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가 느끼는 두가지 감정

어제 비행기에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책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 의 앞부분을 읽었다. 유명 창업가이자 벤처캐피탈리스트인 벤 호로위츠가 쓴 책이다.

그는 마크 앤드리신과 Loudcloud라는 스타트업을 꾸려가고 있었고, 회사가 거의 파산직전까지 몰린 상황이 왔는데, 마크가 기분좀 풀라고 이런 농담을 했다고 한다.

마크: Do you know the best thing about startups? (스타트업하면 뭐가 젤 좋은지 알아?)

벤: What? (뭔데?)

마크: You only ever experience two emotions: euphoria and terror. And I find that lack of sleep enhances them both. (스타트업을 하면 말야 딱 두가지 감정만 느끼게 돼. 과도한 희열감과 공포심이지. 근데 잠이 부족하면 이 두 감정이 증폭되더라구.)

난 이걸 보면서 너무 웃겨서 혼자 비행기에서 키득키득 거렸는데, 막상 벤 호로위츠는 당시엔 (하도 상황이 암울해서) 별로 웃기지도 않았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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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의 눈으로 다시 보는 허생전

며칠전 조선시대 관련 책을 하나 읽다가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몇페이지 인용한걸 보게 되었다. 20여년전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보던 그 허생전 말이다. 지금도 교과서에 있는지 모르지만, 아마 나랑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다들 잘 알고 있는 작품이리라. 참 반가왔다.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시험공부 때문에 마르고 닳도록 봤던 작품이라 문장들이 너무 낯이 익어서 마치 오랫동안 못봤던 고등학교 친구를 길에서 마주친 느낌이였다.

근데 차근차근 읽다보니 고등학교 때와는 사뭇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예전에 배우기론 형식과 겉치레에 물든 조선 사대부를 풍자하는 문학작품이라고 들은것 같은데, 이건 내가 지금 보기에 완전한 ‘벤처’ 소설이다. 허생이란 선비가 사업가로 뛰어들게 된 과정, 펀드레이징, 사업전략과 그 전개 과정, 글로벌 진출, 엑시트및 투자자금 회수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벤처라는 말이 생기기도 수백년 전에 연암 박지원은 벤처를 이해하고 있었다. 엄청난 혜안이 아닌가!

각설하고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아래 내 빨간색 코멘트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Slide1 Slide2 Slide3 Slide4(중략)

Slide5 Slide6 Slide7 Slide8(후략)

후략된 부분엔 성공한 사업가 허생을 정치권에서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내가 직업병이 있는지 몰라도, 이 정도면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정말 reality 넘치는 벤처 소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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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전문은 여기서 캡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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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상담 4 – TOP 모델

오늘은 커리어 상담 글 4번째로 TOP 모델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한다. 제목을 쓰고 보니 무슨 패션쇼에 나오는 수퍼모델에 관한게 아닐까 하는 오해를 하기 쉬운데,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그런것과는 상관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TOP 모델은 T – Talent , O – Organization, P – Passion 의 첫글자를 따와서 기억하기 쉽게 붙인 것이다. 물론 내가 만든 모델은 아니고, 예전에 회사에서 교육받을때 어디선가 들었는데 출처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 핵심 메시지는 기억하고 있어서 공유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적인 커리어는 이 세가지가 조화될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나씩 간단히 살펴보자.

career top model

Talent (재능) – 이건 ‘내가 남보다 잘하는게 뭔가’에 관한 것이다. 뭔가를 정말 정말 잘 하는 사람을 보면 피나는 노력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캬~ 정말 타고 났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될때가 많다. 모짜르트의 음악적 재능이나 마이클 조던의 동물적인 슛감각등을 연상하면 된다. 명석한 두뇌나 예술적 재능과 같은 축복은 물론, 활발한 성격이나 친화력등 기질에 관한 것도 이에 속한다. 이렇게 말하면 선천적인 것만 생각할 수 있지만, 때로는 본인이 노력하다가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때도 많다. 살다가 자신도 몰랐던 능력을 발견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모든 사람이 스티브 잡스같은 천재일 수는 없겠지만, 성공적인 커리어를 위해 재능이란 요소가 어느정도 뒷받침이 되어야함은 부인할 수 없다. 내 주위에 골프에 대한 열정은 선수 못지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골프를 커리어로 택해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Passion (열정) – 이건 ‘내가 뭘 좋아하는가, 뭐가 하고 싶은가’에 관한 것이다. 열정은 두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재능만 가지고는 큰 성공을 이루기 어렵다. 스포츠 영웅이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뛰어난 재능에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해 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인내의 시간을 이겨내려면 그만한 열정이 없으면 힘들다. 또 열정이 중요한 것은 본인의 행복과도 직결된다. 일에 열정이 있는 사람은 일하는 것 그자체가 즐겁다. 일이 더이상 일이 아닌 것이다. ‘뛰는 놈위에 나는 놈있다’ 는 말이 있던가. 난 ‘나는 놈 위에 즐기는 놈’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결국 자아성취나 본인의 행복추구라는 면에서 생각해 보면 ‘열정’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Organization (조직) – 이건 ‘내가 속한 조직이 어떤 도움을 주는가’에 관한 문제다.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인재가 마음껏 나래를 펼수 있도록 회사가 여러 지원과 기회를 주는 것은 개인과 회사의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 전 구글 CEO 였던 에릭 슈미트가 쉐릴 샌드버그에게 한 말이라고 해서 유명해진 ‘로켓에 자리가 나면 일단 올라타라‘ 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급성장하는 회사에서는 그만큼 개인적 커리어 성장의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이건 ‘묻어간다’와는 다른 의미이다). 암튼 성공적인 커리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볼때 자신이 속한 팀이나 회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망해가는 회사나 개인적 발전의 기회가 없는 직장에서 만족스런 커리어 빌딩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눈치챘겠지만, Organization 이란 요소의 특징중 하나는 이직 혹은 사내이동등을 통해 바꾸는게 가능하다 (반면 Talent나 Passion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은 — 위의 세가지 요소가 맞물린 교집합의 영역에서 성공적인 커리어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만약 본인이 위의 세가지를 모두 갖추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운아일 것이다. 본인에게 부족한게 있다면 무엇인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한 번 돌아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한가지 사족 —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입시 위주 교육의 가장 큰 폐해는 아이들이 자신의 Talent와 Passion을 모른채 20살이 된다는 것이고, 대학교를 졸업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엉뚱한 Organization에 조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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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재봉틀

나에게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있다. 역경의 세월을 이기고 자식 셋을 키우셨지만, 나를 비롯 세명 모두 외국에 나가 있어서 두 분만 한국에 계신다. 아직은 다른 사람 도움을 많이 받지 않으시고 살고 계시지만, 매번 찾아뵐 때마다 조금씩 부모님이 노쇠해지신 것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특히 어머니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파킨슨병 증세때문에 거동이 많이 불편하시다. 손떨림 증상이 예전엔 다른 사람 눈에 잘 띠지 않을정도로 미미했지만, 오늘보니 확연히 손을 떨고 계셔서 깜짝 놀랬다. 이제 어떤 때는 걸음 걸이도 생각대로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니 울컥한 마음만 앞선다.

부모님 집에는 아주 오래된 Singer 재봉틀이 있다. 어머니도 할머니께 물려 받은 것인데 아마 100년도 넘은 것 같다. 아직도 잘 작동하고 가끔 어머니가 쓰시기도 한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Singer는 ‘명품’ 재봉틀이였고 할머니의 재산 목록 1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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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 재봉틀을 할머니가 도대체 어떻게 들고 피난 나오셨을까가 궁금해졌다. 어머니쪽 집안은 평안도에서 격변의 세월동안 월남하셨다. 이삿짐을 부친것도 아니고 용달차도 없었을테니 도대체 저 무거운 재봉틀을 어떻게 들고 내려오셨을까? 궁금해서 어머니께 물어보니 할머니가 본체만 머리에 이고 내려오셨단다 (나무 책상은 나중에 따로 구입하신듯). 본체만의 무게도 상당하다. 이게 요새 재봉틀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다. 그냥 쇳덩이 무게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할머니가 이렇게 무거운걸 머리에 이고 걸어서 그 먼길을 오셨다는게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젖먹이 아이 (막내이모) 하나를 업고, 코흘리개 아이 하나 (4째이모) 는 한손에 잡고 말이다.

재봉틀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가 1948년에 월남하신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2년전이니 남북은 38선으로 갈려있던 시절이다. 어머니는 당시 만 7세 였다. 65년전 일이지만 어머니는 당시 월남 과정을 어제일처럼 기억하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남 5녀를 두셨는데 맨 위로 아들, 그리고 내리 딸만 다섯이다. 어머니는 그중 세째딸이다. 어머니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먼저 맨 위 자식 둘 (삼촌과 첫째이모)을 데리고 서울로 내려와 있었다. 아래는 어머니가 생생하게 풀어주신 당시 이야기를 내가 최대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살려 기술한 것이다.

이상하게 아버지가 며칠째 계속 보이질 않았어. 아버지가 어디 가셨을까 궁금했지.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나(당시 7세)와 언니(당시 10세)에게 오더니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따라서 어디를 가라는 거야. 언니 손에는 작은 아버지 이름과 주소를 적은 종이와 약간의 돈을 쥐어 주셨어. 나는 영문도 모르고 처음 보는 이 아저씨를 따라서 언니와 함께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어.

그 아저씨와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렸고 걷기 시작했는데 깜깜한 밤이였어. 이제부턴 걸어서 산을 넘어야 한다는데, 입벙긋 하지 말고 쥐죽은듯이 따라오라고 하더라고.

아저씨를 따라 산을 넘는데 깜깜하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엔 산길도 아닌것 같았어. 보이는것도 없고 길이 얼마나 좁았던지. 그런데 어디서 사람 기침소리가 났어. 모두 화들짝 놀랐지. 언니와 나보고 엎드리라고 하더라고. 나무뒤에 웅크려서 숨죽이고 있었어. 아저씨가 나와 언니를 확 덮치며 자세를 더 낮추라고 해서 거의 눕다시피 했어. 어찌나 겁이 나던지.

다행이 인기척이 사라지고 발걸음을 재촉해 산을 넘어 어떤 집에 도착했어. 거기서 조로 만든 밥을 주었는데 정말 배가 고팠지만 처음 먹어보는 것이고 너무 퍽퍽해서 거의 먹을 수가 없었지.

그 집에서 어떻게 웅크려 자고 다음날에 아저씨가 언니와 나를 한 기차역에 데려다 줬어. 그리고 그 아저씨가 언니에게 혹시 돈 가지고 있는것 있냐고 물어봤어. 언니는 엄마가 준 돈이 있었지만, 없다고 둘러댔어. 그리곤 그 아저씨는 역 사무실로 가는 것 같더니 그 뒤로 보이질 않았어. 우린 여기서 기차를 타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난 전혀 몰랐어. 언니도 몰랐던 것 같애.

그 기차역 플랫폼에는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 언니와 나 이렇게 조그만 여자아이 둘만 있는게 안스러워 보였는지 ‘어디로 가냐, 부모님은 어디있냐’ 등등을 물어오는 사람이 많았어. 그리고 부모님이 없다는 걸 알고 ‘우리 가족과 같이 가자’고 말해준 사람도 있었지.

한참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팠는데 역 한쪽에보니 사탕 장수가 있었어. 그게 얼마나 먹고 싶던지. 사탕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건 알았지만 너무 먹고 싶어서 언니를 졸랐어. 결국 하나씩 사먹었는데 아까 돈 없다고 거짓말 한게 탄로날까봐 그 아저씨가 있나 주위의 눈치를 열심히 살폈어. 지금 생각하면 (돈으로 사탕 사먹은게) 참 어리석었지 (웃음)

한참을 기다리니 기차가 왔는데, 이게 사람이 타는 기차가 아니고 화물기차였던 것 같애. 사람들이 앞다투어 올라타는데 기차 안에 타는게 아니고 기차 꼭대기 짐칸에 기어 올라가서 타는 거야. 언니는 어떻게 올라갔는데 나는 힘이 부쳐 도저히 혼자 힘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어. 아까 같이 가자고 말하던 가족들도 막상 기차가 오니 다들 자기 가족 올려 태우기 바빴어. 기차에 못 올라가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기차가 ‘빠~앙’ 기적소리를 내는 거야. 곧 떠난 다는 말이지. 그 때 얼마나 눈앞이 캄캄하던지. 그 길로 기차가 떠났으면 난 그냥 고아가 되는 거야 (그리고 윤필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그 때 마지막 순간에 누가 날 기적적으로 끌어 올려줬어. 간신히 기차에 올랐지. 기차를 타고 간다기 보다 기차칸 꼭대기에서 찬바람 맞으며 ‘실려’ 가는 거였어.

서울에서 내려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이 어딘지 어떻게 알아. 주위에 물어보니 이번 정거장도 서울이고 다음 정거장도 서울이래. 난감했지. 그냥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역에서 내리기로 했어. 내리고 보니 그게 서울역이였어. 그렇게 언니랑 나랑 딸랑 둘이서 서울역에 온거야. 주소하나 들고.

그 때부터 물어물어 경찰서를 찾아 다녔지. 주소를 찾아가야 하니까. 경찰서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어. 간신히 찾아 경찰의 도움을 받아 회현동의 작은 아버지집에 도착했어. 가보니 거기 아버지가 계신거야.

나중에 안거지만, 아버지는 먼저 남쪽으로 와계셨어. 오빠랑 큰 언니를 데리고. 아버지에 들은 이야기론 아버지는 오빠랑 큰 언니랑 38선을 건너다가 한번 걸렸다는 거야.

아버지는 당시 북에서 남한돈을 좀 바꿔서 가지고 가고 있었는데, (남한돈이 걸리면 더 문제가 될 것 같애서) 틈을 타서 돈을 몽땅 보리밭에 버리셨대. 당시 38선에서 아이들은 잡지 않고 어른만 잡았기 때문에 오빠랑 큰 언니는 잡혀가지 않고 아버지만 연행되었어. 연행도중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뒷문(?)으로 탈출하셨대.

나랑 작은 언니가 서울에 오고나서 며칠 지나서 엄마와 동생들도 왔어 (재봉틀도!). 이렇게 3번에 나눠서 월남한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무사히 건너온게 기적이지.

엄마는 이어서 1-4 후퇴때 피난 가신 이야기도 이어서 해주셨다. 거기에도 기차 꼭대기에 얹혀 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추운 겨울이라 더 힘들었고, 기차 위에서 뭔가에 부딪히거나 기차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고 증언하신다. 다행히 할머니가 어린 딸들이 기차에서 떨어질까봐 꼭 붙들고 계셨는데, 할머니가 그 와중에 꾸벅 꾸벅 졸기도 하셔서 마음이 불안했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그때 기차에서 안 떨어진게 행운이였고, 떨어졌으면 분명 그대로 철로 옆에서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어머니께 왜 이렇게 영화같은 이야기를 이제껏 나에게 한번도 들려주지 않으셨나고 물었다. 어머니 대답은 ‘네가 물어보지 않아서’ 였다 (내가 집에서 좀 말이 없긴 하다). 갑자기 모든 인생이 기적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인간이 태어난 것 자체가 기적같다. 아버지쪽 사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좀 더 열심히 그리고 진지한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아울러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께 무한 감사하다. 그리고 1948년 38선 이남의 한 기차역에서 어머니를 기차에 끌어 올려주신 이름 모를 그 누군가에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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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과 벤처캐피탈

저널리즘과 벤처캐피탈은 언듯보면 별로 상관없는 두 단어처럼 들린다. 한쪽은 ‘글’을 다루는 업이고 다른 한쪽은 ‘돈’을 다루는 업이니 그러하리라. 하지만 내가 실리콘 밸리에서 보는 두 업종은 점차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성장하고 있고, 상호간에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며, 저널리스트 (혹은 블로거)에서 벤처캐피탈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전혀 다른 업종 같은데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할까? 아직 국내에서는 그런 예가 없어서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예가 많다.

우선 저널리스트나 블로거 출신으로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된 사람들의 예를 보자.

  • 마이클 모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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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VC중 한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야후, 페이팔, 구글, 유튜브등의 회사에 투자해 초대박 엑시트를 여러번 일군 전설적인 인물이다. 오늘날 Sequoia Capital의 이름이 있게 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특이한 경력이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와튼스쿨에서 MBA를 한뒤 타임지의 기자로 일했다. 그는 타임지에서 실리콘 밸리소식이나 테크놀로지 분야를 많이 다루었는데, 스티브 잡스를 취재한 기사가 잡스의 심기를 건드려 두 사람의 사이가 영영 틀어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무튼 그는 Sequoia의 창시자인 돈 발렌타인의 눈에 띄어 발탁되었고, 벤처캐피탈에 입문하여서는 많은 성공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며 승승장구 하였다. 최근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 운영에서는 한발짝 물러났지만, 투자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 마이클 애링턴

michael arrington

이 사람은 유명한 테크 블로그인 테크크런치 (TechCrunch)의 창시자이다. 테크크런치는 2005년에 애링턴이 설립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이제는 실리콘 밸리의 여러 테크 블로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며 특히 스타트업의 소식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매체의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다. 테크크런치는 2010년 AOL에 매각되었고, 지금도 AOL 산하의 독립적인(?) 매체로 이어오고 있다. 애링턴은 2011년 테크크런치를 떠나 ‘크런치 펀드’라는 벤처캐피탈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도 테크크런치 행사에 나오기도 하고 개인 블로그인 Uncrunched에서 저술활동도 하고 있으니 블로그와 벤처캐피탈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 MG 씨글러

mg siegler

이 사람은 현재 구글 벤처스의 파트너 이지만 본래 테크크런치와 벤처비트의 기자(칼럼니스트)였다. 그는 구글 벤처스로 옮긴 뒤에도 테크크런치에 종종 기고하고 있다. 1년전 그가 삼성을 자세히 분석한 기사 “5번째 기수 (The Fifth Horseman): 삼성”는 국내 언론에서도 많이 인용보도되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반대로 본래 벤처캐피탈리스트이지만 저널리스트 혹은 칼럼니스트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있고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예를 보자

  • 프레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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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스퀘어 벤처스를 이끌고 있으며, 트위터, 텀블러등에 초기 투자한 윌슨은 A VC라는 블로그를 오랫동안 써오고 있다. 아마도 스타트업이나 VC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블로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길지 않지만 핵심을 찌르는 내용이나, 10여년째 거의 매일 글을 올리고 있는 꾸준함도 많은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좋은 내용인 만큼 올라오는 글마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개인적으로 A VC 블로그를 읽으며 배운게 많고, 이것이 inspiration이 되어 2년전쯤 Live & Venture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 폴 그램

paul graham

Y Combinator의 창시자인 폴 그램은 이제 실리콘 밸리에서 흔히 ‘스타트업의 대부’라 불리게 되었다. 그만큼 이 곳 대표적인 인큐베이터인 Y Combinator의 위치나 폴 그램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이 분은 자신의 블로그에 에세이 형식으로 스타트업 경영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다. 한번 올라오는 에세이는 보통 다른 블로그보다 양이 꽤 길어서 정독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다. 글의 깊이와 양이 상당한 만큼 자주 글이 올라오진 않지만, 한번 올라오면 소셜 미디어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진다. 이제까지 올라온 에세이를 합치면 아마 책 몇권의 분량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한다. 에세이 몇개만 읽어봐도 이분의 내공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 크리스 딕슨

Chris-Dixon

그는 예전에 몇개 회사를 창업해 엑시트한 사업가였지만, 온라인 상에선 블로거로 더 유명했던 인물이다. cdixon.org 는 오래전부터 스타트업/VC 업계의 손꼽히는 블로그중 하나였다. 그는 약 1년전 유명 벤처캐피탈 회사인 앤드리신-호로위츠의 파트너가 되어 현재 활발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블로그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서, 최근 비트코인의 유용성을 쉽게 풀어쓴 “내가 비트코인에 관심 있는 이유“라는 글로 많은 이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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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이 저널리스트 혹은 블로거이다가 벤처캐피탈 하는 사람도 꽤 있고,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활발한 블로깅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두 직업군간의 공통점을 굳이 꼽자면 아마 ‘인사이트’가 중요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IT 산업 소식을 전하는 각종 뉴스나 블로그를 접하면 글쓰는 이들의 식견이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단순히 보도자료를 가공해서 전달하는 수준이 아니고, 예리한 분석과 더불어 문제점 지적, 향후 전망등을 콕콕 짚어내는 기자들을 보면 그 산업에 종사하고 있진 않지만 가히 전문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벤처캐피탈리스트도 자기가 투자하는 분야의 동향등을 잘 파악하고 나름대로의 인사이트에 기반해서 투자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두 직업 모두 남에게 질문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는 공통점도 있는 것 같다. 또, 인적 네트워크가 두 직업군에 무척 중요하다는 것도 공통점일 것이다. 기자들이 특종을 캐내는 것이나, 투자자가 좋은 투자건을 발굴해 내는 것이나 모두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AllThingsD를 나와서 Re/Code를 창립한 유명 블로거인 왈트 모스버그는 1991년부터 20여년째 소비자 기술제품만을 다루고 있다.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모스버그의 애플 제품 리뷰를 주의 깊게 챙겨 볼 정도로, 그의 목소리가 업계나 매출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개인적인 바램은 우리나라 언론에도 이렇게 ‘전문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기자, 저널리스트, 블로거가 많이 탄생했으면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한 사람이 해당 분야 (예를 들어 IT 혹은 경제)를 깊이있게 5년 이상 꾸준히 파야 할텐데, 어디서 들은바에 의하면 한국 언론사의 현실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고 한다 (잦은 부서간 이동). 한국에서도 특정 분야에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춘 기자나 블로거가 실제 전문가 집단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나오지 말란 법 없으니 여건만 갖추어지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단, 정치 전문가는 충분히 많은 것 같으니 그건 논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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