럼 많이 필요가 없습니다. 시니어 매니저와 디렉터가 공존안하는 회사가 상당수이며 존재하더라도 연봉수준이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스태프 /프린시플 등은 테크니컬한 트랙의 직급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잣으며 연봉면에서 (보너스제외) 매니저/시니어 매니저 디렉터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7. Anonymous says:

    제너럴매니저에 대한 코멘트는 정확합니다. 제너럴매니저를 한국에서는 차장등이 쓰기도 하던데 미국에서는 말도 안되는 겁니다.

  8. Anonymous says:

    모 글로벌 회사의 한국 지사 디렉터(지사장)에게 리포트하는 매니저급 직원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때 편의상 ‘상무’라는 직함을 쓰는데, 그걸 보고 해당회사 본사의 매니저급 한분이 본인이 ‘본사 상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젊은 나이에 글로벌 기업 본사의 상무가 되었다는 식으로 자기 포장하고, 책도 써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도 하죠…

    • Anonymous says:

      저도 이것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본사의 한국인들도 어이가 없어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반대로 한국에서는 TV 등 언론에 자주 성공사례로 등장하더군요.

  9. 단순하게 says:

    미국직급을 한국직급으로 변환하느냐 그 반대이느냐에 차이가 큽니다. 직급 인플레의 경우는 한국이 심한것 같습니다 (직급의 목매는 문화이니 그런것 같습니다만…).
    예를 들면 미국에 Senior Manager와 General Manager라는 타이틀이 있습니다. Senior Manager는 Director라는 포지션이 없는 회사에서 Director에 준하는 보수와 권한이 주어집니다. General Manager는 모든 회사에 있지는 않지만 대우는 VP급 또는 이상입니다 (본글에서 말씀하셨다시피). 이 두 타이틀을 한국에서는 주로 차장/부장을 칭하더군요.
    Manager/Sr Manager/Director/Sr Director/VP/Senior VP/Exec VP를 다 쓰는 회사는 거의 못 봤습니다. 직급이 무수히 존재하는 한국직급에 맞추려면 미국내 존재하는 모든 직급을 다 끌어다 써야 표현이 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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